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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간 이어진 네덜란드 베아트릭스(75) 여왕시대가 마감되고, 그의 아들인 빌럼 알렉산더르(46) 시대가 열린다.

지난 1월 28일 네덜란드 베아트릭스 여왕은 새로운 세대의 시작을 위하여 왕위를 왕세자인 빌럼 알렉산더르에게 승계한다고 발표했다. 이 담화를 미리부터 알고 있었던 사람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방송국에서도 담화 시간 2시간 전에 이 내용을 알고 허겁지겁 방송 자료를 만들고 어떤 발표가 나올지에 대한 예측을 하느라 분주했다고 한 방송 관계자는 전했다.

123년 간의 여왕의 시대는 빌럼 알렉산더르에게 왕위가 이양되면서 끝이 난다. 왕위 승계식은 여왕의 날인 4월 30일 암스테르담의 뉴케르크에서 거행된다. 벌써 뉴케르크는 왕위 이양식 준비에 들어갔다.

33년 간 왕위를 지킨 베아트릭스 여왕

 75세 생일을 맞은 네덜란드 베아트릭스 여왕의 기념 사진.
 75세 생일을 맞은 네덜란드 베아트릭스 여왕의 기념 사진.
ⓒ www.koninklijkhuis.n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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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에 태어난 베아트릭스 여왕은 그리 조용한 왕가 생활을 하지 못했다. 2차 대전이 벌어졌던 어린 시절에는 영국을 거쳐 캐나다로 망명해서 살아야 했고 자신이 왕위를 이양 받았던 1980년에는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아주 불안한 시대였던 탓에 왕권을 반대하는 시민들의 시위 속에서 왕위를 승계받았다. 여왕이 되기 이전에는 독일인 남편인 클라우스가 나치소년단에 가입했던 이력이 밝혀져 네덜란드인들에게 불신을 받고 왕위 승계를 위협받기까지 했다.

그런 상황에서 네덜란드인들은 오히려 베아트릭스가 딸이 아닌 아들을 셋이나 두게 된 것은 오히려 다행스럽게 생각할 정도였다. 여왕의 시대가 끝나고 왕의 시대가 올 것이라는 것에 기대감을 나타낼 정도였다.

베아트릭스 여왕이 왕위를 지키는 33년 동안 네덜란드는 경제적, 문화 예술적, 사회적으로 급속한 성장을 이루었다. 경제적으로도 강국이 되었으며 문화 예술적인 면에서도 크게 발전해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았다. 또한 복지면에서도 큰 성과를 만들어냈으며, 사회적으로는 다문화를 받아들이면서 글로벌한 성장을 이루어냈다. 베아트릭스 여왕 시대는 큰 도전 없이 무난하게 마무리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2008년부터 시작된 유럽 경기 침체와 경제적 난항이 거듭되자 그간 소수의 목소리로만 들려왔던 왕가에 대한 무용론이 다시 등장하고 왕권에 대한 축소 움직임이 가시화 되기 시작했다.

2009년 여왕의 날에 아플도른에서 벌어졌던 자동차 돌진 사고(왕가가 타고 있는 버스를 향해 돌진한 자동차 사고로 구경온 시민들 가운데 9명이 죽고, 11명이 다친 사고)는 왕가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여기다 그해 기독당(CDA) 정권이 자유민주당(VVD)에 다수당자리를 내주면서 결국 연정을 하게 된 자유당(PVV)의 입김으로 왕권에 대한 칼질이 시작됐다. 여기다 2012년 2월 오스트리아에서 휴가를 보내던 베아트릭스의 둘째 왕자 프리소가 스키를 타던 중 실족해 병원으로 늦게 옮겨지는 바람에 현재까지도 의식불명상태에 빠져있다. 이 사건은 어머니 베아트릭스에게는 가장 아픈 상처가 되었다. 그러나 베아트릭스는 그런 상황 속에서도 국가 대소사를 빠짐없이 챙기고 여왕으로서의 역할을 손색없이 수행했다.

