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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품은 땅, 서펜틴레이크

사막 여행을 하노라 말하면 씻는 것과 설거지는 어떻게 해결하는지 묻는 사람이 있다. 짐작하겠지만......당연히 안 씻는다. 그래도 양치만큼은 피할 수 없는 습관이어서 한 컵의 물을 쓴다. 욕심을 내는 날은 또 한 컵의 물을 세수에 쓴다. 내 경우 세수를 하려면 두 컵의 물이 필요한데 신기하게도 최 감독은 한 컵으로 세수가 끝난다. 여차하면 한 컵에서 남은 물로 머리라도 감을 기세다. 그나마 대개의 세안을 물티슈로 끝내니 한 컵 물조차 쓸 일은 많지 않다.

설거지에는 물을 거의 소모하지 않는다. 우선 음식을 남기지 않는다. 그야말로 바리공양이다. 그나마 코펠에 묻은 것은 키친타올 몇 장으로 초벌하고 물티슈로 마감하면 사막식 설거지가 끝난다. 세안뿐 아니라 설거지도 물티슈 한 장으로 해결한다. 물을 사용하는 때는 특별한 경우다. 한 모금의 물도 헛되이 다룰 수는 없다. 언제 이 물이 생명줄이 되어 줄지 모르는 일이니까.

심해의 바닥이었다가 지금의 대개의 세월을 비를 기다리며 땅으로 존재하는 호수. 하얀 소금기가 과거를 품고 있는 곳.
▲ 서펜틴레이크 심해의 바닥이었다가 지금의 대개의 세월을 비를 기다리며 땅으로 존재하는 호수. 하얀 소금기가 과거를 품고 있는 곳.
ⓒ 오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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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서펜틴레이크(Serpentine Lakes)에 도착했다. 사막에서 '호수'라는 이름이 붙은 땅을 만나면 여러 생각이 인다. 5천만 년 전, 지각변동으로 이곳 남회귀선 저위도에 주소를 갖기 전까지 호주는 남극대륙의 일원이었다. 남극 내음을 품고, 이 바삭바삭한 바람에 쓸리고 있는 저 평원은 한 때 심해의 바닥이었다. 소금기를 머금은 채 대부분의 세월을 땅으로 지내는 호수 아닌 호수는 먼 과거의 꿈을 꾸는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어느 비 내리는 날 호수가 될 가까운 미래의 꿈을 꾸는 것일지도 모르지. 바다 아닌 땅, 땅 아닌 호수, 한 때 깊은 바다를 담았고 지금은 호수의 바닥이라 지칭하는 단단한 지층의 표피에서 영속(永續)의 무상함과 삶의 가벼움을 읽는다.

왜 그런지도 몰랐다. 그저 즐겁고 우스웠다. 그러면서도 어쩐지 이게 공포여행의 첫장면처럼 우린 한껏 들떠 있었다.
▲ 서펜틴레이크에서의 즐거운 한 때 왜 그런지도 몰랐다. 그저 즐겁고 우스웠다. 그러면서도 어쩐지 이게 공포여행의 첫장면처럼 우린 한껏 들떠 있었다.
ⓒ 오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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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경숙이 떡진 머리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연신 까르르 웃는다. 애보리진 머리가 왜 그렇게 엉겨있는지는 일주일만 머리를 안 감아보면 안다나. 그러고 보니 이제 겨우 며칠을 감지 못한 그네들의 머리가 애보리진에 닮아있다. 웃음바다,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모두 맘껏 웃었다. 마치 공포영화 전반부에 배치된 평화롭고 화기애애한 장면처럼 우린 한껏 들떠있었다. 아침 태양이 남긴 긴 그림자가 따라 웃을 만큼.

앞 범퍼를 찧을 만한 경사를 내려와 서펜틴레이크를 건넌 후 한참을 달려 주경계선에 도착했다. 1962년, 렌 비델(Len Beadel)이 세운 푯말이 있어 잠시 차를 세우고 내렸다. 앞바퀴는 서호주, 뒷바퀴는 남호주에 걸쳐놓은 애매한 상황, 나는 어느 쪽에 있는 것일까? 경계가 있음으로 해서 오히려 경계가 모호해지는 역설. 인위적 경계선은 연속체인 사물을 억지로 분할하는 언어의 속성과 흡사하다. '이마'와 '뺨'이라 분명히 구분해 말하지만 어디까지가 이마이고 뺨인가? 그저 오래된 책받침 크기의 푯말 하나가 이곳이 세상과 세상의 경계임을 억지로 알리고 있다. 우리가 가야 할 라버튼까지는 아직도 730Km가 넘게 남았다는 안내와 함께.

