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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뉴스 세상에서 가장 슬픈 휴가를 떠났습니다

매서운 칼바람이 부는 하늘에서 설날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있다. 고공 농성 중인 노동자들이다. 이들이 머무는 곳은 15만 볼트 송전탑, 성당 종탑, 굴다리 난간 등이다. 적게는 3일째부터 길게는 115일째 농성들을 벌이고 있다.

8일 전화 통화를 통해 이들의 심정을 들어봤다.

[복기성 쌍용자동차 해고자] 송전탑 생활 81일째... 소원은 "가족과 저녁식사"

▲ 쌍용차 철탑농성 77일째 지난 4일 민주노총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의 한상균(52) 전 지부장, 문기주(53) 정비지회장, 복기성(38) 비정규지회 수석부지회장이 77일째 경기도 평택시 쌍용자동차 공장 부근 철탑에서 국정조사 실시, 비정규직 정규직화, 해고자 복직 등을 요구하며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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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 거리에 아이들이 있는데…."

복기성 비정규지회 수석부지회장은 "설 연휴에는 아이들을 보고 싶다"며 말을 흐렸다. 복 부지회장에게는 7살 딸과 5살 아들이 있지만 81일째 아이들 얼굴을 쓰다듬어주지 못했다. 그가 있는 곳은 경기 평택시 쌍용자동차 공장 앞 송전탑. 15만 4000볼트의 전류가 흐르는 곳이다.

한번은 부인이 아이들과 함께 송전탑 먼발치까지 와서 손을 흔들어줬다. 그는 바람에 휘청거리는 송판 위에 서서 아이들을 바라봤다. "아빠가 보고 싶다"며 우는 모습에 그의 마음도 흔들렸다고 한다. 그 뒤로 아이들은 오지 않았다.

그는 2009년 쌍용차 정리해고 사태로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다. 그가 원하는 건 복직과 정규직 전환 그리고 쌍용차 국정조사다. 얼마 전 무급휴직자 455명이 복귀하게 됐지만 여전히 201명은 해고된 상태로 남아있다. 그동안 불거져온 회사의 회계조작도 풀어야할 문제다. 하지만 그의 진짜 소원은 바로 이거다.

"개인적인 소원은 가족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는 거예요. 아내가 차려준 밥 먹으면서 즐겁게 설 연휴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습니다."   

[홍종인 유성기업 해고자] "설도 설이지만... 오는 15일은 초등학생 아들 졸업식"

 홍종인 금속노조 유성기업 지회장
ⓒ 충남시사 이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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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인 금속노조 유성기업 지회장은 14살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 뿐"이다. 올해 중학생이 되는 아들은 오는 15일 초등학교 졸업식을 치르지만, 아버지인 그는 졸업식에 가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아버지로서 아들 졸업식에 참석해 사진이라도 같이 찍고 싶죠. 그런데 당장 설날에 아들이랑 떡국 먹는 일도 힘든데요."

그는 충남 아산시 유성기업 인근 자동차전용도로 굴다리 난간에 움막을 매달고 고공 농성 중이다. 그는 2011년 노조파업에 대한 유성기업의 직장폐쇄로 거리에 내몰렸고, 지난해 10월 21일부터 회사의 사태 해결을 요구하며 고공 농성을 시작했다. 8일로 111일째가 됐다. 이번 설 역시 한 사람 누울 정도 크기의 움막에서 버텨야 한다.

그가 처음 굴다리 난간 위에 올랐을 때, 그 모습을 본 아들은 많이 울었다고 한다. 세 달이 훌쩍 지났는데도 아들의 눈물샘은 마를 날이 없다. 설날 때 손에 용돈이라도 쥐어주며 마음을 달래주고 싶지만, 그의 몸은 굴다리 난간 위 움막에서 움직일 수 없다.

그는 오늘도 "아버지 노릇을 할 수 있는 날"을 꿈꾸며 하루를 마감한다.

[오수영 재능교육 해고자] 난간 없는 성당 위에서도 시어머니 걱정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 재능교육지부 소속 해고노동자인 여민희(41)씨와 오수영(40)씨가 6일 서울 종로구 혜화동 재능교육 본사 맞은편 혜화동성당 종탑에 올라가 해고자 전원 복직과 단체협약 원상회복을 요구하며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오수영씨가 재능교육 본사 간판을 배경으로 서 있다.
ⓒ 이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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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수영씨는 남편과 함께 70세 넘은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아왔다. 매년 설 연휴 때마다 친척들이 그의 집에 찾아왔다. 오씨는 시어머니를 도와 전을 부치고 차례상을 차렸다.

