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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탑사 공원에서 내려다보이는 황하와 난주 시내
 백탑사 공원에서 내려다보이는 황하와 난주 시내
ⓒ 박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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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령사를 보고 난 다음 우리 일행은 다시 난주 시내로 돌아왔다. 가욕관으로 가는 밤 기차를 기다리면서 난주 시내 관광에 나섰다.

난주는 황하의 상류에서 가장 큰 도시로 한나라 이후 서역으로 나가는 관문인 동시에 서역으로부터 침입해 오는 이민족을 막아내는 군사도시의 기능도 했던 도시이다.

시내 한가운데에는 황하가 유유히 흐르는데, 그 강변에 황하모친상이 있다. 1986년 조성된 것이라는데 많은 관광객이 이 조각상과 황하를 배경으로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다.

백탑공원 내의 백탑 전경
 백탑공원 내의 백탑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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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너머로 백탑산 공원이 보인다. 산 전체가 공원으로 꾸며진 곳인데 그 정상에 17미터의 7각8층탑인 백탑이 우뚝 솟아있다. 이 탑은 중국식과 인도식 불탑 형식이 절충된 것으로 칭기즈칸이 자신을 만나러 온 티베트 승려를 위로하기 위해 지은 것이라 한다.

백탑산 정상에 오르면 난주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황하의 도도함과 그 위로 펼쳐지는 현대식 건물이 묘한 조화를 이뤄내고 있다.

'천하웅관' 가욕관, 만일 이곳을 막지 못하면...

'천하웅관' 가욕관
 '천하웅관' 가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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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8일 일행은 밤 열차로 난주를 출발하여 가욕관(嘉峪關)으로 향했다. 무려 1천 킬로미터가 넘는 긴 여정으로 꼬박 8시간이 걸렸다. 침대칸에서 잠을 청했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또 아쉬움도 있었다. 바로 하서회랑(河西廻廊)이라는 실크로드 여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지형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열차는 우리가 잠들어 있는 사이에 고대 중국역사에서 한 장을 장식했던 현장을 통과하고 있었다.

하서회랑(혹은 하서주랑)은 동쪽은 오초령에서 시작해 서쪽은 옥문관에 이르며, 남산(기련산맥과 아미금산)과 북산(마종산, 합려산 및 용수산) 사이에 끼어 있는, 길이 약 1천 킬로미터에 너비 수km에서 100km에 이르는, 좁고 긴 평지이다. 복도 모양과 같이, 황하의 서쪽에 있다 하여 하서회랑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하서회랑은 난주에서 돈황까지 이어지는 긴 협곡이다. 이곳은 고대 중국에서 중원을 지배하는 왕조가 서역 쪽에서 몰려오는 이민족을 막아내는 전략 요충지였다. 만일 여기를 막지 못하면 바로 서안이 위협을 받았다.

그런 이유로 역대 중국 왕조는 이곳에 성벽을 쌓고 철옹성의 방어진을 구축했다. 우리가 향한 가욕관이 바로 그 역사의 현장이다. 만리장성의 서쪽 끝이자 중국에서 서역으로 나가는 관문, 그것이 가욕관인 것이다.

현재의 가욕관은 14세기 명대에 지은 것이다. 사막 한가운데 우뚝 솟아 있는 성곽은 말 그대로 천하웅관(天下雄關) 그 자체이다. 성채는 아름답고 장엄하다. 한눈에 하서회랑의 끝에 쌓은 장성의 한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서안방향에서 보았을 때 왼쪽은 기련산, 오른쪽은 마종산이고 그 사이에 장성이 쌓여 있음이 눈에 들어온다.

성루는 외성과 내성으로 분리되어 있다. 내성에는 옛날 관리와 귀족이 살았다고 하는데 들어가는 성문은 옹성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성문의 정문은 서역 방향과 서안 방향에 두 개가 설치되어 있는데 그 모양은 똑같다. 경내의 장성박물관에 들어가면 만리장성의 역사와 그 인근에서 출토된 각종 유물을 관람할 수 있다.

가욕관장성박물관
 가욕관장성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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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의 하이라이트 돈황

아무래도 이번 실크로드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돈황 방문이다. 실크로드가 한창 번성할 때 서역을 출입하는 이들은 일단 돈황을 들려 본격적인 서역행을 준비하고 이곳을 떠났다. 현재도 전 세계로부터 실크로드 여행을 위해 찾아오는 관광객의 핵심코스는 바로 이곳이다. 이곳의 관광 포인트는 크게 두 개이다. 막고굴로 대표되는 석굴예술과 명사산의 사막 절경을 감상하는 것이다.

가욕관에서 돈황에 들어가며 잠시 들린 유림석굴, 황량하기 그지없는 작은 협곡에 벌집 인공석굴이 조성되어 있다.
 가욕관에서 돈황에 들어가며 잠시 들린 유림석굴, 황량하기 그지없는 작은 협곡에 벌집 인공석굴이 조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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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일행은 가욕관을 거쳐 돈황으로 들어오면서 우선 막고굴의 자매 석굴이라고 할 수 있는 과주의 유림석굴을 둘러보았다. 이 석굴은 관광객이 그리 많이 찾지 않는 곳이다. 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곳을 찾았을 때도 관광객은 우리뿐이었다.

유림석굴의 이름은 석굴 앞의 계곡 가에 자라고 있는 유림(楡林)이라는 느릅나무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위진남북조 시기에 조성되어 청대에 이르기까지 조성되었고, 특히 당대에 번성하였다.

막고굴과 마찬가지로 석굴에서는 화려한 벽화예술을 만날 수 있다. 화풍 또한 막고굴과 유사하다. 모두 43개의 석굴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25굴이 대표적이다. 이 굴은 당나라 시기 이 지역을 다스린 조씨성의 귀족이 조성한 것으로 석굴에 들어가면 좌우에 공양주인 조씨와 그 부인의 초상벽화를 볼 수 있다. 석굴 내에서 사진 찍는 것을 엄격히 통제하기 때문에 아쉽게도 석굴 내부의 벽화를 사진으로 가져오지 못했다.


태그:#세계문명기행, #실크로드, #가욕관, #돈황, #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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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학교 로스쿨에서 인권법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30년 이상 법률가로 살아오면서(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 역임) 여러 인권분야를 개척해 왔습니다. 인권법을 심층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오랜 기간 인문, 사회, 과학, 문화, 예술 등 여러 분야의 명저들을 독서해 왔고 틈나는 대로 여행을 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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