앞 바퀴는 서호주에 뒷바퀴는 남호주에 걸치고 잠시 내렸다. 경계가 경계를 허무는 역설의 상황.
▲ 서호주와 남호주의 경계 앞 바퀴는 서호주에 뒷바퀴는 남호주에 걸치고 잠시 내렸다. 경계가 경계를 허무는 역설의 상황.
ⓒ 오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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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 고립되다

주경계를 지나 얼마 안 간 곳에서 마블 검 트리(Marble Gum Tree)를 보고 다시 달리는 중에 운전대에 이상한 느낌이 전해졌다.

"아이......"
"왜요?"

내 외마디 비명에 아내가 물었다. 차를 세울 때까지도 아내는 상황을 모르고 있었다. 휠이 땅에 닿는 느낌이 그대로 전해졌다. 우려하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예비타이어를 하나만 가져오는 것이 아니었는데......'

다시 뼈저린 후회가 밀려왔다. 그러나 죽은 자식 불알만지기, 이제 와 후회하면 무엇하리. 내려보니 생각대로 왼쪽 앞바퀴가 터져있다.

마지막 남은 타이어가 터지고 에어컴프레서는 실린더가 부러져 수리가 불가능했다. 손 쓸 방법도 없이 아주 간단하게 사막에 갇혔다.
▲ 찢어진 타이어와 고장난 에어컴프레서 마지막 남은 타이어가 터지고 에어컴프레서는 실린더가 부러져 수리가 불가능했다. 손 쓸 방법도 없이 아주 간단하게 사막에 갇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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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앞바퀴가 터졌다.'는 말이 왜 이토록 담담하게 들리는 것일까. 어제 타이어 하나가 구멍 나 바꿨으니 예비타이어가 없다는 말이고, 에어컴프레서가 고장났으니 어제 구멍 난 타이어는 수리할 수 없다는 말이다. 말인 즉은 겨우 찢어진 타이어 하나로 우린 사막에 갇히게 되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왜 이리 담담할까. 일정이 어그러질 것이란 짜증이 고립되었다는 두려움을 상회할 정도다.

아마도 차량에 식량과 물이(70리터의 물과 보름치의 식량) 충분하고, 언젠가 도움 줄 차가 지나가리란 기대(사막을 횡단하는 루트는 하나뿐이니)가 있기 때문이리라. 다만 그 때가 언제냐의 문제다. 내일? 다음주? 혹은 다음달? 아니 어쩌면 몇 시간 뒤일지도 모르지.

한나절을 기다렸지만 한 대의 차도 지나지 않았고, 올 것 같지도 않았다. 언덕 너머를 응시하는 최 감독의 눈매가 그윽하다. 입맛도 없어 비스킷을 먹는 것으로 점심을 대신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에어컴프레서를 분해해 보았지만 실린더 축이 부러져 재생이 불가능한 사실만 확인했다.

안 되겠다 싶어 130여 Km 앞에 있을 일쿠르카(Ilkurlka Roadhouse)에 위성전화로 연락을 시도했다. 사막 횡단을 위한 주유기 하나 놓여 있는 곳이지만 설마하니 에어컴프레서 하나 없으랴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설사 있다 해도 그 때문에 사막길 삼백 리가 넘는 거리를 와 줄까도 의문이었지만 그래도 기대는 그것 뿐이었다.

