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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이번 대선에서 진보진영의 승리를 기원했던 사람들에게는 올 겨울이 혹독한 추위만큼이나 견디기 힘든 계절이 될 것 같다. 필자도 거기서 예외는 아니다. 아마도 질 수 없는 선거였다기보다는 져서는 안 되는 선거였던 까닭인 듯하다. 지난 선거에서 왜 진보가 졌는지, 앞으로 진보는 어떻게 될 것인지, 박근혜 시대는 어떻게 보내야 할 것인지 지금 갑론을박이 한창이지만, 올해가 다 가도록 이 논의는 계속될 것 같다. 그래서 오히려 좀 더 느긋한 마음으로 길게 바라보는 여유를 가질 필요도 있을 것이다.

꼭 20년 전, 3당 합당의 주역인 김영삼이 1992년 대통령에 당선되자 내가 다니던 대학에서는 이듬해에 운동권의 약 30%가 학생운동을 그만 두었다. 당시의 상실감이나 좌절감은 지금보다 더 컸다. '무혈쿠데타'에 가까웠던 3당 합당 이후 첫 대선이었던 탓이다. 혹자는 내각제 개헌 뒤의 보수 장기집권을 예견하기도 했고, 또 혹자는 민자당으로 대표되는 강력한 보수대연합의 천년왕국을 우려하기도 했다.

그러나 20세기를 넘길 것 같았던 정권교체는 불과 5년 뒤에 현실이 되었다. 다시 5년 뒤에는, 내 살아생전에 절대로 대통령이 될 것 같지 않던 '바보 노무현'이 보란 듯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렇게 10년을 보낸 뒤, 이번에는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한국의 민주주의나 진전된 남북관계를 돌이킬 수 없을 것이라고들 했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모두의 기대와 예상을 뒤엎었다. 다시 5년 뒤, MB 5년의 국정파탄과 독재자의 딸이라는 조합이라면 진보가 절대로 질 수 없다던 이번 선거에서 그 독재자의 딸 박근혜는 100만 표의 차이로 청와대에 입성했다.

이런 전례를 되짚어보면 이번 선거 결과로 보수 장기집권의 시대가 열렸다고 지레 움츠러들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반면에 차기에는 안철수나 박원순 같은 강력한 후보들이 즐비하다고 낙관하는 것도 그다지 근거가 없어 보인다. 인간의 섣부르고 어리석은 상상력은 언제나 현실의 역동성을 뛰어넘지 못하는 법이다.

중요한 것은 벌써부터 미리 포기하거나 5년 뒤의 한 방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에 나서는 것이다. 그러나 급할수록 둘러가라는 옛말도 있듯이, 패배감을 극복하겠다는 마음만 앞세워 너무 성급하게 나서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빨리 달아오르면 그만큼 빨리 식는다. 한동안은 이 '멘붕(멘탈붕괴)'을, 혜민 스님 말마따나, 좀 허락하면 안 될까? 어쩌면 당장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멘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용기일지도 모르겠다.

이번 글에서는 우선 이번 대선결과에 대한 몇 가지 분석들을 비판적으로 살펴볼 작정이다.

① 지킬 것이 많은 50대가 박근혜의 안정을 선택했다?

이번 선거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 50대의 투표행태에 대한 지적으로, 주로 경제적인 요인에서 그 원인을 찾는 분석이 많다. 그러나, 50대라고 해서 양극화가 피해가지는 않는다. 지킬 것이 많은, 그래서 예컨대 증세가 부담스러워 문재인을 선택하지 않은 50대가 과연 전체 50대 중에 얼마나 될까? 게다가 이 논리대로라면 서울 강남지역에서 상대적으로 높았던 문재인 지지율이 설명되지 않는다. 부동산 정책이나 조세정책이 이번 선거에서 큰 이슈가 되지도 않았다는 점도 생각해 봐야 한다.

② 안철수가 단일후보였으면 넉넉하게 이겼다?

 안철수 전 무소속 대선예비후보가 17일 서울 노원구 롯데백화점 정문에서 투표참여 독려 번개모임을 열고 있는 가운데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의 선거운동원과 함께 환하게 웃고 있다.
ⓒ 조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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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가 후보였다면 박근혜 캠프의 선거 전략이나 보수진영 전체의 대응도 달랐을 것이다. 민주당의 조직력(얼마나 강력한지 의문이 있긴 하지만)이나 호남에서의 득표력도 변수이다. 그리고 안철수는 물론 훌륭한 후보였지만, 문재인을 월등하게 압도할 정도였는지는 논란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안철수가 IT 산업에 대해 말할 때는 전세계 업계의 동향 특히 미국의 동향과 주변국의 움직임까지 꿰뚫고 있으면서 그 속에서의 한국의 위치를 조망하는 식견을 보였지만, 정치지도자로서 한국사회 전체의 현재와 미래를 그런 식으로 조망하는 모습은 본 적이 없다. 주변 주요국들의 지도자가 모두 바뀌고 특히 동북아에서 새로운 세력균형이 모색되는 이 시기에 한국의 현 위치를 객관적으로 가늠할 수 있는 통찰력이 정치지도자에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안철수가 이 점에서 문재인보다 월등했다고 볼 근거는 없다.

