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25일 오후 서울 은평구 이마트 매장 입구에 구입한 상품을 담는 카트가 세워져 있다.
 25일 오후 서울 은평구 이마트 매장 입구에 구입한 상품을 담는 카트가 세워져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기사 수정 : 27일 오후 11시 40분]

카트(Cart). 카드(Card). 바코드 시스템(Barcod System).

대형마트가 생겨나고 유지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필수라고 한다. 무거운 장바구니를 대신할 수 있는 카트가 없다면, 신용카드나 할인카드가 없어 현금으로만 결제를 해야 한다면, 가격표를 일일이 확인하고 계산원이 수작업으로 물건값을 정산해야 했다면 대형마트의 지금과 같은 번영은 힘들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과연 이 세가지 힘만으로 대형마트가 유지되고 확장돼 왔을까? 그렇지 않다. 대형마트 확장의 이유는 무엇보다 소비자를 불러 모으는 최저가 상술에 있다. 최저가 보상제, 1+1행사, 끊임없는 할인행사가 없다면 아무리 편리한 시설이라도 고객을 불러 모으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최저가 상술 뒤에는 납품업체의 울며 겨자먹기식 희생과 노동자들의 저렴한 노동이 있다.

최저가 정책 떠받치는 납품업체의 희생과 저렴한 노동

이마트와 거래를 하다 20억 이상 손해를 보고 2008년 1월 21일 서울 응앙동 이마트 앞에서 분신한 차아무개씨, 30억 대출받아 공장증설을 한 두부 납품회사가 폐업 직전으로 내몰려 직원 80여 명을 내보내야 했던 두부 할인전쟁, 하루 종일 의자에 앉지도 못하고 서서 고객을 응대해야 하는 열악한 노동환경은 최저가를 지탱하기 위해 강요된 납품업체와 노동자 희생의 한 단면이었다.

<오마이뉴스> 보도를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낸 이마트의 맨얼굴. 거기에는 카트, 카드, 바코드 시스템과 별반 다르지 않게 취급되어온 노동과 인권이 있다. 껌뻑이는 형광등 갈아 끼우듯이 너무나 태연하고 치밀하게 한 감시와 해고, 대형마트를 관리 감독해야 할 정부 기관들조차 그들과 한 통속이 된 전말은 할 말조차 잃게 한다. 기름값 잡겠다는 핑계로 대형마트에 주유소를 허가해 그들의 배를 불려준 이명박식 기업하기 좋은 나라 만들기, 노동자의 권리를 대변해야 할 고용노동부조차 대형마트 자본 지킴이로 전락해 버린 현실은 정권, 정부의 존재 이유에 근본적 회의를 불러올 수밖에 없다.

"소비를 이념적으로 하시는군요?"

이마트 피자가 출시된 2010년 9월, 동네 피자집마저 다 망하게 생겼다는 누리꾼들의 비난에 이마트 정용진 부회장은 이같이 응수했다. 대기업, 대형마트의 무차별 사업 확장으로 빵가게, 치킨집에 이어 피자집마저 줄줄이 문을 닫는 생존권 위기에 대한 비난을 이념 논쟁으로 치부해버린 정 부회장.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마트의 노사관리는 노동자의 능력보다 노조에 우호적인가, 아닌가 하는 이념 잣대가 우선되었다. 노조에 우호적인 노동자를 문제(MJ) 사원, 이마트에 충성도가 높은 노동자를 가족(KJ)사원으로 분류해 관리해 온 행태는 누가 뭐래도 철저한 이념 편 가르기라 할 수 있다.

무노조 경영을 주창해 온 삼성은 오래 전부터 노조 설립을 계획하거나 회사 방침에 비판적인 사원들을 문제 사원으로 낙인찍어 왕따시키고 온갖 차별을 가했다. 삼성 SDI 해고자 김갑수씨, 삼성화재 한용기씨의 증언만 보더라도 무노조 경영을 고수하기 위해 소위 문제 사원들에게 가한 협박과 감금, 미행과 강제 인사 발령은 과거 군사정권 정보기관이 저지른 패행과 구분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에 드러난 이마트 노동자 감시, 비인권적인 처우는 무노조 경영을 앞세웠던 삼성의 인력관리와 너무나 닮아 있다.

사내도 아닌 밖에서 직원의 행동을 감시하기 위해 녹취기, 녹음기, 망원경, 망원 카메라를 준비하고 타인 명의의 차량까지 준비하는 치밀함. 미행이 발각되면 도주하는 요령까지 기재된 매뉴얼을 준비했다는 것은 노조 파괴 전에 인권 유린이라 할 수 있다. 더구나 노조에 가입할 의사가 있다는 이유로, 문제(MJ)사원이라는 이유로, 직원의 이메일과 주민등록번호를 이용하여 노조 가입을 감시한 행위는 엄연한 범죄행위다.

지인은 이마트 포인트 카드를 잘랐지만...

