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부르기 어려운 노래는 무엇일까. 변조가 심해서 내내 집중력을 유지해야 하는 노래나, 가창력을 돋보이게 하려고 성대 차력을 해야 하는 노래가 아니다. 삶에 대한 위로가 필요한 사람을 위해 부르는 노래야말로 난도가 높은 노래다. 그런 노래를 부를 땐 감정과 진정성을 끌어내야만 한다. 미문 같은 가사가 있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사실 음악에서 가사는 픽션에 가깝다. 그러나 사람들이 음악에 반응하는 것은, 그 감정만큼은 진실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 감수성을 3분 남짓의 노래에 담아내는 데 성공한 아티스트가 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음악은 '감정을 기록하는 곳'이다. "감동 받으라"고 마음먹고 만든 노래는 한 곡도 없었다. 그녀는 일상에서 요동치는 감정의 미세한 결을 다듬어서 음악에 담았다. 진정성이 꼭 매끄러운 틀에 담길 필요는 없지만, 고맙게도 그래 주었다. 버지니아 울프, 드뷔시 등 아름다움을 논했던 예술가에 대한 관심은 단단한 표현력의 바탕이 됐다. 사람들은 당연한 수순으로 "루시아의 감정에 휘말리고 싶다"고 열광했다. 감수성이 예민한 셀러브리티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녀의 콘서트 티켓은 5분 만에 모두 매진되었다.

 싱어송라이터 루시아

싱어송라이터 루시아 ⓒ Amabile 231 Studio 이건돈 실장


오랫동안 에피톤 프로젝트의 파트너였다. 자신의 앨범을 내면서 에피톤 프로젝트의 색을 걷어낼 땐 많은 이들의 우려도 샀지만, 스스로 믿는 합당한 방식으로 완성하여 성공했다. 사람들이 그게 그녀의 길인가보다 할 때, 그녀는 스스로 느껴지는 변화의 무언가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고 보니 사실 그녀에게는 대학가요제 금상 수상에 빛나는 밴드 아스코의 보컬 시절이 있었고, 재즈싱어 심규선 시절도 있었으며 자살하는 가수 역을 맡았던 뮤지컬 배우 시절도 있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루시아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지만, 항상 어제와 똑같은 사람은 아니었다.

- 재즈를 하셨다는 이력부터 얘기하고 싶어요. 발라드를 주로 부르시는 요즘의 모습으로는 잘 상상이 안 가요.
"저는 오히려 뮤지컬이나 재즈싱어를 할 때 이게 정말 제게 맞다는 생각을 했을 정도인데요.(웃음) 계속 발라드로 음반을 발표하긴 했지만, 발라드가 주전공이 아니었어요. 음악의 폭을 넓히기 위해 시작한 장르였는데 에피톤 프로젝트를 만나서 좋은 시작을 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요. 장르는 저에게 항상 큰 과업이자 숙제죠."

- 다른 장르를 다루고 싶은 욕심이 있으신 건가요.
"네. 장르가 저에게 되게 큰 딜레마예요. 어렸을 땐 제가 못하는 부분은 과감하게 포기했어요. 잘하는 것에만 집중하자는 치기가 있었던 거죠. 저보다 잘하는 분이 계시니까 굳이 욕심을 부리지 않았던 것 같아요. 지금은 생각이 바뀌어서 그게 좋은 게 아니다 싶어요. 지금은 제가 하고 싶고 발전의 여지가 있다면 뭐든 배워보고 싶어요."

