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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찜! e시민기자'는 한 주간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올린 시민기자 중 인상적인 사람을 찾아 짧게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인상적'이라는 게 무슨 말이냐고요? 편집부를 울리거나 웃기거나 열 받게(?) 하거나, 어떤 식으로든 편집부의 뇌리에 '쏘옥' 들어오는 게 인상적인 겁니다. 꼭 기사를 잘 써야 하는 건 아닙니다. 경력이 독특하거나 열정이 있거나... 여하튼 뭐든 눈에 들면 편집부는 바로 '찜' 합니다. 올해부터 '찜! e시민기자'로 선정된 시민기자에게는 오마이북에서 나온 책 한 권을 선물로 드립니다. [편집자말]
김어진 시민기자
 김어진 시민기자
ⓒ 김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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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는 누구나 자신의 '영토'가 있기 마련이다. 굳이 직업이나 취미라는 말들로 규정되지 않더라도,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꾸준히 좇다보면 그 영토가 생긴다. 하지만 '사랑하는 것을 좇는' 일이 말처럼 쉽지 않다. 공부 때문에, 일 때문에, 먹고사느라 등 그것을 방해하는 이유들은 얼마나 많은가. 그런 일에 용기 있게 덤벼들어서 자신의 영토를 넓히는 사람은 정말 멋있다. 더욱이 그가 십대의 청소년이라면!

못생긴(외모 비하의 의미로만 읽지는 말아주시길) 정치인들의 얼굴만 식상하게 올라오는 <오마이뉴스> 톱보드에 예쁜 새의 모습이 올라오는 날이 있다. 그것도 시민기자가 직접 강으로 바다로 새들을 직접 찾아가 찍어올린 소중한 사진이다. 새를 사랑하는 청소년, 김어진(18) 시민기자의 작품이다. 새를 찾아다니며 이 땅과 하늘을 사랑하게 된 청소년. 그의 글과 사진에서는 야생의 새에 대한 단순한 관심이 아니라 생생한 현장과 생태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식견까지 느껴진다.

누구보다 확실하게 자신의 영토를 다져가고 있는 당찬 청소년, 김어진 시민기자의 이야기를 25일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들어봤다.

☞ 김어진 시민기자가 쓴 기사 보기

- 간단히 자기소개부터 부탁드립니다.
"대안학교인 파주자유학교에 10년째 다니다 다음 달 졸업하게 되는 김어진이라고 합니다.(파주자유학교는 초중고 통합형 학제로 운영됩니다.) 새를 좋아해서 새를 보러 다니고요. 많은 사람들에게 새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몇 번 제 탐조 이야기를 기사로 적었는데 '찜! e시민기자'로 채택되었네요. 여친 없어요.(웃음)"

- 시민기자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탐조를 마치면 사진과 글을 제 블로그에 올려서 틈틈이 기록합니다. 하루는 부모님께서 블로그에 있는 사진과 글들이 괜찮다며 <오마이뉴스>라고 아무나 기사를 쓸 수 있는 곳이 있는데 너도 한번 글을 올려보는 게 어떻겠냐고 가볍게 권유하셨습니다. 원고료도 받고 좋다고 하시길래 2011년 새해 첫 탐조 얘기를 송고했습니다(<검은 팬티 입은 쇠기러기 좀 봐... 저기 삵도 있네>).

별로 기대도 안 하고 있었는데 그날 밤 제 글이 메인 화면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어서 엄청 놀랐습니다. 사람들의 반응이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좋아서 그 뒤로는 나름 열심히 기사를 쓰게 되었답니다."

- 어떤 계기로 새에 관심을 갖게 되었나요?
"원래 네 발 달린 동물들을 좋아했습니다. 어릴 때 동물사전들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는 게 하루 일과였죠. 그러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파주 민통선으로 철새 보러 가는 프로그램에 참가하게 됐습니다. 민통선 안에 있는 독수리들을 보고 말릴 틈도 없이 새에게 그냥 홀딱 빠져버렸습니다. 제 덩치보다 큰 새들이 날아다니는 게 얼마나 멋져 보이던지. 그날 이후로는 동물사전이 아니라 조류사전만 보며 살았어요."

