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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당선을 알리는 <조선일보> 20일자 1면
 박근혜 당선을 알리는 <조선일보> 20일자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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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첫 여성 대통령'
'첫 여성·부녀 대통령'

20일자 국내 주요 일간지들이 1면 머리기사 제목을 큼지막하게 횡단 통으로 가르며 18대 대통령 선거결과를 보도했다. 보수신문들은 특히 많은 지면을 할애해 '당선인이 살아온 길', '여성 대통령 당선의미', '34년 만에 다시 청와대 입성' 등을 주제로 특집기사와 화보를 경쟁적으로 큼지막하게 다뤘다.

이 중 <조선일보>는 '박근혜, 첫 여성대통령·첫 부녀대통령'이란 1면 제목과 함께 기사에서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장녀인 박 당선인의 당선으로, 국내 첫 '부녀 대통령' '2대 대통령'의 기록이 나왔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동아일보>도 '대통령의 딸...22세 퍼스트레이디...34년만에 다시 청와대로'란 특집면에서 당선인의 삶을 집중 조명했다. 사설에서도 큰 의미를 부여했다. 요란한 환희의 포문은 전날 방송사들이 먼저 열어주었다. 각 방송사들은 전날 밤부터 "첫 여성대통령이자 부녀대통령이라는 새 기록을 남기게 됐다"며 앞다퉈 의미를 부여했다.

외신, "독재자의 딸 대선 승리"...국내 언론과 다른 시각

그러나 국내 언론들의 헤드라인 제목, 특집기사, 화보 등의 편집과는 달리 주요 외신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달랐다. 이날 주요 외신들은 일제히 "독재자의 딸이 한국의 대통령이 됐다"고 보도했다. 국내 언론들이 '사상 첫 여성 대통령', 또는 '첫 부녀 대통령', '34년 만의 청와대 행'을 강조한 날, 외신들은 '독재자의 딸'을 대통령으로 만든 한국사회에 크게 주목했다.

더욱 눈여겨 볼 대목은 외신들은 새누리당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독재자의 딸'을 끝까지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날 <뉴욕타임스>는 서울발 기사를 내보내면서 '독재자(dictator)의 딸이 한국 대선에서 승리했다'는 제목을 뽑았다. 아울러 기사는 "한국의 최장기간 독재자의 딸(the daughter of South Korea's longest-ruling dictator)이 대선에서 승리해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됐다"고 전했다. <LA타임스>도 이날 "1960년대와 1970년대 한국을 지배했던 독재자(strongman)의 딸이 양분되고 치열하게 전개된 대선에서 승리해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됐다"고 보도했다.

통신사들 중 AFP 통신은 이날 새벽 "한국, 독재자의 딸 첫 여성 대통령으로 선출"이란 제목의 기사를, 또 로이터 통신은 "전직 군사 통치자(former military ruler)의 딸이 한국대선에서 승리했다"고 전했다.

<타임>지 아시아판 최신호 표지.
 <타임>지 아시아판 최신호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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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보도에 따르면 새누리당이 외신기자들에게 '독재자의 딸'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말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로 표현할 것을 요청했지만, 외신들은 '첫 여성 대통령' 앞에 '독재자의 딸'을 강조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13일(현지시간) "박 전 대통령은 군대로 권력을 잡았다"며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박 전 대통령을 독재자라고 규정한다"고 보도했었다.

더 우스꽝스러운 일은 투표 하루 전 국내 기간뉴스통신사 내에서 발생했다. <연합뉴스> 노조는 대선을 하루 앞둔 18일 정치부장 불신임 안건을 투표로 가결시켰다. 이명조 정치부장 불신임 투표에서 <연합뉴스> 편집국 기자 172명 중 136명(79%)이 참여해 128명이 불신임에 찬성했다.

내막을 들여다보면 부끄럽기 짝이 없다. 지난 7일 미국 주간지 <타임>아시아판이 보도한 'The strongman's daughter' 관련 내용을 <연합뉴스>가 전하면서 'strongman'을 '실력자'로 해석한 기사가 송고되면서 정치부장에 대한 불신이 촉발돼 급기야 불신임안이 통과된 것이다. 연합뉴스는 <타임> 표지의 'The strongman's daughter' 중 'strongman'을 새누리당 보도자료 그대로 '실력자'라고 해석해 보도한 것이다.