- 정체성이 분명 있지만 그것만 고수하고 싶지는 않고, 다른 것도 다양하게 도전해보고 싶은 거군요.
"정확한 말씀이세요. 사과가 하나 있으면 한 면만 보여 드리는 게 아니라 빛의 굴절에 따라 달라지는 다양한 각도의 단면을 다 보여 드리고 싶은, 어떻게 보면 욕심이죠. 장르는 제가 반드시 풀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하고 그걸 어느 정도 밟아가지 않고서는 제가 뭘 해냈다는 느낌을 못 받을 것 같아요. 그래서 <데칼코마니(Decalcomanie)> 앨범을 내고 나서도 '아 그래, 내가 드디어 음반을' 이런 느낌보다 '이제 이거 하나 했으니까 남은 수많은 것을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 장르에서의 지향점이 그렇다면, 신에서의 정체성과 지향점에 대해서도 얘기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를 '인디 가수입니다'라고 얘기를 하기에는 인디 신에서 활동한 적이 없고, 그렇다고 또 '메이저 가수'라고 하기에는 대중적이거나 인지도가 높은 것도 아니라서 뭔가 좀 애매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렇게 애매하게 가운데 껴있기 때문에 '어느 신의 스타'라는 굴레에서 조금 자유로울 수 있는 것 같아요. 다양한 음악과 음악적 시야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저 같은 음악을 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들어 사람들을 이해시킬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아요."

ⓒ Amabile 231 Studio 이건돈 실장


위로라 말할 수 있는 진짜 노래

루시아의 노래 안에는 작은 그녀가 있다. 노래가 끝나면 그녀가 다가와서 말한다. "조금 더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당신의 마음을 뭔가 더 볼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 마음을 열지 않는 사람을 위해 감각을 장악할 필요가 있었다. 그녀로 인해 음악이 가진 힐링의 기능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삶에 대한 위로와 각성은 항우울제가 아닌 예술이 하는 일이다. 더욱 구체적으로는 이렇게 잘 부른 노래가.

- '위로의 여신' '힐링여신'이라는 수식어가 붙어요. 실제로 위로하고 힐링하는 음악을 만들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작업을 하는지 궁금해요.
"아니요. 사실 제가 만드는 노래는 대부분 저를 위로하기 위한 노래예요. 저는 제 이야기를 하는데 비슷한 경험을 가지신 분들이 그 음악을 통해 제가 그런 상황을 대신 말해준다고 느끼시는 것 같아요. 제가 마음먹고 장치를 해두었다기보다는 (음악을 들으시는 분들이) 스스로 찾아주시는 것 같아요. 음악을 듣고 위로받았다고 하시시면 그게 또 제게는 제3의 위로가 돼요. 저한테 또 다른 위로를 나누어주시는 분들이 많으셔서 감사드리죠."

- 이를테면 공감대를 공유하는 과정인가요?
"비슷하지만 저는 공감대라는 단어를 잘 사용하지 않는데요. 공감대라는 것을 만들 내력이 아직 저에겐 없는 것 같아요. 저는 아직 레전드급의 뮤지션도 아니고, 삶을 충분히 오래 산 것도 아니고요. 아마 제 음악에 동조하신다는 것은 저와 같은 감성을 가지셨거나, 저랑 비슷한 생각을 하신다거나 혹은 저와 같은 사람이지 않을까라고 생각해요. 가끔은 정말 저와 음악을 똑같이 이해하시는 분도 계세요. 그러면 저는 '여기 나의 감성적 쌍둥이가 있구나'라고 생각해요."

- 그러면 어떻게 그렇게 풍부한 감정을 노래에 담을 수 있나요?
"일부러 이런 감정을 넣어서 이런 식으로 감동을 줘야겠다고 하는 건 아니에요. 저는 차라리 음악에 기록하려고 애써요. 음악가로서 가슴이 뛰는 일이라던가, 환희를 느끼는 일, 슬픔을 느끼는 일같이 뭔가 감정을 요동치는 일을 겼었을 때 그걸 음악으로 기록하려고 해요. 좋아하는 작가인 버지니아 울프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거든요. 기록되기 전까지는 어떤 일도 진짜로 일어난 게 아니라고요. 기록하는 과정에서 내 안에 있는 혼란과 고통을 독대하고 그걸 내가 잘 아는 언어로 풀 때야 비로소 진짜로 일어난 삶의 조각이 되는거라고요. 누구는 일기를 쓰고, 누구는 페이스북에 올리듯이 저는 가사와 멜로디로 남겨두려고 해요."

