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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이후 15년 동안 우리 사회의 진보는 주요 의제에서 철저히 수동적인 '안티테제(Anti-These)' 중심이었다. 신자유주의 비판, 민영화 반대, 비정규직 축소, 노동 유연화 반대, 한미 FTA 반대 등으로 점철되었던 것이다. 이는 신자유주의 규제완화, 감세, 민영화, 노동유연화, 세계화, 개방화 등의 의제에 편입되어 왔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경제 민주화는 진보가 처음으로 확립한 대안의제

그러나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처음으로 안티테제, 저항의제에서 벗어나 국민적 공감을 얻는 대안의제를 도출하는데 성공했다. '경제 민주화', '보편 복지', '노동권 강화' 3대 의제가 그것이다. 물론 이전에도 부유세나 무상의료 무상교육처럼 부분적 영역에서 대안의제 확립에 성공했지만 국지적인 경우로 제한되었다. 개혁 진보가 비록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의제 지형 구도를 바꾸는 대단히 중요한 진보를 이룩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일부에서 복지나 경제 민주화 자체는 보수적 의제로 활용될 수 있다는 의견도 많다. 이런 경우 역사적 맥락이 중요하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의 경험을 돌아볼 때, 적어도 지금 한국사회에서는 개혁과 진보의 성격을 담고 있다.

18대 대선을 통해 부상한 3대 사회 의제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진보는 처음으로 안티테제, 저항의제에서 벗어나 국민적 공감을 얻는 대안의제를 도출하는데 성공했다. ‘경제 민주화’, ‘보편 복지’, ‘노동권 강화’ 3대 의제가 그것이다.
▲ 18대 대선을 통해 부상한 3대 사회 의제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진보는 처음으로 안티테제, 저항의제에서 벗어나 국민적 공감을 얻는 대안의제를 도출하는데 성공했다. ‘경제 민주화’, ‘보편 복지’, ‘노동권 강화’ 3대 의제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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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본다면, 이 3대 의제는 앞으로 수년 동안 한국의 진보 시민사회운동이 견지해야 할 의제이자 달성해야 할 목표이며, 오랜만에 한국의 진보가 확립하고 국민 앞에 공인 받은 대안 의제이다. 한국 진보 시민사회운동의 전략적 목표는 아닐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새로운 전략적 목표로 나가는 출발점은 될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이 내용을 계속 진보적 방향으로 끌고 나가야 한다. 특히 경제 민주화, 보편 복지, 노동권 회복 과제 중에서도 진보적 시민사회는 노동권 회복에 더 무게중심을 두면서 복지와 경제 민주화를 추구하는 전략적 지향을 강화해야 한다. 1700만 노동자의 권리회복과 협상력 강화, 힘의 재균형이야말로 복지와 경제 민주화를 추진할 수 있는 내적 동력을 만들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노동권 회복에 기반한 경제 민주화 강조해야

경제 민주화의 경우, 재벌 개혁을 넘어 신자유주의를 극복할 경제 대개혁의 상징적인 이름으로서 내용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나가야 한다. 더 나은 국민들의 물질적 삶과 경제생활을 가능하게 해줄 비전과 방향이 경제 민주화라는 보통명사 안에 담겨야 한다. '안으로는' 작업장 민주주의와 경영권 참여라는 내적 깊이를 더해가고, '밖으로는' 사적 시장경제를 넘어 사회적 경제를 포함하는 다양한 소유형태를 포용하는 대안 시스템의 추구로까지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아울러 현재 시점에서 경제 민주화의 '보편성'과 '특수성'에 대해 충분히 인식해야 한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의 김대중 정부가 추진한 재벌개혁은 "차입경영, 과잉 중복 투자, 불투명한 경영관행, 총수경영 등 한국재벌의 전근대적이고 후진적인 모습을 영미식의 선진적이고 서구적인 기업으로 개혁하는 것"이었다. 한 마디로 후진적인 재벌을 미국식의 선진적 기업으로 탈바꿈시키자는 것이었다. 물론 일부에서는 아예 재벌체제 자체가 선진국 기업 모델과 다르니 해체하자는 얘기도 존재했지만 다수는 아니었다. 이런 차원에서 보면 재벌개혁은 철저하게 '한국적 특수성'의 산물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2012년 버전의 재벌개혁과 경제 민주화 버전은 이전과는 확연하게 다른 특징을 갖는다. 한국적 특수성으로부터 제기되고 있기 보다는, 신자유주의가 누적시키고 글로벌 금융위기로 폭발시킨 불평등의 세계사적 문제제기의 일환이기 때문이다. 즉, 현재의 재벌개혁과 경제 민주화는 과거처럼 한국적 특수성으로부터 제기되는 것이 아니라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불안정성을 노정한 신자유주의를 극복하려는 세계사적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경제 민주화 의제의 생명력은 '지금부터'이다.

박근혜 정부의 경제민주화, 어떻게 될 것인가?

