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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에 대한 사회적 비판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높은 가운데 <오마이뉴스>는 최근 유통업계 1위인 신세계 이마트의 인사·노무 관련 내부 자료를 입수했다.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사기업이라는 이유만으로는 사회적으로 용납되기 힘든 수준이었다. 문제는 이것이 이마트만의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기업이든 공기업이든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은 보장돼야 한다. <오마이뉴스>는 이런 문제의식으로 집중기획 '헌법 위의 이마트'를 연속 보도한다. [편집자말]


민주노총이 발행한 '노동자 권리찾기 안내수첩'. 가로 8.5㎝ 세로 12.8㎝ 짜리 작은 수첩으로 인해 2011년 9월 7~8일 이마트 구미점은 발칵 뒤집힌다.
 민주노총이 발행한 '노동자 권리찾기 안내수첩'. 가로 8.5㎝ 세로 12.8㎝ 짜리 작은 수첩으로 인해 2011년 9월 7~8일 이마트 구미점은 발칵 뒤집힌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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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9월 7~8일 이틀 동안 이마트 경북 구미점에서 일어난 소동을 보면 신세계 그룹 이마트의 노조에 대한 거부감이 정상을 훨씬 넘어선 수준임을 보여준다.

2011년 9월 7일 오후 2시 40분 이마트 구미점 고객서비스 2팀장이 사무실로 왔을 때 책상 위에 '노동자 권리찾기'라는 제목의 작은 수첩이 놓여 있었다. 민주노총에서 비정규직을 대상으로 노조 가입을 독려하기 위해 만든 홍보물이었다. 가로 8.5㎝ 세로 12.8㎝ 짜리 작은 수첩으로 인해 이마트 구미점은 발칵 뒤집혔다.

고객서비스 2팀장 책상이 있는 사무실은 여러명이 같이 쓰는 공간이었고, 추석 행사를 앞두고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었다. 과연 누가 놓고 갔을까? '범인 색출 작전'이 시작됐다.

<오마이뉴스>가 확보한 이마트 내부 자료 '구미점 안내수첩 발견 상황일지'에는 당시 이마트가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가 거의 실시간으로 나와 있다.
ⓒ 고정미

2011년 9월 7~8일 이마트 구미점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나

수첩 발견 즉시 가장 먼저 1층과 2층 매장은 물론 캐셔 대기실, 직원 휴게실, 락커, 화장실 및 후방 시설까지 모두 뒤졌다. 수첩은 더 나오지 않았다. 오후 4시 33분 구미점 지원팀장은 본사 기업문화팀(노무 담당)의 권역담당자에게 보고했고, 오후 5시 57분 권역담당자가 구미점으로 들어왔다.

권역담당자는 점장과 지원팀장, 고객서비스 2팀장을 시작으로 사원 면담을 시작했다. 사무실 근무자를 중심으로 진행된 이날 면담은 다음날 오전 1시 30분까지 이어졌다.

한편, 이마트는 오후 8시 시스템기획팀에 수첩이 발견된 전후 시간대에 고객서비스 2팀 컴퓨터 사용자 로그인 기록 확인을 요청했다. 오후 10시에는 지원팀장이 사무실 주변의 CCTV까지 확인했다.

다음날인 8일 권역담당자는 오전 8시 30분부터 직원 면담을 시작했다. 면담 대상은 오후 1시 25분 본사 기업문화팀 직원 두 명이 구미점에 더 내려오면서 사원급으로까지 확대됐다. 다른 차원에서는 추석 단기 협력사원 71명과 판매용역 사원 170명, 장기 협력사원 406명 등 전체 협력사원 총 647명에 대해 민주노총 가입 여부 확인 작업을 했다.

