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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붙은 개' 동영상의 일부 장면
 '불붙은 개' 동영상의 일부 장면
ⓒ 동물사랑실천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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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견으로 추정되는 개가 온몸에 불이 붙은 상태로 몸부림치다 화재 사고를 일으키고 숨졌다. 경찰은 동물학대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범인을 적발하기 위해 수사에 나섰다. 동물보호단체는 개 몸에 불을 지른 사람을 찾겠다며 현상금을 내걸었다.

하지만 '불붙은 개' 사건의 용의자가 적발돼도 현실적으로 처벌 가능성이 낮다. 현행법상 용의자가 동물학대의 고의가 없었다고 변명하면 법적 책임을 물 수 없다. 이를 두고 동물학대에 대한 법적 처벌 규정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사건을 수사 중인 용인동부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20일 오후 5시께 경기 용인시 처인구 고림동 한 자동차정비소 창고로 온몸에 불이 붙은 개가 달려 들어갔다. 10여분 후 창고에서는 화재가 발생했고 이를 인근 식당 종업원 서아무개(55)씨가 목격해 119에 신고했다. 화재 현장에서는 개 사체가 발견됐다.

경찰·동물보호단체 "고의로 개 몸에 불 붙였을 가능성 높아"

경찰은 23일 정비소에 설치된 4개 CCTV를 확인해 불붙은 개가 창고로 달려 들어가는 동영상을 확보했다. 하지만 영상으로는 이 개에게 무슨 일이 있었으며 정확히 어디서부터 달려 나온 것인지 알 수가 없는 상황. 따라서 경찰은 개 사체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내 감식을 요청했고, 정비소 주변을 포함해 600~70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중·고등학교까지 탐문 조사를 벌이는 중이다.

경찰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단순 치사부터 동물학대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 중이지만, 누군가 일부러 개의 몸에 불을 붙였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개가 온몸에 불이 붙은 상태로 정비소로 달려 들어간 점과 개의 사체에서 휘발성 물질이 남아 있던 점 등이 경찰 추정의 근거다.

용인동부경찰서 관계자는 24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이 동네가 시골인 만큼 불붙은 개가 유기견인 것으로 추정된다"며 "누군가 개 몸에 불을 붙였을 가능성을 두고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 관계자는 "정비소가 밀집된 곳이라 흘러나온 기름이 개 몸이 묻었을 수도 있어 단순 치사일 수도 있다"이라고 덧붙였다.

동물보호단체인 동물사랑실천협회(CARE)도 이번 사건을 동물학대로 추정하고 이 사건이 발생한 정비소 주변에 "개 몸에 불을 지른 사람을 제보해달라, 결정적인 제보나 증언을 보내오는 이에게 300만 원을 주겠다"는 내용의 현상금 포스터를 내걸었다.

김호중 동물사랑실천협회 전문위원은 "인근식당에서 '매일 밥을 먹던 유기견이 화재 사건 이후 나타나지 않는다'는 제보가 왔다"며 "개인 혹은 여럿이서 유기견을 학대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그는 개의 몸에 기름이 붙어 단순히 사고가 났을 가능성과 관련해 "사람이 끼얹지 않는 이상 개가 온 몸에 인화성이 강한 물질을 두르기는 힘들다, 인화가 되려면 라이터 등  불을 촉발하는 도구도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불붙은 개 사건, 동물학대로 밝혀져도 용의자 처벌 어려워

그러나 이번 사건이 누군가 개의 몸에 불을 발생한 사실이라고 밝혀져 용의자를 잡아도 법적 처벌을 내리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 형법과 동물보호법상, 동물학대와 관련해 명백한 과실이 있더라도 용의자에게 고의가 없으면 처벌이 불가능하다.

동물이 죽을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는 행위를 했을 때 적용되는 '미필적 고의'에 따를 경우 동물학대범을 처벌할 수 있지만, 현재 동물학대사건 수사 실무에서는 미필적 고의를 적용한 사례가 없다.

동물학대 처벌을 규정한 '동물보호법 8조' 조항이 추상적인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잔인한 방법으로 죽이는 행위" "정당한 이유 없이 상해를 입히는 행위" 등으로 처벌 기준 조항이 모호하게 규정돼 있어 수사기관의 자의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소 30마리를 굶겨 죽인 '순창 소 아사사건'도 학대로 규정할 만큼 잔인하지 않다는 이유로 무혐의 처리됐다.
  
지난해 동물학대로 논란을 빚었던 '악마에쿠스 사건'에서 동물보호단체의 변호인을 맡았던 배의철 변호사는 "에쿠스 차량에 개를 매달고 달린 혐의로 재판을 받은 차 주인은 동물학대 고의가 없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져 무혐의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며 "'불붙은 개' 사건의 용의자가 밝혀져도 '정비소 근처라 개의 털에 기름이 묻어 있었다, 실수로 성냥불이 옮겨 붙었다'라고 주장하면 처벌 대상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아무리 동물학대 형량을 높여도 처벌규정이 모호하면 유명무실해질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배 변호사는 동물학대 문제 해결의 실질적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동물보호법상 처벌 조항을 세부적으로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서양권 국가들의 경우 동물학대 유형을 세부적으로 규정해 처벌조항과 일치하는 사실이 확인될 경우 동물학대로 처벌하도록 한다. 스위스·독일은 "동물을 가두어 놓고 사격해 죽이는 행위" "전기기구로 동물의 행동을 강요하는 행위" 등 학대 유형을 20가지 정도로 규정하고 있다.

배 변호사는 "뉴질랜드는 동물복지법 제23조에 근거해 동물을 도로에서 차에 끌려다니게 하는 것을 처벌하고 있다, 에쿠스 차량에 개를 매달고 달린 차 주인의 경우 뉴질랜드에서는 형사책임을 지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우리나라도 고의 여부와 무관하게 동물학대가 일어난 사실만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법 조항을 구체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태그:#동물학대, #불붙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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