- 노래를 부를 때 그런 감정이 항상 오지 않을 수 있잖아요. 어떤 감정으로 만든 노래인데 막상 부를 때가 되니 똑같은 감정이 오지 않을 수도 있고요.
"억지로 넣은 게 아니고 기록했던 것이기 때문에 가능해요. 일부러 감정을 넣어 만들었다면 항상 진심으로 노래한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겠죠. 하지만 기록했다면 그 노래와 반주를 다시 들었을 때 그때의 감정을 다시 꺼내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기쁘고 배가 부른 순간에 슬픈 노래를 불러야 할 때도 분명히 있는데. 다행히 저는 스위치 켜듯이 그런 전환이 잘 되는 편이에요. 다른 생각이 감정을 방해할 수도 있지만. 그런 생각을 하기에 저는 아직도 긴장을 많이 하는 편이라.(웃음) 올라가서 사력을 다해서 노래를 하다 보면 정말 열심히 하고 내려오게 되더라고요."

ⓒ Amabile 231 Studio 이건돈 실장


고정관념을 짊어진 그녀의 여린 어깨

단순히 지겹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수려한 외모의 활발한 성격을 가진 '홍대여신' 이미지는 '강인한 여성 예술가'를 꿈꾸는 그녀에게 고민스러운 괴리감을 주었다. 그녀는 고정관념의 무더기를 짊어진 채 진실 알레르기가 있는 대중들에게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숙제를 풀고 있었다.

- 예전부터 버지니아 울프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며 '강인한 여성 예술가'를 동경해왔잖아요. 그러나 실제로는 '홍대여신'과 '요정' 같은 다소곳한 수식어가 따라다니는데, 그런 것에 대한 괴리가 있을 것 같아요.
"확실히 그런 면이 있어요. 근데 제가 이제 28살이라 나이가 좀 있어서 이제 아무도 저를 '요정'이라고 부르진 않아요.(웃음) '홍대여신'이라는 타이틀은 방송매체에서 꼭 붙어나오는데. 그럴 때마다 진짜 홍대여신들께 너무 죄송해요. 저는 진짜 홍대여신들을 알거든요. 그분들과 차를 마시면 죄송한 느낌이 들어요. 물론 저에게 붙여주시는 이름이 다 감사하고 옳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크게 지을만한 별명이나 이슈가 없어서 그저 그렇게 불러주시는 것이 아닌가 하는 회의는 있죠."

- 루시아를 제대로 표현하는 수식어가 아니라는 말이네요.
"네. '홍대여신'은 저를 보고, 제 음악을 듣고, 저를 충분히 안 뒤에 붙여주는 이름은 아닌 것 같아요. 사실 제 음악을 들은 다음부터는 그런 말씀을 별로 안 하시거든요. 제가 노력하고 담아내는 음악의 방향성은 앞서 말씀하신 버지니아 울프의 그것과 맞닿아있어요. 저는 버지니아 울프의 책을 읽으면서 저와 같은 여성이자 예술가이자, 예술로 돈을 벌어야 하는 사람인 그녀에게 해답과 위로를 받는 느낌이었어요. 스스로 강인한 여성 예술가이자 같은 길을 가고 있는 사람에게 위로까지 전해주는 사람. 저와 제 음악도 그랬으면 싶어요."

- 혹시 또 수식어와 실제가 다른 면이 있나요?
"글쎄요. 제가 굉장히 외골수라는 점이요. 낯선 사람과 얘기도 잘하고 활달한 성격이기도 해서 잘 모르시던데. 저 사실 사람 많은 데 별로 안 좋아해요. 집에 혼자 있는 걸 좋아해요.(웃음) 사람 많은 곳을 힘들어하고 제가 좋아하는 한두 사람과 폐쇄적인 곳에서 시간 보내는 거 좋아해요. 구석진 곳 좋아하고.(웃음) 사람 많아서 신나고 재미있는 곳보다, 산천 같은데 가서 '강이 강이로구나'하면서 시간 보내는 게 더 좋아요."

- 가벼운 내공으로 쓸 수 없을 것 같은 그 섬세하고 아련한 가사는 그런 고독의 방에서 만들어지는 거구나.(웃음)
"네. 혼자 있으면서 작업을 많이 하죠. 외골수라고 말씀드렸는데 사실 전 한 번 음악을 만들 때 다작을 해요. 많이 만들 때는 하루에 7곡도 만들었어요. 필이 오면 내리꽂히듯이 많이 만들어요. 그러면 외부와의 연락을 끊고 몇 주 동안 그런 생활을 하기도 해요. 짧으면 며칠인데 길면 몇 주까지요."

