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는 북구의 하늘 아래에 있다. 스웨덴 룬드대학 라울 발렌베리 인권연구소에서 연구년을 보내고 있다. 이곳의 밤은 길다. 자그마치 17시간이 밤이다. 이 긴 밤에 나는 이 글을 쓴다. 과거를 회상하며 온갖 자료를 펼치고 긴긴밤을 헤매고 또 헤맨다.

이런 나에게 누군가 이런 질문을 한다. "당신에게 있어 문명여행이란 무엇입니까?" 이 질문에 나는 무엇이라 답해야 할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런 답변을 들려주고 싶다.

"나는 무엇인가를 알고 싶다. 인간사의 근원적인 원리를 알고 싶다. 문명여행은 이런 지적 욕구에 답을 준다, 그래서 여행을 한다."

우리는 이것을 당연하다고 여기는데 다른 나라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 연유는 무엇일까. 혹은, 모든 사람들이 이것을 당연시한다. 달리 생각하는 사람들이 없다. 그 연유는 또 무엇일까.

문명여행은 이런 의문에 대해 자연스레 답을 준다. 인류의 유산을 보고 느끼다 보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하나의 지점에 도착한다. 보편성이라는 X축과 상대성이라는 Y축이 만드는 좌표 어느 지점에 내가 서 있음을 느낀다.

이것은 내가 연구하는 인권의 보편성과 상대성을 이해하는데 핵심적인 열쇠이다. 인권이 문화의 산물이라면 인권은 상대적이라 이해해야 한다. 중국의 인권이 미국의 인권과 같을 리 없다. 문화가 다른 만큼 인권의 내용도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니 미국사람들이여, 중국의 인권에 대하여 이러니저러니 말하지 말지어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왜냐하면 인권은 보편적이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미국에서 존중되는 인권은 중국에서도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 보편성이라는 인식의 정체는 무엇인가. 도대체 보편성은 어디에서 왔는가. 이런 것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면 인권은 우리와 관계없이 그저 주어진 것에 불과한 것이 된다. 각종 인권선언과 인권협약은 서구문화의 산물로만 보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금세기 최고의 인권문서로 인정하는 세계인권선언은 우리의 삶에서도 반드시 필요한 보편적인 인권선언(세계인권선언은 영어로 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인데, 이것은 '인권에 대한 보편선언'을 의미한다)으로 믿는가. 나는 그것을 믿는다. 그렇다면 나는 그것이 왜 보편적인가를 설명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은 유감스럽게도 책만 읽는 것으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없다. 그 이상의 진리추구가 필요한 이유이다.

 책 <러셀 자서전>(버트런드 러셀 저/송은경 역) 겉그림.
 책 <러셀 자서전>(버트런드 러셀 저/송은경 역) 겉그림.
ⓒ 사회평론

관련사진보기

나는 끊임없이 진리를 추구하는 열정이 학자에게 있어서는 무엇보다 중요한 덕목이라 믿는다. 내가 특별히 존경하는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그의 나이 90이 넘어 쓴 자서전에서 자기 인생을 지배한 몇 가지 열정에 관해 썼다. 그 중 하나가 "진리에 대한 추구"(search for knowledge)였다.

그는 아주 어린 시절, 기억도 나지 않는 그 시절부터 "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이 왜 반짝이는지, 삼라만상의 이면에는 수의 원리가 있다고 말한 피타고라스의 말을 알고 싶었다"라고 했다. 나는 그의 이야기에서 큰 자극을 받는다. "세상만사 나도 알고 싶다."

여행은 무엇인가 본질적인 것을 알고자 하는 나에게 여러 가지 답을 준다. 여행에서 만나는 것들과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비교하고 또 비교하면 어떤 진리가 떠오른다. 그것은 내 앎의 소중한 원천으로서 작용한다. 그러니 나는 이렇게 말하고자 한다.

"나는 알고 싶다, 고로 여행한다."

