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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다. 뼈를 깎는 각오와 성찰을 국민 앞에 보여줘도 시원치 않을 검찰이, 차기 검찰총장 인선문제로 잡음을 겪고 있다. 대선 후보시절 많은 국민들 앞에서 그토록 굳게 약속했던 검찰 개혁이 벌써 흰소리가 된 모양새다. 검찰 개혁의 진정성이 의심스러운 이유다.

특히 대선 직전까지 정수장학회 문제만 나오면 한 표가 아쉬웠던 터라 그랬던지, 말과 태도를 어정쩡하게 또는 미온적으로 취해왔던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 당선인이 되자마자 검찰의 태도가 수상해졌다. 대세에 편승하기라도 하려는 듯, 정수장학회 측에 유리한 판단을 내리고 있고 보수신문은 이를 부추기는 양태를 보이고 있다.

지난 5년, 이명박 정권 하에서 검찰에게는 늘 '정치 검찰'이라는 오명이 따라 다녔다. 검찰총장 후보자가 스폰서 의혹으로 낙마했고, 그랜저 검사, 벤츠 검사, 성추문 검사가 나왔는가 하면 정권 말에 이르러선 10억 가까운 금품을 직접 받은 대담한 검사까지 나왔다. 결국 잇따른 의혹 앞에서 검찰을 수장 없이 권한대행 체제로 내몰리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서 새정부의 검찰 개혁의 과제는 불문가지다.

그런데 지난 5년 전과 흡사한 그림자들이 다시 어른거리고 있다. 새정부가 출범하기 전부터 줄서기 또는 눈치보기 수사가 나오고 있다. 한낱 기우이길 바라지만, 등골 서늘하게 하는 '검찰 데자뷰'는 현실로 점점 다가오고 있는 듯하다. 이런 끔찍한 상황을 앞으로 얼마나 더 지켜봐야 할지 걱정이 앞선다.  

차기 검찰총장 인선에 왜 권재진 장관이 나서나

권재진 법무부장관. (자료사진)
 권재진 법무부장관. (자료사진)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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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지난해 말 사퇴한 한상대 전 검찰총장의 후임자 인선과정에서 음흉한 속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권재진 법무부장관은 당연직 5명과 비당연직 4명 등 9명의 위원으로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를 구성했다고 한다. 추천위가 3명 이상의 후보자를 추천하면 법무장관은 추천 내용을 존중해 최종 후보자를 대통령에게 제청하게 된다. 검찰총장이 추천위의 추천을 받아 임명되는 것은 법개정으로 처음 있는 일이다.

권 장관이 누구인가. 그는 대표적 'MB맨'이자 민간인 불법사찰의 은폐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차기 총장 인선에 관여할 만한 도덕적 권위나 정당성을 갖추었는지 의문이 앞서는 인물이다. 이 대통령이 '퇴임 이후'를 보장받기 위해 차기 총장 인선에 개입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검찰총장 인선 절차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는 비판이 뒤따르는 건 당연한 이야기다. 차기 총장은 시대적 과제로 부상한 검찰 개혁의 중심에서 뼈를 깎는 각오와 성찰을 토대로 국민적 기대에 부응하는 검찰상을 이끌어내야 할 인물이어야 한다. 이처럼 중차대한 역할을 맡게 될 검찰총장을 권력과의 거래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식의 인사를 만들겠다는 건 검찰 개혁에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그동안 검찰은 민간인 불법사찰, 디도스 사건, BBK 사건, 대통령 내곡동 사저 구입 등 살아 있는 권력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모습을 보였다. 강한 의혹 제기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권력형 사건들은 '윗선 없음'으로 슬그머니 종결되는 바람에 '정치 검찰'이란 지적에 이어 '무능·무원칙·무소신 검찰'이란 따가운 비판을 끊임없이 받았다.

차제에 지난 7일 발생한 두 사례는 결코 우연한 일로 보이지 않는다.