이제 곧 박근혜 정부가 시작되는 시점에서 어디서부터 경제 민주화를 시작할 것인가? 당연히 박근혜 당선자의 경제 민주화 공약을 재확인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박근혜 당선자는 2012년 11월 중순 '경제 민주화 5대 분야 35개 실천과제'를 최종 발표했다. 김종인 행복추진위원장이 제안한 경제 민주화의 핵심은 빠진 상태였다.

박근혜의 경제 민주화 정책 요약 박근혜 당선자는 대선 기간이었던 2012년 11월 중순 ‘경제 민주화 5대 분야 35개 실천과제’를 최종 발표했다. 김종인 행복추진위원장이 제안했던 경제 민주화의 핵심내용들은 제외되었다.
▲ 박근혜의 경제 민주화 정책 요약 박근혜 당선자는 대선 기간이었던 2012년 11월 중순 ‘경제 민주화 5대 분야 35개 실천과제’를 최종 발표했다. 김종인 행복추진위원장이 제안했던 경제 민주화의 핵심내용들은 제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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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발표된 박근혜 경제 민주화 정책에 대한 비판은 두 가지 측면에서 제기되었다. 하나는 재벌의 권력 남용 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경제 권력 구조에 대한 규제 없이 사후적인 결과로 나타는 행위규제만 하려한다는 점이다. 문제의 원인을 통제하지 않고 나타난 결과만 쫓아 다니며 잡겠다는 점이 비판 대상이다.

둘째는 주요 정책에서 구체적 실행방안을 의도적으로 회피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것이 중소기업 적합업종 확대와 골목상권 보호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은 실효성을 제고하겠다고만 했지 시민사회단체 주장처럼 특별법을 만들겠다든지 하는 것은 없다. 골목상권 보호도 마찬가지다.

박근혜 경제 민주화 법안, 적극적으로 추진하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약자 보호, 전속 고발권 폐지 등 공정거래법 일부 개정, 총수일가 불법행위 엄벌 등 일부 전진적인 내용을 공약한 것도 사실이다. 최근 민주통합당 민병두 의원이 "민주당은 '박근혜 민생입법'을 당론으로 발의하는 역발상의 정치를 보여야 한다"는 주장을 했는데 의미가 있다고 판단된다. 그 취지를 살린다면, 일차적으로 박근혜 당선자의 경제 민주화 공약 중 의미 있는 것을 선별하여 '박근혜 경제 민주화 법안' 형태로 적극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의 경제 민주화와 관련하여 가장 우려되는 지점은 "경제위기를 구실로 경제 민주화를 무기 연기하고 다시 재벌중심의 성장주의로 회귀"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는 2012년 10월부터 '경제 민주화와 성장을 동시에' 가져가겠다는 공약을 발표하면서 예견되던 문제이다. 그런 취지에서 경제 민주화 공약과 함께 박근혜 경제를 암시한 중요한 공약이 바로 2012년 10월 18일 '창조경제 스마트 뉴딜'이라는 엄청난 개념 조합으로 작명한 성장정책, 일자리 정책이다.

그러나 박근혜 경제 정책 가운데 '개념만 화려하고 내용과 근거가 가장 부족한 정책이 성장정책과 일자리 정책'이다. IT기술 융합으로 성장과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하는 것인데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차라리 이명박 식으로 건설경기부활, 규제완화와 감세, 환율방어로 수출대기업 지원을 통한 성장이 더 현실적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은 이미 이명박 정부 임기 안에서 한계에 도달했고 그래서 나온 것이 이명박 정부의 '동반성장 정책'이었다.

박근혜의 성장 정책, 실체 없어... 경제 민주화가 답

결론적으로 'IT기술혁신 중심의 박근혜 성장전략'은 실효성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진보 시민사회는 차라리 박원순 시장의 '사회혁신 중심의 일자리 창출과 지속 성장전략'을 역제안해 볼 필요가 있다. 앞으로 지자체 선거까지 박근혜 정부의 정책과 박원순 서울시의 정책은 매우 다면적으로 대조가 되면서 보수와 개혁진보의 논쟁이 치열해질 전망인데, 고용과 성장 방식에 있어서도 예외는 아니다.

또한 경제 민주화 없이 내수 성장 없고, 경제 민주화 없는 성장은 재벌의 나홀로 성장이라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확인해 나가야 한다. 특히, 경제 위기의 골이 깊어질수록, 위기대처의 필요성을 주장하면서 위기의 구조적 대안으로서 경제 민주화를 주장해야 한다.

한편, 박근혜 당선자가 인수위원회 구성과 정부조직 개편안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집권 이후 전략 방향을 드러냈는데, 일단 경제 민주화에 대해서는 상당히 비관적인 의견이 많다. 우선 인수위원회에서 인수위원회에서의 경제1·2분과와 고용·복지 분과는 모두 보수성향의 성장주의적 학계인사와 행정관료 출신으로 구성되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박근혜 당선자도 1월 7일 인수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세계가 글로벌 경제 위기를 겪고 있는데 이를 어떻게 기회로 만들 것인지에 대한 해법도 찾아내 또 다른 한강의 기적을 만들 수 있길 바란다"고 주장함으로써 전형적인 성장신화 분위기를 부활시키려 하고 있다.

