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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뉴스 누구도 믿을 수 없는 '라이어 게임', 정직한 그녀의 선택은?

작년 저와, 우리 학교 2학년 260여 명의 아이들은 모두 약 68시간의 문학 수업을 가졌습니다. 그시간 동안 우리는 두 권의 문학 교과서에 있는 세 개의 대단원과 여덟 개의 중단원을 만났습니다. 문학 작품 수는 약 30편 정도 됩니다. 산술적으로 따져 보면 두 시간에 한 작품 꼴로 만난 셈입니다. 어찌보면 적지 않은 분량입니다. 저는 학년 초에 수업의 전체 밑그림을 그리면서 그 정도 분량이면 문학 수업이 나름대로 충실해지라 생각했습니다.

 학년 교과 문집 <어깨동무>의 표지 그림. 우리 학년의 최 모 학생이 그려준 그림으로, 일종의 재능 기부를 한 것이다. 그림 내용을 잘 살펴보면, 각 요소들에 글쓰기나 학교 생활과 관련된 함축적인 의미가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 정은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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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결정적인 무언가가 빠진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과연 아이들이 학년 말 즈음에 올해 문학 수업이 정말 알찼다고 생각할까? 나아가 그 문학 공부가 자신과 현실을 살피는 데 어떤 조그만 계기를 마련해 줄 수 있을까? 그런 고민 속에서 아이들이 자신만의 눈으로 문학 작품을 보고, 생활에서 겪고 느낀 바를 솔직하게 글로 옮겨보는 일이 무척 중요하다는 '당연한'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를 위해 저는 아이들이 직접적인 활동을 통해 문학(작품)을 익힐 수 있는, 일명 '활습(活習)' 활동을 떠올렸습니다. 문학 작품을 스스로 이해함으로써 그 이해의 깊이를 깊게 하자는 것이지요. 그렇게 해서 모두 열세 가지의 '활습' 활동이 결정되었습니다. 1학기에 한 어깨동무 글쓰기와 시 만화 그리기, 2학기에 만난 개화 가사 형식의 노래 짓기와 시화 그리기 등이 머릿속에 그려집니다.

'활습' 활동이 가져온 변화는 적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아이들은 문학 작품을 스스로 이해하려는 몸짓을 내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아무리 권하고 요청해도 잘 나오지 않던 질문이 아이들 입에서 자연스럽게 튀어나왔습니다. 아이들에게는 교사가 차려주는 문학 밥상이 필요없었습니다. 아이들은 혼자, 혹은 서로 어우러져 밥과 반찬이 풍성한 문학 밥상을 차려 먹으며 그 68시간의 수업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학년 말에 그 결과물을 책자로 묶어 교과 문집을 펴냈습니다. 제목은 <어깨동무>. 1학기 때 수행 평가의 핵심이었던 <어깨동무 글쓰기>의 글 520여 편과, 2학기 수업 중 활습 활동의 하나였던 '시화 그리기'의 시화 작품 86편을 묶은 것입니다.

글 520여 편과, '시화 그리기'의 시화 작품 86편 묶어

 '어깨동무 글쓰기' 공책 표지 사진. 학년 초인 3월에 각 반에 한 권씩 나눠 주었다. 아이들이 '천천히 글쓰기'의 오묘한(?) 맛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도록 준비한 공책이다.
ⓒ 정은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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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본 예산이 없어서 발간하기까지 몇 고비의 난관이 있었습니다. 예산 문제는 학기 말에 추경 신청을 해서 해결했습니다. 편집해보니 <어깨동무>의 본문 면수는 총 474면(찾아보기 포함)이었습니다. 머리말과 기타 속지용 사진까지 합하나 480면 정도 되더군요. 그렇게 해서 학생들과 동료 교사들 모두에게 한 권식 들려주기 위해 모두 330부를 찍었습니다. 예산 280만 원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권 당 8000원 정도 든 셈입니다. 한 면으로 셈하면 1.75원꼴이구요. 아무튼 그 모든 비용은,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자신의 글이 실린 책을 한 권 갖게 되는 기쁨이나 보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책이 나온 후 교과 선생님들께 책을 돌리던 중에, 선배 교사 한 분과 생활글 쓰기의 가치와 의의에 대해 잠깐 대화를 나눴습니다. 요새같은 세상에 아이들이 각자의 소소한 일상을 돌아보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요. 밤까지 이어지는 꽉 짜인 학교 일정 그리고 성적과 대입시에 대한 중압감으로 아이들은 갈수록 생각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려 하지 않습니다.

