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철수 전 후보가 9일 오후 경기도 군포시 산본역 인근에서 '아름다운 동행' 유세를 펼치자, 수많은 인파가 쏠려 두 후보를 폰카에 담고 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철수 전 후보가 9일 오후 경기도 군포시 산본역 인근에서 '아름다운 동행' 유세를 펼치자, 수많은 인파가 쏠려 두 후보를 폰카에 담고 있다.
ⓒ 조재현

관련사진보기


"@hamsseo: 진짜 엄청납니다. 우와 "@jj_ki: 와우 RT @juche94: 산본 아주 난리 났습니다. 우리 애 대통령 얼굴 보여줄라다가 깔려 죽을 뻔 했음^^ pic.twitter.com/w2fLNli4"" 저는 오징어 될 뻔!"

9일 오후 2시 산본역 3번 출구가 바라다 보이는 역 광장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붐볐습니다. 원래 지하철 인근이 오가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딱 두 사람, 그들을 보기 위해 몰려든 인파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습니다.

"산본에 20년 넘게 살았지만 산본역 광장이 사람으로 꽉 찬 건 처음입니다. 군포 인구가 28만 명인데 이중 3천명 정도 모였다면 군포도 부산처럼 뒤집어졌다고 봐야죠. 하하하."

경기도 군포에 사는 한 40대 남성의 말입니다. 그는 두 아들을 데리고 산본역 광장에 섰습니다. 그는 문재인과 안철수 두 사람의 역사적인 만남을 자식들에게 보여주고자 현장에 나왔다고 말했습니다.

여중생들도 눈에 띄었습니다. 대여섯씩 무리를 지어 다니는 여중생들은 스마트폰을 꺼내 일제히 셔터를 눌러대면서 '안철수', '문재인'을 연호했습니다. 그들에게 이들은 '아이돌 스타'와 같은 것일까요?

날씨는 정말로 추웠습니다. 영하 13도, 올 겨울 가장 낮은 기온을 기록한 날이었습니다. 너무 추워서 장갑을 끼고 있다가 잠깐 벗고 오른손 검지로 트윗을 올리는 데 그 손가락에 통점이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추우니까, 아프더군요.

아이들의 손을 잡고 '문안DREAM' 보러 나온 엄마아빠들

안철수 전 후보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함께 9일 오후 경기도 군포시 산본역 인근에서 '아름다운 동행' 유세를 펼치고 있다. 서로 감싸안은 문 후보와 안 전 후보가 환호하는 시민들을 향해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안철수 전 후보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함께 9일 오후 경기도 군포시 산본역 인근에서 '아름다운 동행' 유세를 펼치고 있다. 서로 감싸안은 문 후보와 안 전 후보가 환호하는 시민들을 향해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주변을 둘러보니 온통 사람들의 물결이었습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 현장에 나와 있나? 착각할 정도로 젊은 부부들이 꽤 많았습니다. 날은 엄청나게 추웠지만 예닐곱 된 꼬마들을 데리고 나온 부모들은 문재인과 안철수 두 사람으로부터 무언가 듣고 싶어 하는 눈치였습니다.

민주당이 설치해둔 유세 차량에 연단도 마련돼 있었고 엠프도 빵빵했지만 두 사람은 높이 30cm 정도 되는 나무 디딤판에 올라 손을 흔들었습니다. 꽃다발을 흔들었고 붓뚜껑 모양의 트리장식을 한껏 들어 올렸습니다. 무어라 무어라 말은 했는데, 지름 30m 반경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는 정작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광장에 미처 발을 내딛지 못한 시민들은 인근 2~3층 카페로 올라가 창문을 열어젖히고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습니다. 문재인과 안철수, 두 사람을 향한 카메라는 모두 몇 개였을까요? 다 셀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카메라들이 '문안DREAM'을 보려고 줌인 했습니다.

인파는 몰려들었는데 정작 후보의 말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사람들은 답답해했습니다.

"뭐래요?"
"안 들려요."
"저쪽에 마이크 설치돼 있는데 왜 여기서?"

웅성웅성 댔습니다. 사람은 안 보여도 소리는 들려야지 하는 비판도 제기됐습니다. 그러나 안철수 전 후보는 지난 7일 문재인 후보와의 첫 번째 공동번개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사흘째 확성기를 쓰지 않고 육성으로 대화하면서 투표참여운동을 독려하고 있습니다.