사막 횡단자를 위해 주유기와 쉘터를 설치해 놓은 일쿠르카 로드하우스에 위성전화로 접촉을 시도했지만 응답이 없다.
▲ 위성전화 접촉 시도 사막 횡단자를 위해 주유기와 쉘터를 설치해 놓은 일쿠르카 로드하우스에 위성전화로 접촉을 시도했지만 응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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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몇 번을 걸어도 응답기만 돌아갈 뿐 전화를 받지 않는다. 뭔가 예상과 달리 일이 돌아간다. 무슨 사정인지 몰라도 일쿠르카에 사람이 없는 것이라면 에어컴프레서뿐 아니라 연료보급도 차질을 빚게 될 것이다. 눈에 띄진 않아도 혹시 우리 인근에 차량이 있을까 싶어 무전 송신이나 수신 대기를 해도 여전히 침묵뿐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다들 말수가 줄었다. 넉넉한 물과 식량 덕에 처음엔 호기 있는 마음이었다가 막상 이 광대한 곳에 우리만 덩그러니 놓여있다 생각하니 그 '불확실성'이란 놈이 얼마나 우리를 짓누르고 있는지 실감되는 모양이었다. 어쩌면 어제 보크스힐에서 교행한 차량이 이번 달에 우리가 그레이트빅토리아 사막에서 만나게 될 마지막 차였을지도 모른다. 위성전화기는 있지만 받아 줄 대상이 없다. 대상이 있더라도 이곳까지 와줄 사람이 있을까. 하필 1350Km 사막 구간 중 딱 중간에서 멈추었으니 지나온 쿠버피디에서도 가야할 라버튼에서도 참 애매한 상황이다.

지나는 차가 있어 규격이 같은 타이어 하나를, 아니 에어컴프레서 하나를 얻어도 상황은 호전될 것이나 차가 언제 지나리라는 확신이 없다. 준비한 물과 식량이 바닥나기 전에 나타나기를 바랄 뿐.
▲ 사막 한 가운데서의 고립, 불확실성이 주는 절망 지나는 차가 있어 규격이 같은 타이어 하나를, 아니 에어컴프레서 하나를 얻어도 상황은 호전될 것이나 차가 언제 지나리라는 확신이 없다. 준비한 물과 식량이 바닥나기 전에 나타나기를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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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또 한편 우리가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도 그 불확실성 때문이다. 타이어가 터져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 하나를 빼면 어떤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일쿠르카가 폐쇄되었다는 단정도 할 수 없으며 아직 물과 식량이 떨어진 것도 아니다. 누가 뱀에 물려 사경을 헤매는 것도 아니다. 또 당장 내일이라도 지나는 차가 있지 말란 법도 없다. 낮잠을 잤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해 보았으니 이제는 남의 도움을 기다리는 일 뿐이다. 걱정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란 그 어떤 것도 없으니까. 간단하다. 우선 당장은 누군가의 컴프레서만 빌려도 해결된다. 그 다음 일은 그 뒤에 걱정할 일이다. 아내도 상황을 이해하는 것 같았다. 차 안에서 깊은 잠에 빠졌다. 의연하게 행동해 주는 아내가 고맙다. 진정한 길벗은 이럴 때 알아본다.

한 나절이 지나자 어쩌면 이곳을 지나는 차가 오래도록 없으리라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러나 아내는 낮잠을 잤다. 나 역시. 타이어가 터졌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아직 결정된 것이 없는 불확실한 상황. 우리에겐 이것이 희망이었다.
▲ 불확실성이 주는 희망 한 나절이 지나자 어쩌면 이곳을 지나는 차가 오래도록 없으리라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러나 아내는 낮잠을 잤다. 나 역시. 타이어가 터졌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아직 결정된 것이 없는 불확실한 상황. 우리에겐 이것이 희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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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최 감독은 무척 심각한 상황이다. 폐쇄공포증으로 비행을 두려워하면서도 오로지 자기 아내를 위해 먼 호주행을 감행한 그였다. 그렇기에 자기 힘으로 어찌 할 수 없는 상황이 닥치자 몹시 답답해했다. 최 감독은 라버튼(Laverton)에 구조요청을 해야 한다고 했다. 지금 연락해도 며칠 뒤에나 당도할 수 있으니 최대한 빨리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라버튼까지는 650Km, 부산-신의주에 육박할 거리다. 사실 '먼 거리'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 노면상황이 열악한 사막에선 'Km' 같은 거리표현보다는 '2시간 길', '2일 거리' 같은 시간표현이 더 적절하다. 650km면 3일을 꼬박 달려야 할 거리인데 왕복 6일치 일당과 연료 및 부식비, 거기에 출장비를 곁들이면 아무리 못해도 3000달러 이상부터 비용이 잡힐 것이다. 물론 그 작은 마을에 이런 시스템이 있는지도 문제지만 에어컴프레서 하나로 간단히 해결될 일을 그렇게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내일까지만 기다리고, 그래도 지나는 차가 없으면 모레 구조 요청을 하겠다는 약속으로 대략 상황은 진정됐다.