ⓒ Amabile 231 Studio 이건돈 실장


루시아를 지탱하는 이질적이고 동질적인 사람들

올해로 데뷔 3년 차다. 그녀가 자신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것은 급하지는 않았지만 느리지도 않았다. 밑바탕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자신의 팬 이야기를 꺼낼 때 그녀의 말에 어떤 즐거움과 용기가 단단히 덧대어지는 것을 확인했을 때 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

-  슬럼프나 매너리즘에 빠졌을 때 극복하는 방법이 있나요?
"감사하게도 인복이 되게 많아요. 뭐 좀 하려고 하면 항상 누군가가 도와주세요. 상황이 급박해져도 꼭 누군가 끌어올려 주시고. 타이틀곡을 '세이비어(savior)'로 정해서 활동하고 있는데, 그 단어가 구세주, 구원자라는 의미잖아요. 제목과 똑같이 제 인생엔 그런 구세주(savior)들이 많아요. 제가 어두운 데로 기어들어가는 구나 싶으면 햇빛을 주듯 케어해주세요. 덕분에 음악을 잘하고 있는 거고요."

- 팬들도 그 중 큰 부분이겠어요. 팬카페가 정말 활발하더라고요.
"맞아요. 저도 깜짝 놀라요. 제가 알기에는 현수막도 만드신 걸로 알고 있고 '루시아의 방'(팬카페 이름) 명함을 찍었더라고요. 이번에 3번째 이벤트로 머그컵을 제작했는데 사실 저는 그걸 하는지도 몰랐어요. 사인해 보내달라고 하셔서 보내드렸더니 그걸로 머그컵을 만드셨더라고요. 적극적이고 추진력도 있어서 제가 따로 묻거나 요청드리지 않아도 '짠!'하고 보여주시는 게 되게 많아요. 굉장히 깜짝 놀라서 고맙다, 감사하다고밖에 할 말이 없죠."

- 꾸준히 활발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대단하시네요.
"그렇죠. 또 저희 팬카페 회원 중 엘리트가 많아요. 이번 머그컵 제작을 홍보할 때도 아이폰 광고를 따라서 재밌게 만들어주셔서 제가 SNS에 올린 적도 있구요, 또 저한테 책이나 시집 같은 걸 보내주시는, 저와 취향이 비슷하신 분도 계세요. 한 번은 절판되어서 도저히 구하지 못한 책이 있었거든요. 근데 그걸 중고서점에서 찾았다면서 선물해주기도 하셨어요. 짠하고 감사하죠."

- 직접 만나본 적은 있고요?
"아뇨, 사실은 작년에 강남역에서 대대적인 정모가 있었는데, 그때 꼭 와달라고 하셨는데 제가 스케줄 때문에 못 갔거든요. 그러니까 페이스 타임이라도 꼭 해야한다고 협박하셔서.(웃음) 결국 동영상을 찍어서 보내드렸어요. '루시아의 방' 운영진이 다 특별한 남자들이에요. 늘 태클 걸고…. 응원과 함께 구박하고. 제가 라디오에 나가서 뭘 읽었는데 오글거려서 들어주기가 힘들었다, 뭐 그런 식으로.(웃음) 항상 가까이에서 공격과 응원을 함께 해주시는 분들이에요. 그래서 커뮤니티 분위기가 굉장히 화기애애하죠.

- 얘기를 들어보면 남성팬분들이 많으신 것 같은데, 정작 루시아 본인은 한 번 라디오에서 '나는 남성팬보다 여성팬이 더 좋다'고 말한 적도 있는데요.(웃음)
"그때는 대답을 꼭 골라야 하는 거라 좀 극단적으로 한 건데, 사실 성별에 어떤 관련이 있진 않아요. 그렇지만 보통 공연을 보러 오고, 음반을 사는 분들은 대부분 여성이세요. 남성분들은 여성분들에 비해서 이쪽 문화 활동을 많이 안 해요. 그런데 저희가 이번에 기뻤던 게, 티켓을 판매하고 성별을 보니까 여자분이 59%, 나머지가 남성분들이었어요. 비슷하잖아요, 비율이. 성별을 아우르는 음악을 들려드릴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실제로 그런 결과를 보니 좋았죠.

