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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에 대한 사회적 비판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높은 가운데 <오마이뉴스>는 최근 유통업계 1위인 신세계 이마트의 인사·노무 관련 내부 자료를 입수했다.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사기업이라는 이유만으로는 사회적으로 용납되기 힘든 수준이었다. 문제는 이것이 이마트만의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기업이든 공기업이든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은 보장돼야 한다. <오마이뉴스>는 이런 문제의식으로 집중기획 '헌법 위의 이마트'를 연속 보도한다. [편집자말]


[현장 취재 : 박소희 기자, 김은희 박선희 박현진 신나리 인턴기자]

전국민간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소속 회원들이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국금융연수원 내 마련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마트 직원들에 대한 불법사찰과 노조탄압을 규탄하고 있다.
 전국민간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소속 회원들이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국금융연수원 내 마련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마트 직원들에 대한 불법사찰과 노조탄압을 규탄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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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청에서 나오면… 근데 우리 너무 크게 말했다. (목소리를 조금 낮춘 뒤) 노동청에서 나오면 OO하라고 하던데?"
"팀장님이 하루에 한 10번은 말하는 것 같아요. 세뇌교육처럼."

21일 오후 4시경 이마트 서울 ㄱ점, 생활용품 코너 끝에서 남녀 셋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조심스레 다가가 "지나가다 들었다"며 "요즘 이마트 뉴스도 많던데, 무슨 지침이라도 내려왔나 보다"고 말을 걸었다.

갑자기 세 사람 가운데 한 명이 황급히 자리를 떴다. 물건이 든 손수레를 몰고 구석진 곳으로 이동한 그는 서둘러 누군가에게 전화를 했다. 통화를 마친 그에게 아까 동료들과 이야기한 내용을 묻자 "(노동청 이야기는) 그냥 장난으로 말한 것"이라고 답했다. "팀장은 '열심히 해라, 임무에만 충실해라'고 했을 뿐"이라며 "세뇌교육 이런 건 웃자고 한 말"이라고 덧붙였다. 그와 짧은 대화를 마치자마자 보안요원이 다가와 "모든 취재는 홍보실을 거쳐야 한다"며 "점포 밖으로 나가달라"고 요구했다. 겨우 5분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오프라인은 직원 입단속... 기자라면 "나가주세요"

'이마트 사태'가 터진 이후에도 손님들의 발길은 여전했다. <오마이뉴스>는 현재 이마트의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21일 수도권 지점 8곳을 직접 찾아가봤다. 이마트는 부쩍 직원들 입단속에 나선 모습이었다. 동시에 고용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이나 언론 취재에 대비해 직원들을 철저히 교육하고 있었다.

ㄴ점 협력업체 소속 최아무개씨는 "최근 정규직들이 조회 설 때 '누군가 나와서 조사하고, 직원들을 살필 것'이란 (간부들) 언급이 있었다고 안다"며 "기자인지, 이마트 본사 직원이 온다는 뜻인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낯선 사람이 물으면) 대답하지 말라고는 하지 않았지만, 저도 '언제쯤 누군가 올 것 같은데 평소처럼 대하라'는 교육을 받았다"고 했다.

이날 취재진이 각 지점에서 만난 직원들은 대부분 현재 이마트 사태의 내용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반응은 조금씩 엇갈렸다. 협력업체 직원들은 '이마트 문제를 알고 있냐'는 물음에 "아 뉴스 나온 거요?"식의 태도를 보였다. 반면 이마트 정직원들은 말을 꺼낸 직후 표정이 굳거나 대답을 피했고,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그러면 십중팔구 보안요원이나 인사총무파트장이 곧바로 나타나 "취재는 본사 허락이 있어야 한다"며 제지했다. "(이마트 사태를 다룬) 뉴스가 나온 후에도 손님이 줄지 않았고, 직원들도 크게 신경 안 쓴다"며 "신세계 역시 (노동부가) 근로감독을 와도 겁 안 먹을 것"이라는 직원도 있었다.

협력업체 소속이든 이마트 소속이든 딱 한 가지는 공통점이 있었다. '노조'란 두 글자를 함부로 꺼내지 않는다는 것. ㄷ점 고객서비스팀 파견직 B씨는 "직원들이 이 이야기(노조)하는 것을 꺼려한다"고 말했다. 이마트 정직원으로 보이는 김아무개씨도 "(신세계가) 삼성과 분리되긴 했지만 무노조 경영이 원칙 아니냐"며 "관련 얘기만 나와도 바로 (사측이) 차단시키니까 (직원들은) 잘릴까봐 말을 꺼내지도 못한다"고 했다.