TV토론회 '실종'..."방송보도 전광판 뉴스에 머물렀다"

이번 18대 대선은 여러가지 기록을 남겼다. 특히 과거 어느 대선보다 정책대결이 부족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유권자들에게 정책과 공약, 비전과 소신, 철학 등을 좀 더 가까이 다가가 알릴 수 있는 TV토론회가 역대 대선 가운데 가장 적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주관한 4회(1회는 군소후보 토론)의 법정토론을 제외한 TV 토론회는 찾아볼 수 없었다. 선거가 양자 대결구도였음에도 양자 토론회는 이정희 후보가 16일 사퇴해 겨우 성사됐다. 이는 특히 여당 후보의 기피현상과 방송사들의 소극적인 행태가 한데 어우러진 결과다. 결국 TV토론을 기피한 후보가 당선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실제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야권 후보 단일화 후보 이전엔 후보 단일화가 안 됐다는 이유로, 이후엔 이미 잡힌 일정이 빡빡하다는 이유로 방송사들이 요청한 TV토론을 모두 거부했다.

방송사들도 이전과 비교해 적극적이지 않았다. 이전에는 후보자 간 토론회를 컨소시엄까지 구성해 적극 제안하고 기회를 만들어왔던 방송사들이 이번에는 토론회를 만들려는 노력도 적었을 뿐 아니라, 토론회를 피하는 후보에 대해 비판도 거의 하지 않았다. 되레 토론회를 피하는 후보의 눈치를 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여기에다 이번 18대 대선 과정에서 보여준 언론의 보도 행태는 역대 최악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줄곧 집권세력에 우호적인 보도태도를 보여 왔던 보수신문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지상파 방송사들까지 선거과정에서 여당 후보에게 유리한 보도를 수미일관되게 내보냈다.

전국언론노조 산하 대선공정보도실천위원회의 의뢰를 받아 선거기간 내내 KBS·MBC·SBS·YTN·OBS 등 지상파 메인뉴스를 분석한 최영재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2012년 대선에서 방송보도는 흉내만 내는 '전광판 뉴스'에 머물렀다"고 총평할 정도다. 의미 있는 이슈와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하는 데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상당수 뉴스들이 사실 왜곡과 편파 편집으로 불공정 보도의 사례를 남겼다.

MBC '최악의 선거보도' 10회 중 7회 선정

전국언론노조 산하 대선공정보도실천위원회가 대선 기간 진행한 '트위터·누리꾼 선정 최악의 대선보도' 마지막 공모에서 12월12일 MBC 뉴스데스크 '대선 막바지 흑색선전 공방'이 최악의 보도로 선정됐다.
▲ 12월 14~16일 최악의 대선보도 투표 결과 전국언론노조 산하 대선공정보도실천위원회가 대선 기간 진행한 '트위터·누리꾼 선정 최악의 대선보도' 마지막 공모에서 12월12일 MBC 뉴스데스크 '대선 막바지 흑색선전 공방'이 최악의 보도로 선정됐다.
ⓒ 전국언론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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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언론노조가 지난 17일 발표한 대선공정보도 실천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0월 17일부터 12월 12일 사이 KBS·MBC·SBS 등 지상파 방송 3사와 YTN 메인뉴스의 대선보도는 하루 평균 3건, 시간으로 계산해보면 4분 30초에 그쳤다. 그나마 후보의 동선을 중계하거나(35.9%) 캠프 간 갈등과 공방을 단순 전달하는(27.8%) 형식이 대부분이었다. 보도유형을 봐도 사실 전달보도(66.4%)와 갈등공방 중계보도(24.1%)가 90% 이상이었다. 의혹 등에 대한 검증(1.8%)과 비판·해설보도(2.7%), 취재를 통한 문제제기(1.5%)는 사실상 찾아보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NLL(북방한계선), 정수장학회 논란 등 대선 정국을 뒤흔든 현안을 둘러싼 '주장'들을 검증하거나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고 '기계적 균형'만 고집하는 바람에 결과적으로 잘못된 주장이나 정치적 공세를 두둔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오죽했으면 방송사들의 일련의 대선보도를 놓고 '전광판 뉴스'라는 혹평까지 쏟아졌을까.