[#사례①] <동아일보> "정수장학회 대화록 보도 기자 기소될 듯"

'정수장학회 대화록'과 관련 지난 10월 26일 오후 검찰수사관들이 서울 중구 정동 정수장학회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있다.
 '정수장학회 대화록'과 관련 지난 10월 26일 오후 검찰수사관들이 서울 중구 정동 정수장학회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있다.
ⓒ 조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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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는 7일 '정수장학회 대화록 보도 <한겨레> 기자 기소될 듯'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단독보도했다. "검찰이 정수장학회 '비밀회동 대화록'을 보도한 <한겨레> 최모 기자를 이르면 이번주 불구속 기소키로 방침을 정한 것으로 6일 알려졌다"는 기사는 "최 기자는 정수장학회 이사장실에서 최필립 이사장과 MBC 이진숙 기획홍보본부장이 정수장학회의 문화방송 및 <부산일보> 지분 매각을 논의하는 것을 휴대전화로 몰래 녹음해 지난해 10월 13일과 15일에 보도한 혐의(통신비밀보호법 위반)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기사는 이어 "MBC의 고발을 토대로 사건을 수사해 온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부장 고흥)는 최 기자가 최 이사장과 이 본부장의 대화 내용을 녹음한 것은 도청에 해당한다고 보고 기소 방침을 정했다"고 못박았다. "최 기자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은 최 이사장이 조작 미숙으로 휴대전화 종료 버튼을 누르지 않은 채 이 본부장과 만났고, 그 상태에서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을 최 기자가 녹음해 보도했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라는 내용까지 덧붙였다.

[#사례②] 검찰, "정수장학회 지분매각 논의 무혐의"

그런데 같은 날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부장 이상호)는 공직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로 고발된 MBC측 김재철 사장과 이진숙 기획홍보본부장, 이상옥 전략기획부장과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을 무혐의 처분했다고 밝혔다. 전국언론노조는 지난해 "정수장학회의 MBC·부산일보 지분을 매각해 장학금을 증액하는 방안을 모색함으로써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후보에게 유리한 정치적 효과를 노렸다"며 김 사장과 최 이사장 등을 고발했었다.

그러나 검찰은 "당시 김 사장 등이 부산과 경남 대학생들을 지칭하기는 했지만 기부 행위로 성립되기 위해서는 지급 시기, 방법, 금액 등이 구체적으로 특정이 됐어야 한다"면서 "장학금 수혜 대상이 비확정적이고 추상적이다"며 무혐의 이유를 밝혔다.

아울러 지난해 3월 정수장학회 소유 부산일보 주식 처분행위에 대한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인 법원 판결이 나온 상태에서 부산일보 주식을 처분하려했다는 혐의(공무상 표시무효)에 대해서도 '혐의 없음' 처분을 내렸다. 음모를 알린 기자는 기소할 방임이라는 내용을 흘리며 반대로 이와 상반된 상대는 무혐의라고 판결하는 검찰의 태도를 어떻게 봐야 할까

한선교는 무혐의, 한겨레 기자는 기소?

지난해 10월 최 이사장과 MBC 관계자들이 비밀리에 만나 정수장학회가 보유한 MBC·부산일보 지분을 매각해 특정 대선 후보를 위해 쓰려고 공모한 내용은 <한겨레> 최성진 기자의 기사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이로 인해 최 기자는 한국기자협회가 시상하는 '이달의 기자상'과 전국언론노동조합의 제22회 민주언론상 보도 부문 특별상을 수상했다. 그래서인지 검찰의 최 기자 불구속 기소 방침 보도가 나오자 많은 누리꾼들 사이에선 비난이 쇄도했다. "똑같은 상황에서 새누리당 한선교 의원은 무혐의 불기소처분, 똑같은 상황에서 한겨레신문 기자는 기소?", "내용이 진실이라면 1급 비밀일지라도 기자는 알릴 권리가 있고, 국민은 들을 권리가 있다", "일부러 도청하려고 도청기를 설치한 것도 아니고, 최필립 이사징이 휴대폰을 안끈 상황에서 들려오는 내용이 범죄 사실이라 보도했는데 도청이라니…" 등의 의견이 쏟아져 나왔다.