이를 지켜본 한인섭 서울대 법대 교수는 9일 트위터에 "안철수 스탈은 정녕 새롭군요"라며 "선거운동이라 하면 쩌렁쩌렁 확성기, 로고송, 율동단, 막대기풍, 동원버스 이런 건대 그런 거 하나도 없이 '철수 온다 모이자'며 대화하고 웃고 사진 찍고"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부산 서면 롯데백화점 지하 분수대, 자갈치역 7번 출구, 부산역 광장, 서울 대학로와 코엑스, 그리고 수원역, 산본역, 범계역, 철산역 모두 비슷한 콘셉트로 진행됐습니다. 그러다보니 정치 유세의 새로운 장면이 연출되고 있습니다.

안철수 보려고 쪼그려 앉아 까치발까지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를 전폭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한 안철수 전 무소속 대선후보가 9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수원역광장에서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를 전폭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한 안철수 전 무소속 대선후보가 9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수원역광장에서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있다.
ⓒ 조재현

관련사진보기


자발적으로 쪼그려 앉아 조용히 경청하는 시민들이 생겨났고, 인간 마이크 '소리통'까지 나타났습니다. 앞줄에 앉은 사람들은 뒷줄을 배려하느라 쪼그려 앉았고, 뒷줄에 선 시민들도 두 사람의 얼굴을 보려고 까치발로 섰습니다. 안 보이는 사람들은 차라리 다른 장소를 선택해 나뭇가지에 매달려 수업을 듣는 <상록수>의 아이들처럼 창문에 매달렸습니다. 안철수 전 후보의 말을 따라 하는 '인간 메아리'도 나타났습니다.

안 전 후보와 동행하고 있는 송호창 전 공동선대본부장은 "안 전 후보님의 한 마디 한 마디 말을 열심히 따라해 주셔서 고마웠다"며 "인간 마이크 소리통 유세단이 새로운 문화를 만듭니다"라고 트위터에 올렸습니다.

선거 때만 되면 엠프 소리 때문에 시끄러워 일이 방해된다면서 짜증을 내던 시민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요? 지난해 10월 박원순 서울시장이 처음으로 도입했던 '작은 선거운동'이 안철수 전 후보의 문재인 후보 지원유세를 통해서도 관철되는 것일까요?

오랜 세월 정치권에 몸담았던 사람들은 이 같은 안 전 후보의 선거운동에 불편한 기색을 취합니다. 마이크가 없으면 안 전 후보 스스로도 불편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수많은 대중이 한꺼번에 모이는 장소에서 마이크조차 쓰지 않는 것은 오히려 유권자들의 불만을 자극할 수 있다고 걱정합니다.

그런데 현장에선 의외로 시민들이 재미있어 합니다. '키가 작아 슬프다'는 농담 섞인 푸념도 터뜨리면서 말이죠. 안철수식 새로운 정치는 새로운 '선거운동 문화'로 자리 잡는 분위기입니다. 큰 돈 들여 엠프를 설치하고 귀가 얼얼할 정도로 확성기를 틀지 않으면서도 조곤조곤 대화하는 콘셉트의 선거운동은 솔직히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처음 보는 기법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정치는 늘 거칠게 큰소리를 내야 하는 것으로 인식됐던 시민들에게 '정치에 대한 새로운 발상'을 하게 하는 순간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안 전 후보의 조용한 선거운동이 결국 판을 흔들기 시작한 것일까요?

조용한 선거운동이 판을 흔들기 시작했다

여러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후보가 맹렬한 기세로 추격하고 있다는 분석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어쩌면 내주 여론조사 금지기간이 시작되기 전 "부마항쟁 이후 처음으로 부산이 디비졌다"는 어느 60대 남성의 말처럼 전국이 '디비질 수도 있겠다'는 판단도 듭니다.

그 희망의 증거는 바로 '시민'으로부터 비롯됩니다. 안 전 후보는 이날 광명시 철산역에서 열린 문재인 후보 지원 유세에서 "여러분이 모두 안철수입니다"라고 말했는데, 이 말은 그저 빈 말이 아닌 것처럼 들립니다.

실제 <오마이TV>가 비상사태를 선포한 지난 6일, 전 세계 104개국에서 이를 시청하던 시민들이 스스로 '시민의병'을 자처하면서 '투표참여운동'에 스스로 나섰습니다. 인도에서는 무려 40시간을 운전해서 2000km를 달려 주권행사를 하는 시민도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이번 선거는 5년마다 되풀이되는 일상적인 선거와 다른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 현대사를 과거로 회귀할 것이냐 미래로 나아갈 것이냐를 결정짓는 '운명' 같은 선거입니다. 

1945년 해방 이후 친일과 친미, 군사독재 속에서 낡고 병든 한국정치의 일대 혁신이 필요하다고 느낀 우리 국민들이 마침내 스스로 '종이짱돌'을 들고 나선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그 거대한 변혁의 물결은 결국 쓰나미가 되어 '유신의 부활'을 막아낼 수 있을까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태그:#종이짱돌, #문재인, #유신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6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