왕국이라고 해서 왕이 주인인 나라는 물론 아니다. 그러나 상징적으로 내각이 구성되기 전 수상은 여왕을 배알했고 최종 의견을 묻고 결정에 대한 상의를 한다. 여왕이 정부의 정책 결정의 수장 역할을 했고, 한 주에 한 번씩 수상과 정책에 대한 회의를 했으며 내각의 각료들을 정기적으로 만나고 각료들은 각 부서의 상황들을 여왕에 보고했다. 그러나 2011년 의회의 결정으로 왕정분리를 확정지었다.

이후 2012년 9월 새롭게 시작된 정부의 내각 조직부터 여왕은 내각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으며 수상은 여왕에게 보고나 협의에 대한 의무가 완전히 없어졌다. 그야말로 의회는 의회, 왕가는 왕가인 형태를 취하게 된 셈이다. 베아트릭스는 이 정책 변화에 대해 오히려 홀가분하다고 표현했다. 이로써 여왕은 상징적인 결정권자의 역할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2012년 새로운 내각이 발표되고 내각 각료들이 여왕을 찾아 선서를 하는 장면이 TV를 통해 네덜란드 전역에 방송되었다. 그 동안 단 한 번도 왕궁에서 내각 각료들의 선서식이 방송된 적이 없었는데 이 과정을 국민들의 알 권리로 판단한 정부는 모든 내용을 방송을 통해 공개했다.

수십 년 간 여왕의 권위를 인정했던 네덜란드 내에서의 국민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왕가는 네덜란드의 상징이며 역사이고 또한 자존심이라고 생각하는 국민들도 있는가하면 돈만 들어가는 왕가를 없애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다. 이러한 다양한 의견들을 수용하고 실현할 의무는 국민들에 의해 뽑인 의회의 몫이다.

왕가를 운영하는 비용은 얼마?

 네덜란드 왕가에 들어가는 비용들이 상세하게 열거되어 있는 표 .
 네덜란드 왕가에 들어가는 비용들이 상세하게 열거되어 있는 표 .
ⓒ www.koninklijkhuis.n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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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왕국을 운영하기 위한 비용은 어느 정도 지출될까? 왕가의 운영 비용은 상세하게 국민들에게 공개된다. 해마다 얼마의 비용이 사용되었고 어떤 일들을 했는가에 대한 내용들은 각 미디어를 통해서 쉽게 알 수 있다. 물론 왕가의 활동사항을 전달하는 웹 페이지(www.koninklijkhuis.nl)에서도 이런 내용들을 확인할 수 있다.

왕가의 전체 운영비용은 총 3940만 5000유로(한화 약 590억 원)이며 이 가운데 베아트릭스의 연봉은 83만 유로(한화 약 12억 5천 만원)이다. 가장 많은 비용이 지출되는 부분은 왕궁을 운영하는 비용이다. 또한 왕가 운영의 비용 속에는 차기 왕위를 물려 받을 알렉산더르와 그 부인 막시마의 연봉도 포함되어 있다. 두 사람은 동일한 연봉 24만 6000유로(한화 약 3억 6900만원)을 지급받고 있다.

물론 유럽의 다른 왕가와 비교한 내용도 쉽게 사이트를 통해 찾아볼 수 있다. 네덜란드의 왕가 운영 비용은 유럽에서 가장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운영하고 있는 왕궁의 수에 비례하기도 한다.

알렉산더르와 그의 아내 막시마

 왕위를 이양 받는 빌름 알렉산더와 아내 막시마
 왕위를 이양 받는 빌럼 알렉산더르와 아내 막시마
ⓒ www.koninklijkhuis.n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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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위를 승계 받을 빌럼 알렉산더르는 네덜란드의 스포츠를 세계적으로 알리는데 큰 기여를 한 공이 있다. 알렉산더르 왕자는 개인적으로도 스포츠를 아주 좋아하고 재능을 인정 받기도 했다. 그의 나이 19세에 네덜란드에서 가장 인기있는 겨
울 스포츠인 스케이트 마라톤인 엘프스테이든톡트에 출전하여 완주하는 영예를 얻어 국민들의 박수를 받았다. 올림픽이 열리는 주요 경기에는 빠지지 않고 부인과 자녀들을 데리고 참여해, 네덜란드 선수들에게 사기를 북돋아주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관련기사 : 스케이트의 나라, 한국 빙상 선수들에게 빠지다)

그는 IOC의 위원으로 활약하며 네덜란드 스포츠 발전에 큰 몫을 하기도 했다. 네덜란드 왕위 승계 발표가 나고 IOC 위원장은 알렉산더르가 더 이상 활동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대단히 애석해하는 메시지를 언론을 통해 발표했다.

