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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진심캠프 국민소통자문단 위원을 지냈던 신명식씨가 25일 오전 <오마이뉴스>에 글을 보내왔다. 전날(2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다시 정리한 것이다. 이 글은 안철수 대선후보 사퇴 배경과 관련해 '내재적 관점'을 제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신씨는 <내일신문> 편집국장을 지냈다.... 편집자주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가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선거캠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늘 정권교체를 위해서 백의종군을 선언한다"고 대선후보직 사퇴의사를 밝히고 있다.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가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선거캠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늘 정권교체를 위해서 백의종군을 선언한다"고 대선후보직 사퇴의사를 밝히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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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와 문재인은 정권교체와 정치혁신을 이루어낼 우리 정치의 소중한 자산이다. 하지만 필자가 안철수를 선택한 가장 첫 번째 이유는 그가 당선가능성이 더 높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철수의 진심캠프의 국민소통자문단 위원으로 참여했다. 안철수만이 정치적 무관심층과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비박층을 견인할 수 있다는 점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안철수 후보의 회군으로 '이명박근혜 정권'의 집권을 저지하는 길은 더 험난해졌다.

하지만 안철수현상을 갈망했던 사람들은 이보 전진을 위해 일보 후퇴하는 심정으로 문재인 후보에게 힘을 모아주어야 한다. '문재인이 죽으면 안철수가 부활'하는 게 아니다. 국민이 살아야 안철수도 살고 문재인도 산다. 국민이 죽는데 두 사람이 어떻게 살 수 있겠는가?

어떤 안철수 지지자는 후보를 따라서 '유권자'를 사퇴하자고 주장한다. 이거야말로 새누리당이 원하는 바이다. 새누리당의 공약을 준비했던 김종인씨는 경제세력을 국민의 감시 아래 둬야 한다고 했다. 그의 구상이 실현될 경우 가장 타격을 받을 집단은 삼성과 같은 재벌이었다. 하지만 박근혜 후보는 '토사종팽'이라는 신조어를 만들며 그의 정책을 버렸다. 살인사건이 일어나면 그로 인해 가장 이익을 받을 사람과 평소 원한을 가진 사람이 유력 용의자로 주목 받는 게 상식이다. 도대체 박근혜 후보는 왜 김종인을 버렸는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대중운동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이 범한 오류

지난해 9월 이후 '안철수현상'이라는 돌풍이 대한민국을 강타했다. 특히 가장 비효율적이고 비생산적인 정치권에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박근혜 대세론'이 깨졌고 거대 양당은 당의 간판을 바꿔달아야 했다.

하지만 안철수 후보의 전격 사퇴로 안철수현상의 출구가 사라져 버렸다. 유권자의 4분의 1을 넘는 안철수현상의 지지자들은 허탈감에 빠져 있다. 안철수현상의 핵심은 기득권에 안주하려는 지역주의 정당체제의 해체다. 안철수현상은 신기루가 아니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깊고 크게 각인되어 버렸다.

여기서 주목할 곳은 안철수현상의 대중적 진원지이자 민주당의 공고한 기반이었던 호남지역이다. 호남에서는 짧은 시간에 안철수를 지지하는 수많은 자생조직이 생기고 시-군 조직을 갖췄다. CS코리아, 철수처럼, 철수산악회, 철수정책개발연구원, 광주전남CS코리아가 분화한 혁신포럼과 혁신연대, 홍익포럼 등…. 각 조직별로 수천에서 수만 명의 민초들이 몰려들었다. 엘리트와 젊은층에서 점화된 안철수현상이 민초들 속에서 들불처럼 타오른 곳은 바로 호남이었다.

불행하게도 안철수의 진심캠프 안의 일부 '고위 인사'들은 이런 현상을 이해하지 못했다. 대중운동을 제대로 경험해 보지 못한 비례대표 출신 의원, 변호사, 왜소한 시민운동 출신자들의 태생적 한계일 것이다. 안철수의 진심캠프는 이들을 구태정치인, 구태정치라고 배격하고 제 발로 찾아온 사람을 문전박대하고 우리와 관계없다고 거듭 세 번 부인했다. 이들과 손을 잡으면 안철수의 깨끗한 이미지가 손상된다고 걱정했다.

하지만 대다수 민초들은 그런 방식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방법을 몰랐을 뿐이다. 물론 그 상층부에는 구태정치인이 일부 포함되어 있다. 기대했던 감투가 주어지지 않자 막판에 안철수 후보를 비난하면서 박근혜 후보에게 간 사람도 일부 있다. 다만 이들에게 공통점이 있다. 수십 년간 이어온 민주당 (매우 가혹한 표현이지만) '일당독재체제'에서 소외된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안철수는 이들에게 따뜻한 눈길을 보내고 손을 잡아 주어야 했다.

