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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은 펑펑 내리고 마을은 인적 끊겨 고요하기만 하다.
▲ 눈 내리는 진뫼마을 눈은 펑펑 내리고 마을은 인적 끊겨 고요하기만 하다.
ⓒ 김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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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 끝내면 주말마다 찾아가던 고향 진뫼마을 집도 문을 닫는다. 수도꼭지며 문이란 문은 다 폐쇄하고 보일러에도 부동액을 넣고 전기까지 차단시켜 놓아 그야말로 고향 집은 '겨울 동안거'에 접어든다.

12월 8일 아침. 내가 살고 있는 광양 땅에 눈이 펑펑 내리기 시작한다. 겨울철 윗쪽 지방은 눈이 내리지만 내가 사는 곳은 날씨가 포근해 비로 변하기 일쑤다. 그런데 여기가 이렇게 많은 눈이 내리니 '내 고향 진뫼마을에는 눈이 얼마나 내릴까' 생각하다가 갑자기 무릎을 '탁' 치며 아내에게 어서 고향 갈 준비를 하자고 했다.

"아이고메! 부엌에 있는 수도꼭지를 안 잠그고 와서 어쩐데아. 깜박 히부렀네. 얼어 터지기 전에 얼릉 가세!"

몇 년 전, 강바람 매섭게 몰아치던 날 설 쇠러 갔다가 거실 수도꼭지가 터져 있어 방바닥은 완전 빙상장이 되어 하루 종일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얼음 깨내던 생각에 고향 가는 길을 재촉했다.

멀리 이태씨가 쓴 소설 <남부군>의 전반부 무대였던 회문산이 보이고, 강물 돌아 흐르는 곳 위에 고향 진뫼마을이 보인다.
▲ 회문산과 진뫼마을 멀리 이태씨가 쓴 소설 <남부군>의 전반부 무대였던 회문산이 보이고, 강물 돌아 흐르는 곳 위에 고향 진뫼마을이 보인다.
ⓒ 김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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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광양에서 전북 임실 진뫼마을까지 달리는 동안 북쪽으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눈보라가 거세게 휘몰아치고 있다. 며칠 전에 내린 눈이 산하에 그대로 쌓여 있어 온 대지는 더욱 순백의 설원으로 변해 있다. 아내는 평소 차만 탔다 하면 곧바로 잠이 들곤 하는데 눈을 한곳에 집중시키지 못하고 두리번거린다.

"와! 눈발 참말로 죽여줘부네. 근래 요렇게 눈 많이 온 적이 없어, 잉! 앞이 잘 안 보잉게 운전 조심히서 헛쇼. 저기 저 산 좀 봐봐. 완전 한 폭의 그림이고만."

아내는 고향 집에 도착할 때까지 혼자 보기 아깝다며 이 산 저 산 가리키며 보라고 손짓한다. 천천히 달리다보니 운전을 하며 눈 내리는 산하를 슬근슬쩍 바라보니 정말 환상적인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아내는 조수석 보관함 위쪽에 두 다리를 올려놓고 누워 콧노래를 부르고 있다.

"와! 김장 끝내고 수도꼭지 안 잠그고 오기 참 잘 했네. 그라니먼 안방에서 하루 종일 리모컨이나 요리조리 돌림선 지낼 턴디 밖에 나옹게 참말로 끝내줘불고만. 당신 덕분에 오늘 콧바람 너무 야물게 쐬아부러서 터져불게 생겼소."

장독대에 '눈버섯'이 크게도 열렸다.
▲ 고향집 장독대 장독대에 '눈버섯'이 크게도 열렸다.
ⓒ 김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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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간단한 과일과 우유 한 잔씩 마시고 와서 그런지 배가 고파 우린 순창읍에 도착해 시장통에 있는 국밥집으로 들어갔다. 많은 눈이 퍼붓고 있어 그런지 식당 안에는 손님이 한분도 없었다. 아내는 국물이 펄펄 끓어 오르는 국밥을 보고는 허기진 배를 움츠리더니 "가애 아빠! 막걸리 딱, 한 병만 마시고 갑시다" 한다.

