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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르디가 지은 만화책
 타르디가 지은 만화책
ⓒ 한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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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유명 만화가 자크 타르디 (Jacques Tardi, 66세)가 지난 1월 초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거절해 화제가 되고 있다. 1월 3일자 <리베라시옹>을 통해 타르디는 훈장 거절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사고와 창조의 자유를 무엇보다 중요시 여기는 본인은 현 정권이든 어떤 종류의 정권으로부터든 아무것도 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이 훈장을 강력하게 거절한다."

<아델 블랑 섹의 특이한 모험> 시리즈와 <망할 놈의 전쟁> 등 제 1, 2차 세계 대전을 주소재로 다룬 작가인 타르디는 아나키스트 (무정부주의자)인 자신이 어떻게 국가가 주는 훈장을 받을 수 있냐고 되물었다.

국가에 현저한 공헌을 세운 군인과 일반인들에게 십자가 메달을 수여하는 레지옹 도뇌르(legion d'honneur, 명예 군단이라는 뜻)는 1802년에 나폴레옹에 의해 만들어진 상으로 프랑스에서 가장 명예로운 훈장으로 알려져 있다. 연초와 부활절, 7월 14일 프랑스 혁명일 등 1년에 3회 수여되는 레지옹 도뇌르는 본인이 원하지 않을 시에는 수상을 거부할 수 있다.

'레지옹 도뇌르' 훈장 거부한 지식인들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거부한 사람은 타르디만이 아니다. 지금까지 상당수의 지식인, 연예인 등이 이 훈장을 거부했는데 그 이유도 다양하다.

19세기의 인물 중에서 화가 구스타브 쿠르베(Gustave Courbet), 음악가 모리스 라벨(Maurice Ravel), 베를리오즈(Berlioz), 작가 모파상(Maupassant), 조르즈 상드(George Sand) 등이 이 훈장을 거부했다.

베를리오즈는 당시 국가가 자신의 레퀴엠(진혼곡)을 연미사에 이용할 경우 3000프랑을 지불하겠다고 했다가 입장을 바꾸는 대신에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주겠다고 하자 다음과 같이 소리쳤다

"훈장은 무슨 빌어먹을 훈장, 약속한 내 돈이나 주시오."

또한 파리 코뮨 당시에 열렬한 당원으로 활약했던 쿠르베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 나이 50, 항상 자유롭게 살아왔다. 이런 자유로운 삶으로 내 삶을 마감할 수 있도록 해주시오. 내 사후에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할 수 있도록. 이 자는 어떤 유파에도, 어떤 교회에도, 어떤 기관에도, 어떤 아카데미에도, 특히 어떤 제도에도 속하지 않았던 자이다. 그가 유일하게 속했던 것은 자유였다."

모리스 라벨의 훈장 거절 소식을 들은 에릭 사티(Erik Satie)는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다.

"라벨이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거절했지만 그가 작곡한 모든 음악이 그것을 인정하고 있다."

'rue89'에 실린 '레지옹 도뇌르 훈장' 관련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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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에 들어서면서 피에르, 마리 퀴리를 선두로 화가 모네, 작가 베르나노스, 사르트르, 시몬느 보부와르, 카뮈, 시인 프레베르, 에메 세제르 등이 레지옹 도뇌르 거절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놓았다. 사르트르와 카뮈는 이 훈장을 우습게 생각했는데 사르트르는 나중에 노벨 문학상까지 거부한 바 있다.

1949년에 작가 마르셀 에메 (Marcel Ayme)의 레지옹 도뇌르 훈장 거절 답변은 유명하다.

" (…) 이렇게 만인이 원하는 혜택을 거절한 자의 명단에 들지 않기 위해서, 이렇게 거절하기까지 상당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점을 명시한다. 아울러 훈장 수여자들에게는 이 훈장을 엘리제궁에 있는 그들의 엉덩이 속에 깊숙이 넣어 사라지게 하면서 기쁨을 느끼라고 부탁하고 싶다." 