그럼에도 여전히 지나는 차의 낌새는 보이지 않는다. 교대로, 혹은 모두가 길 양편을 응시하고 있지만 혹 한눈 파는 사이 우리가 휴식하는 것으로 오해해 그냥 지나치지 않도록 예비타이어를 빼내 차에 기대 두었다.

조난, 비, 그리고 번개

그런데....그런데......재수 없는 과부는 봉놋방에 누워도 고자 옆에 눕는다던가. 엎친 데 덥친 격으로 먹구름이 밀려온다. 급기야 비가 쏟아진다. 이번 여정을 시작한 이래 단 한 번도 만날 수 없었던 비를 하필 이런 상황에서 만나게 되었다. 절망이다. 비가 온다는 건.......땅이 굳어질 때까지 이 사막으로 들어서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뜩이나 심슨사막에 비해 쉽게 들어올 수 없는 곳이기에 지나는 사람이 있을까 의심스러운 판에 비까지 내린다. 그렇다면 내일도 차가 오지 않을 수 있다. 미세한 먼지 같은 흙이 물을 만나면 뻘이 된다. 그러면 사륜 아니라 무한궤도로도 통과가 불가능한 지대가 생겨난다. 그래서 이곳을 아는 사람이라면 비가 내린 직후에 사막으로 들어서지는 않을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 사막에 비가 내린다. 비 온 후 뻘처럼 질퍽해지는 노면과 범람을 우려해 이제 사막으로 들어오는 차는 한동안 엎을 것이다. 절망.
▲ 사막에 내리는 비 엎친 데 덮친 격. 사막에 비가 내린다. 비 온 후 뻘처럼 질퍽해지는 노면과 범람을 우려해 이제 사막으로 들어오는 차는 한동안 엎을 것이다. 절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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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우리 지형을 살폈다. 완만히 길게 오르는 오르막의 하단에 위치해서 물에 잠길 염려는 없어 보였다. 사막에서 비를 만나면 맨 먼저 침수 지역이 아닌지 살펴야 한다. 평소엔 멀쩡하다가도 폭우가 쏟아지면 물에 잠기게 되는 곳이 사막이다. 그래서 물 흐른 자국이 있는 곳에서 숙영을 하면 안 된다. 안전한 위치임을 확인하고 빗속에서 서둘러 텐트를 치고 배수로를 팠다. 어차피 오늘 누군가를 만나는 건 끝난 일이고 비가 거세지기 전에 잠자리를 마련하는 건 좋은 일이니까.

기상 악화가 조난에 임하는 내 모든 안정을 무너뜨렸다. 이제 모든 것이 변수가 되어버렸다. 충분한 물과 식량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불확실성이 모든 걸 지배하게 되었다. 이 모든 게 시드니부터 쿠버피디까지 갈등해오던 단 하나의 타이어로 빚어진 일이었다. 인재(人災)였다.

오후 여섯 시경(내 손목시계가 그렇게 가리키고는 있었지만 앨리스스프링 기준인지 쿠버피디 기준인지 알지 못한다) 시드니에 있는 네발로클럽 '캡틴'님께 위성전화로 상황을 알렸다. 먼 곳에서 안 좋은 소식을 듣는 이의 걱정을 잘 알기에 후일담으로 이 소식을 전하려 했으나 비를 본 순간 나 역시 염려가 되었다. 최악의 상황을 예측하고 최소한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을 사람이 필요했다.

라면과 소주로 거한 저녁을 치루며 애써 호들갑을 떨었지만 불안의 무게는 덜어지지 않았다.
▲ 조난,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라면과 소주로 거한 저녁을 치루며 애써 호들갑을 떨었지만 불안의 무게는 덜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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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비밀번호를 누르고 그다음 국제전화처럼 국가번호를 눌러......."

아내에게 위성전화 사용법을 일러주는데 문득 무서움증이 든다. 왜 내가 없는 상황을 가정해야 하지? 그만큼 내 마음은 절박해져 있었다. 이 난리통에 라면을 끓이고 한국에서 가져간 소주를 곁들여 거한 저녁을 먹으면서도 그랬다. 내일 차가 몇 시에 지나갈까 내기를 걸자며 서로 호들갑을 떨었지만 모두의 어깨에 얹힌 불안의 그림자는 쉬 가시지 않았다. 