알렉산더르의 부인인 막시마는 아르헨티나인으로 2001년에 결혼해 슬하에 세 명의 공주를 두고 있다. 결혼식 날 막시마의 이미지는 네덜란드 국민들에게 무척 큰 호감을 샀다. 결혼식날 그녀가 시종일관 웃고 떠들고 신랑인 알렉산더르에게 귓속말로 속삭이며 즐거워하는 모습이 방송을 통해 그대로 공개됐다. 막시마의 아버지는 아르헨티나 군부독재시절 장관을 했다는 이력 때문에 딸의 결혼에 참석하지 못했는데 축가로 아르헨티아 탱고음악인 '안녕 아빠'라는 제목의 곡이 아르헨티나의 전통악기인 반도네온(Bandoneón)로 연주되자 막시마가 한없이 눈물을 흘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여전히 그 결혼식 장면은 네덜란드 TV를 통해 종종 방송되기도 한다. 외국인인 막시마는 이민 신청을 위해 시민화 시험을 치러야 했으며, 이 과정이 그대로 공개되면서 이주민들이 네덜란드에서 정착하는데 큰 힘을 주기도 했다. 또한 행사에서 자칫 실수라도 하면 미안하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하는 솔직한 성품 역시 국민들의 호감을 사기도 했다.

결혼 이후에 막시마는 세계평화와 환경, 장애인들을 위한 행사에 참여해 활약하고 있으며, 어려운 일을 마다하지 않고 몸으로 뛰는 맹렬함을 보여주고 있다,

의회는 왕권을 약화시키는 정책을 만들긴 했지만 알렉산더르가 왕위에 오르면 막시마의 칭호를 왕비가 아닌 여왕으로 사용하도록 하는 법을 제정하기도 했다. 이는 왕의 외교 활동을 적극 권장하고 전 세계를 향해 네덜란드를 알리는 대사의 역할을 더 강화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국민이 왕가의 칭호도 격상을 시키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알렉산더르와 더불어 막시마 역시 네덜란드 국민들의 자존심과 명예를 높이는 세계의 평화 대사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게 될 것으로 국민들은 기대하고 있다.

네덜란드의 가장 큰 명절 '여왕의 날'
왕가는 네덜란드의 얼굴이며 자존심을 표현하는 존재이며 또한 세계의 평화와 환경을 지켜나가는 대표역할을 수행한다. 만약 그 활동이 미흡하거나 지나치게 사치나 권위를 내세우게 될 경우 국민들로부터 외면을 받게 된다.

네덜란드에서 전 국민들이 함께 즐기는 명절은 크리스마스와 여왕의 날이다. 여왕의 날은 4월 30일로 베아트릭스 여왕의 생일이 아니라 그녀의 어머니인 율리아나의 생일이다. 베아트릭스가 여왕이 될 때 어머니의 생일이었던 4월 30일을 그대로 유지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어머니에 대한 존경의 표현이기도 했지만 베아트릭스의 생일이 1월 31일로 추운 겨울이라 국민들이 행사를 하거나 즐기는데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는 배려였다고 한다.

수 십년을 '여왕의 날'이었던 국경일이 이제 '왕의 날'로 바뀌고 날짜도 바뀐다. 올해 여왕의 날에는 왕위 이양식이 거행되므로 네덜란드에서는 역대 여왕의 날 가운데 가장 큰 행사가 치뤄지게 될 예정이다. 왕의 날은 2015년 4월 27일부터 시작된다. 2014년 4월 27일 일요일이라 국민들이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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