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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7일 국회에서 북한 핵실험을 앞두고 열린 여야긴급회동에 참석하기 위해 회동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7일 국회에서 북한 핵실험을 앞두고 열린 여야긴급회동에 참석하기 위해 회동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 인수위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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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대통령 선거보다도 훨씬 더 힘든 선거를 치르고 있다. 그것은 총리와 장관을 모아 박근혜 정부를 구성하기 위한 작업이다. 벌써 30명도 넘는 인물들이 물망에 올랐지만 본인이나 가족이 극구 고사했다는 언론 보도도 있었다.

예전 같으면 물망에 오르는 것만으로도 명예스러워 했겠지만, 지금은 까닥 잘못했다가는 그나마 갖고 있던 자리마저 한순간에 날려버릴 수 있기 때문에 다들 극도로 조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대한민국에 이렇게도 인물이 없었나, 예전의 총리나 장관들은 과연 제대로 된 사람들이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더욱 더 서글픈 것은, 박근혜 정부가 내놓은 각료 후보들이 주로 법조인들이라는 점 때문이다. 이 사회의 법과 정의를 책임지는 사람들이 인사청문회를 두려워하고 있으니 서글픔을 감출 수 없는 것이다. 비리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에서는 입법·행정·사법부가 삼권분립이 아니라 삼권통합의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대한민국 공직 사회가 총체적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3천 년 전 은나라 무정왕과 박근혜 당선인

지금으로부터 약 3천 년 전에 왕위에 오른 은나라 제23대 무정왕(재위 기원전 1250~1192년)도 그런 총체적 위기감을 느꼈다. 기존의 조정에는 믿고 쓸 만한 사람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은나라 후반기에 등장한 무정왕은 새로운 정치에 대한 의지로 넘쳤다. 사마천이 지은 <사기>의 '은나라 본기'에서는 "(무정왕은) 은나라의 부흥을 꿈꾸었다"고 했다. 하지만 "보좌할 사람을 얻지 못했다"고 이 기록은 말한다.

이 때문에 무정왕은 새로운 정부를 구성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3년간이나 국정을 관망하는 태도를 취했다. 이전의 정부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일단은 지켜보는 자세를 취한 것이다. '은나라 본기'에서는 "3년간 (국정에 관해) 말하지 않았다"고 했다.

3년간 국정을 방치한 것은 무책임한 행동으로 보일 수 있지만, 거기에는 명분이 있었다. 무정왕은 전임 왕이자 아버지인 소을이 죽은 뒤에 왕위에 올랐다. 그래서 삼년상을 치른다는 명분으로 국정 운영과 거리를 두었던 것이다.

삼년상이 끝난 뒤, 무정왕은 본격적인 행보에 착수했다. 그는 총리 인선작업부터 서둘렀다. 그런데 그의 행보는 특이했다. 그는 꿈에서 본 인물을 총리로 삼겠다고 선언했다. 고대 중국 역사서인 <서경>의 '열명' 편에 따르면, 그는 "상제께서 꿈에 내게 좋은 보필을 내려 주셨다"는 선언문을 발표했다. 하늘이 자기에게 총리의 모습을 알려주었다는 내용의 글을 작성한 것이다.   

은나라의 문자인 갑골문자. 중국 북경(베이징)의 군사박물관에서 찍은 사진.
 은나라의 문자인 갑골문자. 중국 북경(베이징)의 군사박물관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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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인간을 매개로 자신의 뜻을 표현하는 것을 신탁(神託)이라 한다. 무정왕의 발언은 '내가 받은 신탁에 따라 총리를 선발하여 신의 뜻을 성취시키겠다'고 선포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기존 조정의 실세들을 배척하고 자기 소신대로 정부를 구성하기 위해 신탁의 논리를 내세운 것이다.

성경 다니엘서 2장에 따르면, 당대 세계 최강인 바빌로니아 왕국의 느부갓네살 왕(네부카드네자르 왕)은 신비한 꿈을 꾼 뒤, 이스라엘 출신 예언자인 다니엘의 도움을 빌려 꿈을 풀이하고 이를 통해 장래의 세계정세를 예측했다.

이렇게,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지 않았던 고대에는 왕들이 제사장·종교인·점쟁이·무속인의 자문에 따라 국정을 운영하는 예가 많았다. 무정왕의 행위도 동일한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신탁에 따라 총리를 선발하겠다는 무정왕의 계획은 기득권층의 반발을 초래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경우에는 기득권층과 관계없는 의외의 인물이 총리가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지 않은 사회일지라도, 기득권층은 자기 집단의 이익을 침해하는 신탁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보이기 마련이다.

