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날아라 노동> 책표지.
 <날아라 노동> 책표지.
ⓒ 부키

관련사진보기

"취업은 했니?"

대학교 4학년 즈음이 되자, 인사처럼 자주 듣는 말이다. 처음에는 꽤나 맥쩍어 뒤통수를 긁곤 했다. 친구들의 취업 소식이 하나둘 들려오자 더 그랬다. '벌써? 아직 졸업도 안 했는데'라는 생각을 하다가도, 뒤처진 느낌이 들면 솔직히 심란했다. 그것도 익숙해지니 "준비하는 중이에요"라고 웃으며 눙치게 된다.

비슷한 경험이 다들 많은가 보다. 아직 일자리가 없는 친구들도 그 말에 넌더리를 친다. 하지만 어느새 우리들의 작별 인사도 "다음엔 취업해서 만나자"가 돼버렸다. 며칠 전에는 졸업 2년차 선배를 만났다. 그도 아직 취업 '준비 중'인데, "취업에 '취'자만 들어도 무섭다"며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이쯤 되면 농담처럼 웃는데도 서글프다.

그만큼 취업이 어려운 시기다. 통계청이 매달 발표하는 '고용동향 지표'를 보면 더 뚜렷해진다. 이를 인용 보도한 <한겨레>에 따르면, 지난 10월 20대 고용률은 1.6%P나 떨어졌다. 1.9%P가 하락한 2009년 3월 이후 3년 7개월 만에 가장 큰 감소폭이란다. 20대의 비경제활동인구 비율도 38.8%로 집계됐다. 10명 가운데 4명은 일자리가 없거나 사실상 취업을 포기한 상태라는 이야기다. 세대별 노동조합인 청년유니온도 "우리나라의 청년 고용률은 40% 수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10% 정도 낮다"며 그 심각성을 전한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구직자 입장에서는 찬밥 더운밥 가리기 힘들어졌다. 최우선 목표는 일자리를 찾는 것이다. 정규직이면 더할 나위 없지만 비정규직도 어쩔 수 없다. 4대 보험이라도 보장되는 곳이라면 감사할 따름이다. 어느새 사용자는 '슈퍼 갑', 노동자는 '을'이 되는 모양새가 자연스럽다. "노동조합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다들 알 만한 대기업 최종면접에서 나온 질문이란다. 지금 같은 분위기라면, 구직자가 대답할 수 있는 답변은 이미 정해져 있다.

사용자 중심의 말들... 노동권은 사라졌다

"이라크 파병 문제로 사회가 들끓었을 때, 천안함 사태로 모두가 불안감에 시달렸을 때, 누군가 물었다. '전쟁이 터져도 정규직, 비정규직으로 나누어 총을 들게 합니까?' 그렇지는 않다. 그러나 일상의 삶에서 비정규직은 똑같은 권리를 갖지 않는다. 의무는 있는데 권리는 없는 꼴이다. (중략) 한국 사회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먹고살기 위해 노동권을 강제로 포기해야 했다. 그것이 일해도 가난한 원인이며 따라서 노동권 확립이 한 가지 대안이라는 사실을 이 책 전체에 걸쳐 입증하고 주장할 것이다."(<날아라 노동> 여는 글에서)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책 <날아라 노동>에 의하면, '문제는 노동권'이다. 취업으로 아우성치는 청년들은 물론 비정규직 문제, 저임금 노동 등도 이유는 같다. 우리 사회에서 노동권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숨겨진 나와 당신의 권리'라는 이 책의 부제처럼, 책은 우리 모두의 권리인 노동권이 사라진 이유, 그리고 그것을 되찾기 위한 방법을 고민한다.

지난 여름, 자동차부품 생산업체인 만도에서 파업이 발생했다. 사용자 친화적인 언론들은 곧바로 만도 노동자 평균 연봉이 9500만 원이라며, 비판기사를 쏟아냈다. 요지는 '돈도 많이 받으면서, 파업이라니!'였다. 입 맞춘 듯, 대통령도 "고소득 노동자 파업이 말이 되느냐"고 나섰다. 심지어 한 사용자 단체는 고소득 노동자를 사용자 측이 저지른 폭력행위의 옹호 이유로 꼽았다. 그야말로 '전가의 보도'가 따로 없다. 게다가 모두 사실 왜곡으로 밝혀졌다.

