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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앙코르 와트 중앙탑, 수미산이 보인다.
 앙코르 와트 중앙탑, 수미산이 보인다.
ⓒ 박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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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앙코르 와트 관람의 종착역에 다다랐다. 제2 회랑의 내정에서 하늘을 쳐다보면 중앙탑이 우뚝 솟아있음을 볼 수 있다. 한마디로 충격적인 모습이다.

이때 심장이 약한 사람은 한참을 고민해야 한다. 저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야 하는가. 사실 앙코르 와트의 제3 회랑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사람이 올라가라고 만든 것이 아니다. 천상계를 표현한 제3 회랑과 중앙탑을 어떻게 인간이 자유자재로 걸을 수 있는 계단으로 만들었겠는가.

최영도 변호사는 이 부분에서 "층계를 이렇게 만든 것은 천계로 올라가는 길은 겸허한 마음으로 두 손을 짚고 두 발로 기어서 올라가라는 종교적 이유에서 그러지 않을까"라고 썼는데, 나도 이 계단을 올라가면서 그분의 말씀에 공감했다.

겸허한 마음으로 기어 올라가라

하여튼 방법이 없다. 여기까지 와서 저 지성소를 보지 못하고 간다는 것이 말이나 될 법한 일인가. 상체에 무게 중심을 둔 다음 한 발 한 발 정성을 들여가며 올라갔다. 이제 제3 회랑에 도착하였으니 무엇을 보아야 할까. 먼저 서회랑 쪽으로 올라가 몇 시간 전에 올라온 서쪽 해자와 신도 중앙 고프라 그리고 다시 신도 제1 회랑과 제2 회랑을 보자. 얼마나 이 신전이 기하학적 균제미를 살리기 위해 노력하였는지 한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다음 중앙탑을 바라보자. 서쪽에서 오는 밝은 햇빛을 받아 찬란히 빛나고 있을 중앙탑의 외벽을 자세히 살피자. 아마도 외벽을 가득히 메운 여신들을 만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중앙탑의 아래에 모셔진 지성소에 가보자. 그곳이 바로 이 사원을 건립한 수리야바르만 2세가 모셔진 지성소다.

물론 중앙탑 아래에도 제2 회랑 쪽에서 본 4개의 십자형 못이 있으니 이곳도 내려가 보자. 그리고 그곳에서 위의 회랑을 바라다보면 벽면 곳곳에 압사라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사람들의 장난에 의한 것인지 반들반들한 압사라의 가슴을 만날 수 있다.

그쯤 했으면 이제는 서쪽 회랑의 베란다로 나아가 회랑 벽에 등을 대든지 아니면 그곳 베란다에 잠시 앉아 넘어가는 석양을 보자. 그리고 이 사원을 만든 사람들을 생각하고 인류의 문명을 잠시나마 정리해 보자. 할 수만 있다면 잡다한 인간세계에서 잠시나마 떠나 천상의 무희들과 하늘을 날아다니는 꿈도 꾸어보면 이 앙코르 와트의 관람은 그런대로 의미가 있을 것이다.

주달관이 감동한 앙코르 톰

 앙코르 톰 남문
 앙코르 톰 남문
ⓒ 박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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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 톰은 앙코르 와트에서 차로 5분 이내에 도착이 가능한 곳에 있는 유적군을 말한다. 앙코르 톰은 '커다란 도시'라는 뜻으로 앙코르 왕조의 마지막 수도였던 곳이다. 이곳을 조성한 왕은 앙코르 왕조의 최고의 성군이었던 자야바르만 7세이니까 대체로 12세기 후반에서 13세기 초에 건축되었을 것이다. 앙코르 와트가 조성된 뒤 약 100년 후에 만들어졌다고 보면 된다.

이곳에서 관람해야 하는 곳은 꽤 많은데 통상 남문, 바욘 사원, 바푸온, 왕궁자리, 피미아나카스, 프리아 팔릴라이, 코끼리 테라스, 레퍼왕의 테라스 등을 본 다음(위의 것들은 모두 한군데 모여 있기 때문에 도보로 이동하여 볼 수 있음) 시간이 허락하면 조금 떨어져 있는 타 프롬이나 프레아 칸을 보는 것이 좋다. 나의 경우는 위 유적지 중에서 타 프롬을 빼고는 모두를 오전 중에 보았다. 몇 곳 인상 깊은 곳을 소개해 보자.

 앙코르 톰 남문의 좌우 신상, 우유 바다 젓기의 한 부분을 옮겨 놓았다.
 앙코르 톰 남문의 좌우 신상, 우유 바다 젓기의 한 부분을 옮겨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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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 톰을 가면 우선 도착하는 곳이 남문이다. 앙코르 톰을 관람하는 데 관문이자 첫 관람 포인트다. 이곳에서는 문에 들어가기 전에 길 양편에 조성된 54개의 석상을 자세히 봐야 한다. 앙코르 와트의 동회랑 남익벽에서 본 '우유 바다 젓기'의 한 장면을 석상으로 표현해 놓은 것이다. 왼쪽은 선신을, 오른쪽은 악신인 아수라가 나가의 몸통을 끌어안고 줄다리기를 하는 모습임을 알 수 있다.

