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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뉴스 [오마이포토] 세월호 침몰사고, 안산 분향소 추모 물결

 가족여행 중 최고의 하이라이트 피나투보. 부모님은 고난의 행군이라고 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다.
ⓒ 조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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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조심해라, 밥 잘 챙겨 먹고 다녀라!"

초등학생도 아니고, 초등학생 아들을 둔 나에게 이런 잔소리를 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친정엄마다. 시집을 가서도 아직까지 부모님 잔소리를 졸업하지 못한 것은 순전히 친정에서 전세살이를 하기 때문. 엄마의 잔소리는 나만 보면 속사포처럼 터져 나오는가 보다. 평소에도 잔소리가 나올 것 같은 분위기를 감지하면 슬금슬금 빠져나오기 바쁜데, 남편은 이런 내 상황을 알면서 부모님과 함께 떠나는 가족여행을 택했다. 사실, 남편만 탓할 수가 없다.

이번 여행을 기획하면서 나는 딴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저 자유를 만끽하고 싶었을 뿐이다. 선뜻, 해외로 여행지를 정한 것은 순전히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이들까지 챙겨 가는데, 부모님께 여행 간다는 말만 던지고 떠나기가 좀 미안했다. 이런저런 눈치로 미적거리는 사이, 부모와 함께 떠나는 가족 대이동이 되었다.

그래서 정한 여행 목적은 '우리는 한 가족, 제발 친해지길 바라'다. 가족여행을 결심하고도 찜찜한 것은 다름 아닌 부모님 잔소리 때문. 잔소리탱크(언제, 어디서나 퍼붓는 잔소리 저장고 같아서 붙여준 별명)를 끌어안고 4박 6일을 보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엄마와의 관계가 데면데면하기 시작한 것은 아이들을 맡기면서부터다. 친정살이가 시집살이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있지 않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친정부모와 함께 산다고 하면 "좋겠다"고 한다. 하지만 나름의 고충이 있다. 특히, 엄마가 아프기라도 하면 내가 아이를 맡겨놔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괜히 죄송스럽다. 그러니 이런저런 잔소리를 들어가며 지내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

갑자기 늘어난 대가족여행. 별로 흥도 안 나는 여행이라는 생각에 별다른 준비도, 기대도 없었지만, 부모님의 기대는 장난 아닌 듯하다. 아빠는 얼굴만 마주하면 필리핀이라는 나라에 관해서 언제 공부했는지 세세하게 알고 있는 부분을 이야기했다.

젊은 시절, 월남전 시절 동남아 지역에 갔었던 아빠는 만나기만 하면 그곳 기후와 현재 기온에 대해 이야기 하느라 바빴다. 또 우리가 가는 필리핀 수빅에 한진중공업이 있으며, 최근에 미군기지가 있다가 철수했다는 뉴스까지….  아빠가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나에게 전했다. 인터넷도 잘 못하는데 그런 정보는 어디서 다 알았는지…. 여행 동안 어디를 가고, 무엇을 먹고 등등 여행정보뿐만 아니라 그 지역에 대해 어느 정도의 정보를 좌르르 꿰고 있었다. 아빠의 정보력에 가끔 놀랄 때가 있는데, 이번이 바로 그때다.

그렇게 떠난 여행길... 벌써부터 불길하다

▲ 보너스컷 가족여행을 위해 필리핀 수빅으로 떠나기 전, 인천공항 내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둘째 아들.
ⓒ 조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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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에 주차하면 비싸지 않니? 며칠 주차해야 할 텐데…."
"우리 식구가 리무진 버스 타고 가는 비용이랑 비슷해요. 그냥 편하게 가세요."


잔소리탱크들, 슬슬 돈 걱정이다. 이렇게 여행을 시작하다가는 스트레스 때문에 즐기지도 못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내 불만이 표정으로 그대로 드러났는지, 엄마는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한다.

 가족여행을 위해 필리핀 수빅으로 떠나기 전, 인천공항 내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며 찰칵.
ⓒ 조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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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30일(화) 저녁 무렵, 인천공항에서 여차저차 상황을 마무리하고 필리핀 클락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필리핀 시간(우리나라와 1시간 차이 밖에 나지 않는다)으로 밤 12시에 도착하는데도 엄마는 들뜬 모습처럼 상기된 표정으로 비행기 안 이곳저곳을 살핀다.

여섯 살배기 둘째 녀석은 비행기를 타는지, 배를 타는지 세상 모르고 꿈나라에 가 있다. 살짝 긴장한 표정인 엄마와 아빠의 모습을 지켜보니 피식 웃음이 나온다. 고작 4시간 비행기 타는 건데…. 무방비 상태인 나에게 또 한 방의 잔소리가 날아든다.

"물, 마셔! 어서 물을 마시라니까?" 

엄마에게 물병을 받아들었지만 마시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비행기가 이륙할 무렵, 엄마는 내 옆자리도 아닌 건너편 자리에서 팔을 마구 휘저어가며 귀를 '꽉' 막으라는 시늉까지 해 보인다. 엄마 옆에 있던 큰아들은 할머니의 강요에 이기지 못하고 이미 귀를 막고 있었다.

그 후로 기내식이 나올 때도 엄마는 쉼 없이 '밥 먹지, 왜 빵을 먹었니?', 밥과 함께 나온 미소 된장국을 건네며 '이거 마셔라, 참 시원하다' 등 깨알같은 잔소리를 쏟아냈다. 어떻게 비행기를 타고 내렸는지도 모르겠다. 자장가처럼 들려오는 잔잔한 잔소리 때문에 엄마 얼굴은 보지도 않고 있다가, 클락 공항에 도착해서야 엄마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 세상에 엄마가 코피를 흘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붉은 기운이 감도는 휴지를 한 손에 쥐고, 코를 틀어막아 선 엄마는 그야말로 엽기적인 그녀였다. '나한테 잔소리 좀 하지 말고 눈 좀 붙이지, 엄마도 참…'라고 속으로만 말한다. 클락 공항에는 남편 이름이 써진 종이를 들고 있는 현지인 가이드와 한국인 가이드가 반갑게 우리를 맞이한다. 지난번 아무 계획 없이 떠났던 여행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우리를 기다리는 가이드만 둘, 짐을 들어 주는 사람, 운전기사 등 여기서 나온 사람만 4명이다.

10년 전 신혼여행으로 온 필리핀, 그 후로 이 나라는 나에게 환상의 나라였다. 평생에 남는 기억 중 가장 행복했던 그때가 아니던가. 이번 여행도 그렇게 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지만. 오늘 저녁은 늦게 도착하여 숙소에서 쉬기로 하고 엥겔시티로 향했다. 클락 공항에서 엥겔시티까지 차로 30여분 정도 달려가는 길은 시티에 들어왔음에도 칠흑같은 어둠으로 깜깜하다. 깜깜해서 보이지도 않는 도시를 바라보며 이번 여행을 어떻게 보낼지 잠시 생각해 본다.

<다음에 계속>

덧붙이는 글 | 가족여행은 10월 30일(화)부터 11월 4일(일)까지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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