운전을 하는 나는 막걸리 잔에 바닥만 채우고 눈 오는 날의 황홀한 여행을 위해 둘이서 건배를 외쳤다. 그리고 막걸리 몇 병 사들고 고향집으로 향했다.

마을 앞에 있는 모정에 주차를 하고 있는데 정호네 어머니가 '아래겉테'에서 회관을 향에 나오고 계신다.

"음마! 눈이 요로케 겁나게 니린디 차를 어치게 끌고 왔데아. 어지간헌 일로는 요론 날에는 절대 댕기지 마, 잉! 미끄러서 큰일 나."

부모님이 묻어 놓고 드시던 곳에 나는 다시 김장독을 묻었다.
▲ 싱건지와 김장김치 부모님이 묻어 놓고 드시던 곳에 나는 다시 김장독을 묻었다.
ⓒ 김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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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예. 김장 끝내고 부엌에 있는 수도꼭지를 안 잠구고 가서 터져불먼 큰일 난 게 잠그로 왔고만요. 눈이 너무 많이 니린 게 얼릉 일만 보고 도망쳐야겄고만이요. 근디 요로케 춘디 어디를 갈라고 나오요?"

"아, 나도 아들네 집에 갔다가 엊그제 왔어. 근디 갔다옹게 강두레미서 달아다 묵는 물이 어디서 새분지 찾덜 못히서 시방 집집마다 밥 히묵을라먼 난리가 아니여. 물도 찔끔찔끔 나오제, 가을에 시작헌 회관 공사도 안 끝나서 하루 종일 집에만 있을랑게 심심히 죽겄어. 그리서 요로케 누구네 집으로 놀러를 한 번 가볼까 허고 나와 본것이여!"

정호네 어머니는 자식들 집에 가서 심심해 며칠 못 견디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겨울철이면 마을 사람들은 마을회관에 모여 김장김치와 쌀을 보관해 놓고 점심과 저녁까지 해 먹으며 하루 종일 항꾸네 모여 살기 때문에 그리워 다시 돌아온 것이다.

하루 종일 집에 홀로 있으니 너무 심심해 마실 나온 마을 어머니.
▲ 이웃 집에 놀러나 가볼까! 하루 종일 집에 홀로 있으니 너무 심심해 마실 나온 마을 어머니.
ⓒ 김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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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여기보다 지내기 좋은 곳은 없어. 근디 진작 다 끝나부렀을 공사가 아직도 안 끝나불고 조로케 내팽기쳐 놓고 뭣들허고 있다요. 모정에 내 놓은 이불이며 살림살이는 인자 눈이 쌓여부러서 냄새가 난 게 다 빨아야 헐턴디 이 엄동설한에 누가 빤데아. 참말로 까깝히부네."

마을회관은 신축할 때부터 단열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아 천장과 벽은 곰팡이가 피고 현관문은 뒤틀어져 잘 열리지 않아 겨울철이면 찬바람 솔솔 파고들어와 너무 추웠다. 노인네들만 사는 마을이어서 회관방 안에 화장실도 딸려 있지 않아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 정부에서 리모델링을 해 겨울철 생활하기 편하게 만들기 위해 올 가을에 지붕까지 개조하는 공사가 시작된 것이다.

금세 끝날 것 같은 리모델링은 가뭄에 콩 나듯 잠시 와서 일하다가 가버리곤 해서 좀처럼 공정은 진척이 되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이 실내공사를 하러 오는 사람들에게 "제발 춥기 전에 공사 좀 마쳐달라" 애원하건만 "전기공사 업자 선정이 늦어져 우리도 공사에 들어갈 수 없어 답답하다"고 말할 뿐이었다. 공사는 쉽게 진척되지 않고 방치 되어 모정에 끄집어 내 놓은 살림살이에는 기어이 하얀 눈이 쌓이고 말았다.

