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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나폴리라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통영 항구
 동양의 나폴리라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통영 항구
ⓒ 염정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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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각진 일상을 떠나
겨울바다에 가고 싶다.
서로의 심장을 찌르는
뾰족한 하루를 벗어나
섬의 포용과
수평의 바다를 품고 싶다

1월 26일, 이른 아침부터 맘 맞은 사람들의 모임인 5인방에서 동양의 나폴리라 불리우는 통영으로 겨울 여행을 떠난다. 통영은 문학기행, 가족 여행 등으로 몇 번 다녀온 곳이지만 갈 때마다 새로운 곳이다.

맨 처음 가족 여행에서 접한 해저동굴과 옛 상업지역의 발달사를 통해 일제 강점기의 아픈 역사를 보았다면 문학기행으로 간 통영은 문학가, 화가, 음악가들의 고향으로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많이 준 곳임을 알 수 있었다. 특히 김약국의 딸 작가인 박경리 생가를 통해 일제강점기에 신흥세대로 이동하는 사회적 변동과 비극적인 여성의 운명을 알 수 있었고 청마문학관에서는 이영도를 향한 청마의 열정(5000통의 편지)을 엿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소매물도와 통영중앙시장, 통영 한려수도 케이블카 전망대에서 다도해를 관망하는 여행이라 앞선 여행과는 사뭇 다른 통영 그대로의 바다와 섬을 품을 수 있어 더한층 기대가 된다.

소매물도와 등대섬을 있는 열목개
 소매물도와 등대섬을 있는 열목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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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8시, 한려해상국립박물관으로 지정된 소매물도를 만나기 위해 경남 거제시 남부면 저구리에 있는 저구항으로 향했다. 경남 통영시 한산면 매죽리(每竹里)에 있는 소매물도를 가려면 무엇보다 배 시간과 물때를 잘 알고 가야 한다.

다행히 2주전 소매물도를 다녀온 일행이 있어 여객선 시간 때와 물때에 맞춰 오전 11시 30분에 도착 이른 점심을 먹기로 했다. 지인들이 싸온 찰밥, 꼬마김밥에 매운탕만 시켜 먹으면 되겠다 싶어 항구에 있는 부경 식당으로 들어섰다. 매운탕을 시킨 뒤 싸온 음식을 풀자 주인장이 달려와 그렇게 안 된다며 거절해 불쾌한 마음으로 식당을 나왔다. 여행에서의 친절은 다시금 손님을 불러들이는 것임을 모르고 오직 매상에만 신경을 쓰는 식당이라 안타깝다.

맵찬 바닷바람에 할 수 없이 차 안에서 먹자는 의견을 모은 뒤 컵라면 국물을 사기 위해 매점을 찾던 중 휴게소 뒷방이 눈에 띄었다. 담당자에게 휴게소 뒷방에서 점심을 먹어도 되느냐고 하였더니 선뜻 응해줘 부경식당에서의 불쾌함이 다소 가신다. 매점에서 컵라면을 사와 휴게소 담당자에게도 고마움의 표시로 꼬마 김밥을 덜어 건넨 뒤 싸온 밥을 먹는다. 뜨끈한 라면 국물과 함께 먹으니 꿀맛이다.

점심을 먹고 12시 30분이 되자 거제-매물도만 적힌 소형 여객선을 타고 소매물도로 향한다. 매물도란 이름은 본섬 격인 대매물도의 형상이 '메밀'의 현지 사투리인 '매물'처럼 생겨서 붙여졌다고 한다. 하지만 대매물도를 방문하는 관광객은 드물고, 거의 대부분이 등대섬을 부속섬으로 거느리고 있는 소매물도를 찾는다.

여승과 산새
 여승과 산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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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품은 바다! 푸르다 못해 코발트빛이다. 서로 다른 위치에서 수평으로 마주하며 닮아가는 수긍의 아름다움을 보며 위, 아래. 빈, 부를 가르는 수직이 부끄럽다.

