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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의 기점으로 기억하는1987년에 한 사회복지시설이 폐쇄됐다. 75년 내무부의 '부랑자처리지침'에 따라 만들어졌던 형제복지원이다. 9살(84년)에 끌려가 3년간 '지옥'을 경험한 한종선씨는 올해부터 국회 앞 1인시위에 나섰고, 그런 그를 문화연구자 전규찬과 인권활동가 박래군이 만나 그의 증언을 기록해 최근 <살아남은 아이>(문주출판사)를 펴냈다. 서평을 보내온 이영남 전 국가기록원 학예연구관은 "이 책은 1987년을 다르게 보는 방법을 제공한다"고 평가했다. <편집자주>   

이것은 과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말하는 것이며, 어떻게 죽었는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말하는 것이다. 이 책은 생존자 수기가 아니라 조영래-전태일의 역사처럼 살아남은 자, 살아왔던 사람들이 함께 쓴 기록이다. 현재를 말하는 책이며,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말하는 기록이며, 고통 속에서 더욱 빛나는 우애가 자락에 깔린 '탈시설의 역사'이기에, 우리는 이 책을 읽어야 한다.

'사회정화' 프레임에서 박정희-전두환 그리고 우리를 보라

형제복지원사건을 다시 기록한 <살아남은 아이>.
 형제복지원사건을 다시 기록한 <살아남은 아이>.
ⓒ 문주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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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지 못하는 과거는 반복된다는 경고보다도 무서운 것이 있다. 그것은 현재를 말하지 못하는 사람은 과거가 무엇인지조차 말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 책은, 역사란 과거가 아니라 현재를 기억하는 것임을 매우 설득력있게 보여준다.

책의 공저자 중 한 사람인 전규찬 교수는 자평하기를 이 책은 누군가, 그러니까 '내가 아닌 과거의 누군가'가 지옥-시설에 갇혀서 고통을 당한 기록이 아님을 누누이 강조한다.

부산 형제복지원 생존자이자 책의 공저자 중 한 사람인 한종선도 이런 점을 강조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제일 간단한 것은 이 일은 나와 상관없다라는 인식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이건 한종선이라는 사람의 개인적 문제이겠지만,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당할 수 있다. 아직도 25년동안이나 언론매체나 국민들이 이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해 가만히 있었다는 것이 충격으로 다가온다. 죽을 때까지 해볼 거다."

1975년 당시 내무부에서는 '부랑자처리지침'을 만들었다. 마치 푸코의 <광기의 역사>에 등장하는 것처럼, '사회를 불순하게 하는 자들'이 부랑자로 갇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1980년대에 전두환이 '부랑자 처리를 통해 사회를 정화하라'는 특별지시를 내린 이후로 부산 형제복지원 같은 감금시설이 활발발해졌다. 국가 예산이 막대하게 들어가기 시작했고, 국가권력의 상시적 비호가 자행되었다. 사람들의 '사회적 위생관념'도 있었다. 그리고 일부 문제 있는 시설이 문제이지 사회복지시설은 기본적으로 정당하다는, 그러면 무슨 대안이 있느냐는 주류담론도 견고했다. 이런 방식으로 '시설'은 우리 사회를 유지하는 핵심기반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어쩌면 전두환을 볼 때 우리가 보아야 하는 것은 삼청교육대라는 어떤 특정한 사건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사회정화'라는 더 근원적인 프레임에서 박정희-전두환과 우리 자신을 보아야 하지 않을까? 미셸 푸코의 지적처럼, 우리는 '합리적으로 운영되는 시설'이라는 더 세련된 감시와 처벌 속에서 살고 있는건 아닌지. 지금이야 사회정화라는 말을 함부로 쓰지 않는다. 그러나 그 말을 대체한 세련된 말들은 지금 우리 곁에서 당연한 관념으로 자리를 잡고 있을 것이다.

형제복지원에 끌려갔던 한종선씨가 그린 그림(1)
 형제복지원에 끌려갔던 한종선씨가 그린 그림(1)
ⓒ 문주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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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복지원에 끌려갔던 한종선씨가 그린 그림(2)
 형제복지원에 끌려갔던 한종선씨가 그린 그림(2)
ⓒ 문주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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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한종선의 삶을 기록으로 안 남겨... '탈시설' 역사를 써야

이 책은 부산형제복지원 같은 시설에서 죽거나, 고문당하거나, 강제노역을 하거나, 구타를 당하거나, 살아남은 자의 자기기록이다. 책을 읽기가 참 어려웠다. 영화 <도가니>를 제대로 볼 수 없었던 것이나, 영화 <남영동 1985>를 볼 수 없었던 것이나, <의자놀이>를 제대로 읽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다.

형제복지원 내부의 잔인하고 잔혹한 폭력장면를 접한다는 것이 우선은 공포스러웠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더 공포스러웠던 것은 '그 이후 생존자의 삶'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부산 형제복지원은 1987년 당시 사회문제화되어 시설이 폐쇄되었고, 시설거주자들은 다른 시설로 분산배치되었다. 또는 다시 부산역으로, 부산의 거리로…. 그렇게 사회로 나갔다.

당시 한종선은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 한 수녀원으로 보내졌다. 한종선의 삶은 그 곳에서 다시 시작되었다. 이제는 극단적인 구타, 감금 등의 비인간적인 처사는 없었다. 그러나 한종선은 사실상 제2의 시설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누구도 그와 함께 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시설폐쇄 이후' 한종선을 까맣게 잊고 있었고, 심지어 자기 이익을 위해 이용하고 있었다. 책을 읽다보면 이런 점이 읽힌다. 그 점이 힘들지만, 그래도 우리는 이 책을 꼭 읽어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를 대면하는 것이기 때문이며, 대면하지 않으면 변화를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참 기록을 남기지 않는다. 개인이든, 단체이든, 국가이든, 매우 철저하게 기록을 남기지 않는 문화를 당연시 한다. 꽤 오랜 세월 그렇게 살아서 기록을 남겨야 한다고 하면 새삼스럽게 왜 이제와서 하는 반응을 보인다. 그러나 기록이 없으면 역사도 없다. 특히 타자의 삶을 사는 이들에게는 자기기록을 남긴다는 것은 그 자체로 자기존재를 확인하는 길이다. 동일자는 타자를 기록하지 않는다. 국가는 한종선의 삶을 기록으로 남기지 않는다. 대신 한종선을 관리한 기록만 남길 뿐이다. 반면 한종선은 기록을 남겼다. 이 점이 참 중요하다.

타자의 현장기록은 언제나 역사의 방향을 새롭게 틀었다. 전태일 평전, 남영동 1985, 도가니, 의자놀이, 살아남은 아이…. 이런 기록이 있어 우리는 우리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역사를 만들어왔다. 우리는 이제 탈시설의 역사를 써야 한다. 사회복지라는 미명으로 시설을 합리적으로 운영하면서 확장해 나가야 한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것보다는 그런 섬찟한 감시와 처벌을 근원적으로 대면하고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살아남은 아이>는 이런 점을 우리에게 말해준다.

올해부터 국회 앞 1인시위를 벌였던 한종선씨.
 올해부터 국회 앞 1인시위를 벌였던 한종선씨.
ⓒ 문주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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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서평을 보내온 이영남 전 국가기록원 학예연구관은 현재 풀무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며 임상역사가로 활동하고 있다.



살아남은 아이 - 개정판, 우리는 어떻게 공모자가 되었나?

한종선.전규찬.박래군 지음, 이리(2014)


태그:#살아남은 아이, #형제복지원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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