여민동락의 사회적 행위로서의 문명여행

문명여행의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하여 한 가지 더 말한다면, 그것은 내게 있어 사회적 행위로서의 의미가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여행 전후로 자료를 찾고, 여행 중에는 기록하고, 여행 후에는 정리하는 습관을 지니고 있다. 이 습관은 사실 꽤나 피곤한 일이다. 나도 가끔은 그저 놀고 싶은 때가 많다. 그런데도 나는 이 작업을 끊임없이 해왔다. 왜일까?

나로서는 이런 태도가 하나의 사회적 책무라 생각한다. 거창하게 이야기하면 맹자의 여민동락(與民同樂)의 생활 실천이다. 문명여행을 함에 한국의 지식인이 감당해야 하는 하나의 책무는 이것을 그저 유희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남과 나누기 위한 놀이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김용옥 저 <맹자 사람의 길>(상/하) 겉그림.
 김용옥 저 <맹자 사람의 길>(상/하) 겉그림.
ⓒ 통나무

관련사진보기

여행은 하나의 "놈"(play)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 "놈"을 행하는 데서도 여민동락을 찾는다? 너무 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래, 때론, 그저 놀 필요도 있다!) 마침 김용옥 선생이 강(講)하는 맹자(양혜왕 하)에서 이런 부분을 찾아냈다.

"사회의 모든 지도급 인사들은 '논다'라는 개념을 명료하게 할 필요가 있다. 놀아도 건성 노는 것이 아니라, 즉 사적 쾌락의 충족이나 타임킬링의 '놈'이 되어서는 아니 되는 것이며, 반드시 '놈' 그 자체가 여민동락의 사회적 행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김용옥 선생이 말하는 '여민동락의 사회적 행위'로 나의 문명여행을 확고히 만들어갈 자신이 없다. 하지만 그 말의 일단을 잡고 싶다. 그것이 내가 이런 작업을 이 먼 타국 땅에서 하는 이유이다.

우연한 기회, 앙코르를 가다

내가 앙코르 유적을 만나게 된 것은 뜻밖의 기회였다. 학교로 직장을 옮긴 후인 2007년 나는 엄청나게 바쁜 생활을 하고 있었다. 뒤늦게 교수가 되었기 때문에 연구와 수업부담이 장난이 아니었다. 새로운 강의를 하기 위해 강의안을 준비하고, 1년에 적어도 3~4편의 논문을 써야 하는 상황이었다. 더욱 그때 나는 인권법 교과서까지 집필 중이었다.

그런 와중에서 2007년 9월 초 민변에서 한 통의 메일이 왔다. 캄보디아에서 국제회의가 있는데 참가할 의향이 있느냐는 것이었다. 기간은 9월 말 추석 연휴 기간이었다. 여행을 좋아하는 나였지만 매우 가기 어려운 형편이었다. 그런데 순간적으로 머리를 스친 것이 앙코르 와트였다. 회의장소가 앙코르 와트가 있는 캄보디아 시엠립이 아닌가. 그렇다면 열 일을 제치고서라도 가자, 회의도 참석하고 기회에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라 불리는 앙코르 와트도 보고 오자!

 아시아유럽재단이 주최한 2007년 아셈 인권회의, 장소는 시엠립의 소카호텔.
 아시아유럽재단이 주최한 2007년 아셈 인권회의, 장소는 시엠립의 소카호텔.
ⓒ 박찬운

관련사진보기


내가 참석한 국제회의는 아셈 인권회의라는 것으로 준 국제기구인 아시아유럽재단(Asia-Europe Foundation, ASEF)이 주관하여 그 해 9월 26일부터 28일까지 시엠립의 소카 (Sokha) 호텔에서 열렸다.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회의로 아시아와 유럽의 아셈 회원국 43개국에서 정부 관계자와 NGO 관계자 등 120여 명이 참석하였다. 나는 3일에 걸친 회의에서 나름대로는 한국의 인권전문가로서 그동안의 경험을 살려 많은 토론에 참여하였고, 이 회의의 결과로 나온 권고문 작성에도 일정한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당시 나는 제사보다 젯밥에 더 맘이 가 있었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다. 9월 24일 서울에서 출발하여 30일 돌아오는 날까지 거의 일주일을 시엠립에 있으면서, 나는 회의 시간을 빼고는 앙코르 와트를 중심으로 하는 앙코르 유적 탐방에 온 열정을 불태웠던 것이다.

