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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호랑이로 불리는 남자 선생님들이 제자들을 위하여 말춤을 추고 있다
▲ 말춤 평소 호랑이로 불리는 남자 선생님들이 제자들을 위하여 말춤을 추고 있다
ⓒ 하안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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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식장에서 선생님들이 말춤을 추고 학생들은 뮤지컬을 하더니, 전체 선생님들의 합창으로 제자들의 졸업을 축하한다.

뭔가 이상하다. 하지만 합창이 끝난 뒤 무대에 남은 3학년 담임선생님에게 아이들이 하나씩 올라가 절을 하니 순간 분위기가 숙연해진다. 여기저기 훌쩍이는 소리도 들린다. 지난 7일, 광명시에 있는 하안북중학교 졸업식 풍경이었다.

배고프던 시절 졸업식은 눈물 바다가 되는 날이었다. 언제부터인가 학생들이 밀가루를 뒤집어쓰고 속옷 바람으로 거리를 질주하는 날이 되기도 했다. 우리의 머릿속에 졸업식은 이런 것들이 떠오르는 행사였다. 하지만, 이 학교에서는 뭔가 색다른 졸업식이 열렸다.

졸업식에서 선생님과의 이별을 아쉬워 하며 우는 아이들
▲ 울음 졸업식에서 선생님과의 이별을 아쉬워 하며 우는 아이들
ⓒ 하안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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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안북중학교는 1975년에 광명여자중학교로 개교해 2003년에 남녀 공학인 하안북중학교로 전환됐다.

아들이 이 학교에 다니는데 졸업식을 한다는 안내문이 왔다. 그런데 제목이 수상했다.

'하늘빛 졸업 Concert!'

졸업식 1부는 국민의례로 시작해 관례적으로 진행됐다. 다만 지난해 중간에 교장이 바뀌며 전임 교장과 현 교장이 나란히 참석하는 이채로운 모습과 경기도 교육청 김상곤 교육감의 참석이 특이할 뿐이었다. 김상곤 교육감은 이날 "공부 잘하라는 말 대신에 자유롭고 행복한 사람이 되라"고 말했다.

경기도 교육청 김상곤 교육감이 아이들 졸업을 축하해 주고 있다
▲ 김상곤 경기도 교육청 김상곤 교육감이 아이들 졸업을 축하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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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1년간의 활동을 정리한 영상으로 시작된 2부는 베르디 <오페라 서곡>이 재학생들의 관현악 합주와 가야금·국악 합주로 연주됐다. 문화예술 거점학교의 역량을 보여주는 콘서트인 셈. 3학년 학생들이 빠져 약간은 설익은 느낌이 있었지만, 되레 싱싱하고 진정성이 느껴지기도 했다.

하안북중 1, 2학년들이 선배들의 졸업을 축하하는 국악합주를 하고 있다
▲ 국악합주 하안북중 1, 2학년들이 선배들의 졸업을 축하하는 국악합주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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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학생들의 뮤지컬 공연이 이어졌다. 딱딱하고 관습적인 졸업식장은 서서히 공연 분위기로 바뀌고 있었다. 이후 학부모들이 오카리나를 들고 나섰다. 연주가 끝나자 앵콜 요청을 받을 정도로 호응이 좋았다. 학교 행사에 학부모가 무대에 서는 일은 쉽게 보지 못했다.

학부모인 엄마들이 졸업을 축하하는 오카리나 중주를 연주하고있다
▲ 오카리나 학부모인 엄마들이 졸업을 축하하는 오카리나 중주를 연주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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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압권은 이후 이어진 남자 선생님들의 깜짝 무대였다. 평소 근엄하고 호랑이 같은 남자 선생님들이 무대에서 철저히 망가졌기 때문. 이 선생님들이 춤을 춘 노래는 싸이의 <강남 스타일>. 이 노래 하나로 졸업식장은 순식간에 열광의 도가니로 변했다. 특히 분홍빛 바지에 맨발로 무대에 선 선생님의 춤 실력은 대단했다.

혼신을 다하는 선생님들의 말춤 덕분에 촛점도 흐리고 열기는 뜨겁다
▲ 말춤2 혼신을 다하는 선생님들의 말춤 덕분에 촛점도 흐리고 열기는 뜨겁다
ⓒ 하안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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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짝 달아오른 콘서트의 무대는 수십 명의 선생님들이 준비한 합창으로 돌연 차분하게 바뀌었다. 덕분에 이날이 졸업식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연출했다. 그런데 그게 마지막이 아니었다. 합창이 끝나고 선생님들이 내려가면서 마지막까지 무대에 서 계신 3학년 담임선생님 그리고 졸업생 중 반 대표가 장미 한 송이를 선생님께 전달하며 돌연 무거운 정적이 흐른다.

6개월간 수업 끝난 후 연습했다는 선생님 합창단, 아이들은 충분히 고마워 했다
▲ 합창 6개월간 수업 끝난 후 연습했다는 선생님 합창단, 아이들은 충분히 고마워 했다
ⓒ 하안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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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인지 돌발 상황인지 한 학생이 절을 넙죽 하면서 다른 학생들이 파도치듯 선생님께 절을 한다. 선생님의 눈이 촉촉이 적시면서 졸업식장은 여기저기 훌쩍이는 울음이 퍼져나갔다. 짧은 시간 안에 즐거움과 섭섭함 그리고 고마움이 절묘히 흐르는 '하늘빛 졸업 콘서트'는 한 편의 잘 만든 논픽션 드라마가 됐다.

이런 분위기속의 학교생활을 하는데 학교폭력이니 왕따니 하는 것이 문제될 수 있을까. 이번 행사의 배경에는 그간 아이들의 정서함양을 위해 문화예술 활동을 꾸준히 만들어냈던 심정희 전 교장 선생님과 아이가 행복한 학교를 만들겠다고 초빙된 신동준 교장 선생님 그리고 몸과 마음을 아끼지 않은 선생님들, 그에 잘 따르고 잘 자라준 아이들이 있었다.


태그:#졸업식, #하안북중, #심정희, #신동준, #박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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