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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을 타면 꽃바구니, 유명 백화점 쇼핑백 등을 들고 어디론가 향하고 있는 어르신들을 마주치곤 한다. 지하철 이용료가 무료인 65세 이상 노인들이 '지하철 실버퀵 택배기사'로 일하는 현장이다. '지하철 실버퀵 택배기사'는 고령화 사회 노인들의 일자리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문을 연 지 10년이 넘은 한 지하철 실버퀵 택배회사에서 일하는 할아버지와 하루 동안 동행했다... <기자말>

스마트폰 없이 길 찾는 법? "노하우가 있지"

"일산 MBC 옆에 웨스턴돔으로 가야해. 얘기 나누기 전에 일단 MBC부터 찾자고."

지난 7일 오전 9시 30분 지하철 3호선 정발산역에서 만난 지하철 택배기사 김광연(69)씨는 20대가 쫓아다니기 벅찰 정도로 활기가 넘쳤다. 김씨는 전날 택배회사로부터 한 웨딩업체에서 물건을 받아 배달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보통 회사에선 전날 기사들에게 어디에서 택배 배달 주문이 들어왔는지 미리 알려준다. 택배 주문이 회사로 들어오면, 택배기사들이 사는 곳과 이동거리를 고려해 일자리를 배분하는 것. 택배기사들은 당일날 해당 장소에 가서 배달할 물건과 배송비를 받는다.

"길은 어떻게 찾냐고? 다 물어물어 가는거지. 난 스마트폰도 필요 없어. 길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있는 곳이 부동산이야. 파출소도 잘 얘기해주고. 진짜 물어볼 사람 없으면 중국집에 묻는 거지. 이런 게 다 일하면서 생긴 노하우야."

 김씨는 노선도를 이미 다 외우고 다니는 것도 노하우라고 말했다. 그는 다른 노선으로 환승이 빠른 승차위치가 어딘지만 그때그때 확인한다.
 김씨는 노선도를 이미 다 외우고 다니는 것도 노하우라고 말했다. 그는 다른 노선으로 환승이 빠른 승차위치가 어딘지만 그때그때 확인한다.
ⓒ 차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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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9시 49분. 그는 건물 10층에 위치한 한 웨딩업체 사무실에 도착했다. 웨딩업체 측은 김씨에게 선물 박스와 쇼핑백 2개, 그리고 배송비 2만 원을 건넸다. 웨딩업체 측은 물건을 2호선 선릉역 근처 세무서로 배달해달라고 했다. "고생 많으시다"는 말과 음료수도 함께였다.

물건을 받아 든 김씨는 다시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그와 함께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배송비는 어떤 기준으로 책정되는지 물었다. 그는 메고 있던 가방 앞주머니에서 반으로 접힌 종이 하나를 꺼내서 보여줬다.

물건 배달을 요청한 지역은 왼쪽 줄에, 물건을 받는 지역은 오른쪽 줄에 각각 적혀있다. 예를 들어 강남구에서 강동구로 배달을 한다면, 왼쪽에서 '강남'이라 적힌 부분과 오른쪽에서 '강동'이라고 적힌 부분이 만나는 지점의 숫자가 택배요금이 된다. 즉, 강남에서 강동으로 가는 물건은 택배비가 9000원이다.

 김씨가 항상 들고다니는 택배 운임표. 왼쪽이 출발지, 위쪽 줄이 도착지다.
 김씨가 항상 들고다니는 택배 운임표. 왼쪽이 출발지, 위쪽 줄이 도착지다.
ⓒ 차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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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원래 일을 하던 사람인데... 답답하잖아"

김씨가 이 일을 시작한 건 2010년. 올해로 4년째다.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땐 몸무게도 10kg이나 빠질 정도로 힘들었지만 오히려 지금은 더 건강해졌단다. 당뇨도 없어졌다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돈이 없어서 일하는 건 아냐. 나도 원래 일을 하던 사람인데 갑자기 그만두니까 몸도 마음도 답답하더라고. 그리고 우리 회사도 다 돈 없는 사람들만 있는 것도 아냐. 퇴직은 했는데 일할 체력은 되니까 다들 이거라도 하고 싶어하는 거야."