잔잔한 물상을 일으키며 소매물도로 가는 바닷길, 한려수도의 섬과 섬 사이를 헤쳐 가는 뱃길은 짧지 않은 데다 이 섬의 남쪽에 태평양까지 이어지는 바다가 가없이 펼쳐지기 때문에 바닷길에서의 풍광은 마치 살아 숨 쉬는 동화 속 풍경이다. 단조로운 수평 위로 동화 속 난장이마을처럼 둥글하고 뾰족하게 솟은 섬들이 여행객의 눈길을 붙잡고 놓아 주지 않는다.

저구항을 떠나 50분 정도 지나서 대매물도에 내릴 손님을 내려준 뒤 10분 쯤 지나 소매물도에 도착했다. 소매물도는 면적 0.51㎢(15만4000여 평)의 본섬과 예전 '해금도'라 불리던 등대섬 쿠크다tm섬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20여 가구의 주민이 사는 마을과 선착장이 자리한다. 다솔펜트하우스, 쿠크다스펜션, 소매물도펜션 같은 이국적인 목조 펜션과 다솔찻집을 비롯해 섬마을 주거를 그대로 내어주는 민박 등이 눈에 들어온다.

선착장에서 등대섬으로 가는 길은 마을 한가운데로 난 가파른 돌계단으로 이어진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고샅길과 뒤편의 비탈길을 따라 10여 분쯤 오르니 옛 소매물도 분교가 보인다, 하지만 폐교로 굳게 닫힌 철문이 서글프다.

등대섬이 손에 잡힐 듯 가까워진 망태봉부터 이어진 급경사의 돌계단을 내려가니 마침 썰물 때로 두 섬 사이의 좁은 물목인 열목개가 완전히 물 밖으로 드러나 있다. 크고 작은 몽글몽글한 돌들로 이어진 열목개에는 간간히 김과 파래가 자라 또 다른 미를 보여 준다.

한여름의 등대섬은 일제히 피어난 원추리꽃이 등대섬의 풀밭을 노랗게 수놓고, 보랏빛 산비장이꽃과 주황색 참나리꽃도 군데군데 피어 있어 섬 전체가 꽃섬을 이룬다고 한다. 게다가 바다와 바위, 하늘과 초원이 물안개와 어울려 한 폭의 그림 같다는데 한 겨울 등대섬은 겨울바람에 바르르 떠는 마른 이파리의 여윈 얼굴이 계단으로 된 산책길을 오르락 내리락 하느라 숨이 목에 찬 내 모습 같아 잠시 걸음을 멈추고 눈길을 준다. 그러자 푸르름을 잊지 않은 돈나무가 군데군데서 눈인사를 하며 힘을 내 오르라는듯 한들거린다.

소매물도 화장실 이정표
 소매물도 화장실 이정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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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보다 한참 뒤에 등대에 올라 소매물도를 바라보니 바다로 기어드는 듯한 공룡바위가 눈에 들어온다. 일행은 다시 소매물도로 발길을 돌려 가는 중이고 뒤늦게 올라온 나를 기다려 준 내 반쪽이 공룡바위를 배경 삼아 카메라에 담는다. 한 눈 팔다 늦은 사람 타박하지 않는 수평에 파도 안는 섬인양 소매물도와 함께 카메라에 담아 품는다.

행여 배를 놓칠세라. 잽싼 발걸음으로 소매물도에 도착하니 오를 때 보지 못하던 것이 눈에 띈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고은 시 <그꽃>처럼 다솔 찻집 앞 화장실에 붙여진 목조와 청동으로 만들어진 변기 조각 안내는 평면 간판이 지니지 못한 입체적 미학이 돋보여 카메라에 담는다.

해녀가 직접 잡은 멍게, 전복, 해삼 회
 해녀가 직접 잡은 멍게, 전복, 해삼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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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기다리는 동안 소매물도 해녀가 잡은 멍게, 소라, 해삼을 맛본다. 전복과 해삼의 꼬들함과 멍게의 솔향이 입안에서 일렁이는 게 바닷바람처럼 상큼하다.

2시 배를 타고 다시 저구항으로 향했는데 대매물도를 거치지 않아 40분 정도 소요되었다.
저구항에서 통영으로 출발, 3시 무렵 나폴리모텔에 도착하여 짐을 풀었다. 그리곤 펄떡이는 활어와 각종 조개 등 바다의 숨결을 전하는 중앙시장으로 향한다.