하지만 올해에는 시어머니 혼자 제수음식을 준비해야 한다. 재능교육 해고 노동자인 그는 지난 6일부터 동료 해고 노동자와 함께 서울 종로 재능교육 본사 건너편 헤화동 성당 종탑에서 고공 농성에 돌입했다.

"시어머니한테는 아들만 셋이에요. 제대로 된 음식을 만들 줄 아는 사람은 저밖에 없는데…."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 재능교육지부(이하 재능교육노조)의 전임자로 활동하던 오씨는 2008년 해고됐다. '노조 활동을 그만 두고 업무에 복귀하라'는 회사의 명령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해 11월 "재능교육 학습지 교사들에 대한 계약해지는 무효"라고 판결했지만 오씨는 여전히 복직되지 않고 있다. 그가 성당 종탑에 올라간 이유다.

"가족이 그립지만 해고자 복직과 노동조합 인정이 이뤄질 때까지 내려오지 않겠다"는 오씨. 그는 이번 설날을 높이 20m 너비 약 30m²의 난간 없는 종탑에서 맞고, 그의 시어머니는 혼자 제수 음식을 준비해야 한다.

[김재주 택시노동자] 33m 조명탑에 있는 아들, 어머니는 언론 보고 알았다

 김재주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천일교통 분회장이 손을 내밀어 인사를 하고 있다.
ⓒ 문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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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천일교통 분회장인 김재주씨의 어머니는 얼마 전에야 아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았다고 한다. 그것도 언론 보도를 통해서다. 8일 현재 아들은 전주 야구장의 33m 조명탑에서 36일째 지내고 있다. 한 달이 넘도록 까맣게 모르고 있던 것이다.

택시노동자였던 김 분회장은 2011년 11월 5일 천일교통에서 해고됐다. "민주노총 노조를 세우면서 회사 측의 노조탄압이 시작됐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김씨는 고용노동부 노동위원회의 복직명령을 받았는데도 6개월 넘게 복직을 거부하는 회사에 항의하기 위해 지난 1월 4일 조명탑 위에 올랐다.

김 분회장의 어머니는 "설날에도 그 모진 곳에서 지내야 하냐"며 걱정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들은 오히려 어머니가 걱정된다.

"어머니가 전주에서 혼자 사세요. 이번 설날에 자식도 못보고 혼자 계셔야 하잖아요. 얼른 복직돼서 좋은 모습으로 어머니를 찾아뵙고 싶습니다."

[천의봉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 설날 소원이 뭐냐는 질문도 그에겐 사치였다

 현대차 울산공장 앞 송전탑 위에서 농성 중인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 천의봉씨.
ⓒ 박석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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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하도 불어서 체온이 많이 떨어졌어요. 바람이 세니까 '공중부양' 할 때도 있고요(웃음). 그래도 여기 있은 시간이 오래되니까 몸이 좀 적응이 되는 것 같네요. 설 연휴 한파라고 해도 어떻게든 버틸 수 있겠죠."

천의봉씨의 목소리는 덤덤했다. 그가 있는 곳은 울산 현대자동차 공장 주차장 안 송전탑이다. 15만 볼트의 고압 전류가 흐르는 50m 높이의 송전탑 중간에서 생활 중이다. 한 칸 쪽방보다 좁은 간이 천막으로 올 겨울을 버티고 있다. 영하의 매서운 추위를 막아줄 수단은 개인용 침낭과 손난로가 전부다.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인 그가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이곳에 올라온 지 벌써 115일째가 됐다. 명절 때 고향인 경북 의성으로 가고 싶지만, 현대차 비정규직 문제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아 "들뜬 마음도 가라앉았다"는 천씨. 그는 "갑갑하지만 땅에서 함께 농성을 돕는 동료들이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받으려고 한다"고 체념했다.

'설날 소원이 뭐냐'고 묻자, 천씨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일단 땅에 발을 딛고 서야 무슨 소원이라도 빌지 않겠냐"는 것이다. 설이면 흔히 하는 질문조차 그에게는 사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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