특히 이번 18대 대선기간 불공정 보도로 가장 많이 거론된 곳은 MBC다. 언론노조 산하 대선공정보도실천위원회가 대선기간 진행한 '트위터·누리꾼 선정 최악의 대선보도' 마지막 공모에서도 12월 12일 MBC 뉴스데스크 '대선 막바지 흑색선전 공방'이 최악의 보도로 선정됐다. 이로써 MBC는 총 10번의 공모 중 7번이나 '최악의 보도'에 선정되는 불명예를 안았다.

KBS기자들 제작거부 결의...왜?

선거 초반부터 편파성 시비로 얼룩진 KBS <뉴스9>도 선거 막판 국정원 개입 의혹 소식을 전하면서 제기된 경찰의 수사문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대선과 관련된 댓글을 게재한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경찰의 발표를 전한 뒤 서로를 비난하는 양당의 입장을 붙이는 식이었다.

이밖에도 KBS <뉴스9>은 박근혜 후보에게 불리한 사안은 언급하지 않거나 축소해 비판을 사기도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13일 '선관위, 새누리 불법 선거운동 혐의 조사' 단독기사 축소 보도다.  KBS <뉴스9>는 이 단독 보도를 15번째로 배치해 새누리당에게 불리한 보도를 의도적으로 뒷쪽에 배치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특히 KBS는 불공정 보도에 저항한 내부 구성원들의 집단행동이 나타나기도 했다. KBS기자협회는 대선 후보를 검증한 KBS 특집 프로그램 <2012, 대선후보를 말한다>가 편파적이라는 이사들의 지적을 받고 방송 책임자가 사의를 표명하자 95.1%의 찬성률로 제작거부를 결의하기도 했다.

대선후보진실검증단 기자 일동은 6일 성명을 통해 "이사회와 사장은 정치적인 충성심에 눈이 멀어 공영방송을 망치고 KBS 기자정신과 저널리즘을 모욕하는 짓을 당장 멈춰라"고 요구했다.

앞으로 5년, 언론 어떤 모습일까  

이번 대선에서 국내 언론들은 공정한 미디어 선거를 실종시키는 것을 넘어 특정 정파의 승리를 위한 액션 플랜의 하나로 전락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선 이후 이런 보도 양태가 더 노골화되지 않을까하는 우려가 벌써부터 제기되고 있다.

언론자유는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가장 후퇴한 분야 가운데 하나다. 언론노조에 따르면 이명박 정권 하에서 '낙하산 사장 취임 반대', '편집권 독립' 등 언론자유를 주장하다 해직된 언론인은 19명, 권고사직 조치를 받은 언론인은 2명, 정직 처분을 받은 언론인은 132명 등 450명의 언론인이 징계를 당했다. 1975년 동아자유언론투쟁위원회 위원 대량 해직이나 1980년 언론통폐합 때의 대량 해직 이후 최대다.

'국경없는 기자회'(RSF)가 발표한 한국의 언론자유지수에서도 언론환경이 얼마나 척박한지 잘 보여준다. 2005년 34위, 2006년 31위, 2007년 39위로 30위권을 유지하다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인 2008년 47위, 2009년 69위, 2010년 42위, 2011년 44위를 기록했다.

국민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와 궤를 함께 해 온 집권여당 후보를 대통령으로 당선시켰다. 투표과정에서 나타난 세대·지역 간 분열은 한국사회가 앞으로 5년 동안 감내하며 풀어나가야 할 무거운 숙명이자 숙제다. 5년 후 민주주의 척도인 언론의 시계는 과연 어디쯤에 머물러 있을지 궁금하다.


태그:#박근혜 당선, #독재자의 딸, #첫 여성 대통령, #첫 부녀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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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패배하고,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의 빛과 공기가 존재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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