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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12월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에서 열린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해단식에 참석해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12월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에서 열린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해단식에 참석해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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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씨 같은 책사가 왜 새누리당으로 갔다고 생각해요? 책사가 자기의 정책을 입안하고 정치적으로 실현해 줄 수 있는 정당을 택하는 건 당연한 것이겠지요. 유약하고 조변석개하는 민주당보다는 강력한 힘을 가진 새누리당이 자기의 정책을 실현시켜 줄 수 있는 정당이라고 판단하지 않았을까요?"

2012년 4.11 총선을 앞둔 한나라당은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꾸고 경제민주화를 주창한 김종인 박사를 영입함으로써 구태의 변신을 표방했다. 그 무렵, 술자리를 같이 했던 지인은 김종인의 새누리당 행을 두고 '책사의 현실적인 선택'이라는 진단을 내놓았다. 또다른 지인의 '박근혜에게 줄대기일 뿐' '김종인의 원래 뿌리는 5공 세력'이라는 주장도 있었지만 그렇게 이야기하기에는 풀리지 않는 의문이 남아 있었다.

대선에서 나타난 50대의 선택(방송출구조사에 따르면 50대의 투표율은 89.9%이며, 투표한 이들 중 62.5%는 박근혜를 지지했다)에 대해 진단보다 비난이 넘쳐나고 있다. '아파트 한 채의 탐욕' '자식세대의 미래를 발목 잡은 50대'라는 표현이 대표적이었다. 개표 당일 결과를 지켜보면서 필자도 당혹스러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이런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실망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탐욕이라는 단어보다도 가슴을 더 아프게 짓누른 것은 그들의 선택이 절망에 내몰린 비극적 선택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절망에 내몰린 비극적 선택

1987년 6월의 거리. 그 당시 길거리에 누워서 최루탄을 덮어쓰고 백골단 곤봉에 맞은 필자와 같은 세대들에게 손을 내밀고 어깨를 같이 걸었던 이들은 넥타이부대로 불렸던 지금의 50대들이었다. 6월 항쟁에 이은 노동자 대투쟁을 이끈 동력도 이들이었다. 25년 지난 2012년 대선, 이들의 선택이 단지 탐욕에서만 비롯된 것이었을까? 아파트 한 채를 지키기 위해 자식세대의 미래를 발목 잡는 선택이었을까?

대학등록금 천만원 시대. 대학생들에게 시급 4000원 남짓한 저임금노동의 눈물이 있다면 보이지 않는 뒷면에는 그보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부모들의 절박한 피눈물이 숨겨져 있다. 실업으로 인해 고통 받는 아들딸의 아픔을 묵묵히 지켜보며 자식들 빈주머니에 용돈이라도 채워줘야 할 부모들. 그들에게 놓인 삶의 무게는 자기 한몸만 편한 것이 아니라 가족의 생존 그 자체였다. 어린 아이를 둔 30~40대나, 아들딸을 출가시킨 60~70대와 비견할 수 없는 50대의 삶. 이명박 정부 5년 누구보다 힘든 삶을 살아온 게 바로 50대 세대라 할 수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문 닫는 자영업자 중 절반이 50대다. 전체 가계 대출자 중 50대 이상이 차지하는 비율이 46.4%(2011년 기준)로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자영업자 50대들의 수입 또한 30~40대 자영업자보다도 월등히 적다. 회사에서 정리해고 1순위가 또한 50대들이다. 이들에게 아파트 한 채는 비난 받을지언정 놓을 수 없는 마지막 남은 전부가 아니었을까?

지난 11월 30일 오후 부산 서구 충무시장에서 열린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 유세에서 한 지지자가 지갑 속에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초상화를 들어보이고 있다.
 지난 11월 30일 오후 부산 서구 충무시장에서 열린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 유세에서 한 지지자가 지갑 속에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초상화를 들어보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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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3차 TV토론에서 문재인 후보가 이명박 정부의 실정을 거론하며 박근혜 후보를 공격했을 때 박 후보는 "그러니까 내가 대통령이 되려는 것 아니냐"라고 답해 많은 이들의 실소를 자아냈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보면 믿음이 가지 않는 민주당보다는(이 불신을 민주당이 자초했는지, 보수언론이 만들어 냈는지를 논쟁하자는 건 아니다) 힘 있는 자의 약속을 믿고 싶었던 게 바로 벼랑 끝에 내몰린 자들의 심정 아니었을까? 김종인이 박근혜와 새누리당을 택했던 것과 같은 이유로 말이다.

