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광주민주화운동' '민중항쟁' '5·18'

이 단어들이 의미하는 것은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전두환 군부독재에 맞서 민주화를 열망했던 광주시민들의 항쟁이다.

영화 <26년>은 이 역사적 사건으로부터 26년이 흐른 뒤 학살의 주범인 '그 사람'을 단죄하기 위해 조직폭력배 곽진배·국가대표 사격선수 심미진·경찰 권정혁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세 사람의 공통점은 5·18 민주화운동 희생자 2세들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들을 불러 모은 사람은 5·18 당시 계엄군이었던 보안업체 대기업 회장 김갑세과 비서 김주안이었다.

기존의 5·18관련 영화들에서는 계엄군의 학살과 그에 대항하는 광주시민들의 모습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이는 엄연한 사실이며, 그 고통을 실감나게 묘사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그런데 <26년>은 그런 장면을 애니메이션으로 대체했다. 이런 전개는 장단점을 내포할 수 있는데, 우선 단점으로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현장감을 떨어뜨리고 역사적 상징성의 감소를 가져올 수 있다.

5월의 아픈 역사를 애니메이션이라는 상대적으로 가벼운 전개 방식을 통한 전달은 만화에서 흔히 등장하는 폭력장면과의 차별성을 확보하기 어려우며 그 사건의 상징성에 제한을 가할 수 있다.

반면에 장점으로는 5·18이라는 사건을 대하는 우리들의 죄스러움과 폭력적 장면을 대할 때 느낄 수 있는 불편함을 희석시켜줌으로써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데 있다.

나아가서 이 작품이 추구하는 가장 큰 가치는 기존의 5·18관련 자료들이나 영상매체들은 5·18 당시의 진압 장면과 그에 저항하는 광주시민들의 투쟁 모습을 대비시키면서 거대 국가폭력에 대항하는 민중들의 행동이라는 큰 그림에서 이야기를 전개했다.

하지만, 어찌생각하면 5·18이라는 사건이 가장 슬프고 아픈 것은 그 이후 평범한 소시민들의 삶의 모습이다. 내 가족과 친구들이 무참히 학살당하는 장면을 목격하면서도 거기에 저항하지 못하고 가슴으로 아파해야 했던 수많은 사람들은 평생을 그 죄책감에 힘들어하면서 살아간다.

자신의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렸던 피해자는 계엄군에게서 그 소중함을 지키지 못한 자신의 무력감에 비난을 퍼붓는 피해자이자 가해자의 삶을 살아간다.

계엄군의 아픔도 생각해볼 문제다. 계엄군들이 광주를 진압하기 위해 준비했던 충정훈련은 군인들에게 혹독한 훈련으로 상대에 대한 적개심을 극대화시키는 준비 과정을 거친다. 더구나 군대라는 곳은 상명하복의 규율이 절대시 되는 곳이다.

당시 계엄군들은 상대에 대한 전투력이 최상의 상태에서 광주라는 곳에 도착했으며, 눈앞에 보이는 대상에 대한 공격이라는 명령을 받고 닥치는대로 자신의 임무를 수행한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1980년 5월에 자신들이 어떠한 일을 저질렀는지에 대해 각성하게 되면서 죄책감을 느끼는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의 삶을 살아간다.

