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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명의 배꼽, 그리스〉
▲ 책겉그림 〈문명의 배꼽, 그리스〉
ⓒ 리더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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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여행의 출발지를 펠로폰네소스로 정했다. 바로 이 곳 펠로폰네소스가 그리스 문명의 어머니이자 서구 문명의 자궁이기 때문이다. 익히 알려진 코린토스, 미케네, 올림피아, 스파르타 외에도 미스트라, 모넴바시아, 글라렌자, 에피다우로스 등 고대 그리스 문명의 씨앗들이 뿌려지고 싹튼 땅이 바로 펠로폰네소스이다.

'시골의사'로 널리 알려진 박경철의 <문명의 배꼽, 그리스>의 서문 내용이다. 그리스를 품으면서 왜 펠로폰네소스에 정조준하고 있는지를 밝힌 대목이다. 이유인 즉 그리스 문명은 바로 그 펠로폰네소스에서 싹이 트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었다고 생각하는 까닭이다.

물론 그것은 전적으로 그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다. 20대 청년 시절에 홀딱 빠진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수많은 책들을 섭렵하면서부터였다. 여태 가슴으로 묻어왔던 그리스 기행을 지천명을 앞두고 감행한 것도 모두 그의 정신사적 견인차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여행사가 정한 코스나 일정에 맞춰 그가 기행을 선택한 건 아니다. 지도 한 장 달랑 들고 비행기와 배로 대륙을 건너고 국경을 넘은 여행길이었다. 그야말로 해 뜨면 떠나고 해 저물면 머무는 '노마드'처럼 동가식서가숙 하는 날들을 보낸 것이다.

왜 그런 여행길을 떠났을까? 모두가 사물에 나아가 그 이치를 궁구해야 한다는 가르침, 이른바 '즉물궁리'(卽物窮理)의 가르침 때문임을 밝힌다. 책상머리에서 얻은 지식만으로는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그의 남다른 생각 말이다.

더욱이 이 책은 보통의 문명 이야기를 다루는 연대기적 서술이 아니다. 그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여행기보다는 공간 이동을 중심에 놓는 형식을 취한다. 그것이야말로 실은 이름 모를 민초들이 쌓아 올린 무명의 탑들도 깊이 들여다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코린토스는 천혜의 지정학적 장점을 바탕으로 번영을 누렸다. 하지만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위치라는 의미의 이면엔 지정학적으로 가장 위험한 지역이라는 의미도 담겨 있다. 실제로 이 코린토스의 방벽은 아티카를 유린한 크세르크세스의 군대도 주춤거리게 만들었고, 오스만투르크의 강력한 육군도 엄청난 희생을 치르지 않고서는 돌파할 수 없었다. 즉 아티카에서 펠로폰네소스에 발을 들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코린토스의 방벽을 넘어야만 했다.(136쪽)

코린토스, 이른바 고린도에 관한 이야기다. 펠로폰네소스에 다다르는 첫 관문이 바로 고린도라는 의미다. 그곳이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것은 좌우에 켕크레아이 항과 레카이온 항이 자리하고 있고, 동서를 가로지르는 고린도 운하가 놓여 있는 까닭이다. 그만큼 고린도는 물물교역이 활발했고, 경제적인 부가 집중됐고, 찬란한 역사를 자랑하는 된 곳이었다.

그런데도 고린도인들은 마케도니아, 로마, 비잔틴, 노르만, 프랑크, 베네치아, 그리고 터키에 이르기까지 교대로 능욕을 당하는 굴종의 역사를 맞이해야 했을까? 박경철은 그 이유를 분열과 대립의 대가로 보고 있다. 이른바 마케도니아 편에 선 고린도인들과 마케도니아를 배반한 그리스인들 간의 반목과 분열의 역사에 있다는 것 말이다.

"바로 이 시기에 피어난 그리스 문명은 결코 향기도 촉감도 없는 초자연적인 개화가 아니었다네. 그것은 땅 속 깊이 뿌리를 내리고 진흙을 빨아 먹으며 꽃을 피운 나무였던 게야. 실제로 진흙을 많이 빨아먹을수록 꽃은 더욱 아름답게 피어나는 법이라네."(233쪽)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올림피아의 풍경>에 나온 글귀를 따온 것이다. 박경철이 올림피아 신전의 위대한 건축술과 자연 풍광을 바라봤을 때 자연스레 그의 글귀가 떠올랐다는 것이다. 비록 역사 속에서 혹독한 대가를 치렀어도 그들은 위대한 건축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고 한다.

2011년 겨울 첫발을 뗀 그의 여행은 앞으로도 계속될 예정이다. 그리스 전체를 횡단하는 그의 여행은 펠로폰네소스에서 시작해 아테네가 속한 아티카의 테살로니키 그리고 고대 그리스 권역을 아우르는 마그나 그라이키아 등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이 책은 그 중 1부에 속한다. 제2부와 제3부, 그리고 제4부가 계속 나올 것이며, 그것은 열 권의 책으로 정리될 것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와 함께하는 그의 여행기가 무척 기대된다.

덧붙이는 글 | <문명의 배꼽 그리스> 박경철 씀, 리더스북 펴냄, 2013년 2월, 454쪽, 2만 원



문명의 배꼽, 그리스 - 인간의 탁월함, 그 근원을 찾아서

박경철 지음, 리더스북(2013)


태그:#박경철의 〈문명의 배꼽, 그리스〉, #니코스 카잔차키스, #〈올림피아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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