그는 자신이 한 달에 버는 돈이 80~90만 원이라고 말했다. 하루에 보통 5~6개의 주문을 받는다. 따로 정해진 봉급은 없지만 평균적으로 하루에 약 4만 원이고, 운이 좋은 날은 6~7만 원도 번다. 배달한 만큼 벌기 때문에 시간을 아끼기 위해 지하철 이동 중에 휴식과 점심을 모두 해결한다.

공항에 있는 손님이 여권이나 티켓을 여행사나 동사무소에서 '대신 받아서 갖다달라'고 주문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그 외에 도장, 명함, 주민등록증도 배달해봤다. 꽃바구니와 서류는 그가 가장 많이 배달하는 물건이다.

"꽃다발은 가끔 받는 쪽에서 거부하는 경우도 있어. 남자는 받아달라고 꽃 보냈는데, 여자는 그 남자가 맘에 안 들었나보지. 여자도 물건 받았다고 확인 사인은 해주는데, 꽃다발은 다시 돌려주더라고. 나보고 그냥 갖다 버리라고 하대? 어휴, 장미꽃다발이 15만 원 짜린데 그걸 어떻게 버려. 집에 들고 와서 우리 마누라 줬지. 엄청 좋아하더라고."

"주소를 잘못 적어줘서 헤맬 때 제일 힘들어"

지하철 타고 가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오전 11시 20분이 되었다. 김씨는 2호선 선릉역에서 내려 세무서로 이동했다. 그는 세무서에 선물을 배달한 후, 선릉역에서 다시 지하철을 탔다. 다음 목적지는 학동. 김씨가 자주 주문을 받는 단골 꽃집이다. 오전 11시 55분, 7호선 학동역에서 내린 김씨는 꽃집에 들어갔다. 꽃집을 나오는 그의 손엔 아무 것도 없었다.

"여기가 아니라 서울대입구에 있는 (같은 이름의) 다른 꽃집이래. 회사에서 꽃집 이름만 알려줘서 여긴줄 알았어. 12시까지 물건을 배달해야 하는데 늦겠네..."

표정이 어두워진 그의 걸음이 더 빨라졌다. 2호선 서울대입구역에서 내려 버스로 갈아탄 후, 신림동 고시촌 근처 꽃집에 도착한 건 오후 1시 20분이었다. 버스비는 지하철과 달리 무료가 아니기 때문에, 나중에 회사에서 버스비를 받는다.

김씨는 신림동 꽃집에서 커다란 꽃바구니를 들고 나섰다. 지하철을 다시 탄 김씨는 경로석에 앉고는 꽃바구니를 지하철 문 바로 옆에 내려놓았다. "점심 먹을 시간이 지났다"며 그는 가방에서 주섬주섬 백설기를 꺼냈다. 지하철 2호선은 평일 오후에도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김씨는 내려놓은 꽃바구니가 행여 사람들의 발길에 망가질까 힐끔힐끔 쳐다보며 떡을 먹었다.

꽃바구니를 배달할 곳은 8호선 잠실역 근처 루터회관건물의 사무실이었다. 사무실로 들어갔다가 도로 꽃바구니를 들고 나온 김씨는, 바로 위층 사무실에 들어갔다가 또다시 꽃바구니를 도로 들고 나왔다. 보낸 사람이 주소를 잘못 적어서 보낸 것. 배달해야 할 주소는 아예 다른 건물에 위치한 사무실이었다.

"빨리 스마트폰으로 건물 어딘지 좀 한 번 찾아봐. 날씨도 추운데 꽃 다 얼겠네."

스마트폰 없이 웬만한 길은 다 찾을 수 있다고 자신만만하던 김씨도, 마음이 급해지자 기자에게 길을 찾아달라고 했다.

