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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진 고시원의 모습. 성인 남성은 몸을 쭉 뻗고 자기도 불편해 보인다.
 노량진 고시원의 모습. 성인 남성은 몸을 쭉 뻗고 자기도 불편해 보인다.
ⓒ 고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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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김씨(25)는 첫 상경의 기억을 잊지 못한다. 미리 집을 알아보지 못한 탓에 그는 인터넷으로 집을 구했다. 월 40만 원에 아침, 저녁을 준다기에 선택한 하숙집 방은 고시원보다 좁았다.

이불 등 짐을 잔뜩 들고 함께 올라온 엄마는 한숨을 내쉬었다. 엄마는 "1년만 잘 버텨라"라고 말했다. 하지만 1년 뒤에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밥값 등 용돈이 30만 원 넘게 나오자 그는 방값을 줄이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선택한 게 '잠만 자는 방'이었다.

하숙집보다 좁은 건 당연했고, 샤워기 하나를 12명이 함께 썼다. 세면대는 없었고, 세탁기도 하나였다. 창문은 옆 건물에 막혀 있어 24시간 빛을 보지 못했다. 인간다운 생활이 불가능한, 말 그대로 '잠만 자는 방'이었다.

창문 없는 방의 '비밀의 문'

2012년에는 얼마나 상황이 달라졌을까. 서울 동작구 노량진에 있는 고시원 15곳을 찾았다. 제일 처음 방문한 S고시원. 대로변에 있는데도 아무나 고시원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었다. 고시원 주인과 총무도 모두 자리를 비웠다. 기자 이외에도 또다른 외부인이 고시원 복도에서 서성였다.

고시원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하니 "2번방이 비었으니 직접 둘러보라"고 했다. 캄캄한 복도를 지나 겨우 2번방을 찾았다. 문을 열자 책상이 정면으로 보였다. 그게 끝이었다. 침대도 없었다. 쪽방보다 작았다. 성인 남성 한 명이 몸을 누이기도 어려워 보였다.

노량진에 위치한 S고시원. 방과 방 사이가 문으로 연결되어 있다.
 노량진에 위치한 S고시원. 방과 방 사이가 문으로 연결되어 있다.
ⓒ 고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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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안으로 들어서자 뜨거운 기운이 훅 올라와 갑갑했다. 창문이 있지만 그마저도 판으로 막아놓았다. 이유를 물으니 주인은 "앞 건물과 바로 붙어 있어 창문을 막을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 대신 '내창'이 있다고 했다. '내창'이란 실내 복도쪽으로 난 아주 조그만 창문을 뜻한다.

방 측면에 작은문이 보였다. 옷장인가 하여 열어보니 발이 드리워져 있었다. 발을 걷어본 뒤 경악했다. 바로 옆방과 연결되어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옆방 사람의 사생활을 모두 지켜볼 수 있는 구조였다.

지난 9월 한 고시원에서 술에 취한 남성이 창문을 통해 방 안 여성을 지켜보며 문을 열라고 위협한 사건이 있었다. 고시원의 취약한 치안을 보여주는 사례다. 그런데 이 방처럼 '비밀의 문'까지 있다면 하루하루가 얼마나 불안할까.

방 밖으로 나왔다. 지나가는 남학생이 "방이 좁고 답답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는 "내 방은 복도 끝방이기에 창문이 있어 그나마 낫다"고 말했다. 창문이 없는 내창 구조의 방은 월 28만 원, 외창 구조는 30만 원이었다. 2만 원으로 한 줌의 빛과 어둠이 갈렸다.

두 번째로 찾은 O고시원은 여성 전용이었다. 현관을 들어갈 때부터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한다. 계단 한층을 올라가면 한 번 더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한다. 그야말로 '철통 보안'이다.

'철통 보안' 여성 전용 고시원, 평균보다 비싸

내부는 가정집과 다름없이 쾌적하고 빛도 잘 들었다. 방마다 창문이 있고, 도로쪽 방 창문은 보안과 방음을 위한 3중창 구조였다. 방은 13개고 화장실 겸 샤워실이 4개였다. 3명당 하나의 화장실을 쓰는 셈이다.

O고시원 주인은 "재정적으로 여유가 없는 학생들은 사실 우리 집에 못 산다"며 "부모님이 전적으로 지원해주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여학생들이 많다. 고시공부는 누구나 열심히 하기에 사실 효율성 싸움이다"라며 "이 경쟁에서 이기려면 더 많은 투자를 해 좋은 고시원에 사는 게 빠른 합격의 지름길"이라고 말했다.