이 주장의 당사자인 법륜은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와의 대담집 <새로운 100년>에서 차기 지도자가 남북한을 아우르는 명확한 역사인식을 가질 것을 주문했다. 하지만 그를 멘토로 뒀다는 안철수에게서 그다지 명확한 역사인식을 확인하기는 어려웠다.

③ 무능하고 부패한 친노세력이 확실하게 물러났으면 이겼다?

이 말이 성립하려면 우선 친노가 누구인지 그 경계가 명확해야 하고 둘째로 친노의 무능과 부패 실상이 무엇인지도 분명하게 밝혀져야 한다. 내가 보기엔 명확한 실체가 없다. 정량적으로 비교했을 때, 현직 이명박 대통령과 그 측근에 비할 바가 못 된다는 것은 확신할 수 있다. 문재인에 대한 보수 세력의 대응책은 2단계 네거티브라고 할 수 있다. 1단계는 노무현의 참여정부를 실패한 정부로, 노무현 대통령을 실패한 대통령으로 규정짓는 것이다. 2단계는 문재인과 노무현의 일체화이다. 2단계는 자연스럽다. 1단계 과정은 노무현 정부 내내 계속되었고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그 이유는 노무현이 보수 세력의 기득권에 가장 큰 위협이었기 때문이다. (관련기사: 그들은 제2의 노무현 탄생이 싫었다. )

노무현 정부가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지만, 그렇다고 실패한 정부라고 평가하기에도 무리가 많다. 헌정질서를 무너뜨린 이승만이나 박정희에 대해서도 공과를 논하자는 보수 세력이 유독 노무현 정부에 대해서만 혹독한 것은 부당하다. 문재인이 당선되면 중과세를 하거나 자산가치가 떨어질 것이라는 예상은 노무현 시절의 예컨대 '종부세 폭탄' 같은 선정적인 뉴스제목의 데자뷰 때문이다. 실제로는 그 폭탄의 위력도 과장된 측면이 많았다. 이런 면에서 보자면, 당시에 보수언론과 한나라당이 사사건건 노무현 정책의 발목을 잡고서 별 일 아닌 것으로도 세상을 시끄럽게 했던 효과가 지금 빛을 발한 셈이다.

후보들의 구체적인 정책이 자기 자산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꼼꼼하게 따져보고 투표한 유권자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구체적인 부동산 정책 등이 선거이슈가 되지 않은 것이 그 방증이다. 유권자에게 문재인은 노무현 정부의 연장으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이는 문재인이 독립된 정치인으로서 보여준 행보가 별로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유권자들이 문재인을 볼 때는 노무현 정부 5년에 대한 전반적인 인상이 강하게 작용했을 것인데, 그 5년 내내 노무현 정부를 실패한 정권으로 만들려고 했던 보수의 총공세가 박근혜에게는 엄청난 자산이 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박근혜가 문재인을 공격한 주된 논리가 바로 실패한 전 정권 심판론이었다.

이런 평가가 지나치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 뇌물로 받은 억대 시계를 논두렁에 버렸다는 뉴스나, 봉하마을 '아방궁'을 떠올려보기 바란다. 직접 눈으로 확인이 가능한 사실조차 이렇게 왜곡시키는 마당에, 확연히 드러나지도 않는 정책과 현실의 인과관계를 자기 입맛대로 뒤틀기란 식은 죽 먹기였을 것이다. 따라서 '무능하고 부패한 친노'라는 워딩 자체가 이번 선거에서 보수에게 유리한, 그래서 보수가 가장 바랐던 프레임에 다름 아니다.

 야권 단일후보인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가 11월 28일 오후 세종시 한솔동 첫마을아파트 중앙공원에서 연설을 마친뒤 지지자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세종시가 지역구인 이해찬 전 대표도 이날 유세에 동석해 지원유세를 펼쳤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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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적인 말이지만, 노무현 때 부동산이 급등했다고 비판했던 사람들이 다음 대선과 총선에서 내 집값 오를 기대감에, 혹은 뉴타운 기대감에 이명박과 한나라당을 선택했다. 더욱 역설적인 것은 그렇게 뽑은 MB 치하에서 지금 부동산이 바닥을 기고 있는데도, 자산가치 하락을 우려해 문재인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분석이 나온다는 점이다. 맥락과 논리 없이 무조건 노무현 죽이기에 나섰던 보수의 논리가 현실에서 얼마나 잘 먹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이다.

