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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영화공간-주안'에서 인천영상위원회(이하 영상위) 주최로 <남영동 1985> 상영회가 열렸다. <남영동 1985>는 고 김근태(보건복지부장관 역임)의 실화를 다룬 영화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았다. 이를 반영하듯, 사전 신청은 하루 만에 마감됐다. 이에 영상위는 이례적으로 상영관 하나를 추가로 마련했다.

상영이 끝난 후, 주연 배우로 출연한 박원상과 이경영 그리고 정지영 감독이 무대로 나와 관객들과 대화를 나눴다. 맹수진 영화평론가가 진행한 관객과의 대화는 한 시간 남짓 이어져 오후 10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웃음과 감동이 어우러진 관객과의 대화 내용을 정리했다.

배우 이경영, "진짜 가해자 된 것 같아 힘들어"

맹수진 "우선 세 분에게 관객들과 만난 소감을 듣고 싶습니다."
정지영 "영화를 보니 좀 아프시죠? 관객과 대화를 할 때마다 전 이 질문을 드립니다. 그러면 대부분 그렇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극장 밖에 나가셔서 다른 분들에게 '이 영화 보니 참 아프더라' 하면, 사람들이 영화를 보러 안 옵니다. (관객 웃음) 그러니 이 영화가 좋다고 생각하신다면, "아프지만 꼭 봐야해"라고 말씀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관객 박수))"

박원상 "오늘 눈이 많이 왔는데 이렇게 자리를 가득 채워주셔서 감사합니다. 특히 어린 학생들이 많이 눈에 띄네요. 감사합니다. 요즘 관객들을 자주 만나는데, 이렇게 오랜 기간 동안 관객을 만나고 다니는 건 처음입니다.

배울 것도 많고, 참 기분 좋고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조금 전 일산에서 무대 인사를 했는데, 거북이의 걸음처럼 느리게 가고 있지만, 행복하게 완주하고 싶다는 말씀을 드렸어요. 전 어린 친구들과 더 많이 만나서 영화로 소통하고 싶습니다. 이런 자리가 작지만 오래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경영 "'고문을 사랑한 남자' 이경영입니다. (관객 웃음) 이 영화는 아픈 영화입니다만, 상처에 새 살이 돋듯이, 지난 시간 애쓴 분들을 잊지 말자는 의미를 담은, 기억에 관한 영화라 생각합니다. 우연히 저와 사석에서 만난다면, 소주한 잔 청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도 정중히 올리겠습니다."

맹수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처음 봤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때 이경영이 관객을 향해서 '죄송합니다'라고 한 게 지금도 기억에 남습니다. 어떤 의미인지 꼭 한 번 직접 물어보고 싶었어요."

이경영 "갑자기 튀어나온 말인데, 아직까지 그 의미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냥 죄송했습니다. 원래 이런 영화를 만들 필요가 없는 세상이어야 하는데... 영화 속 인물을 연기한 제가 마치 가해자 같은 느낌이 들어 힘들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영화를 본 모든 분들의 심정을 제가 한 마디로 대변한 것은 아닌가 합니다. 우리가 누리는 민주적 삶이 많은 분들의 아픔과 피 위에 세워졌는데, 우리가 그걸 잊고 지내왔다는 반성도 포함되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정지영 "영혼까지 팔아 이룩한 민주주의, 소홀히 대한 것 아닌가"

 인천영상위원회에서 주최한 <남영동1985> 상영회에서 관객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이경영·박원상 배우와 정지영 감독.(왼쪽부터)
 인천영상위원회에서 주최한 <남영동1985> 상영회에서 관객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이경영·박원상 배우와 정지영 감독.(왼쪽부터)
ⓒ 영화공간 주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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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수진 "아까는 영화의 여운이 많이 남아 있었어요. 세 분 말씀을 들으니 이제 정신이 좀 드는 것 같습니다. 지금부터 질문을 받겠습니다.