몇 년 째 학급 문집 제작을 위해 날적이 돌려 쓰기 활동을 해오고 있습니다. '초등 이후 처음으로 일기 써 본다'는 식으로 말을 하는 아이들이, 올해처럼 많은 해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아이들은 (어깨동무 글쓰기나 날적이와 같은) 글쓰기 마당이 마련되자 가슴에 꼭꼭 담겨 두었던 이런저런 경험과 생각과 느낌을 쏟아냈습니다. 요새 애들은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이 교사나 어른들의 편견에서 비롯된 것임을 다시 한번 확신을 갖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깨동무 글쓰기' 공책에 실린 한 아이의 글. 모든 글에 논평을 해 주는 식으로 피드백 과정을 거쳤다. 논평은, 아이들과 자연스럽게 교감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수단이다.
ⓒ 정은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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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에서 <어깨동무 글쓰기>와 시화 그리기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대개 우리는 글을 쓴다는 것을 지극히 사적인 행위로만 인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진정한 글쓰기가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과 세상을 따뜻하게 돌아보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믿습니다. 어깨동무 글쓰기는 그런 맥락에서 행해진 활습 활동이었습니다.

이 기획의 최초 아이디어는 아주 단순한 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요새 아이들이 대체로 글을 안 쓰니 어떻게 해서든 글을 쓰게 하자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실상 요새 아이들의 오감은 온통 갖가지 현란한 첨단 소통의 도구에 점령당한 지 오래입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시청각에 치우진 텍스트(text) 소비는 아이들의 균형 있는 감각 능력 형성에 장애가 될 때가 많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애초 온라인 카페 게시판에 글을 쓰게 하기로 계획했다가 연필이나 볼펜을 손에 쥐고 공책에 직접 글을 쓰게 하는 식으로 바꾼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처음에는 많은 학생이 쭈뼛거렸습니다. 자신이 쓴 글이 반 친구들 전체에게 지속적으로 공개되는 것에 부담이 적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제 취지를 십분 이해한 아이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들의 손끝에서 가슴에 꼭꼭 숨겨 두었던 내밀한 얘기들, 이 어두운 세상을 향한 함성 소리가 거침없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때부터 아이들이 쓴 글의 색깔은 확연히 달라졌습니다.

글을 통해 만난 우리는 모두 힘들어하고 있었습니다. 성적과 대학 진학의 압박 때문에 허덕이고 있었습니다. 꿈이 없어서 좌절하고 있었습니다. 꿈이 있어도 그것을 인정해주지 않는 주변의 시선에 지레 주눅 들기도 했습니다. 요새 아이들은 도대체 생각하려 들지 않는다는 말은 어디서 비롯됐을까요? 우리는 정말 많이 생각하고 싶지만 생각을 하지 않도록 하는 현실에 절망하고 분노했습니다. '생각'이라는 단어를 제목으로 하는 글만도 무려 아홉 편이나 있는 것이 그 방증이죠.

하지만 우리는 그런 절망 속에서도 모두가 꿈과 희망과 의지를 잃지 않으려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차분하고 진지하게 자신을 성찰하는 모습을 보고 격려의 박수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주변 친구와 사회를 거듭 살피면서 관계 맺기의 소중함을 깨달은 친구의 글을 읽으면서 공감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우리 자신과 친구와 세상의 소중함을 조금씩 알아갔습니다.

저는 매일 읽는 글을 통해 그렇게 성장하고 성숙해가는 아이들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하루하루 여덟 편의 글을 읽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200자 원고지 50여장에 이르는 글을 매일같이 읽으면서, 띄어쓰기나 맞춤법과 관련하여 첨삭을 해주고 간단하나마 일일이 논평을 달아주는 데에는 상당한 손품과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진솔한 생활글이 주는 잔잔한 감동의 힘으로 그 모든 힘든 순간을 거뜬히 넘겼습니다.