- 에피톤 프로젝트 같은 친한 동료 아티스트들도 세이비어(savior) 중 하나겠죠?
"맞아요. 에피톤 프로젝트랑은 물론 친한데, 연락을 하는 건 일 년에 몇 차례밖에 안 돼요. 진짜로요. 문자가 오면 서로 '웬일이래?' 이래요. 그래서 '뭔 일 있어요?' 이렇게 되는 거에요. 제가 이렇게나 무감한데 이런 저를 거둬주시는 분들이 많으신 것 같아요."

- 그렇게 오랜만에 만난 에피톤이나 짙은과 호흡이 잘 맞는데, 비결이 있나요? 연락도 많이 안 한다고 했는데 실제로는 호흡이 환상적이라서 친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거든요. 
"호흡이라…. 저는 에피톤 프로젝트와 작업할 때 100% 곡자의 뜻에 맞춰요. 굳이 제 생각이 뭐냐고 물어보면 대답하는데, 그 외에는 따로 제 생각을 넣지 않는 거죠. 제 생각과 달라도요. 그런데 실제로 나중에 마스터링을 들어보면 그게 옳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다른 뮤지션의 곡을 제가 부르는 것은 그가 만든 옷을 입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상대방의 의견에 따르려고 하고. 그래서 그런 호흡이 존재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고 서로 고집을 부리면 루시아의 것도 아니고 에피톤의 것도 아닌 이상한 곡이 나오거든요. '짙은' 님은 굉장히 즉흥성이 뛰어난 아티스트예요. 그분이 평상시에도 사는 게 자유롭고 멋있거든요. 작업할 때도 자유롭게 해요. 그분이 잘 표현하실 수 있게 제가 물꼬를 트려는 거죠. 그렇게 하면 양자 간에 어려움이 없고, '호흡'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게 나오는 것 같아요."

ⓒ Amabile 231 Studio 이건돈 실장


그녀의 단독공연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들

1월 말에 루시아의 첫 단독 공연이 열린다. 티켓 오픈 5분 만에 전석 매진되었고, 급히 마련한 추가공연의 예매율도 1등이다. 루시아의 단독 공연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 첫 단독공연이 코앞인데요, 소감이 어떤지 궁금해요.
"지금까지는 조금 얼떨떨해요. 무대에 올라갔다 내려와야 정확하게 느낌이나 소감이란 게 생길 거 같아요. 일단은 감사함과 동시에 부담감을 확실히 느껴요. 저는 표가 많이 안 팔리면 어떡하나 걱정을 많이 했는데, 굉장히 빨리 매진되어서 '이만큼 기대해주시는구나' 싶어요. 부담도 되면서,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굉장히 즐거워요. 부담과 감사함, 즐거움이 공존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 이번 공연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부분은 어떤 부분인가요?
"아. 알려드릴 만한 게 없는데.(웃음) 콘서트 이름을 '처음'이라고 지은 것처럼, 이번에는 뭔가 대단한 것보단 첫 공연의 설렘과 풋풋함이 많이 드러날 거예요. 그렇지만 한가지 특별히 노력하는 부분이 있다면 더 좋은 음악을 들려드리려고 한다는 거요. 사실 음반을 녹음할 땐 여러 가지 이퀄라이징 작업과 편집이 들어가다 보니까 깎이고 깎여요. 그러면 생동감이 느껴지는 부분이 날아가는 경우가 많은데, 공연에서는 그걸 드러낼 수 있잖아요. 개인적으로는 공연에 오신 분들이 루시아는 음반보다 공연이 더 좋다고 생각하셨으면 좋겠어서 연습을 많이 하고 있어요."

