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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한국전쟁 과정에서 우익인사를 살해한 혐의로 억울하게 체포돼 사형당한 전재흥씨(당시 24세)에게 62년 만에 무죄가 선고됐다. 재판부는 유가족들에게 "어떠한 위로의 말도 소용없을 것"이라는 말로 사죄의 뜻을 전했다. 

대전지방법원 홍성지원 형사부(재판장 윤영훈)는 지난달 31일 전씨(충남 서천군)의 딸 전숙자씨(66)가 청구한 재심에서 고인이 된 전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전씨는 1950년 7월 우익인사 라아무개씨를 살해하고 또 다른 우익인사를 북한군에게 색출하게 해 국방경비법을 위반한 혐의로 채포돼 1951년 3월 사형됐다. 당시 전씨는 대전형무소에 수감돼 있었다.  

7일 공개된 판결문에 따르면 재판부는 "피고인의 수사단계, 예심과정 및 법정에서의 자백은 모두 불법구금, 고문, 가혹행위 등으로 임의성 없는 심리상태가 계속된 상태에서 한 것으로 보인다"며 "따라서 피고인의 자백은 증거로 쓸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피고인이 라씨를 살해했다는 취지의 고백 또한 신빙성을 인정할 수 없고 보강증거가 없어 유죄의 증거로 삼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1951년 전씨에게 사형을 선고했던 판결을 뒤집은 것이다.

재판부 "임의성 없는 피고인 자백, 증거로 쓸 수 없다"

 부역 혐의(좌익 활동을 한 삼촌을 숨겨준 혐의)로 끌려가 희생된 부친을 생각하며 울먹이는 전숙자씨(충남 부여군 부여읍)
 부역 혐의로 끌려가 희생된 부친을 생각하며 울먹이는 전숙자씨(지난 2010년)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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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은 관련기록이 폐기돼 '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과거사 정리위원회) 조사결과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판단했다. 법원은 전씨가 유죄를 인정했지만 당시 부역혐의자 조사과정에서 자백을 받기 위해 고문이 일상적으로 일어났던 사실을 반영했다. '1951년 5월 충남 강경경찰서 유치장의 미결수는 하루 30번의 구타를 당하고, 조치원경찰서 유치장의 미결수는 물고문을 당했다'는 유엔민사처 보고서도 인용됐다.

또 '당시 계엄사령부 법부무 및 군 검찰관이 고등군법회의를 개최하면서 많게는 하루 150명을 재판할 정도로 형식적인 재판을 했고 전씨와 같은 부역사건의 경우 대부분 사실여부도 확인하지 않고 사형을 언도했다'는 증언도 반영됐다. 국방경비법(1948년 제정, 1962년 폐기)은 '직·간접으로 북한군에게 무기나 약식, 금전 등 물자를 넘기거나 정보를 제공할 경우 사형 또는 타 형벌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북한군의 강요에 의해 식량을 제공한 사람까지도 체포해 사형을 언도한 사례가 많았다.  

재판부는 특히 "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에 의하면 '피고인이 살해했다는 라씨는 1950년 9월 서천등기소 창고에 감금된 후 방화에 의하여 살해된 것으로 밝혀졌다"며 "피고인이 같은 해 7월 라씨를 살해했다고 볼 만한 입증이 전혀 없다"고 덧붙였다. 

판결문 받은 딸 전숙자씨 "법의 이름으로 어떻게 어이없는 일이..."

판결 당시 재판부의 위로의 말도 주목받고 있다. 윤영훈 부장판사는 "현대사의 아픈 과정으로서 잘못된 판단에 의해 희생당한 것'이라며 "이는 어떠한 위로의 말도 소용없는 것으로 재판부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죄'라는 판결 결과를 통해 재심 신청인에게 위로의 뜻을 전하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검찰 측도 이 같은 재판부의 판단을 존중해 항소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무죄를 밝히기 위해 10여 년이 넘게 동분서주했던 전숙자씨는 지난 7일 대전지방법원에서 발급받은 무죄 판결문을 펼치며 또 다시 흐느꼈다. 그는 "아무런 증거도 없이 아버지를 가해자로 덮어 씌워 사형시켰던 것이 확인됐다"며 "어떻게 법의 이름으로 이런 어이없는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딸 전숙자씨는 아버지의 사인 규명을 위해 나서다 관련 자료 및 주변 증언을 확보한 후 지난 2011년 재심을 청구했다. 전숙자씨는 매년 아버지 유해를 찾아 대전형무소 재소자 집단암매장지인 대전 산내골령골을 헤매고 있다.

전숙자씨가 아버지를 그리며 쓴 추모시

 전숙자씨 아버지 사진과 시인등단 후 받은  상패
 전숙자씨 아버지 사진과 시인등단 후 받은 상패
ⓒ 김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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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 향한 그리움은 늙을 줄도 모르는지

이승만이 달아준 살인 허가장 이마에 달고
한 손에는 일본도요
또 한 손엔 미군이 준 총을 들고
동족상잔 저지르는 광견들의 피의 축제

아비들은 제물되어 백만인이 죽었으니
저 간악한 혓바닥은
전쟁고아 만들어내는 산실청이었소

아비없는 세상 연좌제 등에 지고
어떻게 살았는지는 덮어두고
육십 년 지난 오늘

이 나라의 정치인들이여
누구누구 할 것없이 선산치장 정신없으니
한국전쟁 민간인학살
백 만 유족들을 돌아보오 

아비 향한 그리움은
늙을 줄도 모르는지
깊은 밤 잠 못 들고

한반도의 산천을 울리는
탄식소리 들리는가

영문도 모른 채
쇠사슬에 묶여 끌려가신
아비의 유골 찾아
가시덤불 우거진 골령골
골짜기마다 헤매는
저 흰머리 날리는 고아들을 보라

화려함도 나는 싫소
과시도 우리는 싫어

단 한 점의 양심이 남아 있다면
하루바삐 유골 발굴 마치어

우리 부친 편안히 모시고
이 몸도 잠들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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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