한때 호남만을 놓고 보면 안철수 후보가 문재인 후보를 두 배 이상 앞섰다. 안철수현상에 무임승차한 사람들은 이런 현상의 내면을 꿰뚫어보지 못했다. 안철수현상은 민초들이 일으켰는데 정작 무임승차한 사람은 대중운동에 무지한 사람들이었다. 대중정치를 여론조사 지지율과 팬클럽 그리고 엘리트 교수집단만으로 할 수 없다. 대중조직이 없는 대중정치가 어떻게 존재하겠는가?

안철수 사퇴의 원인은 내부에서 찾아야 맞다

단일화 방식 협상이 결렬된 가운데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가 23일 밤 서울 종로구 공평동 진심캠프 기자실에서 후보 사퇴를 발표한 뒤 굳은 표정으로 캠프를 떠나고 있다.
 단일화 방식 협상이 결렬된 가운데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가 23일 밤 서울 종로구 공평동 진심캠프 기자실에서 후보 사퇴를 발표한 뒤 굳은 표정으로 캠프를 떠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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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감사가 끝난 후 민주당은 대대적인 반격을 펼쳤다. 호남을 향한 두 후보의 발걸음도 잦아졌다. 안철수의 진심캠프 안에서도 민주당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그룹과 대중조직을 만들어야 한다는 그룹이 격하게 충돌했지만 균형추는 일방적으로 한쪽으로 기울었다. 안철수의 상징이 '소통과 융합'이었는데 내부 소통은 꽉 막혀 있었다. 급기야 호남에서 문재인 후보가 안철수 후보와 대등해지거나 추월하기 시작했다.

다급해진 안철수 후보는 11월 16일 특사를 호남에 급파했다. 필자도 특사를 따라 호남으로 갔다. 수많은 사조직에 몸담은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우리민들레'라는 전국적 자원봉사자 조직으로 개편하는 방침이 긴급하게 만들어졌다. 그 상황에서도 안철수의 진심캠프에서 과도한 권한을 행사하던 인사는 "현지에서 공조직을 활용하라"고 주문했다. 심지어 그 누구보다 창의적이고 깨끗한 이미지를 가진 전직 군수조차 정치적 경쟁관계에 있는 민주당 현역의원의 신경을 자극한다고 영입을 주저했다.

현지에 가보니 교수와 시민단체 중심의 기존 공조직은 왜소했다. 놀랍게도 공조직의 간부는 "우리는 대중동원력이 약하니 사조직 사람들이나 기성 정치인들을 많이 만나 달라"고 부탁했다. 대다수 민초들은 그들이 경멸했던 사조직에 몸담고 있었다. 이들에게 그동안 결례를 사과하고 '우리민들레'에 가입하도록 권유했다. 이 분들은 기꺼이 응했다. 안철수현상의 불씨가 다시 살아나는 듯 했다. 하루 열 개의 일정을 소화하며 이 작업을 마치고 상경한 다음날 허망하게도 안철수 후보가 사퇴했다. 딱 1주일만 시간이 더 있었으면 상황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다른 지역 사정도 호남과 큰 차이가 없었다. 안철수의 진심캠프의 지역 공조직은 교수, 시민운동가, 지식인들로 채워졌다. 불행하게도 민초들이 설 자리는 없었다.

안철수는 무대 뒤편으로 일단 물러났다. 회군의 주원인은 내부에서 찾는 게 맞다. 내부 소통 부재와 대중운동에 대한 이해부족이 회군을 불가피하게 만들었다. 정책을 준비할 시간, 안철수현상을 조직할 시간, 이 모든 게 부족했다. 달리는 호랑이 등에 올라탄 참모들의 잘못이 크다.

하지만 그가 부족한 점을 보완해 빠른 시간 안에 다시 깃발을 들면 지지자들이 장마철 구름처럼 모여들 것이다. 호남에서 여전히 절반의 유권자가 안철수를 지지하고 있다. 이들은 "우리는 안철수 후보와 정치적 운명을 함께 하겠다"며 "안철수 후보가 결정하는 대로 따르겠다"고 여전히 짝사랑을 보내고 있다. 안철수 진영 안에서 유일하게 대중적 조직을 갖고 있는 노동연대센터도 안철수와 정치적 운명을 함께 하겠다고 결의했다.