부글부글 달아오르는 온라인... "윗선 지시라지만, 우린 인간 아닌가"

이마트는 블랙리스트에 오른 이들을 'SOS 대상자'라고 불렀다.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이마트의 SOS 관련 문건을 보면 대상자들의 구체적인 명단과 추진 결과까지 있다.
 이마트는 블랙리스트에 오른 이들을 'SOS 대상자'라고 불렀다.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이마트의 SOS 관련 문건을 보면 대상자들의 구체적인 명단과 추진 결과까지 있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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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뜩 움츠려 있는 매장 분위기와 달리 온라인은 심상치가 않다. 드문드문 글이 올라오던 이마트 노조의 인터넷 카페 익명게시판에는 <오마이뉴스>의 15일 첫 보도 후 여러 편의 글이 잇따라 올라왔다. 조회수도 평소보다 2~3배에 달했다. 글을 쓴 사람들은 이마트를 두려워하면서도 실망감과 분노를 드러내고 있었다.

한 회원은 "글을 쓰면서도 손이 떨린다"며 "해바라기조(노조 대응 전담팀)라는 사람들은 이런 글을 쓴 사람이 누군지 색출해내려고 눈이 시뻘개져서 여기 들락날락하고 있겠죠? 이마트에는 대체 언제쯤 봄이 올까요?"라고 말했다(관련 기사 : 직원 246명으로 '노조 대응' 전국조직 구축).

또 다른 회원은 인사팀 관계자들에게 "우리랑 한 직장 아래 머리 맞대고 일하는 분들 아니냐"며 "같은 직장 동료를 인신공격하고 명예퇴직당할 사람들 이름 적은 동안 아주 조금이라도 양심(의 가책)을 느낀 적은 없냐"고 물었다(관련 기사 : 이마트, 상시 해고 프로그램 'SOS' 운영).

"어쩌다 마주치면 허허실실 좋은 사람인 것처럼 다가와서 뒤로는 여론조작하고, 쫓아낼 사람들 명단 작성하는 일로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감하는 당신들…. 그게 어디 당신들 잘못만이겠어요. 위에서 내려온 지시라 어쩔 수 없다고요. 그런데 생각해봐요. 당신들만 먹고 살아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당신들만 자식들 부양하면서 살아야 하고 부모님 모셔야 하고 식구들 용돈이라도 챙겨주면서 살아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당신들이 연봉 5000만 원, 6000만 원씩 챙겨갈 때, 당신들 뒤에서 한 푼이라도 살림에 보태려고 시급 5500원짜리 파트타임 계약직 면접 붙은 걸로도 좋아하면서 온종일 다리 퉁퉁 붓도록 앉지도 못한 채 일하고, 어쩌다 아는 사람 만나서 무시당할까봐 속이 까맣게 타고, (고객) 불만이라도 접수되면 며칠 동안 얼어붙어서 신경이 곤두서는 캐셔(계산대 직원)들이 있다는 생각은 한 번도 안 해봤나요? 우리는 사람 아닌가요…."

"왜 이마트냐, 우린 윤리경영한다"며 억울하다는 분위기도

사내 깊숙한 곳에선 "왜 이마트냐"며 억울하다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이마트 본사 중간 간부는 "우리 회사가 나름 윤리경영한다고, (관공서 관리 등은) 필요최소한만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소위 '대관' 논란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 같은 곳에서 (명절 선물 등을) 바라는데 안 해주면, 기업 경영 자체가 안 되는데 그럼 어떡하냐"고 되물었다. 또 "삼성 등 다른 대기업처럼 돈을 썼으면 이런 일이 안 터졌을 것"이라며 "지금은 대책이고 뭐고 없다, 너무 연일 터져서…"라고 말했다.

민주통합당 노웅래·장하나 의원과 전수찬 이마트 노조위원장 등은 최후통첩을 날렸다. 이들은 23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신세계 그룹 차원의 사과, 전 위원장 등 해고자 복직과 노조 인정, 재발방지 약속 등을 요구하며 "28일까지 네 가지 요구사항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이마트의 불법행위를 계속 폭로하겠다"고 밝힐 예정이다.


태그:#이마트, #헌법 위의 이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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