고통을 잊는 데는 잠 만한 게 없다. 그래 자자. 자고 일어나면 물이 불어나든 날이 개이든 무슨 수가 나겠지. 여덟 시 조금 너머 애써 일찍 잠을 청했다. 그러나 얼마나 잤던 것일까? 빗소리를 찢는 천둥소리, 그리고 그 보다 꼭 몇 초씩 먼저 번지는 섬광에 잠을 깼다. 아니 잠들기를 포기했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밤새 번개가 쳤다. 벼락 떨어지는 고립된 사막의 텐트 안에서는 죽음도 삶만큼이나 가까운 곳에 있었다.  조난 첫째날 밤, 우린 내일의 희망을 내려놓아야 했다. 오늘밤을 넘겨내는 일이 중요했으므로.
▲ 사막을 덮친 먹구름 밤새 번개가 쳤다. 벼락 떨어지는 고립된 사막의 텐트 안에서는 죽음도 삶만큼이나 가까운 곳에 있었다. 조난 첫째날 밤, 우린 내일의 희망을 내려놓아야 했다. 오늘밤을 넘겨내는 일이 중요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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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정말......'

재앙의 종합선물세트다. 대천바다에 노도 잃고 키도 잃고 용총도 잃은 배에, 풍랑 가운데 도적을 만난 도사공의 마음이 이럴까. 사방이 탁 트인 사막 한 가운데서 번개를 만나다니. 텐트 주변의 키 작은 나무들 사이로 오똑한 우리 차와 그 옆의 도드라지는 텐트. 만약 벼락이 때린다면 어디가 첫째 목표일까. 그것까지는 생각하기도 싫다. 침낭을 머리까지 뒤집어썼는데도 텐트를 파랗게 밝히는 섬광의 느낌이 그대로 전해진다. 이어 때리는 벼락 소리가 고막을 찢는다. 천둥소리였겠지만 내겐 연신 벼락소리로만 들렸다. 훈련소에서 수류탄 투척 연습할 때 물 웅덩이로 낙하하지 못하고 주변 맨땅에서 터지던 그 '까강'하는 기분 나뿐 소리가 꼭 이랬다.

'짜작'하는 섬광과 '까강'하는 벼락의 빈도가 잦아지고 둘 사이 간극이 좁혀져오매 점점 심장이 오그라들었다.

'번개는 아래에서 위로 친다. 그러니 괜찮을거야'
'호주 북부는 지구에서 가장 번개가 많은 곳으로 몇 시간 만에 1500번 가량 친 적도 있다지만 여긴 북부가 아니니 괜찮을 거야.'

하는 이성의 속삭임 따윈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 했다. 호주에선 매년 10명 가량이 벼락에 맞아 죽는다는데.....오늘 그 중의 한 명이 되는 것은 아닐까. 아니지 한 텐트에 4명이 누워있으니 한 방으로 평균을 높여줄 수 있겠군. 차로 피신해야 하나? 네 명이 차 안에 앉아 뜬눈으로 밤을 새우는 것이 좋을까, 빨리 잠을 청해 번개를 잊는 것이 좋을까?  내 생애 이렇게 긴 고뇌의 시간이 또 생길까?

번쩍!

텐트 안이 파랗게 밝아진다. 그리고 곧 이어 대기를 찢는 벽력소리.

우르르 깡!

27,000도 열이 주변 공기를 수축,팽창시키는 진동소리라고 머리로는 애써 외면하는데 가슴에선 낙뢰가 내려 지상에서 터지는 소리라 느낀다.

번쩍!
우르르 깡!

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아, 나는 미칠 것이다. 위도 28. 31. 31, 경도 128. 40. 44 좌표에서 나는 생의 마지막을 맞거나 정신을 놓을 것이다. 어쩌면 정신을 놓은 채 생의 마지막을 맞거나.


태그:#호주 아웃백, #그레이트빅토리아 사막, #대륙횡단, #자동차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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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서.화에 능하고 길떠남에 두려움이 없는 생활인. 자동차 지구 여행의 꿈을 안고 산다. 2006년 자신의 사륜구동으로 중국구간 14000Km를 답사한 바 있다. 저서 <네 바퀴로 가는 실크로드>(랜덤하우스,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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