안철수 캠프 고위인사들 '맞아죽을' 각오하고 지역 내려가야

안철수현상은 이렇게 현재진행형이다. 민주당은 안철수 측과 화학적 결합을 위해 선대위원장들이 모두 사퇴했다. 안철수에게 최대한 예의를 갖추고, 안철수측 인사에게 선대위원장 자리를 할애하기로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방식만으로는 위기를 수습하기 어려울 것 같다. 안철수를 유세장으로 이끌어내려 하겠지만 지금 상황에서 안철수가 이에 응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단일화협상 기간 내내 민주당은 동지에 대한 예의가 부족했으며 정권교체와 정치혁신을 하려는 진정성은 미흡했다. 오죽했으면 문재인 후보가 트위터에 '논쟁은 하되 안 후보에 대한 예의를 지켜 달라'고 호소했을까? 단일화를 위한 방송토론을 준비하면서 안철수는 '이 대목에서 문재인을 이렇게 공격하라' 는 참모들의 건의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 앞으로 '함께 해야 할 사람'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안철수가 약속한 단일화 성사 시간은 초읽기에 들어갔다. 안철수는 이런 이전투구가 계속되면 누가 후보가 된들 박근혜 후보를 이기기 어렵다고 본 것 같다. 결국 안철수는 문재인 후보를 단일후보로 인정했다.

안철수의 진심캠프은 26일 문을 닫았다. 안철수는 다시 정치를 시작하면 공약집인 '안철수의 약속'부터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그게 아니다! 안철수가 정치적으로 재기를 하려면 제일 먼저 그 '하찮은' 민초들에게 고개를 숙여야 한다. 그들을 경시했던 안철수캠프의 일부 고위인사들은 '맞아죽을' 각오를 하고 지역으로 내려가야 한다. 그곳에서 안철수현상을 믿고 지지했던 민초들에게 머리 숙여 사과하고 백의종군해야 한다. 민주당이 나누어주겠다는 공동선대위원회 감투가 급한 게 아니다.

정치인으로 살기로 결심한 안철수가 안철수현상을 대중적으로 조직하면 기존 지역주의 정당체제는 끊임없이 해체되고 변화발전하고 국민들은 안철수에게 더 많은 기대를 걸게 될 것이다. 이는 한국정치사에 큰 축복이다.

민주당, 호남에서 일당독재체제는 와해되는데 심각성 몰라

앞으로 민주당과 안철수 측은 협조와 경쟁의 관계에 서게 될 것이다. 민주당은 시급히 뼈와 살을 깎아내어 소외된 민초들의 마음을 돌려놓아야 한다.

민주당이 이명박근혜 정권의 연장을 막고 대선승리를 원한다면 안철수현상의 주역들에게 신속하게 답을 주어야 한다. 안철수는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널리 퍼져있지 않을 뿐'이라고 했지만 이미 수많은 민초들의 가슴에 안철수현상이 널리 퍼져있다. 특히 호남에서 진정한 정권교체는 새누리당의 집권저지는 물론 민주당 일당독재의 청산이 함께 이루어지는 것이다.

시간이 별로 없다. 우선 호남지역의 현역의원들이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자신들을 외면했던 민초들을 끌어안아야 한다. 호남에서 단체장 공천을 받으려면 돈 많고, 나이 많고, 의원 말 잘 듣는 세 가지를 갖추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더 이상 나오지 않도록 약속을 하고 제도를 바꾸어야 한다.

호남에서 민주당 일당독재체제는 밑으로부터 와해되고 있는데 민주당은 아직도 심각성을 모르고 있다. 현재 여론조사상 호남에서 박근혜 후보의 지지율은 13% 정도이다. 새누리당은 15% 득표를 목표로 삼고 있는데 실현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이건 재앙이다.

결전이 코앞에 있다. 민주당과 안철수캠프인사들에게 간곡히 당부 드린다. 안철수현상에 열광했던 그 국민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치열하게 개혁하고 진지하게 고민하며 격하게 경쟁하라. 하지만 고단한 삶을 사는 당신들의 '국민'이 이명박근혜 정권의 치하에 놓이는 대재앙만큼은 힘을 합쳐 막아주기 바란다.

며칠 전 후배가 우리 집을 방문했다. 그의 남편은 노무사다. 지난 3년간 집에 생활비를 거의 가져오지 못했다고 한다. 이명박 정권에서는 로비를 하지 않으면 되는 일이 없어서 안철수든 문재인이든 정권이 바뀌지 않으면 살 수 없다고 하소연한다. 전문직이 이런 형편이니 비정규직의 고단한 삶이야 오죽하랴. 이게 문재인과 안철수가 즐겨 말하는 '국민'의 삶이다.

필자는 10여년을 노동운동을 하며 일하는 사람들과 보냈다. 택시노조와 택시기사들은 아직도 나의 영원한 친구다. 그 후 18년간 기자생활을 하면서 세상을 보았고, 2년 동안 친일인명사전 마무리작업에 참여하며 역사의 엄중함을 배웠고, 3년 동안 내 손으로 땅을 파며 농사를 지었다. 이명박근혜 정권이 연장되어 나와 내 이웃들, 일하는 사람들이 더 팍팍한 삶에 빠지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뚜벅뚜벅 가는 것이 배운 자의 도리이고 역사를 아는 자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가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선거캠프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자료사진)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가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선거캠프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자료사진)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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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안철수, #신명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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