협력사원 647명 민노총 가입 여부 확인... 전국 지점에 '비상 상황' 전달

2011년 9월 8일 오후 1시9분 이마트 본사 인사담당기업문화팀 직원이 "상무님께서 담당 및 점장님들께 보내신 내용"이라며 보낸 이메일.
 2011년 9월 8일 오후 1시9분 이마트 본사 인사담당기업문화팀 직원이 "상무님께서 담당 및 점장님들께 보내신 내용"이라며 보낸 이메일.
ⓒ 고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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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날 오후 1시 9분 이마트 본사 인사담당기업문화팀 상무는 전국 지점 점장들에게 이메일을 통해 구미점의 상황을 알리고 각 점포의 자체적인 점검 강화를 대외비로 진행하라고 지시했다. 상무는 ▲ 1차로 통합사무실에는 최소 1명 이상의 직영 사원이 상주토록 하고 ▲ 2차로 사원 락커, 휴게실, 흡연실, 직원화장실 등 취약지역 순찰을 강화하고 ▲ 팀장 및 리더급 사원들에게 점포 사원(직영 및 협력사원)에 대한 동향 관리를 철저히하라고 지시했다.

다시 구미점 상황으로 돌아와서, 오후 3시 지원팀장이 CCTV를 재확인했지만 소득이 별로 없었다. CCTV와 사무실 입구까지 거리(45m)가 멀어 출입자 인상착의 확인이 불가능했고, 추석 행사 관계로 많은 인원이 드나들어 정확한 출입자를 확인하기 곤란했기 때문이다. 또 시스템기획팀에 의뢰했던 로그인 기록 조회도 기록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결국 이틀간 이 잡듯이 뒤졌음에도 불구하고 고객서비스 2팀장 책상 위에 수첩을 놓고간 '범인'은 찾지 못했다.

기업문화팀의 보고 "관련자는 단기 협력사원일 가능성... 퇴점 관리 진행돼야"

2011년 9월 8일 작성된 '민주노총 노동자 권리찾기 안내수첩 발견'이라는 제목의 이마트 내부 문건. 조사를 진행한 기업문화팀의 결과 보고 성격인 이 문건에서 기업문화팀은 "관련자는 최근 행사 시 입점한 단기 협력사원(71명)일 가능성이 높다"면서 이들에 대한 밀착관리와 퇴점을 건의했다.
 2011년 9월 8일 작성된 '민주노총 노동자 권리찾기 안내수첩 발견'이라는 제목의 이마트 내부 문건. 조사를 진행한 기업문화팀의 결과 보고 성격인 이 문건에서 기업문화팀은 "관련자는 최근 행사 시 입점한 단기 협력사원(71명)일 가능성이 높다"면서 이들에 대한 밀착관리와 퇴점을 건의했다.
ⓒ 고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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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은 이렇게 한바탕 소동으로 끝났을까? 또다른 이마트 내부 자료에 따르면, 조사를 진행한 기업문화팀은 "배포자로 추정되는 인력을 파악하지는 못한 상태"라면서도 "금번 수첩이 기존 민주노총에서 제작된 수첩을 금년 2월에 개정한 수첩이라는 점과, 금번 사건 이전에 동일한 수첩이 발견되지 않았던 점으로 미루어 볼 때, 관련자는 최근 행사 시 입점한 단기 협력사원(71명)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됨"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그러면서 "배포자로 추정되는 추석 단기 협력사원에 대한 밀착관리와 더불어 퇴점 관리가 진행되어야 할 것으로 판단됨"이라고 말했다.

직영 사원이나 장기 협력사원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힘이 없는 단기 협력사원 중 배포자가  있을 가능성이 높으므로, 이들을 정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이 건의대로 진행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왜 이러는 걸까? 단지 홍보 수첩 하나일 뿐인데, 왜 이리 난리를 치는 걸까? 노조의 결성과 가입, 홍보 활동 등은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 중 하나이다. 책상 위에 노조 홍보물이 놓이는 것은, 자장면집 홍보물이 놓여있는 것과 같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것이 이렇게까지 해서라도 막아야 하는, 전염병과 같은 것일까?

구미점의 수첩 사건을 둘러싼 이마트 내부 자료들은 무노조 정책을 위해 이마트 내부에서 어떤 비정상적인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되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권영국 변호사는 "민노총의 노동자 권리찾기 안내수첩은 헌법 제33조 1항 단결권과 노조법 제5조(노동조합의 조직·가입)에 따른 합법적인 홍보 활동"이라며 "이를 조사하는 행위는 중대한 부당노동행위"라고 말했다.


태그:#이마트, #헌법 위의 이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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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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