어깨동무 글쓰기는, 아이들이 무언가를 쓰는 행위가 그 자체만으로도 많은 의의가 있는 교육 활동임을 새삼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한 학기 동안 각자 두 번씩밖에 글을 쓰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두 번의 글쓰기만으로도 우리가 우리 자신의 생각 타래를 좀더 풍성하게 하고 삶을 차분하게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고 자부합니다. 평소 가만히 앉아 교사의 말을 듣기만 하던 아이들에게는 분명 낯설지만 의미 있는 경험이 되었으리라 확신합니다.

한 민족의 역사는 그 구성원의 기억이나 책과 같은 문자 기록으로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한 학교나 학생의 역사 또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 가공할 입시 공화국 대한민국에서 학교나 학생의 역사는 별다른 의미를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성적이나 진학과 무관하다는 어리석은 생각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삶을 기억하지 않고 그 역사를 기록하지 않는 학교와 학생에게 미래가 있을까요?

우리 문집, 글 잘 쓰는 한 두 학생이 아니라 모든 학생의 글을 담고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 문집이 글 잘 쓰는 한 두 학생이 아니라 모든 학생의 글을 담고 있다는 점은 가장 큰 자랑거리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망각의 뒤안길로 사라질 뻔한 261개의 역사가 이 한 권의 책으로 살아남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실린 261편의 글이, 언젠가는 2012년의 대한민국 전라북도 군산시 중앙로2가동 군산영광여고 2학년 아이들의 소소한 역사를 생생하게 증언해 주리라 믿습니다.

다음은 시화 그리기입니다. 시화 그리기는 모두 여섯 번에 걸쳐 행했던 2학기 활습 활동의 하나였습니다. 구체적으로 2~4명이 한 모둠이 되어 일제 강점기와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는 시를 한 편 골라 그 내용과 의미에 맞게 시화로 표현하는 활동이었습니다.

시화 그리기는 전통적인 문학 교육 방법의 하나로 그 효과가 적지 않은 활동입니다. 하지만 대학 입시를 위한 문제풀이 위주의 수업에 밀려 그 존재감이 미미해진 지 오래입니다. 이는 시화 그리기가 가지고 있는 장점이나 효과를 생각하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시화 그리기는 그 무엇보다 아이들이 스스로 시 작품을 감상하고 이해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게 해 줍니다. 시화를 완성하려면 우선 시상(詩想)의 흐름과 맥을 짚어가면서 작품이 담고 있는 독특한 분위기를 느껴야 합니다. 그 분위기와 내용에 어울리는 그림 구도나 색조, 시 본문의 배치 방식 등도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자기 주도적이고 자발적인 작품 수용 과정이 꼭 필요한 활동인 것입니다.

 '시화 그리기' 활습 활동을 통해 나온 결과물 중의 한 편. 2학년 4반에서 나오 작품인데, 이 반에서 가장 호평을 받은 것이다.
ⓒ 정은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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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둠별로 완성한 작품을 스캐너로 사진화한 후, 그것을 TV 모니터를 통해 보면서 함께 감상하기로 했습니다. 이를 위해 각 반별로 한 시간 정도를 할애해 시화 발표 시간을 가졌습니다. 발표가 끝난 후에는 질의 응답을 통해 미진한 점을 보충하기도 했습니다.