 꽃바구니를 배달하는 모습.
 꽃바구니를 배달하는 모습.
ⓒ 차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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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김씨는 학동에 잘못 간 것까지 포함하면 3시간 20분에 걸쳐 꽃배달을 한 셈이다. 그는 꽃바구니 배달로 만 원을 받았다. 그는 "택배일이 가장 힘들다고 느끼는 건 이렇게 주소 잘못 알려줘서 길도 헤매고 배달도 늦어질 때"라고 말했다.

'시급 3700원, 하루 9시간' 쉽지 않은 노동

꽃집과 택배주문자에게 "다음부턴 주소 정확히 알아보고 보내라"라고 전화한 후, 그는 다시 여유를 되찾았다. 그는 9호선 국회의사당역으로 향했다. 국회의사당 역 근처에서 인삼 선물세트 2개를 받아서 각각 구로디지털단지 근처 사무실과 송파구 거여동 가정집에 가져다주는 일이 그의 마지막 업무였다.

오후 3시 54분에 국회의사당 역 근처에서 설 선물세트 쇼핑백 두 개를 받아들고 구로디지털단지로 향했다. 피곤했는지 그는 지하철에 타자마자 경로석에 앉아 가방에서 팥떡과 계란을 꺼내서 말없이 먹었다.

 김씨는 지하철로 이동 중엔 잠시 잠을 청하거나 간식을 먹는다
 김씨는 지하철로 이동 중엔 잠시 잠을 청하거나 간식을 먹는다
ⓒ 차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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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구로디지털단지에선 "내가 여기 많이 와 봤지"라며 으쓱해했다. 이번엔 헤매지 않고 바로 목적지를 찾았다. 구로동과 거여동에 물건을 배달하기까지 각각 1시간이 걸렸고, 두 물건의 배달비는 총 1만 8000원이었다. 김씨가 마지막으로 거여동 가정집에 물건을 전달한 시각은 오후 6시 44분이었다.

"그래도 오늘은 일이 일찍 끝난 편이야. 더 늦게 끝날 때도 있는데, 저녁은 집에서 먹을 수 있잖아."

잠실에서 헤매는 바람에 김씨는 물건을 세 개밖에 배달하지 못했다. 보통 그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한다. 하지만 주문이 좀 더 이른 아침이나 늦은 저녁, 혹은 밤 11시에도 들어오기 때문에 출퇴근이 일정하지는 않다. 마침 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내일은 오전 8시 반에 노량진으로 배달주문을 받으러 가야한다.

그는 하루동안 총 4만8000원을 벌었다. 그 중 70%인 3만3600원이 그의 몫이다. 나머지는 택배회사가 가져간다. 계산해본 결과 그의 시급은 3700원이었다. 적은 보수에 식사도 불규칙하다. 그래도 그는 "그래도 3만 원 넘게 벌었어"라며 만족했다. 실제로 김씨는 다른 지하철 택배 기사들에 비해 많이 버는 편에 속한단다. 

그런 그도, 최저임금인 4860원도 채 받지 못했다. 김씨는 "어떤 택배 회사의 경우 사무실도 없어 지하철 안 의자에서 주문이 올 때까지 계속 기다리는 경우도 있고 시급이 천 원 정도에 불과한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심지어 어떤 업체는 수수료 명목으로 수익의 40% 이상을 떼어가는 경우도 있단다.

택배업체에서는 현재 서울 시내에 약 200여 개의 실버퀵 업체가 있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으나 정확하지 않다. 서울시 관계자는 "서울 시내 실버퀵 택배 업체는 대부분 민간업체들이라 이와 관련한 통계나 현황은 따로 조사된 바가 없다"고 밝혔다. 보건복지부와 통계청 역시 같은 답변이 돌아왔다.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노인들에 대한 정부 차원의 개선노력이 절실하다.

덧붙이는 글 | 차현아 기자는 <오마이뉴스> 17기 인턴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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