그 말들에 담긴, 고소득 노동자가 '용납될 수 없다'라는 생각이 더 큰 문제다. 이는 경쟁과 시장 논리라는 사용자 중심의 사고방식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물론 단체교섭 같은 노동권의 여지 따윈 없다. 때문에 폭력을 동원해서라도 정당한 파업을 깨뜨릴 수 있다는 판단이 쉽게 등장한다. 법의 수호자여야 할 대통령도 헌법과 노동법을 무시하는 말에 거리낌이 없다.

'노동 유연성' 따위의 말들도 마찬가지다. 기업에게 유리한 노동 유연성이 마치 사회 전체적으로 좋은 것인 양 사용되고 있다. 저자는 그 과정에서 노동 유연성이 노동자에게는 노동 불안이란 사실이 철저히 은폐된다고 비판한다. 구조조정이 경제 활성화를 위한 선(善)으로 변장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어느새 해고로 인해 노동자의 삶이 불안정해져도 어쩔 수 없는 일이고, 그 책임도 기업이 아닌 정부나 사회의 몫이 돼버렸다.

'노동자는 시민'이라는 인식이 필요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등의 노동문제에서 노사 외부의 목소리가 들려오면, 사용자들은 '제3자의 간섭'을 운운한다. 일부 언론은 '선동'이라 쏘아붙인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등의 노동문제에서 노사 외부의 목소리가 들려오면, 사용자들은 '제3자의 간섭'을 운운한다. 일부 언론은 '선동'이라 쏘아붙인다.
ⓒ sxc

관련사진보기

"우리 모두가 노동자입니다. 여기 계신 20대 분들은 '예비 노동자'라고 부를 수 있을 겁니다."

얼마 전 사퇴한 김영훈 전 민주노총 위원장의 말이다. 올해 초, 그의 대중강연에 참석했다가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스스로의 무신경함에 놀랐다. 주위를 둘러보자 20대 참석자들의 놀란 표정이 엇비슷했다. 스스로를 '예비 노동자'로 여겨본 기억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내 경우에도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이전부터 '직업 기자'를 희망했지만, 그때까지 '언론 노동자'라는 낱말과 이어본 적은 없었다.

이 같은 시민과 노동자 사이의 거리감도 노동권 위기의 한 원인이다.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기본권은 시민 모두의 권리다. 즉 노동권의 위기는 시민의 위기다. 그러나 대부분의 노동 문제는 전체 시민의 문제가 아니라, 특정 기업 혹은 노동자의 것으로 치부되기 일쑤다. '노동자는 시민'이라는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남극의 빙산이 녹아내리는 것에 전 지구가 관심을 갖는 것처럼 부산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에 한국의 시민 모두가 관심을 갖고 찬성 혹은 반대 행위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시민 모두가 자연스럽게 이해하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날아라 노동> 83쪽)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등의 노동문제에서 노사 외부의 목소리가 들려오면, 사용자들은 '제3자의 간섭'을 운운한다. 일부 언론은 '선동'이라 쏘아붙인다. 하지만 저자 은수미의 지적처럼 대기업들은 한국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며, 시민의 지원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또 삼성처럼 노조조차 없는 경우에는 노동자가 거대한 사용자 측과 맞서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시민의 연대가 끊어진다면, 노동자들이 스스로의 힘만으로 노동권을 말하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사라진 노동권은 시민의 삶을 점차 팍팍하게 만들 것이다. 계속 강조하듯, 대부분의 시민은 노동자라는 또 다른 이름을 지녔기 때문이다.

저자는 노동계의 책임도 일정 부분 있다고 지적한다. 지금까지 노동권 문제를 생존권 문제로 좁혀왔다는 비판이다. 또 그 과정에서 노동운동을 부각하다, 시민운동과 구분 짓는 관행이 생겼다고 꼬집는다. 노동계 스스로가 시민을 노동문제로부터 떨어트린 모양새다.

우선 노동권을 생존권으로 바라보면 '먹고 살만하게 해 줄 테니 노동권을 포기해'라는 말이 가능해진다. 고소득 노동자에 대한 대통령의 어처구니없는 발언도 그러한 맥락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이 구분은 더 심각하다. 저자는 이 때문에 노동문제에 대한 시민의 관심이 멀어지는 일은 물론 노동3권에 대한 불감증이 확대된다고 우려한다. 결과적으론 노동만이 아니라 시민마저 무력해질 수 있다는 설명도 덧붙여진다.