그러나 이해와 동의는 다르다. 50대 세대들의 비극적 선택이 이해는 되지만 동의할 수는 없다. 박근혜 후보의 장밋빛 청사진에는 지워지지 않는 이명박 정부의 경제 실정이 그대로 남아 있다. 중산층 70% 공약이나 '제2의 잘살아 보세' 운동의 주창은 또다른 747 공약이 될 수 있다. 기업에 무한한 면죄부를 줬던 친재벌 경제정책을 그대로 두고 서민경제를 살리겠다는 것은 물과 기름을 섞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난 박근혜 당선인의 성공을 진심으로 바란다. 이런 말을 하면 주변 사람들은 진심이냐고 되묻곤 한다. 그러나 나는 51.6%에 속했던 사람이 아니라 48%의 한 사람으로 진정 그의 성공을 염원한다. 또다시 이명박 실정의 5년이 되풀이 된다면 50대 다수, 그리고 지푸리기를 잡는 심정으로 박근혜의 경제 공약을 믿고 지지했던 저소득층의 상당수는 돌이킬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박근혜를 찍지 않았던 48%도 예외일 수는 없다. 박근혜 당선인의 성공을 바라는 것은 고사 직전인 서민경제에 최소한의 훈풍이라도 되어달라는 간절한 염원이다.

혹자들은 박근혜 정부의 실정이 야당에게 기회가 되지 않겠느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태도 역시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다. 정권의 실정이 되풀이되고 야당이 반사이익을 얻는 정치의 악순환 속에서는 서민들만 죽어 나갈 뿐이다. 그리고 이는 역사의 진보라고 할 수 없다. 경제적 빈곤과 빈부격차가 커질수록 국민의 정치적 의식은 진보하기보다는 보수화될 우려가 높다. 근대 이후 파시즘은 대부분 경제적 빈곤이 사회를 지탱할 수 없을 때 나타났다. 최근 일본의 극우 정권 탄생도 잃어버린 10년이라는 극심한 경제 침체가 낳은 괴물이라고 볼 수 있다.

민주당은 정권 탈환에 실패했다. 5년 동안 새로운 정권을 학수고대했던 많은 사람들의 실망감은 상상 그 이상이다. 그러나 어떤 계층, 어떤 계급의 책임을 묻기보다 민주당에게 필요한 것은 철저한 자기 반성이다. 이명박 정권의 실정에 지친 서민의 표가 박근혜 당선에 기여했다면 민주당은 서민들에게서 그만큼 믿음을 주지 못했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안철수의 등장, 그것은 새로운 역사에 대한 갈망이자 야당인 민주당의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야권, 진검승부 펼쳐라

제주해군기지 예산안 삭감 문제를 놓고 여야가 이견을 보이며 1일 새벽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도 새해예산안 처리가 난항을 겪자, 민주통합당 박기춘 원내대표가 인상을 찌푸리고 있다.
 제주해군기지 예산안 삭감 문제를 놓고 여야가 이견을 보이며 1일 새벽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도 새해예산안 처리가 난항을 겪자, 민주통합당 박기춘 원내대표가 인상을 찌푸리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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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린다고 새로운 5년은 오지 않는다. 박근혜 정부의 실정을 기다려 5년 후를 기약하자는 야당을 국민들은 바라지 않는다. 역사가 제대로 진일보하려면 보수와 진보가 제대로 승부을 벌여야 한다. 아직까지 신자유주의, FTA, 친재벌에 한발을 딛고 있는 민주당이 48%의 진정한 대변인으로 51.6%의 희망으로 설 수 없다면 5년 후도 기약할 수 없다.

50대와 저소득층 서민들의 선택 앞에서 민주당이 제대로 된 반성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이런 정치구도에서 5년 후에도 힘들다는 푸념은 집어치워라. 박근혜 당선인이 국민에게 했던 그 많은 약속들에 대해 협력하고,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싸워야 하는 것이 민주당의 역할이다. 박근혜 정부 5년이 이명박 정부의 또다른 5년이 된다면 서민의 삶도, 역사적 진보도, 야당의 존재 가치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이명박 정부에서 전선다운 전선마저 만들어 보지 못했던 야당, 제대로 된 진보의 가치로 서민에게 희망을 주길 기대해본다. 그래서 보수 박근혜 정부와 제대로 된 진검승부를 펼치길, 그래야 역사의 발전도, 벼랑끝 서민의 삶도 빛을 볼 수 있지 않겠는가?


태그:#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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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진보는 냉철한 시민의식을 필요로 합니다. 찌라시 보다 못한 언론이 훗날 역사가 되지 않으려면 모두가 스스로의 기록자가 되어야 합니다. 글은 내가 할 수 있는 저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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