가을부터 시작한 리모델링 공사는 눈이 와도 그대로다.
▲ 마을회관 가을부터 시작한 리모델링 공사는 눈이 와도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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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회관은 봄부터 추수하는 가을까지는 거의 사용하지 않아 공사가 늦어져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러나 겨울철이면 다르다. 마을에는 어머니 홀로 사는 집이 대부분이어서 하루 종일 혼자 지내기는 너무 적적해 회관에 겨우내 모여 동고동락 하며 지내는데 공사가 이리도 더디게 진행이 되어서야 쓰겠냐 싶어 화가났다.

실내는 비가 와도 공사가 가능해 맘만 먹으면 며칠이면 끝날 공사가 눈 내리는 겨울철이 되어도 다 끝나지를 않으니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리도 지연이 되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이젠 눈이 와서 공사를 못한다는 소리나 하지 않을까 싶어 가슴 조려올 뿐이다.

공사를 시행하는 관청 담당자가 조금만 신경을 쓰면 마을 노인들이 저렇게 이 골목을 저 골목 기웃거리지는 않을 텐데 안타깝기만 하다. 부부간에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사는 집은 그래도 덜 적적할 텐데 홀로 사는 어머니들은 방 안에 갇혀 얼마나 답답할까?

그러니 저렇게 골목을 기웃거리고, 회관이 언제 고쳐질런지 방안을 들여다보면서 들락거리고 있는 게 아닌가. 다른 집에 놀러 가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계속 갈 수는 없어 마을 사람들은 얼마나 이웃들이 보고 싶고 그리울까.

개 한 마리 돌아다니지 않는 마을엔 발자국 끊겨 하얀 눈만 소복소복 쌓여만 가고 이따금씩 불어오는 바람소리만이 정적을 깨우고 간다. 하염없이 눈은 펑펑 내리고 강으로 뛰어든 눈발은 강물이 되어 저리소산을 감싸 안고 남으로 떠나고 있다.

강물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니 마을회관 앞에 있는 우리 고추밭 가장자리에 있는 뽕나무 가지 위에 참새 떼들 놀라와 짹짹거리고 있다.

마을 앞에 있는 모정에 회관에서 나온 살림살이들이 눈에 덮여있다.
▲ 마을 앞에 있는 모정 마을 앞에 있는 모정에 회관에서 나온 살림살이들이 눈에 덮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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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저 참새들도 겨울철이면 심심히서 저렇게 모여 함께 노는데, 울 어머니 아버지들은 도란거리며 놀던 회관방이 얼마나 그리울까.'

아내는 추운지 따뜻한 커피 한잔 마시고 싶다며 아랫집 점순이네 집에 들어가 뜨건 물을 끓여 달라고 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를 들고 나온다.

"가애 아빠! 현호네 엄마 전주 안 가고 집에 계신데. 오전에 심심허다고 점순이네 집에 다녀가셨다고 허고만."

윗목에 둔 물이 꽁꽁 얼정도로 춥던 흙집에도 고드름이 열리고.
▲ 고드름 윗목에 둔 물이 꽁꽁 얼정도로 춥던 흙집에도 고드름이 열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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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막걸리를 들고 '윗겉테' 현호네 집으로 갔다. 깨복쟁이 친구인 현호네 어머니는 전주에서 십여 년 넘게 지내다 지난해 봄부터 다시 고향 집으로 돌아와 지내고 계신다. 그래서 주말이면 어머니께 종종 막걸리 한두 병씩 사다 드리곤 했다.