질문 "이 영화가 왜 김근태씨가 살아 있을 때 나오지 않았는지 궁금합니다."
정지영 "원래는 고문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작년 김근태씨가 돌아가신 후 그분이 쓴 수기 '남영동'를 접하고서, 제가 생각해온 것을 김근태의 체험으로 표현해야겠다고 생각했죠. 마침 영화 개봉이 대선 시기와 맞물렸습니다. 솔직히 관객이 많이 들 거라 기대했는데, 그게 아니네요."

이경영 "('남영동 1985'를 상영하는) 상영관이 너무 적습니다.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한 것 아닐까 생각하는데요, 지금은 거짓을 말해야 방송이 힘을 갖는다고 하더군요. 그렇다면 우리 영화는 진실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상영관 수가 줄고 관객수가 떨어지는 것 아닐까요, 감독님? (관객 박수)"

정지영 "이 영화가 대선에 영향을 미쳤으면 좋겠다는 것은 제 바람입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만든 것은 아닙니다. 문제인, 안철수 후보가 이 영화를 함께 봤는데 그 자리에 박근혜 후보은 안 왔어요. 그래서 그 분의 소감을 듣지 못했습니다. 따로 봤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지금이라도 영화를 본 소감을 간접적으로라도 듣고 싶습니다."

질문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극 중 고문을 하면서 (가해자들이) 라디오를 듣는 장면에서 무척 화가 났는데, 굳이 그 장면을 넣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정지영 "남영동 수기를 보면 실제로 라디오 음악프로그램에서 나오는 소리가 김근태씨를 끊임없이 괴롭혔다고 나옵니다. 전 음악프로그램을 야구중계로 바꿨습니다. 음악은 그냥 일상적으로 들을 수 있지만, 야구중계는 특별히 '좋아하는 것'이잖아요. 나는 생사를 넘나드는데, 저 사람은 야구중계를 듣는다면 어떨까요? 화가 나셨다면 제 연출이 성공한 거네요."

맹수진 "난 고문을 마치 직접 받는 기분이었어요. 영화 속 김종태의 의지가 참 강하다는 생각도 했고요. 이 영화는 공감이나 연민의 영화가 아닌, 체험의 영화가 아닌가 싶어요."

정지영 "이 영화를 만든 심정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우선, 인간이 인간에게 가하는 고문은 지금도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어요. 우리가 직접 겪지 않고, 신문에 한 줄 나오는 걸 볼 분이지 전쟁이 일어나는 곳은 어디든 일어납니다. 비판적 안목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로, 이게 불과 20여 년 전 일인데 요즘 젊은 사람들이 잘 몰라요. 학교에서 현대사를 안 배우더군요.

많은 분들의 아픔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민주주의 혜택을 누리는 건데, 지난 5년 동안 민주주의가 훼손당하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었단 말이죠. 어른들이 침묵을 지켰잖아요. 저렇게 힘들게 얻어낸 것을... 영혼까지 파괴되면서 일으켜 낸 민주주의를 너무 소홀히 하지 않았나 이런 의문을 가져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하지만, 너무 의미만 있는 영화처럼 보일 수 있으니, 그냥 슬프고 감동적이다, 아프지만 들춰내 다시 봐야 할 우리 역사라고 생각해주시면 좋겠어요."

박원상 "연기하는 것도 죽을 만큼 힘든데, 실제는 어땠을까"