초등학교 4학년 때 만난 독수리... "조류사전만 보며 살았어요"

위장막을 치고 탐조활동 중인 김어진 시민기자
 위장막을 치고 탐조활동 중인 김어진 시민기자
ⓒ 김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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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를 다니면서 탐조활동까지 하는 게 쉽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탐조는 얼마나 자주 다니나요?
"학교가 탐조활동에 방해가 된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대안학교라 그런가. 오히려 예전에 황새가 공릉천에 나타났을 때, 소식을 듣자마자 학교 일과시간 중인데도 선생님 한 분께 부탁해 같이 차를 타고 보러 간 적도 있죠. 학교나 기숙사 근처에 새들이 많아서 일상생활이 탐조였습니다. 공릉천에는 주말에, 방학 때는 매일 간 적도 있습니다. 요즘은 공릉천의 새가 줄어들어 탐조를 나가는 횟수도 줄어들었지만요.

새 공부라는 것은 딱히 없습니다. 수학, 영어는 학교에서 가르쳐주지만 새, 자연에 대해서는 누가 가르쳐주나요. 혼자 새 도감 보고 새 보러 다녔던 것이 유일한 제 공부였습니다. 그런 탓에 전문지식은 많이 모자라요."

- 기사에, 함께하는 분들에게 감사를 표현하는 부분이 가끔 보입니다. 탐조에 도움을 주시는 분들은 어떤 분들인가요?
"정기적으로 같이 새를 보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그런 사람이 한 명도 없습니다. 주로 혼자 보고, 기사에 나오시는 분들은 1년에 한두 번 만나뵐까 한 분들이죠. 다들 생태사진작가이시면서 신문사에서 일하시는 분들입니다. 그래도 한번 만날 때마다 무척 즐겁고 행복합니다. 새 사진을 찍을 땐 어떻게 새를 대해야 하는지 등 현장에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을 가르쳐주시죠."

- 탐조장비, 특히 좋은 카메라에 대한 욕심은 당연히 있을 걸로 보입니다. 비용은 어떻게 해결하시는지요?
"카메라 욕심 너무 납니다. 10년 된 카메라를 8년째 쓰고 있는데 오작동이 많이 일어나기 시작해서 최근에 카메라를 바꾸려고 했습니다. 부모님께서 주시는 돈과 책 출판해서 받은 돈을 보태서 사려고 했는데 카메라 가격이 너무 비싸더군요. 기사를 많이 써서 원고료를 많이 받아야 할 텐데.(웃음)"

- 사람의 흔적이 드문 곳으로 새들을 찾아다니는 일이 사실 힘들고 때로는 위험한 일일 것 같은데, 후회하거나 대충 해버리자고 생각해본 적은 없나요?
"한국은 DMZ를 제외하고 사람 손길이 안 닿아 있는 데가 없어요. 미국에서는 사람의 흔적이 전혀 없는 숲속이나 습지도 돌아다녔는데, 그건 좀 위험하더라고요. 날 동물로 착각한 사냥꾼의 총에 맞을 수도 있고 곰, 여우, 늑대처럼 위험한 동물들이 많으니까요. 후회를 한 적은 없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왜 후회를 하나요. 동물이나 새를 찍는 일은 대충 할 수가 없는 일 같습니다. 동물이나 새를 만나는 것은 기다림입니다. 인내심이 필요하고 동물을 만나는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서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대충할 수가 없죠."

- 직접 촬영한 새들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새는 어떤 새인가요?
"수리부엉이를 고르겠습니다. 제가 올빼미과의 새들을 특히 좋아하는 이유도 있지만, 한 새가 새끼에서 어른이 될 때까지 자라는 성장과정을 제가 끝까지 지켜본 새는 수리부엉이가 처음이었거든요."