1990년 대 중반, 호미를 놓고 전주 딸내미 집로 떠나가 전까지 명절이면 밤새도록 술상을 차려주던 어머니였다. 그 고마운 마음 잊지 못해 종종 부침개에 막걸리 받아들고 함께 한 잔씩 들이키며 진뫼에서 태어나 한 평생 진뫼에서 살아온 이야기를 섬진강 오백리 길보다 더 길게 풀어내곤 한다.

"아이고메! 어치게 왔데아, 응! 중전 나가는 길이 미끄러워 차가 한 대도 안 댕긴다고 허도만 왠만히서는 요럴 땐 댕기지마, 잉! 근디 뭐드로 또 막걸리를 받아 왔어. 지난번 내가 배까테(밖에) 일보로 나갔다 들어옹게 문 앞에 뭔 술병이 턱허니 놔져 있더라고. 그리서 '또 도수가 갔다 놨는갑다' 허고 세운이네 어메랑 택수네 아부지랑 함께 마싯게 나눠 마셨고만."

"하루 종일 텔레비만 봉게 심심허제라우. 회관도 저렇게 고치덜 안 허고 있응게 겁나게 심심허고. 방금 점순이네 집에 강게 심심히서 오전에 놀러 왔다갔다고 허데요."

징검다리 위에도 하얀 눈이 쌓이고.
▲ 마을 앞 징검다리 징검다리 위에도 하얀 눈이 쌓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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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생활 터전으로 돌아온 나는 마을회관 리모델링을 담당하는 관청에 전화를 했다.

"공사를 시행하는 업체에다 얼릉 마무리 허라고 계속 독촉을 허고 있으니 쫌만 참고 기다리세요. 하여간 마을 어르신들께 불편을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자세한 건 업체 책임자에게 선생님께 전화를 걸어서 자세히 설명하도록 할게요."

공사업체 담당 책임자는 "공사가 늦어져 정말 죄송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이번 주 일요일까지는 끝내서 마을사람들 얼굴 보도록 할 테니 시간을 좀 달라" 한다.

쇠죽방에 모여 놀던 아이들도 떠나고, 외양간에 큰 눈을 깜박거리던 소도 떠나고...
▲ 메주달린 정호네 집 쇠죽방에 모여 놀던 아이들도 떠나고, 외양간에 큰 눈을 깜박거리던 소도 떠나고...
ⓒ 김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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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났지만 죄송하다는 말을 연방 해대니 '그쪽도 뭔가 사정이 있어서 그랬겠지' 이해를 하며 이번 주까지 끝내준다는 말을 믿고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전화를 끓고 나니 공사 담당자 말대로 '일주일도 안 걸려 끝낼 공사'를 저리도 질질 끄는 이유가 뭔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다음 날 마을에 전화를 해보니 공사가 재개되어 진행 중이란다. 약속대로 일요일 날이면 마을 회관 방에 왁자지껄 부모님들 웃음소리 들려올 것 같아 막걸리와 안주는 뭐를 사갈 것인지 행복한 고민에 빠지는 한 주일이 지나가고 있다.

눈 그친 마을은 강과 산이 어울려 한 폭의 그림을 그려놓았다.
▲ 진뫼마을과 섬진강 눈 그친 마을은 강과 산이 어울려 한 폭의 그림을 그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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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도수 기자는 주말이면 가족들과 함께 고향마을로 돌아가 밭농사를 짓고 있고 전라도닷컴(http://www.jeonlado.com/v2/)에서 고향 이야기를 모은 <섬진강 푸른물에 징검다리>란 산문집을 내기도 했습니다.



태그:#김도수, #섬진강, #진뫼마을, #싱건지, #동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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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정겹고 즐거워 가입 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염증나는 정치 소식부터 시골에 염소새끼 몇 마리 낳았다는 소소한 이야기까지 모두 다뤄줘 어떤 매체보다 매력이 철철 넘칩니다. 살아가는 제 주변 사람들 이야기 쓰려고 가입하게 되었고 앞으로 가슴 적시는 따스한 기사 띄우도록 노력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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