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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이정현 새누리당 최고위원이 24일 오수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비서실장으로 유일호 새누리당 의원이 임명됐다며 발표하고 있다.
 이정현 새누리당 최고위원이 24일 오수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비서실장으로 유일호 새누리당 의원이 임명됐다며 발표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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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당선자의 대통령직 인수위 구성에 대한 그 어떤 공식 발표도 없었던 24일 오후 이정현 새누리당 최고위원과 통화했다. 물론 기자가 알고 싶었던 건 '대체 발표는 언제 할 것이며, 늦어지는 이유는 뭔가'였다.

이 최고위원은 자신은 인선 내용과 시기 등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고 전제하면서 인수위 관련 발표가 늦어지고 있는데 대한 몇 가지 해설을 내놨다. 그 이유들 중엔 "당선자는 승리감에 도취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는 것 같다, 자신을 찍지 않은 국민들에게 일종의 배려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내용도 있었다.

기자는 "기자 입장에선 발표가 늦는 건 별로지만, 그런 배려로 인선 내용이 좋아진다면 기자들이 더 고생해도 되지 않겠느냐"고 덕담까지 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그러고 나서 고작 40여 분 뒤 이 최고위원이 당선자 비서실장과 수석대변인, 대변인 인선 내용을 발표했고 기자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조금 전까지 '발표가 늦어질 것'이라고 했다가 발표를 해버린 게 야속해서가 아니었다. 인선 내용, 특히 인수위의 '입 중의 입'인 수석대변인에 임명된 이를 보면 이 인선은 '반대편에 대한 배려'와는 전혀 거리가 멀 뿐 아니라 선전포고에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야권 향해 "아마추어의 밑바닥" "정치적 창녀" "더러운 강아지"

윤창중 인수위 수석대변인은 <문화일보> 논설위원 출신으로, 현재의 야권을 향해 극단적인 내용의 비난 글과 발언을 이어왔다. 최근에는 '윤창중 칼럼세상'이라는 블로그에서 칼럼을 연재하고 있는데, 대선 국면에선 종편 케이블 TV에 자주 출연하면서 대중에 얼굴을 알렸다.

 대선 기간 중 '칼럼세상'에 올라온 윤창중 수석대변인의 칼럼목록 일부.
ⓒ 칼럼세상
종편 방송에 출연한 윤 대변인은 안철수 전 대선 후보를 "콘텐츠 없는 약장수"라 비하하고, 야권단일화를 "권력을 잡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한 편의 막장 드라마"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 발언이 나간 프로그램은 선거방송심의위로부터 경고처분을 받았다.

이뿐 아니라 윤 대변인이 야권의 후보단일화를 두고 "더티한(더러운) 작당"이라고 비난하고 "슈퍼마켓 진열대 상품(박근혜 후보)이 잘 팔리니까 1+1 상품(문재인+안철수)으로 내놓은 것", 안철수 전 후보에 대해 "애송이", "아마추어의 밑바닥"이라고 비난한 걸 내보낸 종편 프로그램은 선거방송심의위로부터 '주의'를 받기도 했다.

윤 대변인의 칼럼 내용은 문재인 후보에 대한 색깔공세와 안철수 전 후보를 비하 내용은 일상적이고, 이외에도 야권을 돕는 인사라면 무조건 '까고 보자'는 식이었다. 대선 투표 하루 전인 지난 18일 윤 대변인은 문 후보를 도운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을 '정치적 창녀'라고 지칭하는 칼럼을 냈다. 윤 전 장관의 TV찬조연설 내용에 대해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내용은 없었다. 그의 글에선 김덕룡, 김현철 등 보수진영에 있다가 문 후보를 지지한 이들은 모두 '정치적 창녀'가 됐다.

윤 대변인은 문재인 후보를 도운 조국 서울대 교수에 대해선 "지성의 탈을 쓴 더러운 강아지"라고 지칭하는가 하면, 박지원 전 민주당 원내대표를 '매국노'라고 했다. 대선 하루 뒤인 20일 올린 칼럼에선 박 당선자에게 "자신을 반대하는 세력에 대해 섣부른 감상주의, 낭만주의에 빠져서는 절대 안 된다", "절대 물러 터지면 안 된다! 절대 물러 터지면 안 된다!"고 당부했다.

이쯤 되면, 당선 일성으로 "저를 지지하지 않으신 분들의 뜻도 겸허히 받들고 야당을 진정 국정의 파트너로 함께하겠다"고 했던 박근혜 당선자가 첫 인선에서 자신의 말을 뒤집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독재 미화가 비결인가? 권력지향성이 비결인가?

윤창중 당선인 수석대변인이 25일 오후 여의도 새누리당사 기자실을 방문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윤창중 당선인 수석대변인이 25일 오후 여의도 새누리당사 기자실을 방문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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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변인이 <문화일보> 논설위원 시절 쓴 칼럼에선 이번 '인선의 비밀'이 엿보이기도 한다.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독재가 반대만 하는 야당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투로 썼다.

"박정희 대통령이 왜 야당을 그토록 미워하며 철권으로까지 다스리려 했는지, 그 심경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다. 무거운 마음 속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훼방 놓기 위해 끝없이 거짓말하고, 하나 주면 또 생떼 쓰고 말 뒤집곤 하는 헌정사상 최악의 야당 민주당! 박 대통령의 고뇌를 떠올려본다. 박정희는 18년 재임 동안 단 하나도 야당의 극렬한 반대를 겪지 않은 일이 없다."(2011년 11월 21일자)

윤 대변인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마음속을 이처럼 깊이 헤아리는 게 박근혜 당선자의 선택을 받은 주된 이유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의 전력에서 확실히 드러나는 건 권력과 언론계 사이를 왔다갔다한 '폴리널리스트'라는 점이다. 

윤 대변인은 1992년 노태우 정부 시절 <세계일보> 정치부 기자로 일하다가 청와대 행정관으로 옮겨갔고, 정권이 끝나자 다시 <세계일보>로 복귀했다. 그는 1997년 이회창 한나라당 대선 후보의 보좌역을 맡았다가 대선 패배 뒤 <문화일보> 논설위원으로 옮겼다. 그럴 때마다 그런 처신이 과연 적절하냐로 논란이 일었다.

이번엔 개인으로 언론활동을 하다가 박근혜 당선자의 인수위로 들어가게 됐으니 언론인으로선 이례적인 경력이다. 진짜 문제는 언론과 권력 주변을 왔다갔다한 게 아니라 윤 대변인이 권력지향성이 강하다는 점, 박근혜 당선자가 시민들에 대한 배려보다는 자기 위주의 인선을 했다는 데에 있다.

전쟁도 쉬어간 크리스마스입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21일 오전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대통령과 전화통화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21일 오전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대통령과 전화통화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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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4년 12월 24일 현재의 벨기에 이프르 지방의 전선에선 '크리스마스 휴전'이 이뤄졌다. 크리스마스 날만큼은 서로에 대한 살육을 중단하자는 데에 프랑스·영국 연합군과 독일군의 장교들이 합의, 포화를 멈추고 서로 뒤엉켜 축구까지 했던 '기적'이 일어났다. 한국에는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Joyeux Noel'(조이유 노엘)이라는 영화에 허구가 섞이긴 했지만 당시 상황이 묘사돼 있다.

지금 한국은 어떤가. 대통령 취임을 준비하는 박근혜 당선자는 야권인사와 야권을 지지하는 시민들에게 모욕적 언사를 일삼아온 인사를 인수위의 '입'으로 전격 발탁했다. 전쟁마저도 쉬어갈 수 있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시민들에게 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태그:#윤창중, #박근혜,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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