중앙시장은 여행객들로 붐볐다. 어른 손바닥크기를 훨씬 넘는 광어, 토동하게 살이 오른 방어, 가리비, 키조개, 소라 등 뭍에 진열된 바다의 생물들이 바다를 향한 그리움에 몸부림을 치는 중이다.

중앙시장은 활어를 사는 여행객들로 붐비고
 중앙시장은 활어를 사는 여행객들로 붐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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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닥. 철퍼덕-."
"5만 원, 2만 원!"

철퍼덕 소리 아랑곳 않는 활어장수 아주머니는 노련한 손길로 회를 떠 담는다. 그 옆 화로에는 갈탄이 타고 위에 얹힌 냄비에선 물이 데워지고 있다. 그리곤 간간히 언 손을 녹이기 위해 장갑 낀 손을 넣었다 빼는 모습에서 상인들의 질박한 삶을 본다.

중앙시장에서 사온 감성돔과 해삼, 멍게로 저녁을 먹은 뒤 통영에서 유명하다는 꿀빵을 사먹었는데 추억의 음식일 뿐 맛은 별로이다. 하지만 통영의 특산물 누비 가방과 손바느질이 아닌 재봉질인데도 맵씨가 좋다.

동피랑의 새벽 야경
 동피랑의 새벽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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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리 모텔 창에 들앉은 동양의 나폴리 항구의 기막힌 야경을 품고 1박을 한 뒤 이른 새벽 옥상에 오른다. 지인의 귀띔과 다른 동피랑의 야경이 반긴다. 동피랑 사람들의 꿈이 그려진 벽화대신 눈물겨운 야경이 자리한다. 어둔 동피랑을 사이에 두고 금빛으로 빛나는 조명이 희망차다.

아침으로 통영의 별미 굴국밥을 먹고 마지막 여행지 통영한려수도 케이블카 전망대로 향했다. 미륵산 정상까지는 케이블카를 타고 10여분. 케이블카 길이는 1975m로 상당히 긴 거리다. 중간쯤 오르면 사방 유리를 통해 보는 통영시의 전경과 남해안의 절경이 들어온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남해의 크고 작은 섬들
 전망대에서 바라본 남해의 크고 작은 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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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카 정거장에 내려 미륵산 정상까지는 데크계단으로 멀지는 않았지만 숨이 차다. 잠시 고운 여스님과 산새의 친화성을 바라보며 숨을 고른다. 신선대, 미륵산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남해 다도해 풍광! 아름다움을 넘어 첩첩산처럼 이어지는 구릉진 섬들. 바다를 품어 무안한 생명을 키우는 벅찬 사랑에 목울음을 삼킨다.

자연 그대로의 바다와 섬, 그리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질퍽함을 본 세 번째 통영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문득 정일근의 <쓸쓸한 섬> 귀절이 뇌리에 머문다.

우리는 서로를 보지 못했는지 모른다
서로 바라보고 있다고 믿었던 옛날에도
나는 그대 뒤편의 뭍을
그대는 내 뒤편의 먼 바다를
아득히 바라보고 있었는지 모른다
(중략)
우리는 아직 서로를 보지 못하고 있다
이내 밤은 오고 모두 아프게 사무칠 것이다

이 시처럼 각진 세상에서 수평의 바다와 포용의 섬이 일깨운 자연의 섭리가 얼마나 오래 갈지는 모르지만 겨울바다를 사무치게 그리워하리라.

덧붙이는 글 | <순천투데이> 포토여행으로 게재



태그:#통영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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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두 자녀를 둔 주부로 지방 신문 객원기자로 활동하다 남편 퇴임 후 땅끝 해남으로 귀촌해 살고 있습니다. 그동안 주로 교육, 의료, 맛집 탐방' 여행기사를 쓰고 있었는데월간 '시' 로 등단이후 첫 시집 '밥은 묵었냐 몸은 괜찮냐'를 내고 대밭 바람 소리와 그 속에 둥지를 둔 새 소리를 들으며 텃밭을 일구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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