- 에피톤 프로젝트 공연에 게스트로 많이 참석하면서, '아! 이건 나도 꼭 해야겠다' 혹은 '이런 건 하지 말아야겠다고 느낀 게 있을 것 같아요.
"에피톤 프로젝트의 공연을 따라다니면서 배운 게 진짜 많아요. 왜냐면 에피톤 프로젝트 공연은 인디 신의 공연이라고 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큰 공연장에서 굉장히 많은 관객과 함께하는 공연이라서 클럽 공연이랑은 확연히 다르고요. 기획도 굉장히 섬세하고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더라고요. 그런 부분에서 배운 게 많았어요. '이런 걸 하면 안 되겠다'보단 '이런 걸 나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홀 형식의 큰 무대에서 공연, 게스트가 아니라 단독공연 같은 거요. 그런데 생각보다 기회가 정말 빨리 왔어요."

- 대사 하나까지 철저히 준비하는 뮤지션이 있는 반면 계획없이 돌발 행동도 서슴지 않는 뮤지션도 있잖아요. 스스로 어느 쪽에 속한다고 생각하세요? 지향하는 바가 있다면요?
"준비는 정말 많이 하는데 그대로 한 경우가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저는 그때그때 관객의 반응에 따라서 즉흥적으로 바꾸는 부분이 많아요. 되게 재밌는 얘기를 하려고 했는데 반응이 차분하면 넘어가게 되고, 반대로 서정적인 얘기를 하려고 했는데 반응이 '꺄! 누나!' 이러면 '오 그래, 그래요' 이런 식으로 받아주는 게 많죠.(웃음) 그때그때 관객 분위기와 반응에 따라서 동조되는 것 같아요. 이번에는 어떤 관객들이 자리해주실지 기대를 많이 하고 있어요."

- 콘서트에서 특히 기대하는 부분이 있나요?
"'루시아의 방' 회원들이 많이 오시는 걸로 알고 있어요. 얼굴을 뵌 적이 없는데 저랑 얘기는 많이 하신 분들이 있거든요. 제가 항상 '루시아의 방' 사이트에 사진 좀 보려고 접속하면 '누나, 언니 이리 오세요'라며 바로 채팅창이 떠요. 그러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던 분들이 꽤 돼요. 운영진 중 한 분은 뵌 적이 있는데 한 분은 아직 못뵈었어요. 그래서 어떤 분들이실까 뵙고 싶어요."

- 혹시 게스트가 따로 있는지 궁금해요.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정말 호화롭고 멋진 게스트가 있어요. 게스트진이 너무 호화로워서, 제 첫 단독공연에 모시기에는 부담스러운 분들이에요, 사실. 워낙 인기가 많고 잘 나가는 분들이라 개인적으로 좀 영광이고…. '역시 난 운이 좋아'라고 생각했어요."

ⓒ Amabile 231 Studio 이건돈 실장


도전의 선택지 앞에서

그녀에 대한 놀라운 점 중 하나는 어떤 성취가 있을 때마다 다음 성취에 대한 공약을 내놓는 가수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지금까지 모든 공약을 지켰다. 단독공연은 그녀에게 또 다른 성취가 될 것이다. 다음 공약이 궁금했다.

- 조금 이른 것 같긴 하지만, 다음 앨범에 대한 생각을 꾸준히 했을 것 같아요. 혹시 1집과 2집에서 인기를 누렸던 곡이 다음 앨범에 영향을 미칠까요?
"만약 제가 록 앨범을 내놓으면 지금까지 제 음악을 좋아한 분들에게 더할 수 없는 배신이고 실망의 느낌을 드리겠죠. 그렇지만 제 정체성을 보여 드리면서도 새로운 매력을 보여 드리고 싶은 것도 사실이에요. 그래서 현재 저의 팬들과, 지금 제 노래가 슬프고 처진다며 좋아하지 않는 분들, 그러니까 신나는 곡을 좋아하시는 분들까지 아우를 수 있는 중간점을 찾으려고 애쓰고 있어요. 사실 이번에 새로 나온 '데칼코마니(Decalcomanie)'도 그런 면에서 굉장히 고민을 많이 한 결과물이에요. 점차 제 표현의 범위를 창문을 열어가는 것과 같이 넓히는 걸 목표로 할 거고요, 급작스러운 변화는 없을 것 같아요. 사실 앨범을 낼 때는 고려해야 할 것이 많아요. 레이블 환경, 시장성에 맞는지도 생각해야 되고 레이블의 조언도 들어봐야 하고요.