앞서 본 <진랍풍토기>를 쓴 주달관은 1296년 이곳에 도착하여 웅대한 앙코르 톰을 본다. 그의 말을 직접 들어 보자.

"주성(앙코르 톰)은 주위가 20리이다. 다섯 개의 문이 있는데 성문은 각각 이중으로 되어 있다. 동쪽 방향에는 두 개의 문을 열어 놓았고 나머지 방향은 모두 하나의 문을 열어 놓았다. 성곽 바깥에는 커다란 해자가 있다. 해자 바깥에는 네거리로 통하는 큰 다리가 있다. 다리 양쪽에는 각각 54개의 석신이 있다. 이들은 석장군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데 매우 크고 흉악하게 생겼다."

주달관의 앙코르 톰 설명은 지금도 정확하게 유효하다. 어느 하나도 사실과 다른 것이 없기 때문이다. 바욘 사원은 앙코르 와트와 더불어 앙코르 유적군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다. 이곳에 가면 두 가지는 필수적으로 보고 생각해야 한다.

바욘의 미소에서 백제의 미소를 보다

 바욘 사원의 벽면 부조, 이 부조를 통해 당시의 생활상을 알 수 있다.
 바욘 사원의 벽면 부조, 이 부조를 통해 당시의 생활상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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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는 바욘을 둘러싸고 있는 벽에 있는 양각 부조이다. 앙코르 와트의 제1 회랑의 벽면 부조와는 비교하기 어렵지만, 당시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시장 풍경, 고기 잡는 모습, 닭싸움, 곡예사가 등장하는 축제 등을 볼 수 있다.

 바욘의 사면상, 이것이 바욘의 미소다.
 바욘의 사면상, 이것이 바욘의 미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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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는 사면상이다. 원래 바욘에는 54개의 탑이 있었고(36개 현존) 그 탑의 4면은 관세음보살 또는 자야바르만 7세로 추정하는 얼굴이 표현되어 있다. 바로 이것이 바욘의 미소라고 하는 것이다. 언뜻 보면 섬뜩한 악마의 미소처럼 보이나 원래는 부처의 자비로운 빛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라 한다. 많은 사람은 이 미소를 보면서 우리의 백제의 미소를 떠올린다. 국보인 백제미륵반가사유상이나 저 서산의 마애삼존불에서 볼 수 있는 그 미소 말이다.

예술의 심미안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해도 바욘의 사면상의 미소와 서산마애삼존불의 미소를 비교해 보면 나름의 차이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심미안은 그렇게 키워지는 것이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미적 감각이 아니다.

프라 팔릴라이는 피미아나카스의 북서쪽에 위치하는데 우선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아 조용해서 좋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우선 내 눈을 놀라게 한 것은 뱅갈 보리수나무 몇 그루가 이 신전의 중심부를 내리누르고 있는 것이다. 수백 년 전 아마도 보리수나무 씨 한 톨이 신전에 떨어졌고 강력한 생명력을 가진 이씨는 그 암석에서도 뿌리를 내리고 드디어는 그 신전을 먹어 삼키기에 이른 모양이다.

 프라 팔릴라이, 자연의 역습을 보라.
 프라 팔릴라이, 자연의 역습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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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모습은 타 프롬(이것은 뒤에서 다시 본다)에서 더욱 격정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사람들은 이것을 볼 때마다 아놀드 토인비의 '도전과 응전'을 떠올린다. 인간이 제대로 도전과 응전을 하지 못하면 역사는 퇴보하여 급기야는 이렇게 자연으로 회귀하는 퇴영적인 역사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이곳 프라 팔릴라이나 타 프롬의 뱅갈 보리수(스펑 나무)에 의한 자연의 역습은 이러한 역사관의 산 증거라 할 수 있다.

 시바의 링가가 보인다.  프레아 칸의 통로는 신도를 향해 완전히 뚫려 있다.
 시바의 링가가 보인다. 프레아 칸의 통로는 신도를 향해 완전히 뚫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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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아 칸은 코끼리 테라스에서 조금 떨어져 도보로 이동하기에는 멀다는 느낌이다. 이곳은 자야바르만 7세가 자신의 아버지를 위해 봉헌했다고 하고(12세기 후반) 그의 임시 궁전으로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볼 만한 것은 신도가 끝나는 지점에 설치된 길 양편의 신들의 줄다리기 석상과 앙코르 와트의 서문 3탑 고푸라의 축소형이라고 생각되는 3탑문이다. 그런 다음 신전에 들어서면 중앙 지성소까지 회랑과 문들이다.