질문 "이 영화를 찍으면서 심정적으로 힘든 부분은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이경영 "이 영화는 다른 영화를 할 때와는 많이 달랐습니다. 리허설을 하면서 배우끼리 호흡을 맞추는데, 이 영화 중 특히 고문 장면은 리허설을 할 수 없었어요. 여러 번 반복할 수 없으니,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서, 실제처럼 할 수밖에 없어요. 순간적으로 박원상씨가 생명에 위협을 느낀 적도 있었는데, 우린 연기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해 계속 하기도 했고요. 아마 가해자와 피해자, 두 입장을 모두 지켜봐야했던 감독님이 가장 힘들지 않았을까 싶어요. 우리 모두 미치거나, 아니면 집단 최면에 빠져 이 작품을 끝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박원상 "영화가 실제 고문과 얼마나 근접할까를 가장 궁금해 하시던데, 고문에 대한 연기 노하우가 없었어요. (고문) 경험도 없잖아요. 몸으로 직접 해보는 수밖에 없었어요. 이경영씨는 끊임없이 제 상태를 체크해야 했고, 또 그걸 극 중 겉으로 드러내면 안 되는 이중의 어려움이 있었죠. 세트장에서 연기하는 것도 죽을 만큼 힘든데, 과거 남영동만이 아니라 우리가 몰랐던 여러 장소에서 고문 당한 많은 분들은 도대체 얼마나 힘들고 괴로웠을까요. 그 생각을 하면 답답하고 막막했어요. 이게 더 힘들었습니다."

이경영 "우리가 사실적으로 하지 않았다면, 고문 피해자들이 겪은 현실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어요. 전기고문 장면을 제외하고는 모든 고문 장면을 박원상씨가 직접 겪어냈습니다. 저는, 연기인데도 가해한다는 것 자체가 습성화된다는 걸 느꼈어요."

질문 "박원상씨는 가해자인 이경영씨를 원망한 적은 없었나요?"
박원상 "이경영씨는 제가 어렸을 때 우러러보던 분이에요. 그런 분과 호흡을 맞추는 것만으로도 설렜는데, 어느새 점점 미워지더군요. (관객 웃음) 그런데 촬영 중간에 이경영씨와 명계남씨가 끊임없이 농담을 하고, 객쩍은 소리를 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는데, 그게 굉장히 큰 힘이 됐어요. 고마움을 느낍니다."

질문 "영화 마지막에 실제 고문 겪은 사람들의 증언이 다큐멘터리처럼 나오는데, 어떤 의도인지 궁금합니다."
정지영 "처음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그 장면을 생각했습니다. 이 영화가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을 텐데, 그게 아니라는 걸 생생히 보여주고 싶었어요. 또 그런 증언없이 영화가 끝나면, '옛날에 김근태씨가 그런 일을 겪은 모양이구나'하고 그저 개인의 이야기로 관객이 받아들일 것 같았어요. 비단 한 사람만이 아닌 많은 사람이 박해받았다는 걸 표현하고 싶었죠."

맹수진 "예정된 시간이 다 되어 이제 마지막으로 한 말씀씩 듣고 자리를 정리해야겠네요."
정지영 "제가 마치 사회적으로 정의를 외치는 것처럼 보이는 모양입니다. 사회가 정의로워지면 어떤 영화를 만들거냐는 질문을 받기도 하는데, 어떻게 항상 사회가 정의로울 수 있을까요? 우리를 어렵게 하는 정권과 어렵지 않게 하는 정권이 있을 뿐이겠지요. 전 우리 사회의 아픈 구석을 들춰 관객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남영동 1985>보다는 훨씬 재밌는 영화를 만들 것 같아요."

박원상 "올해는 제게 잊지 못할 한 해가 될 겁니다. 연초에 '부러진 화살'로, 연말에 <남영동 1985>로 관객을 만났으니 복 많이 받은 한 해입니다.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작품 활동 열심히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이곳에서 어린 학생들을 많이 만나서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 (학생들을 바라보며) 종이로 된 책을 정말 많이 보셨으면 합니다. 저도 책 많이 읽겠습니다."

이경영 "영화 '뮤직박스'는 기억에 대한 영화입니다. 진실을 기억하자는 대사가 나오는데, <남영동 1985>는 과거를 기억하고, 상처를 보듬어주고, 치료하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젊은 친구들이 관심을 가져주니 참 대견하고, 우리 미래가 밝다는 생각을 합니다. 늦은 시간까지 자리를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눈길 조심히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부평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 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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