발표 준비를 할 때에는 아이들이 발표 시간에 단 한 사람도 소외되지 않도록 발표 내용을 분담해서 했습니다. 그래서 시화를 구성하기 위해 서로 협의한 과정, 모둠원 간의 역할 분담 내용, 시화 소개 및 설명 등의 발표 소주제를 한 사람이 하나씩 맡아 준비했죠. 그렇게 해서 우리 모두 눈과 귀가 즐거운 한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세계적인 교육학자인 파울루 프레이리(Paulo Freire, 1921~1977)는 그 유명한 <페다고지[원제 'Pedagogy of th Oppressed(피억압자를 위한 교육학)]에서 '은행 저금식 교육'에 대해 언급한 바 있습니다. 은행 저금식 교육에서는 교사와 학생이 각각 설명하는 주체와, 인내심을 갖고 그 설명을 듣는 객체로 분리됩니다. 교사는 일방적으로 주입하고 학생은 그저 받아들이는 것도 이 교육의 특징이죠. 이는 교사가 예탁자가 되어 학생이라는 보관소에 지식을 예금하는 행위와 흡사합니다. 은행 저금식 교육이라는 이름이 붙은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은행 저금식 교육에서 교사는 가르치기만 하고 학생은 배우기만 합니다. 교사는 모든 것을 알고 있고 아이들은 아무것도 모릅니다. 생각의 주체는 교사가 되고, 아이들은 생각의 대상에 머무릅니다. 당연히 교사는 끊임없이 말해야 하고 아이들은 얌전히 들어야 합니다. 수업은 그렇게 일방향으로만 흘러가죠. 교사의 가르침이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아이들에게서 과부하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입니다.

그런데도 지금 이 땅의 많은 이는 교사가 학생을 무언가로 끊임없이 채워주는 게 교육이나 수업의 전부인 듯이 말합니다. 학생은 그저 얌전히 듣는 게 미덕인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많은 교사와 학생이 더 많은 지식이나 더 가치 있고 수준 높은 정보에 목을 매는 까닭입니다. 그것들이 학생의 내면에 어떻게 작용하고 자신의 삶을 살피는 데 어떤 도움을 주는지는 관심이 없습니다. 교사는 지식 결핍 증후군에 빠진 환자에게 영양제를 주듯이 학생에게 그저 주입하기에 바쁘고, 학생은 그것을 받아먹기에 급급합니다.

지식 자체가 중시되는 사회에서는 이런 방식이 나름대로 의미가 없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가오는 미래 사회에서는 지식 자체가 아니라 그것과 관계를 맺고 이를 통해 자신과 세상을 살피는 일이 더 중요합니다. 세계의 교육 선진국들이 아이들의 단순한 지식 이해력보다 공감력이나 사회적 상호 작용 능력 등을 미래 인재의 핵심 역량으로 보고 이를 기르는 데 많은 힘을 쏟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지식의 전달만으로는 학생의 내면이 고양되거나 삶을 돌아보는 능력이 커지지 않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다른 누구보다 교사 자신이 잘 알고 있습니다. 실상 학생이 원하는 것처럼 보여 교사가 무언가로 학생을 채워주려고 할 때, 아이들은 오히려 그것을 '거울 반사'할 때가 더 많지 않은지요. 그렇게 뻗대는 아이들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

'교육은 조각'이라는 교육관 찬찬히 음미해

최근에 한 책에서 읽은 '교육은 조각'이라는 교육관을 찬찬히 음미해 봅니다. 교사에게는 그것이 교육 철학이 되었든 방법론이 되었든 자신만의 날카로운 끌이 필요합니다. 교사는 그것으로 학생의 머리와 가슴에 더덕더덕 붙어 있는 불신과 편견, 교만과 냉소의 껍데기를 벗겨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학생 스스로 자신의 참된 알맹이를 드러낼 수 있도록 옆에서 지켜보고 이끌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자신에게 무언가가 부족하다고 스스로 느낄 때 비로소 그 빈 곳을 채울 수 있는 의지와 역량을 발휘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이들을 온전히 믿는 교사의 마음 바탕이 필요합니다. 아이들을 참고 기다릴 줄 아는 교사의 느긋한 태도가 필요합니다. 그러한 바탕 위에서 교사는 자신이 갖고 있는 오래 묵은 편견과 지식의 완고함을 덜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뺄셈의 가르침을 행할 때에 아이들은 스스로 그 자신의 가슴과 머리를 채워가는 덧셈의 배움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이 소박한 문집이 그와 같은 역설의 진리를 새로이 깨닫는 계기가 되었음을 다시 한번 힘주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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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되고 싶은 사람. 아이들 가르치면서, 책 읽고 글 쓰며 삽니다. <한글 이야기>, <국문 서사체의 문체론>, <국어와 문학 텍스트의 문체 연구>, <시 공부의 모든 것> 등을 펴냈습니다.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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