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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세대에게 학교의 '복도'를 떠올려보라 하면 어떨까? 일반적으로 복도에서 연상되는 것은 '썰렁함'이다. 특히 외부 세계와 단 한 장의 유리로 접해 있는 한겨울 학교의 복도는 '추운 곳'이라는 이미지가 지배적이다.

기자가 초등학생이었던 4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복도는 난방에서 제외된 추운 공간이다. 요즘 아이들에게 복도는 '담요를 뒤집어 쓰고 뛰어가며 괴성을 지르는 곳'이다. 그만큼 한겨울의 복도는 썰렁하고 춥다. 아이들 편에서 학교의 복도는 외부와 교실을 연결해주는 단순 통로일 뿐이다.

한국 학교의 복도는 교실과 외부를 연결하는 통로이다.
▲ 한국 학교의 전형적인 복도 한국 학교의 복도는 교실과 외부를 연결하는 통로이다.
ⓒ 함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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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기자가 방분해 본 북유럽의 여러 학교에서 복도의 개념은 우리와는 많은 부분이 달랐다. 스웨덴의 푸트룸 종합학교를 방문했을 때 방문객들이 첫 번째로 한 것은 두꺼운 외투를 벗어 옷장에 거는 일이었다. 이 학교의 학생들 역시 학교에 등교하면 외투를 벗어 옷걸이에 걸고 그 다음 일정을 갖는다. 학교 내부에서는 다시 외투를 입을 일이 없다.

학생들은 등교하자마자 외투를 벗어 이 장소에 보관한다.
▲ 스웨덴 푸트룸 종합학교의 개인 사물 보관 장소 학생들은 등교하자마자 외투를 벗어 이 장소에 보관한다.
ⓒ 함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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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 학교들의 복도는 통로 이상이었다. 복도는 아이들이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자, 토론과 학습의 공간이었다. 그들은 편안하면서도 학습동기를 유발할 수 있는 공간으로 복도를 설계했고, 생활 공간인 만큼 복도를 난방 구역에서 배제하지 않았다.

핀란드의 라또카르타노 학교의 복도 역시 학생들 입장을 배려한 구조이다. 이 학교의 복도에는 아이들이 언제든 모여서 토론할 수 있는 모둠형 테이블과 의자가 배치돼 있고 군데군데 인터넷에 연결되는 PC를 놓아 두었다. 아이들은 언제든 둘러 앉아 담소를 나누거나 토론을 하고, 필요한 경우 PC로 다가가서 정보를 검색하곤 한다. 아울러 복도는 교사와 학생이 마주 앉아 상담을 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북유럽 지역 학교의 복도는 교실과는 다른 학습 공간이자 생활 공간이다.
▲ 핀란드의 라또카르따노 종합학교의 복도 북유럽 지역 학교의 복도는 교실과는 다른 학습 공간이자 생활 공간이다.
ⓒ 함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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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학교의 복도를 따라 이동하다 보면 코너에 놓인 소파를 발견하게 된다. 비단 이 학교 뿐만 아니라 북유럽 학교의 복도에서는 모서리마다 소파를 놓아두어 아이들이 언제든 편안하게 쉬도록 배려한다. 즉, 집이나 학교나 별반 다를 바 없는 환경을 제공함으로써 아이들의 심신이 최대한 안정되도록 한다. 북유럽 아이들의 교육경쟁력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잘 보여주는 풍경이다.

이들에게 학교는 집과 비슷한 생활 공간이다.
▲ 북유럽 학교 복도 코너에 놓여진 소파 이들에게 학교는 집과 비슷한 생활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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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복도를 난방구역에서 배제한 것과 달리 북유럽의 학교들을 복도까지 난방을 잘 해서 한겨울에도 아이들이 반팔 티셔츠를 입고 취미 활동을 즐긴다. 스웨덴의 푸트룸 종합학교 건물을 잘 살펴보면 이곳 교육자들이 복도를 어떤 개념으로 생각하고 있는가가 잘 드러난다. 이들에게 복도는 배움의 장소이자 놀이의 장소이다. 복도와 연결돼 있는 휴게실에서 반팔 티셔츠를 입고 당구를 즐기고 있는 학생들을 보고 잠시 우리나라 학교의 복도에서 떨고 있을 학생들을 떠올렸다.

이렇게 난방을 따뜻하게 하면 좋지만 난방비가 많이 들어가지 않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이 학교의 홍보담당 교사 한스 알레니우스의 대답이 걸작이다. "난방은 연료의 문제가 아니라 건물 설계 방식에 더 영향을 받는다. 우리는 학교를 지을 때부터 철저한 단열 시공으로 밖으로 새어나가는 열을 가둔다"는 말이다. 밖으로 새어 나가는 열이 더 많은 우리 학교 구조를 생각해 보면, 비슷한 난방비를 쓰고도 훨씬 따뜻한 공간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이 부러울 수밖에 없다.

물론, 북유럽의 모든 학교들이 처음부터 이런 설계를 갖춘 것은 아니었다. 1980년대를 거치며 모든 아이들을 차별없이 가르치는 종합학교 아이디어의 도입과 함께 학교 건물의 개혁도 단행되었다. 그들은 학교의 교육력을 높이는데 방해가 되는 요소로 학교 건물의 비교육적 환경을 지목하고 세심한 설계와 시공으로 배움의 공간을 완성하여 오늘날의 북유럽식 교육적 성취에 한걸음 다가설 수 있었다.

사실 우리의 학교들이 일자 복도와 사각형 모양의 교실을 고집한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건축비가 가장 싸게 먹히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학교를 지으면서 아이들의 꿈과 희망을 생각한 것이 아니라 경제성과 효율성을 생각한 것이다. '어려운 조건에서도 인내하여 훌륭한 사람이 되어라…'라는 말은 잘못된 말은 아니지만 요즘 아이들을 설득하기에는 전혀 매력적이지 않다.

19세기 교실에서 21세기의 대표적 기기인 스마트폰에 중독돼 있는 아이들은 오늘날 우리 교육환경을 압축적으로 상징한다. 배움의 공간을 잘 꾸미는 일, 그 무엇보다 앞서 생각해야 할 사항이다. 학교를 개보수하거나 신축할 때에 어떤 점들을 고려해야 하는지 북유럽 학교들에서 시사점을 찾아보길 기대한다.


태그:#학교, #복도, #북유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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