광주시민들이나 계엄군이나 자신들이 가해자인듯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피해자인 그런 혼돈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이 영화는 여기에 주목한다. 아펐던 그 당시의 사실을 보여주는 것에서 나아가 이 사건과 깊은 관련이 있는 당사자들은 어떤 삶을 살아가는가. 이것을 들여다봐야 5·18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럼 그 학살의 주범은 누구란 말인가? 계엄군은 상급자에게 발포명령을 받았을 것이고, 영화에서는 그 주범을 '그 사람'으로 지칭하고 있다. 그 사람은 대통령에서 물러난 후로도 공권력과 사설경비원들의 보호를 받으며 제왕처럼 살아간다. 심지어는 개인적 운동을 위한 외출에서조차 교통신호를 조작하여 자신의 편의를 보장받는다. 또한 가끔씩 TV에 얼굴을 비추면서 훌륭한 전직 대통령의 모습으로 포장되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모습을 5·18 피해자들은 자신의 고단한 일상속에서 바라보며 울분을 토하기도 하고 그 당시의 아픔을 떠올리며 또다시 두려워하기도 한다. 그들에게 그 아픔은 과거였으며 현재이고 또다시 미래다. 하지만 '그 사람'에게 5·18은 과거에도 과거였고, 현재에도 과거이며, 미래에도 과거일 것이다. 심지어는 TV로 5·18 기념식을 보면서 발톱을 깎다가 살짝 베였는데도 연고를 바르고 밴드를 붙이지만 피해자들의 울부짖음에는 연고가 아니라 비웃음으로 일관한다.

'그 사람'을 처단하기 위해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여러가지 사건들이 일어나던 중 경찰 권정혁은 살인까지 생각하는 이 프로젝트에 거부감을 느끼며 결국은 프로젝트의 실체를 고발한다.

권정혁에게 중요한 것은 경찰이라는 자신의 위치를 지키며 성실히 살아가는 것. 자신 역시도 '그 사람'에 대한 적의를 품고 있음에도 말이다. 결국은 오늘을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그에 반해 조직폭력배 곽진배는 '그 사람'의 처단만이 이 아픔을 끊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그는 말한다. "생각하지마 생각하믄 져야"라고. 5·18 당시에도 이 항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최후까지 자신의 목숨을 바쳤던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과 항쟁의 중심 공간에 있지못한 죄책감으로 평생을 힘들어 했던 '5·18 최후의 수배자 윤한봉'(물론 윤한봉은 미국 망명 투쟁을 비롯해 평생 5·18정신의 계승을 위해 힘썼다)이 존재한다.

거대한 국가폭력앞에 저항하는 것은 엄청난 용기를 가져야 하며, 그 분들의 헌신에 감사해야 함은 당연하다. 하지만 엄혹한 역사의 흐름 앞에 인간이라는 나약한 존재로 인해 숨죽여야 했던 수많은 광주시민들 역시도 보듬어 드리고 감사해야 한다.
  
영화는 엔딩을 향해 달려가고 미진은 '그 사람'을 저격하기 위해 방아쇠를 당긴다. 그 저격이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는 모르겠다. 그에 앞서 우리는 그 저격의 의미를 살펴봐야 할 것이다. 피해자들은 몇십 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하루하루 아퍼하고 그리워하며 죄책감으로 고통을 호소하는데, 내란죄 및 반란죄 수괴 혐의로 실형을 살았던 '그 사람'은 대한민국 장교를 양성하는 육군사관학교의 사열을 받았고, 천문학적인 뇌물등의 혐의로 유죄판결과 법적환수 조치를 당했으나 전 재산을 29만 원이라고 밝히며 환수조치를 완료하지 않고 있다.

2000만 원 이상 벌금이나 추징금을 내지 않은 사람은 출국을 금지할 수 있는 출입국관리법에 따라 출국금지 대상인 29만 원의 '그 사람'은 외교관 여권을 발급 받아 해외를 다닌 사실도 있다. '엄정한 법 질서란 '법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엄정하게 대처할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그 대상의 지위 여하를 막론하고 공정하며 엄정해야 할 것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엄정한 법 질서를 강조했던 '그 사람'의 법 질서에 대한 엄정함에는 29만 원 만큼의 엄정함도 있어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울부짖고 주장해도 달라진 것 없는 아니 오히려 더 악화되는 현실 속에서 우리들이 더 이상 부끄럽고 아퍼하지 않기 위해서는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한다. 곽진배와 심미진과 권정혁 그리고 김갑세와 김주안의 이야기를...

5.18 민중항쟁 '피해자이자 가해자' '그 사람' <26년>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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