저렴한 상품은 저렴한 노동이 뒷받침 되어야 하고, 저렴한 노동 뒤에는 이를 조장하고 방조하는 국가 정책이 있을 수밖에 없다. 저렴한 상품으로 고객을 불러 모아서 부를 증식시키고 끝내 승자독식의 구조의 최고를 구가하려는 이 대형마트는 노동자를 감시하여 오직 회사에 충성하는 저렴한 노동자로 남기기 위해 편법과 불법의 숱한 악행을 자행해 왔다. 또 국가는 비정규직을 대량 양산하고 불법을 방치하면서 값싼 노동력 제공의 단초를 제공해 주었다.

지인이 이마트 사태에 항의 표시로 포인트 카드를 절단했다고 페이스북에서 밝혔다.
 지인이 이마트 사태에 항의 표시로 포인트 카드를 절단했다고 페이스북에서 밝혔다.
ⓒ 안호덕

관련사진보기

이명박 정권 5년.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은 승승장구해왔다. 유통법 개정을 미루며 그들의 이익을 대변했던 새누리당, 대형마트·SSM 규제가 FTA에 위배되어 통상마찰이 일어날 것이라던 이명박 정부의 통상관료, 산업재해로 노동자가 죽자 이마트에 책임회피 묘안까지 일러줬던 고용노동부 관료. 이런 정치인과 관료들이 최소한 법에 규정된 자기소임만이라도 충실했더라면 노동현실이 이렇게 나락으로 떨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포인트 카드 자릅니다. 더 이상 이런 자본에 1원 한푼 보태기 싫습니다."

지인의 페이스북에서 이마트 규탄 글과 잘린 포인트 카드 사진을 보면서 '좋아요'를 누르고 '나도 곧...'이라는 댓글을 달았다. 그러나 나는 아직 결행에 옮기지 못했다. 얼마 되지 않는 포인트 점수에 추운 겨울, 갈 곳 없는 아이들을 위해 한번이라고 이마트에 갈 일이 생기지 않을까라는 현실적인 비겁함이 결행을 막고 있다.

그러나 사실, 내 결행이 없다면, 소비자의 비난이 힘이 모이지 않는다면, '이마트 사태'라고 불리는 노동자 탄압, 인권유린의 실체는 변죽만 울리다가 그칠 공산이 크다. 물론 정부는 이번 사태를 두고 여러 번 조사와 거기에 걸맞은 처벌을 약속한 바 있다. 강도 높은 조사를 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다만, 기껏 벌금 수억 원. 실무자 몇 명 처벌하는 것으로 책임을 다했다는 듯 면죄부를 받아서는 안된다. 

저렴한 노동을 물려주지 않는 방법

인권 유린을 일삼고 노동자를 소모품으로 전락시킨 이마트의 악행은 제대로 된 회초리를 맞아야 한다. 국민의 애국심을 자극하여 무한 성장을 이룩해 왔던 이마트. 승자독식의 승자가 되기 위해 노동자의 인권을 유린한 대가가 어떤지 국민의 혹독한 단죄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반성도 있을 수 있고 또다른 인권 유린도 막을 수 있다. 

경제민주화를 주창한 박근혜 정부의 출범이 곧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경제민주화는 공약한 박근혜 당선인의 얼굴만 쳐다본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국민들의 의지다. 세계사에 유례를 찾기 힘든 노동자의 인권 유린 사태. 이런 사태를 보고도 아무일 없다는 듯 대형마트로 몰려드는 국민들이 넘쳐난다면 경제민주화는 박근혜 당선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무용지물이 될 뿐이다. 고객을 왕으로 모시겠다는 대형마트의 상술에 비판의식마저 마비된 소비를 한다면 왕의 호사가 아니라 저렴한 상품을 찾아 모여드는 불나방 이상의 대접을 받기 힘들다.  

신세계그룹 이마트의 직원 사찰과 노조탄압 실상이 폭로되고 있는 가운데, 24일 오전 서울 은평구 이마트 앞에서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신세계그룹 이마트의 직원 사찰과 노조탄압 실상이 폭로되고 있는 가운데, 24일 오전 서울 은평구 이마트 앞에서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저렴한 상품이 있으려면 저렴한 노동이 있어야 하고, 저렴한 노동이 있으려면 저렴한 국가가 있어야 한다. 그런 국가는 우리 아버지들이 건국한 국가도 아니고, 우리 아들들이 지켜나가고자 하는 국가도 아니다." - <완벽한 가격>(랜덤하우스)

미국의 25대 대통령 윌리엄 매킨리가 남긴 말이다. 이제 우리는 그가 남긴 말에 어떤 화답을 할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우리 아들 딸이 저렴한 노동을 위해 줄을 서는 미래. 그것이 누구도 희망하지 않는 미래라면 우리 스스로 저렴한 노동의 희생자를 위해 팔 한번 걷어붙일 고민과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태그:#이마트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28,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역사의 진보는 냉철한 시민의식을 필요로 합니다. 찌라시 보다 못한 언론이 훗날 역사가 되지 않으려면 모두가 스스로의 기록자가 되어야 합니다. 글은 내가 할 수 있는 저항입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