이해찬의 퇴장도 손해가 컸다. 예전 같지는 않지만 그나마 야권에서 이해찬만한 전략가가 없는 것도 현실이다. 낡은 친노를 청산한다면서 이해찬까지 몰아낸 것은, 이간계로 상대방의 핵심전력을 제거했다는 진부한 고사를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문재인이 패배한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지난 글에서도 밝혔듯이 전략의 부재와 컨트롤 타워의 붕괴이다. (관련기사: "독재자 딸 대통령", KBS-MBC 축하한다)

문재인이 야권단일후보로 나선 이상, '노무현=실패한 대통령'이라는 등식을 정면으로 돌파하지 않고서는 보수의 프레임을 깰 수가 없었다. 오히려 시대에 맞섰던 노무현의 정신을 전면에 부각시키는 것이 보다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노무현 자신이 2002년에 아주 좋은 성공사례를 보여주었다. 장인의 좌익경력에 대해 당시 노무현 후보는 당내 경선에서 사랑하는 아내를 버려야만 대통령이 될 수 있다면 자신은 아예 대통령이 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인천 경선에서 나온 이 발언은 보수적인 인천의 민심도 돌려놓았다.

"노무현을 버려야만 대통령이 될 수 있다면 저는 대통령 후보직을 그만두겠습니다."

내가 선거 기간 동안 문재인 후보에게서 가장 듣고 싶은 말은 바로 이 말이었다.

④ 민생을 더 파고 들었으면 이겼다?

 제18대 대통령 선거를 이틀 앞둔 17일 오후 경기도 광명 철산동 문화의 거리에서 열린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 유세에서 한 지지자가 유리 창문 넘어 '우리의 민생을 도와줄 대통령'이라고 적힌 응원 문구를 펼쳐보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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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이 민생을 더 챙겼으면 판세를 뒤집었을까? 과연 박근혜가 문재인보다 민생을 더 파고 들어서 당선되었을까? 민생우선론은 주로 진보정당 쪽에서 선거 때마다 자주 등장하던 말이다. 민생의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정치 자체가 결국에는 민생을 해결하기 위한 인간의 고도화된 목적의식적인 행위이고 보면 정치와 민생을 대립시키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스럽지 못하다. 물론 지금 한국의 정치가 민생과 괴리된 채 위정자들의 이해타산에만 집중되는 경향도 있지만, 그것이 정치와 민생을 분리할 근거는 되지 못한다.

민생우선론은 계급투표론으로 연결된다. 유권자들이 자신의 계급적 지위에 맞게 투표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잘 알려져 있듯이 한국에서는 저소득 저학력층일수록 재벌의 이해를 대변하는 보수정당과 정치인을 상대적으로 더 지지한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천 년이 넘는 중앙집권의 역사와 이로 인한 국가-지도자-백성 사이의 일체감도 큰 몫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공교롭게도 북한 김일성의 주체사상의 핵심이 당-수령-인민의 삼위일체론이었다. 지금은 위세가 많이 약해졌지만, 재벌 대기업이 잘 돼야 국민경제가 살아난다는 낙수효과론은 여전히 한국에서 지배적인 담론이다.

이런 상황에서 '(유권자 입장에서는) 듣도 보도 못한' 정당과 정치인들이 계급투표를 외친다고 해서 마음이 바뀔 유권자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유권자들의 판단은 총체적이다. 정책뿐만 아니라 인물의 사람됨, 주변 세력, 과거 행적, 장래 가능성 등이 모두 어울려 한 명의 구체적인 정치인을 나름대로 평가(전문적인 평가는 아니라 하더라도)한다.

민생우선론 혹은 계급투표론이 극적으로 파탄을 맞은 것은 지난 2010년 지방선거에서 당시 진보신당의 심상정 경기도지사 후보가 MB심판론에 밀려 후보직을 사퇴한 사건이었다. 심상정 후보나 당시 진보신당의 민생 복지정책은 완성도와 현실성이 높기로 유명하다. 하지만 그것이 현실 민주주의의 문제와 유기적으로 결합하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다.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대목 중 하나는 한국의 진보정당 운동이 사실상 파산했다는 점이다. 앞서 지적한 노선상의 오류에 더해, 통합진보당의 경우 4.11 총선과정에서의 당내 경선부정사건을 제대로 극복하지 못해 거의 자멸한 꼴이 되었다. 노회찬, 심상정 등이 떨어져 나간 진보신당은 존재감이 거의 없다. 실패할 수밖에 없는, 그래서 실제로 실패한 노선과 관점으로 이번 대선을 평가해 봐야 유익한 결론을 얻기 어렵다.

그렇다면 이번 대선에서 진보진영은 왜 패배했을까?  그리고,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 다음 기사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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