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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쉿."

1984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5년 전의 동독. 극작가 드라이만의 집. 드라이만이 동독의 자살률과 같은 사회문제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자, 그의 친구 하우저는 드라이만의 입을 막는다.

"그들이 다 듣고 있어."

2006년에 개봉한 영화 <타인의 삶> 중 한 장면이다. 당시 동독 국민들은 10만이 넘는 비밀경찰(슈타지)로부터 삶의 전반을 철저하게 감시당했다. 그리고 그 두 배인 20만의 국민은 밀고자가 되어 서로를 감시하고 검열했다. 

"쉿."

2012년, 18대 대통령이 선출되던 밤, 대한민국. 서울의 한 가정집. 진보성향의 대학생 딸이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대선 결과를 한탄하는 내용을 쓰자, 그녀의 어머니는 딸의 입을 막는다.

"공개적인 곳에 그런 글 쓰지 마라. 누가 보면 어쩌려 그래? 이제 취업도 해야 하는데……"

'그날' 저녁, 우리 집의 한 장면이다. 엄마는 늘 그렇듯이 무심결에 딸 걱정을 하셨다. 나도 무심결에 듣고 넘겼다. "밥 잘 챙겨먹어라. 추우니까 따뜻하게 입어라." 늘 듣는 이 말들처럼 자연스러웠다. 그러다 문득 몇 달 전 본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1984년의 동독과 2012년 한국이 묘하게 겹쳐보였다. 망치로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듯, 적잖은 충격과 함께 두려움이 몰려왔다.

'누가' 보면 나를 '어쩔 수' 있단 말인가?

엄마도 참, 요즘 세상에 인터넷에 글 좀 썼기로서니 취업에 불이익 되는 그런게 어디 있냐고 말대꾸를 하려 했다. 하지만 배짱이 생기지 않았다. '글을 지워야 하나?''어쩌면 그런 일을 겪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용기 없음이 당황스러웠고, 또 부끄러웠다. 그리고 너무나 당연하게 그런 걱정을 한 엄마에게 두려움을 느꼈다. 이 걱정이 자연스러워진 2012년의 한국이 정말 걱정되었다. 대놓고 감시하던 '그런 시절들'과는 달리, 2012년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에는 슈타지도 없고 밀고자도 없었다. 하지만 스스로를 검열하는 '착한 국민'이 있었다.

지난 5년간 한국에서 일어난 여러 가지 사건들이 우리를 이토록 착하게 만들었다. 누구는 포스터에 쥐그림을 그려서 잡혀가고, 누구는 '심판하겠다.' 문자 한 통에 직장에서 좌천됐다. 트위터에서 북한가요의 가사를 리트윗 했다는 이유로 기소 당하고, 선거 날 V자를 그리며 찍은 사진이 특정후보를 응원한다는 이유로 벌금형에 처해지기도 했다. 표현의 자유가 처참히 무너진 5년이었다. 

그 덕분에 엄마도, 나도 너무 착해졌다. 몇몇 유치한 장난처럼 보이는 규제와 억압들이 만들어낸 결과는 실로 거대했다. 착하게도 우리는 누가 어쩌기도 전에 스스로를 검열하게 된 것이다. 얼마 전 배우 김여진씨가 모 프로그램에서 정치활동을 이유로 퇴출된 일이 있었다. 온라인상에서 그 처분의 정당성에 대해 설전이 오갔다.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역정을 내는 사람들만큼, 그냥 정치발언도 아니고 캠프에까지 몸담았던 사람이라면 이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는 사람들도 많았다. 건전한 사회 가치관과 공익의 수호를 위해 그런 격한 활동, 발언은 좀 참거나 조심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검열'은 민주주의의 뿌리를 흔든다.

2012년 4월에 '표현의 자유를 위한 연대'가 발표한 '표현의 자유를 위한 정책제안 보고서'에 따르면, 이 '착한 심성'은 '위축효과'로 설명할 수 있다. 위축효과란 합법적인 표현임에도 불구하고 외부적 통제에 순응하여 그러한 행위를 회피하게 되는 현상이다. 위축된 시민은 자기검열을 일상화하게 된다는 점에서 큰 문제가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규제되어야 할 표현을 자주하는 시민은 어느샌가 시민으로서의 자격을 의심받게 되고, 이는 일반 시민들을 특정 이념이나 가치 중심으로 편가르기 하게 된다. 자유로운 사고와 표현이 차단된 편협한 시민성은 당연히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위협한다. 절제되지 않은 표현이 사회 혼란을 가져온다는 우려도 결국은 위축효과와 자기 검열의 산물이다. 정부의 잘못된 규제로부터 잘못 학습된 일반국민이 스스로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데 일조하고 있는 것이다. 

1984년, 동독. 10만의 슈타지와 20만의 밀고자. 표현의 자유가 자의적이고 모호하게, 광범위하게 규제될수록 슈타지는 한가해진다. 시민들이 알아서 서로를 밀고하고 스스로를 검열하기 때문이다. 2013년, 한국. 지난 5년간 우리는 계속 착해졌고 그래서 바빠졌다. 슈타지가 해야 할 일을 알아서 대신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새 정부는 이런 일에 관해서라면 손 안대고도 코 풀 수 있을 것 같다. 정말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국민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정다운씨는 인권연대 청년 칼럼니스트입니다. 이 기사는 인권연대 주간 웹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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