- 공약을 실제로 지키는 모습을 보여주잖아요. 첫 정규 앨범에서는 "다음 앨범부터 조금씩 자작곡을 늘려갈 것"이라고 말했고 실제로 두번째 앨범에서는 전곡을 작사, 작곡했어요. 앨범을 내고는 '왕성한 활동'을 하고 싶다고 했고, 실제로 그랬고요. 그러면 이제 다음 목표를 세울 때인 것 같은데. 앞으로의 도전은 어떤 건가요?
"벌써요?(웃음) 우선은 계획하고 있고 욕심나는 것이 굉장히 많아요. 일단은 작사, 작곡뿐만 아니라 좀 더 다양한 도구를 이용해서 작업하기를 기대하고 있어요. 또 음악 외적인 활동도 많이 하고자 고민하고 있구요. 글을 쓴다거나 하는 것이요. 특히 개인적으로 욕심 내는 게 있는데요. 제가 영향을 많이 받은 작가들, 실제로 만난 적은 없지만 예술의 길에서 저를 이끌어주시는 존경하는 작가들이 많이 있어요. 그런 분들의 작품에 대한 헌사를 노래하고 싶기도 해요. 그런 식으로 작업해놓은 것도 꽤 있어요.

- 기대되네요. 버지니아 울프와 드뷔시에게 헌사하는 곡들이 나오는 거네요.
"네. 헌사 음반이 만들어지면 좋겠는데, 굳이 그걸 대놓고 만들지 않아고 일단 발매하면 제가 나중에 설명할 수 있으니까…. 이것들이 계속 밖으로 나와야지 그렇지 않으면 제 안에서 다작한 것들이 다 썩어버려서 다른 작업을 하기가 어려워요. 그래서 이거를 아이라고 치면 얼른 낳아버리고 싶고. (다같이 웃음) 뭔가 나쁘게 표현하면 빨리 뱉어버리고 싶고."

미완성 이야기의 스토리텔러에 대한 기대

루시아의 단독 공연을 기대한다. 따뜻한 공기와, 성실하고 친절한 아티스트와, 자극받길 원했던 감성을 정확하게 찔러주는 노래가 있는 '공감각적 즐거움'의 공간일 것이다.

사실 루시아의 노래를 '감성노래', 혹은 그녀를 '감성 보컬'로 한정하는 것은 충분한 표현이 아니다. 그녀의 노래는 감성으로 꼭꼭 채운 노래가 아니라 즐거웠다가, 낯설다가, 분노하기도 하는 우리의 '감정에 관한 이야기'이고 그녀는 미완성 이야기의 스토리텔러에 가깝다. 마음속에서 노래의 여백을 완성할 때 가슴에 감동의 불씨, 마음에 물기가 어린다.

루시아는 본인을 오버와 인디 사이 어딘가에서 부유하는 '애매한 위치'라고 정의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녀의 음악이 많은 사람을 겨냥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위로의 손길은 개인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의 빗나간 표현일 수 있다. 그것은 애매하다기보다 단순한 위로가 아닌 소통을 추구하는 그녀의 기질이다.

성장해가는 아티스트답게 그녀는 중간자적 위치에 서 있다. 그러나 그것을 스스로의 핸디캡으로 만들 필요는 없다. 감동을 주는 음악을 찾는 대중의 취향은 조금씩 변하고, 감동적인 것을 뽑아내려는 창작자의 기질도 달라지고 있지만 아직 어떤 모범답안도 없다. 답은 스스로에게 있다. 자신이 추구하는 아름다움과 소통에 대한 고민을 정체성에 반영할 때다. 루시아가 좀 더 '루시아'를 보여줄 때 증발하던 감정도 다시 불러내릴 수 있을 정도로 우리의 마음 속 지층을 어루만지는, 다른 누구로도 대체할 수 없는 아티스트를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보노플로우(Bonoflow)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루시아 LUCIA 심규선 파스텔뮤직 보노플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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