중앙 지성소에서 조금 전에 온 회랑을 보면 한눈에 바깥까지 다 보인다. 이곳에도 곳곳의 벽면에 압사라 등의 부조가 새겨져 있음을 볼 수 있고, 특히 중앙 지성소에 설치된 스투파와 그 직전에 설치된 석조 링감(시바신을 상징하는 남근상)이 볼 만하다.

자연의 역습... 스펑나무, 사원을 점령하다

 타 프롬에서 목격한 자연의 역습, 바로 이것이 인간의 문명이 자연으로 회귀하는 장면이다. 인간들이여 자연에 겸손하라!
 타 프롬에서 목격한 자연의 역습, 바로 이것이 인간의 문명이 자연으로 회귀하는 장면이다. 인간들이여 자연에 겸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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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 프롬은 앙코르 톰의 유적군에서는 동쪽으로 조금 떨어져 있어 차량으로 이동해야 한다. 자야바르만 7세 때 왕의 어머니 생전에 어머니에게 바쳐진 것으로 12세기 말에 조성된 것이다. 루니의 책을 보면 건축 양식을 바욘 사원과 같은 양식으로 보고 있으나 나로서는 그 이유를 명확히 모르겠다. 오히려 내 눈에는 이 사원이 프레아 칸과 동일한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인 사원의 구조가 그것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여하튼 이 사원은 앙코르 유적지에서 가장 큰 사원 중 하나다. 이 사원에서 발견된 돌의 명문(산스크리트)을 해석해 보면 조성 당시에 이 사원을 유지하는 데 약 8만 명의 사람이 필요했고 이들을 부리는 관리들이 5천 명이 넘었다고 한다.

이 사원이 유명한 것은 이 사원이 발견되었을 때의 충격 때문이다. 정글의 한가운데 수 세기 동안 사람의 발길을 허락하지 않아 발견 당시 뱅갈 보리수(스펑 나무) 등의 나무들이 이 사원의 중요 부분을 완전히 점령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하얀 뱀 나가가 신전을 삼키고 있는 모양이라고나 할까. 아마도 이 충격은 위의 프리아 팔릴라이를 봤을 때보다 훨씬 컸을 것이다. 아놀드 토인비의 도전과 응전의 역사관이 웅변적으로 맞아떨어진 곳이다.

여행의 마감은 톤레삽 호수에서

이제 앙코르 유적 탐방의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자 한다. 나는 2007년 9월 29일 오전 오후 내내 그동안 보지 못한 유적지를 돌아보았다. 그래도 고대 크메르인들의 젖줄이었던 톤레삽 호수를 보지 않고 그냥 비행기를 타는 것이 못내 아쉬워 마지막 코스로 그곳을 향해 달렸다. 호수는 시엠립에서 불과 15킬로미터 내외의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다.

호수라기보다는 거대한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이 호수는 동남아 최대의 호수인데, 평상시는 크지 않은 호수(수심 1미터 내외에 면적 2700평방 킬로미터)이나 몬순기간에는 수심이 9미터에 면적은 1만5000평방 킬로미터에 이르는 대형호수로 바뀐다. 메콩강으로부터 물이 역류하여 고이기 때문이다.

이 호수에는 수많은 사람이 수상 가옥에서 살면서 수천 년 동안 고기를 잡으면서 삶을 영위해 왔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이 물 위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고기를 잡다가 이곳에서 생을 마감한다.

 톤레삽 호수의 수상가옥(위 사진)과 한국 교회(아래 사진), 오른쪽에 십자가가 보인다.
 톤레삽 호수의 수상가옥(위 사진)과 한국 교회(아래 사진), 오른쪽에 십자가가 보인다.
ⓒ 박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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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타고 이 호수의 한가운데로 나가 보면서 인근 수상 가옥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사람들이 고기를 잡아와 수상 가옥에서 시장에 내다 팔기 위해 한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느 아주머니는 내일 고기잡이를 위해 그물을 정리하고 있었다. 학생들은 수상 학교에서 방금 파했는지 조그만 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어느 가난한 아주머니는 카누 한 척을 힘겹게 저어가며 바나나를 팔고 있었다. 아, 그런데 말이다. 저기 멀리 보이는 십자가가 달린 이상한 수상 가옥 한 채, 무엇인가 하고 다가가니 이게 웬일인가. 한국의 어느 교회가 만든 톤레삽 수상교회가 아닌가. 참, 대단하다. 한국 교회 선교의 힘, 아니 언제 이곳까지 와서, 수상교회를 만들었단 말인가!

덧붙이는 글 | 지금까지 [세계문명기행 IV : 캄보디아 앙코르 유적편]을 애독해주신 독자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다른 내용으로 독자분들을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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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학교 로스쿨에서 인권법을 강의하고 있습니다.지난 20년 이상 변호사 생활을 해왔으며 여러 인권분야를 개척해 왔습니다. 인권법을 심층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오랜 기간 인문, 사회, 과학, 문화, 예술 등 여러 분야의 명저들을 독서해 왔고 틈나는 대로 여행을 해 왔습니다. 이 공간을 통해 제가 그동안 공부해 온 것을 독자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