1997년에 작가 베르나르 클라벨 (Bernard Clavel)도 훈장 거절자의 명단에 이름을 올려 놓기를 원했는데 그는 "자신의 삼촌인 샤를르 클라벨 (Charles Clavel)이 1차 대전 당시 국가를 위해 엄청난 피를 흘린 이유로 이 훈장을 받았는데  (중요한 일을 하지 않은 자신이) 같은 훈장을 받는다면 삼촌이 무덤에서 돌아누울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공산주의 사상을 갖고 있었던 작가 아라공 (Aragon)이 이 훈장을 거절했을 때 아라공을 좋아하지 않았던 아나키스트 성향을 가진 시인 프레베르의 답변도 유명하다.

"그가 그것을 거절한 것은 아주 잘 한 일이다. 그러나 그가 그것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아나키스트 성향을 가진 프랑스의 유명 가수 조르즈 부라상 (Georges Brassens)도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비웃는 노래를 지었고, 또 다른 아나키스트 가수 레오 페레 (Leo Ferre)도 훈장과 같이 곁들여지는 빨강 리본을 "불행하고 수치의 색인 빨간 리본"이라고 비웃기도 했다.

CFDT(프랑스 노동 자유연합)의 사무총장이었던 에드몽 메르 (Edmond Maire)는 "명예가 있고 없는 것을 국가가 결정할 일이 아니다"라며 이 훈장을 거절하기도 했다.

연예인 중에서는 여배우 클로디아 카르디날 (Claudia Cardinale), 여가수 밀렌 파머 (Mylene Farmer) 등이 이 상을 거절했고 브리지뜨 바르도(Brigitte Bardot)는 1985년에 수상을 승락했으나 메달을 찾으러 가는 것은 거절했고 캬트린느 드되브(Catherine Deneuve)는 처음에 거절했다가 결국 2009년에 수상을 승락하기도 했다. 프랑스 누벨 바그의 중요 인사 장-뤽 고다르 (Jean-Luc Godard) 감독도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로 훈장을 거절한 바 있다.

"나는 아무런 자격이 없는 사람이고 누구로부터 뭔가를 강제로 받을 이유가 없다."

2009년에 <르몽드> 기자 프랑소와즈 프레소즈 (Francoise Fressoz)와 라디오 <프랑스 엥포>의 기자 마리-에브 말루인 (Marie-Eve Malouines)도 많은 언론인들이 선망해마지 않는 이 훈장을 거절하면서 언론계를 놀라게 했다. 그들의 이유는 명확했다.

"여지껏 내 직업 생활을 영위하면서 특별히 이 훈장을 받을 만한 일을 한 적이 없다. 더욱이 정치 기자가 자유롭게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모든 종류의 명예를 멀리 하는게 좋다고 생각한다."

정부에 항의 표시로 훈장 거절하기도

2009년 1월, 수학자 미셀 오뎅 (Michelle Audin)은 1957년에 수학자였던 부친 모리스 오뎅 (Maurice Audin)이 25세의 젊은 나이로 알제리에서 살해된 사실에 대해 해명해달라고 사르코지 당시 대통령에 공개서신을 보냈지만 답이 없자 레지옹 도뇌르를 거절했다.

2012년 7월, INSERM (건강과 의학연구 국립 연구소) 소장 아니 테보-모니 (Annie Thebaud-Mony)는 노동건강과 기업의 중죄를 처벌하지 않는 국가를 고소하기 위해 레지옹 도뇌르를 거부하기도 했다.

해마다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여받는 이는 3500여명이며, 그 가운데 2200명이 시민, 1300명이 군인이다. 2011년까지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은 이들은 총 9만3천명이며, 이 숫자는 15년간 유지되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이 숫자가 12만5천명을 넘지 않도록 규제하고 있다. 올 1월 레지옹 도뇌르 수여자는 681명이다.


태그:#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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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 자유기고가, 시네아스트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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