'자연 다큐멘터리' 찍는 것이 꿈... "자기가 행복하다면 해야죠"

김어진 시민기자가 가장 사랑하는 새, 수리부엉이
 김어진 시민기자가 가장 사랑하는 새, 수리부엉이
ⓒ 김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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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동안 수많은 새 서식지를 돌아다녔을 텐데, 우리나라의 서식지 보존 실태에 점수를 매긴다면 10점 만점에 몇 점 정도 주고 싶나요?
"후하게 3점 드립니다. 작년 람사르협약 당사국 총회에서는 우리나라가 '습지파괴상'을 받기도 했죠. 제가 주로 가는 공릉천도 '친환경' 자전거 도로를 놓는다고 갈대숲을 다 밀어 공릉천을 찾는 새들이 줄어들었고요, 두루미들의 월동지인 연천 임진강 일대가 군남댐에 의해 수몰될 위기에 처한 이후로는 두루미들이 사람들이 뿌려주는 먹이에 의해 살아가는 꼴로 전락해버렸어요.

다행히 지금은 무산되었지만 새만금 같은 천혜의 보고를 잃어버려 놓고는 서해 갯벌에 더 많은 조력발전소를 지으려 했고요, 4대강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생태', '녹색', '친환경' 듣기 좋은 말로 포장하여 자연을 훼손하고 있는 곳이 너무 많습니다."

- 지난해에 <도시소년이 사랑한 우리 새 이야기>라는 책도 펴냈습니다. 책을 내게 된 데 재미난 에피소드가 있었다고 하던데요.
"눈이 펑펑 쏟아지던 날 맨몸으로 공릉천으로 탐조를 나간 적이 있었는데 제 앞으로 차 한 대가 오더니 그 안에 있던 분께서 창문을 내리고 인사를 하더군요. 혹시 김어진 아니냐고. 멀리서 봤을 때는 왠 시꺼먼 사람이 풀숲을 어슬렁어슬렁거리는 게 밀렵꾼인 줄 알았는데 가까이서 보니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이라 혹시나 싶어 물어보셨다는군요. 바로 그분이 제 책을 내주신 장수하늘소 출판사 사장님이셨어요. <오마이뉴스>에서 제 기사를 읽으셨다는군요. 결론은 책 낸 것도 <오마이뉴스> 덕분이라는 거?(웃음)"

- 내용도 특색 있지만 기사 문장도 안정적입니다. 특히 자신의 전문적인 지식이나 경험을 자랑(?)하려 하지 않고 보통 사람의 입말로 조곤조곤 풀어놓는 글투가 좋습니다. 글쓰기 공부를 따로 하나요?
"학교에서 '하루이야기'라고 일기를 돌아가면서 학교 홈페이지에 쓰게 하는데, 그거 말고는 글을 써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그런지 일기 수준의 글을 못 벗어나 개인적으로는 고민입니다."

- 다음 달이면 파주자유학교를 졸업하는데, 졸업 뒤의 계획이나 진로가 궁금합니다.
"조류학자, 수의사, 밀렵감시꾼, 환경운동가, 사진기자 등 여러 꿈들이 있는데 자연 다큐멘터리를 찍는 사람이 되는 것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이것보다 더 매력적인 일은 없는 것 같더라고요. 방송 3사 소속이 아니면 엄청나게 고되고 힘든 일이라고는 하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자기가 행복하다면 해야 하지 않겠어요? 다큐멘터리를 찍기 위해서 배울 게 있다면 대학도 당연히 가야겠죠. 아직 어딜 가야 할지 모르겠지만 우선 검정고시부터 봐야죠(파주자유학교는 비인가 학교다). 지금은 가정용 캠코더 하나 빌려서 이것저것 테스트 삼아 찍으면서 혼자 배우고 있습니다."

- 마지막으로 이 계절에 새를 보러 가기 좋은 곳 한 곳만 추천해주세요.
"철새군무라면 가창오리 군무를 추천하고 싶지만 녀석들은 보기 힘드니 우포늪에 독수리 떼를 보러 가시거나 9, 10월에 새 전문가와 함께 우리나라 서해갯벌의 도요새 군무를 보는 것을 추천하고 싶네요."

김어진 시민기자
 김어진 시민기자
ⓒ 김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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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찜이시민기자, #김어진, #탐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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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하는 사람. <사다 보면 끝이 있겠지요>(산지니, 2021) 등의 책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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