노동권이 사라진 자리의 그늘

"'미끄럼틀 사회'를 만드는 피라미드형 노동시장 구조 탓에 일자리, 특히 좋은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다는 데 공감대가 꽤 커졌다. 하지만 그 핵심 문제가 노동권의 침해나 권리 부재에 있다는 사실은 잘 인식하지 못한다. '당신이 권리를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당신의 일자리를 빼앗긴다, 당신이 자신의 권리를 모르기 때문에 일해도 가난하다'는 사실을 당사조차도 알지 못한다."(<날아라 노동> 210쪽)

시민이 편리하다고 선호하는 24시간제 할인마트는 어떤 노동자의 24시간 노동을 의미한다. '30분 이내 배달'을 내세웠던, 수많은 배달음식 업체들도 마찬가지다. 한 시민의 편리를 위해서, 또 다른 시민인 노동자가 최저임금을 받으며, 목숨을 걸고 도로를 질주하는 것이다.

저자의 지적처럼 "노동자인 시민이 경영 효율성을 좋아하면 바로 그 시민의 일자리가 없어지고 노동자인 시민이 경비실 노동자의 최저임금 감액 적용에 동의하면 당사자 역시 나이 들어 월 90만 원 받고 일해야 한다는 연관 고리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 상황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렇게 노동권이 사라진 자리에는 씁쓸한 그늘만이 남았다. 1600만 노동자 중 절반인 800만이 비정규직이라는, 최저임금이 노동자 평균 임금의 33.4%로 OECD 평균 37.2%보다 낮다는 비관적인 수치들이다. 또 열심히 일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을 일컫는 '근로빈곤층'같은 신조어들이다. 청년들은 대기업의 횡포에 분노하지만, 돌아서면 그 대기업에 입사하기 위한 스펙 쌓기에 수년을 투자하는 코미디 같은 상황도 마찬가지다.

'노동 없는 복지'는 허구일 뿐... 정치도 마찬가지

저자인 은수미는 한국노동연구원을 비롯해서, 28년을 노동문제에 뛰어든 '노동전문가'다. 특히 <날아라 노동>은 지난 10년 가까이, 그가 수없이 만난 노동자들의 현장인터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책이 노동권이라는 어려운 소재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쉽게 읽히는 이유다. 독자들과 다르지 않을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기 때문에, 그것이 다름 아닌 '나'의 이야기라는 접근도 낯설지 않다.

이제 저자는 민주통합당 비례대표로 19대 국회의원이 됐다. 정치 초년생이지만 동시에 노동전문가로서 은수미 의원은 '노동 없는 복지'는 허구일 뿐이라고 말한다. "노동 정의 실현, 노동권 확립 없이 복지국가는 불가능하다"고 단정하면서 "복지 국가에 대한 요구에는 실종된 노동을 복원하려는 목소리가 섞여 있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저자는 그 최우선 방법으로 산별 노조 결성 및 산별 협약을 꼽는다. 노동조합이 조합원의 이익만이 아니라, 전체 시민의 노동권에 헌신할 수 있는 방안이라는 설명이다. 그래야만 우리 사회의 노동권을 되찾는 일도 간단해지리라 말한다. 일종의 대표 소송으로 커피 전문점의 주휴 수당 돌려받기에 성공한 청년유니온은 좋은 사례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대선을 한 달도 남기지 않은 지금, 정치혁신이 핵심 담론으로 올라섰다. 그러나 "투표권이 있어도 일당이 아까워 투표장에 가지 못한다"는 수많은 노동자가 배제된 정치 혁신은 있을 수 없다. 4000만 유권자 중 1600만 명인 노동자가 소외된 선거구도에 많은 사람들은 '노동 없는 대선'이라며 비판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날아라 노동>은 시민이 곧 노동자이기에, '나와 당신의 권리'인 노동권을 되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어쩌면 노동권을 찾을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가 우리들 앞에 있다. 남은 대선기간 동안, 노동권에 더 눈을 돌려보자. 이 책과 함께라도 좋을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날아라 노동> (은수미 씀 | 부키 | 2012.10 | 1만3800원)



날아라 노동 - 꼭꼭 숨겨진 나와 당신의 권리

은수미 지음, 부키(2012)


태그:#<날아라 노동>, #은수미, #비정규직, #노동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