시간이 한참 지난 지금 나는 앙코르 여행을 돌아보고 있다. 당시 깨알같이 정리해 놓은 노트북과 엄청나게 찍은 사진들이 옆에 있다. 그리고 앙코르 유적과 관련된 여러 자료들을 꺼내 놓고 나는 몇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실 나로서는 이 엄청난 인류의 업적, 아니 미스터리에 가까운 역사적 유물을 제대로 이해하고 이를 아름다운 문체로 정리할 능력이 없다.

앙코르 유적을 이해하는 데 도움 되는 책들

 Dawn Rooney < Angkor?Cambodia’s Wondrous Khmer Temples >
 Dawn Rooney < Angkor?Cambodia’s Wondrous Khmer Temples >
ⓒ Odyssey

관련사진보기


앙코르 유적에 대하여 본격적으로 공부를 하고자 한다면 이 책을 한 번 읽어 보시라. 영어로 되어 있지만 비교적 쉬운 책이다. 이 책은 동남아 역사 연구가인 미국의 루니(Dawn Rooney)가 쓴 책으로 2006년에 출판되었다. 루니는 30년 이상을 동남아, 그중에서도, 태국과 캄보디아의 문화를 연구해 온 미국의 여성 학자이다. 이 책이 출간되기 전 그녀는 앙코르 지역을 84회 방문했다고 한다. 그녀는 이러한 연구업적을 인터넷 기록 보관소를 통해 대중에게 제공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 사이틀 참고하시라. http://rooneyarchive.net

 김용옥 <앙코르 와트·월남가다>(상/하). 나는 이 책을 들고 앙코르 유적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현장에서 읽어 보면서 김용옥 선생의 심미안을 만끽했다.
 김용옥 <앙코르 와트·월남가다>(상/하). 나는 이 책을 들고 앙코르 유적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현장에서 읽어 보면서 김용옥 선생의 심미안을 만끽했다.
ⓒ 통나무

관련사진보기



 최영도 지음, <앙코르 티베트 돈황>
 최영도 지음, <앙코르 티베트 돈황>. 이 책은 앙코르 유적 중 특히 앙코르 와트를 갈 때 유용한 책이다. 최영도 변호사가 직접 보고 확인한 것을 기초로 쓴 글이라 사실적 묘사에 있어서는 다른 어떤 여행서를 압도한다.
ⓒ 창작과 비평사

관련사진보기

앙코르 유적에 대하여 이미 책을 쓴 김용옥 선생과 같이 철학적 혹은 미학적 이해를 하면서 정리할 수도 없고, 나의 여행 스승이신 최영도 변호사와 같이 정밀한 관찰에 입각하여 그것을 예의 예술적 언어로 정리할 수도 없다. 또한 어느 출판사의 여행안내서처럼 시시콜콜한 여행 정보를 전달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나의 경험을 나와 유사한 경험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전달해 주고 싶은 마음에서이다. 앙코르 유적에 대한 서적은 전문서부터 여행안내서에 이르기까지 꽤나 많다. 그러므로 이들 책들을 찬찬히 읽는다면 굳이 이와 같은 글은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디 세상 일이 그렇던가.

책은 쌓여 있지만 그것을 다 읽을 수도 없고 독자에 따라서는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는 경우도 있다. 나는 이 글을 통해 그런 책들을 어떻게 읽으면 앙코르에 가서 제대로 된 문화적 감상을 할 수 있을지 다녀온 사람으로서 나의 경험을 들려주고 싶다. 특히나 단체여행에 식상한 사람들로서 언젠가는 나 혼자만의, 혹은, 사랑하는 이와의 단둘만의 여행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 글이 조금은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000 응원글보기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한양대학교 로스쿨에서 인권법을 강의하고 있습니다.지난 20년 이상 변호사 생활을 해왔으며 여러 인권분야를 개척해 왔습니다. 인권법을 심층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오랜 기간 인문, 사회, 과학, 문화, 예술 등 여러 분야의 명저들을 독서해 왔고 틈나는 대로 여행을 해 왔습니다. 이 공간을 통해 제가 그동안 공부해 온 것을 독자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