조정 밖으로 눈 돌린 무정왕의 '총리 찾아 삼만 리'

하지만, 무정왕은 계획을 강행했다. <서경> '열명' 편에 따르면, 그는 꿈에서 본 인상착의를 토대로 몽타주를 제작했다. <사기> '은나라 본기'에 의하면, 그는 조정 대신들의 얼굴과 몽타주를 일일이 대조해 보았다. 하지만, 조정에서는 그런 인물을 찾을 수 없었다. 

이제, 무정왕은 조정 밖으로 눈을 돌렸다. 그는 인재를 구하기 위해 기득권층이 아닌 새로운 사람들을 찾았다. 몽타주를 전국 방방곡곡에 배포한 것이다. '총리 찾아 삼만 리'였던 것이다.

결국 몽타주 속의 인상착의와 일치하는 인물을 찾았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주인공은 부열이란 사람이었다. 그는 노역장에 근무하는 일꾼이었다. 당시의 노역장에는 주로 죄수나 노비가 근무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의 지위가 매우 낮았음을 알 수 있다.

무정왕은 부열을 곧바로 기용하지 않았다. 꿈에서 본 인물과 인상착의는 동일하지만, 노역장에서 데려온 인물인지라 얼른 믿기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무정왕은 인사검증에 착수했다. <사기> '은나라 본기'에서는 "(무정왕이) 그와 대화를 나눠보았다"고 했다.

그제야 무정왕은 무열이 대단한 인재라는 확신에 도달했다. 그리고 그를 재상으로 추대했고, 그 성과는 훌륭했다. "은나라가 잘 다스려졌다"고 '은나라 본기'는 말한다. 기득권층을 배제하고 신탁을 내세워 새로운 정부를 구성한 무정왕은 부열이란 인재를 얻어 나라를 강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중국 하남성 안양시에 있는 은허박물관. 은허는 은나라의 수도였다.
 중국 하남성 안양시에 있는 은허박물관. 은허는 은나라의 수도였다.
ⓒ 위키피디아 백과사전 중국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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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열이 보통 인물이 아니라는 점은, 서기 3세기에 장화라는 중국인이 편찬한 <박물지>라는 백과사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박물지>에서는 <신선전>이란 책을 인용하여 "부열이 승천하여 진성(辰星)·미성(尾星)의 별자리가 되었다"고 했다. 부열이 정치적으로뿐만 아니라 종교적으로도 세상의 존경을 받았기에 이런 이야기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무정왕의 꿈에 정말로 부열이 등장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정말로 그랬을 수도 있지만,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어쩌면 무정왕은 처음부터 부열을 알았을 수도 있다. 삼년상을 치르는 동안에 새 정부 인선을 위한 비밀 작업을 벌였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부열의 처지가 열악하다는 약점을 가릴 목적으로 신탁이니 꿈이니 하는 것을 내세웠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 꿈이 사실이건 아니건 간에, 확실한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무정왕이 낡아빠진 기득권층과의 안락한 제휴를 거부하고 일부러 어려운 길을 선택했다는 점이다.

무정왕은 구시대 인물들과 함께 국정을 운영하느니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는 편이 낫겠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삼년상을 명분으로 국정 운영과 거리를 둔 것이다. 그렇게 한 뒤에 그는 당대의 종교 관념을 활용하여 신탁이니 꿈이니 하는 것을 앞세워, 기득권층 밖에서 총리를 선발하는 파격 인사를 단행했다. 그리고 이것은 성공했다.

박근혜 당선인은 총리를 찾기 위해 벌써 몇십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물색해봤다. 그 정도라면, 그의 주변에는 제대로 된 총리 후보가 없다고 결론을 내려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총리가 될 만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몇 십 명이나 물색해봤다면, 할 만큼 다 해본 셈이다.

무정왕이 그랬던 것처럼, 박근혜 당선인은 구시대와 이리저리 뒤얽힌 인물들에 대한 미련을 떨쳐버려야 한다. 그도 무정왕처럼 꿈을 꾸어야 한다. 그리고 국민(하늘)이 꿈에서 알려주는 총리가 어떤 인물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무정왕처럼 3년간 국정 운영을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국민의 뜻이 확인될 때까지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말아야 한다. 


태그:#박근혜 정부, #인사청문회, #무정왕, #부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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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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