검찰은 정수장학회의 MBC와 <부산일보> 지분 매각 모의를 보도한 기자에게는 '위법'이라고 하고, KBS 수신료 인상 관철을 위해 야당 지도부 회의를 도청한 의혹 사건에 대해서는 혐의가 없다는 상반된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 설치된 조형물 '진실의 눈'에 비친 청사 모습.
▲ '진실의 눈'에 비친 일그러진 검찰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 설치된 조형물 '진실의 눈'에 비친 청사 모습.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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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은 검찰의 태도는 여러 가지 생각이 들게 한다. 정수장학회 문제는 보수쪽에서도 민감한 문제였다. 윤창중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대변인은 과거 '박 당선인이 직접 나서 정수장학회 문제를 해결하라'고 촉구하는 칼럼을 수차례 썼다. 윤 대변인은 지난해 5월 15일 인터넷매체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 "박근혜부터 정수장학회를 아예 국고에 환수시켜 완전 정리·처분하라"고 촉구했다.

새누리당 당대표 경선의 실패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썩은 보수우파가 아님을 국민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감동적인 자기 헌신, 자기 개혁의 의지를 담은 대 결단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정수장학회 문제가 대선 최대 이슈로 떠올랐던 지난해 10월 17일에는 '박근혜가 정수장학회를 말하라'는 제목의 칼럼을 쓰기도 했다.

정수장학회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1년 부산지역 사업가 김지태씨로부터 문화방송과 부산문화방송, 부산일보 주식을 100%를 보유한 부일장학회를 넘겨받아 설립한 재단이라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박 전 대통령에게 넘어간 부일장학회는 5·16 장학회를 거쳐 1982년 박정희 대통령의 '정'과 육영수 여사의 '수'를 따 지금의 정수장학회가 됐다.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검찰을 기대한다  

김지태씨는 1976년 발행한 자서전에서 "막무가내로 어느 날 작성해온 각종 양도서에 강제로 날인이 이뤄졌다"며 헌납을 강요받았다고 주장했다. 그의 유족들 역시 계속적으로 재단을 돌려달라고 요구해 왔다. 그럼에도 박 당선인은 후보시절 줄곧 "유족들은 그렇게 주장하지만 법원에서는 그런 강압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해서 패소판정한 것"이라고 말해 논란을 키웠다.

그런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검찰과 보수언론은 정수장학회에 유리한 수사와 보도로 그동안 제기돼 온 수많은 의구심과 논란의 불씨를 가라앉히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사회 현안을 보도해야 할 언론은 지난 5년 내내 스스로 사회적 현안이 돼 왔다. 특히 보수신문들은 지난 5년 동안 정부의 편에 서서 '애완견' 역할에 충실해 왔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검찰의 사정도 참담하기는 마찬가지다. MBC <PD수첩>의 광우병 보도에 대해 집요하게 칼을 휘둘렀고, KBS 정연주 사장을 쫓아내는 데 앞장섰다. 게다가 '허위사실 유포 전담반'을 만들어서는 미네르바를 구속해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켰다. 결국, 이들 사건은 모두 무죄로 끝났지만 검찰은 반성과 성찰은커녕 민간인 불법사찰, 내곡동 대통령 사저 부지 사건 같이 권력 핵심과 관련된 사건들에서 보여주었듯이 권력의 해바라기 역할에 충실해 왔다. 혹세무민이 따로 없었다.

검찰이 경찰과 수사권을 다툴 때나 법원의 영장 기각에 반발할 때처럼, 인사권을 쥔 권력의 지시에 당당하게 '아니오'를 외치는 검사들이 나타나지 않는 한 앞으로 5년 동안 검찰은 정치 검찰의 오명에서 헤어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부디 등골 서늘한 데자뷰대신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검찰로 거듭나길 간곡히 바란다.


태그:#정수장학회, #검찰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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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패배하고,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의 빛과 공기가 존재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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