O고시원의 가격은 월 45만 원에서 48만 원 사이다.

가격이 가장 저렴한 곳은 A고시원이었다. 고시원에 들어서자 총무는 곧바로 '내창'을 원하는지, '외창'을 원하는지 물었다. '내창' 구조는 18만 원에서 24만 원, '외창' 구조는 경우 26만 원에서 36만 원 사이였다. 18만 원짜리 방은 지하에 있다.

고시원 총무는 "고시원 건물이 언덕에 있어 창문을 내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창문 없는 방'이 많고 값이 싼 이유였다.

이번엔 W리빙텔에 전화를 걸었다. 내 목소리에서 빈곤이 느껴졌나? 기자가 정확한 용건을 말하기도 전에 이런 말이 들려왔다.

"우리집은 월 50만 원인데 괜찮으시겠어요?"

리빙텔에는 각 방마다 화장실이 있다. 밥과 김치, 라면, 계란만을 제공하는 '식사'도 가격에 포함된다. 리빙텔은 고시원보다는 원룸에 가까워 가격대가 평균 50만 원이었다.

마지막으로 K리빙텔을 찾았다. 새로 지은 건물이었는데, 바닥은 대리석이었다. 역시 각 방마다 화장실이 있고, 부엌 겸 휴게실에는 대형 스크린의 텔레비전도 있었다. "화재 위험은 없느냐"고 묻자 총무는 "이 건물은 걱정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방마다 화재 감지기가 있고, 복도에는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다. 화재경보기도 완비돼 있다.

방에서 빛을 보려면 돈을 더 내야

게다가 방마다 모두 '외창'이 있다. 창문 없는 방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작은 소화기 하나가 전부인 다른 '저렴한 고시원'과는 차원이 달랐다. K리빙텔에 거주하려면 월 50만 원에서 55만 원을 내야 한다. '저렴한 고시원'보다 약 두 배 정도 비싸다.

노량진 고시원 15곳을 둘러본 결과, 가격은 최저 월 18만 원에서 최고 55만 원까지 다양했다. 같은 고시원이라도 '창문'이 있느냐(외창), 없느냐(내창)에 따라 3만 원에서 4만 원 정도 차이가 난다. 밥과 김치, 라면, 계란을 등 '식사'를 제공하면 값은 더 비싸진다. 빛을 누리고, 배를 채우려면 돈이 더 필요하다.

창문이 없는 방에는 이런 '내창'이 있다. 내창은 실내 복도 쪽으로 난 작은 창문을 의미한다.
▲ 고시원 '내창' 창문이 없는 방에는 이런 '내창'이 있다. 내창은 실내 복도 쪽으로 난 작은 창문을 의미한다.
ⓒ 고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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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싼 고시원일수록 '도어락(door lock)'이 설치되어 있는 등 보안에 신경을 썼다. 화장실도 더 많다. 화재 예방을 위한 시설도 훨씬 잘 갖추어져 있다. 현재 서울시에 등록된 고시원은 총 5369개다. 이중 고시촌이 밀집한 동작구에는 서울시 전체 고시원의 8.5%가 몰려 있다.

방과 방이 '비밀의 문'으로 연결돼 있고, 12명이 화장실 하나를 이용하며, 24시간 빛이 들지 않는 창문 없는 방에는 대개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들이 산다. 그나마 시설이 괜찮고 화재 예방까지 갖춰진 방은 "돈 많은 부모"를 가진 학생들만 들어갈 수 있다.

좁은 노량진 고시원촌에서도 '부동산 계급사회'는 선명하다. 학생과 고시생 사이에도 계급은 존재한다. 물론 동작구 노량진에만 한정된 문제는 아니다.

지금도 대학가에는 '잠만 자는 방' 전단지가 수없이 붙어있다. 대선 후보들은 앞다퉈 '하우스 푸어', '렌트 푸어' 대책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대선 후보들의 정책을 보며 마음을 내려놓는 학생은 거의 없다.

창문이 없는 S고시원 2번 방에서 불을 꺼봤다. 천장에 다닥다닥 붙은 야광별 스티커가 반짝반짝 빛을 발했다. 24시간 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방. 이방에 살던 누군가는 그렇게라도 빛을 보고 싶었나보다. 이 방에 누웠을 그 사람, 저 별을 보면서 무슨 꿈을 꾸었을까.


태그:#노량진, #고시원, #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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