집권 첫 해, 경제 민주화 추진 가능성 없어 보여

또한 지난 1월 15일 발표한 정부 조직 개편안에서도 경제 민주화, 복지와 노동권 강화 등과 연관된 정부 조직 개편은 하나도 없었다. 예를 들어 경제민주화위원회(재벌개혁위원회)를 만들자는 제안이나 중소기업청을 중소기업부로 승격시키자는 제안 등이 전혀 수렴되지 않았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인수위 관계자들도 "단기적으로 부담이 있는 경제민주화 공약은 속도조절을 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경제민주화 공약 중 금산분리 강화나 신규순환출자 금지, 대기업 총수일가 사면권 제한 등 당장 민생과 큰 관련이 없는 공약들을 후순위로 밀어 두고 성장정책에 우선권을 부여할 것이란 얘기다. 물론 그렇다고 실제로 성장이 이루어질지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또한 1월 9일 상공인 대표단과 간담회에서 박근혜 당선자는 이명박 정권과 유사한 구호인 "따뜻한 성장론"을 언급하면서 "지금과 같이 어려운 상황에서 법인세율을 인상해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는 것을 찬성하지 않는다"라고 했고, "취득세 감면은 당과 긴밀히 협조해 조속히 연장되게 하겠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즉, 적어도 올해에는 재벌규제보다는 규제완화를 통한 투자 유인책을 제공하여 성장을 도모하겠다는 의지를 보일 것으로 예측된다. 이런 점에서 집권 1차년도에 재벌개혁은 물 건너갈 것으로 보이는데, 그러면 사실상 5년 동안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차원에서 볼 때에도 최소한 재벌총수 형량강화 등 재벌 규제를 강력히 요구해야 한다.

박근혜 정권에서 시민사회의 경제 민주화 운동 방향

그렇다면 이제 시민사회는 박근혜 정권 하에서 경제 민주화를 지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간략한 방향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첫째, 경제 민주화는 "신자유주의 위기와 소득 불평등에서 벗어나려는 구조적 경제 개혁운동으로서 세계적 보편성을 갖고 있다" 따라서 박근혜 정권에서 시민사회가 지속 발전시켜야 할 가장 기본적인 민주주의 운동이다. 정치 민주주의에서 경제 민주주의로 운동으로 발전되어야 한다.

둘째, 현재의 객관적 상황은 1988년 노태우 정부의 일종의 '수동혁명'으로 가야할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박근혜 당선자의 특성이나 현재의 사회적 역학관계로 볼 때 어렵다. 향후 5년 동안 경제여건의 어려움이 지속된다면, 조직되지 않았더라도 국민의 저항이 확대될 것이고 박근혜 정권은 불가피하게 공권력에 의존하게 될 가능성이 더 크다. 2014년 지방선거 이후에 그 방향이 명확히 결정될 것이다. 시민사회의 끈질긴 경제 민주화 운동이 필요한 이유다.

셋째, 시민사회운동은 기초적으로 '박근혜 경제민주화 법안'을 만들어서 초기 박근혜 정부를 압박할 필요가 있다. 낮은 곳에서 구체적으로 경제 민주화를 재시작하는 것이다.

넷째, 시민사회운동은 단기 현안대응에 국한하지 말고 경제 민주화의 내용과 폭을 더 깊게 하고 넓혀서 국민들과 공감해 나가야 한다. 아직 경제 민주화의 내용이 총체적인 경제개혁 비전을 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경제위기와 경제 민주화', '경제성장과 경제 민주화'에 대한 제대로 된 여론구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더 나아가 사회혁신, 사회적 경제를 경제 민주화 영역 안으로 포괄하는 등 지평을 넓혀야 한다. 이 부분은 지방자치 선거를 준비하는 과정으로 접목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우선 가칭 <박근혜 정권과 경제 민주화의 향방> 정도의 주제를 가지고 몇 차례 토론을 기획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한국의 신자유주의체제-재벌체제를 대체할 경제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다양한 모색을 활성화시켜야 한다.

다섯째, 경제 민주화와 보편복지가 만나는 접합지점에서 중대한 의의가 있는 '부자 증세', '재벌 증세'를 지속적으로 의제화 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또한 노동권 회복이 경제 민주화의 뿌리임을 확인하면서 노동권 회복/강화 운동 역시 범시민운동 차원에서 포괄되어야 한다.

여섯째, 당면의 시급한 경제 위기관리에 대한 시민사회운동의 대처도 필요하다. 특히 박근혜 당선자의 '10대 공약 이행 촉구'를 하는 것이 의미 있을 것이다. 아울러 위기를 핑계로 재벌개혁 회피를 계속 비판해가야 한다.

일곱째, 경제 민주화 뿐 아니라, 보편복지와 노동권 회복이 모두 박근혜 정부 5년간 지속되어야 할 중요 개혁과제다. 전체를 아우르는 시민사회운동의 안목이 필요하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새사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김병권 기자는 새사연 부원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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