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타샤의 정원> 표지
 <타샤의 정원> 표지
ⓒ 윌북

관련사진보기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자신과 같은 관심사를 가지고 같은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벗을 사귀는 것만큼 즐거운 일이 또 있을까. 100편이 넘는 동화를 쓰고 삽화를 그리며 30만 평이나 되는 드넓은 정원을 가꾸는 일에 평생을 바친 여인, 미국을 대표하는 동화작가 타샤 튜더.

그녀의 노년에는 오랜 세월 그녀의 보살핌 속에 부지런히 피었다 지는 엄청난 수의 꽃과 수목들이 있었고, 그녀와 같은 것을 즐기며 행복을 나누는 토바와 리처드라는 좋은 벗이 있었다. 그들의 사귐에는 영혼과 영혼이 맞닿은 은밀함이 있었다. 어떠한 것을 매개로 감정을 교류하는 사람들끼리의 만남이라니!

아흔 살이 넘은 나이에도 장미 전문가가 되고 싶은 포부를 밝히며 설레하는 타샤를 보며 그녀의 친구들은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집필가인 토바는 오랜 세월 동안 타샤의 정원에 수없이 가봤지만, 아무리 가도 성에 차질 않는다고 회고했다. 타샤가 전화해서 마음을 잡아당길 때마다 자동적으로 가슴이 뛰었다고. 사진작가인 리처드는 처음 그녀의 정원에 갔을 때 경외심을 가장 먼저 느꼈고, 정원이 가진 아우라에 사로잡혀 한동안 사진을 제대로 찍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그들은 그렇게 환상을 함께 나눴다.

2008년 92세의 나이로 별세한 그녀는, 죽음이 코앞에 다가왔을 때에도 그녀는 자신을 설레게 할 단꿈에 젖어 있었을 것이다. 겨우내 쌓인 눈과 낙엽을 뚫고 올라오는 야생화의 새순과 잠든 가지에서 생명력을 읽어내던 그녀이기에 자신의 소멸 앞에서도 그리 큰 동요를 하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마치 긴 잠을 자러 가는 동물이 월동준비를 하듯 큰 저항이나 거부감 없이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였으리라. 누구보다 자연의 순리를 아는 그녀니까!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그 좋아하는 것을 위해 평생을 바치고, 또 그로 인해 평생을 가슴 뛰는 열정으로 살다 가는 사람이 과연 이 지구상에 얼마나 될까.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이 정원은 그녀가 삽화를 그린 동화 <비밀의 정원>과 결코 다르지 않았다.

그녀의 삶을 다룬 에세이집 <타샤의 정원>의 지은이 토바 마틴은 아름다운 정원 속에 자신의 비밀을 숨겨두고 떠난 타샤의 삶을 애써 과장하거나 화려하게 꾸미지 않았다. 그저 덤덤하게 보고 들은 것들을 기록해 나갔다. 때로는 무뚝뚝하게, 또는 건조하리만큼.

처음엔 그런 문체가 타샤의 정원 이야기에 썩 어울리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런데 여러 번 반복해서 읽다보니 그녀가 왜 굳이 그런 문체를 선택해야 했는지 이해가 됐다. 어쩌면 이런 문체는 새 것보다 골동품을 좋아하고, 세련된 것보다 옛 것을 선호하고, 금욕정신이 몸에 배어 고집스럽기까지 한 타샤의 성품을 쏙 빼닮아 있다. 잔정은 덜해도 속정 깊고 정갈한 타샤, 딱 그녀에게 잘 어울리는 문체였던 것이다.

평생 가꾼 30만 평의 정원... 그녀에겐 '캔버스'이자 '자존심'

이 책은 봄을 준비하는 겨울에 시작해서, 꽃들이 만발하는 봄, 여름, 가을, 그리고 다시 겨울을 맞이할 때까지 정원의 사계절 흐름에 따라 구성되었다. 어느 때는 글을 읽지 않고 사진만 보아도 어지러운 세간에서의 생각들을 깨끗이 비우게 해준다. 또 어느 때는 토바가 타샤의 삶을 곁에서 지켜본 것을 글로 옮겨 놓은 활자를 찬찬히 읽으며 한 여인의 일생을 들여다보는 흥미를 느낀다. 구태여 글과 사진을 동시에 볼 필요는 없다.

몇 번인가 푸른 꽃무리 속에서 길을 잃고서야 찾아갈 수 있다는 타샤의 정원은 어떤 비밀들을 품고 있을까? 먼저 초지와 정원 사이에 숲을 배치한 것은 마치 우리나라 절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구조와 유사하다. 세속과 법당의 경계에 산문이나 연못을 배치하여 마음을 정화시키라는 원리와 통한다. 이것이 그녀가 정원에 숨겨둔 첫 번째 비밀이다.

또한 아주 오래된 농가처럼 보이는 그녀의 집은 사실 그녀의 아들이 어머니를 위해 지어준 새 집이다. 낡은 것을 좋아하는 어머니의 취향에 맞춰 최대한 낡아 보이도록 지어 감쪽같이 손님들을 속인다. 이것이 그녀의 정원이 품은 두 번째 비밀이다.

다음 비밀은 빛과 어둠의 조율하는 그녀의 센스다. 산꼭대기에 햇살이 쏟아질 때도 타샤의 집 안은 어둡다. 그래서 현관을 빠져나와, 앞에 펼쳐진 정원과 맞닥뜨리면 유난히 눈이 부시다. 이런 강렬한 색채대비 또한 그녀의 정원을 찾은 사람들을 위한 하나의 깜짝 선물인 셈이다. 어둠을 아는 사람이 반대로 밝음을 아는 이치!

무심코 그녀의 정원을 본 사람들은 꽃과 나무들이 오로지 스스로의 힘에 따라 자라도록 아무렇게나 정원을 놀리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알고 보면 어느 것 하나 그녀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라일락 나무들은 가지가 서로 엉켜서, 현관문 옆에 있는 비밀의 화원을 에워싸고 있다. 이밖에도 그녀의 정원에는 그녀가 숨겨놓은 비밀들이 더 많이 숨어 있다. 나머지 비밀들은 독자들이 알아서 찾아갈 수 있도록 힌트를 남기거나 발설하지 않겠다. 본래 비밀이란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을 때 더 가치를 발하는 법이니까.

"그 아이가 싹을 예쁘게 틔웠는데, 날이 건조해서 시무룩해졌지요."
"멍청한 것들이 해마다 너무 일찍 나와서, 늦서리에 약한 싹이 얼어버린다니까요."

그녀는 꽃과 나무들의 표정을 읽고 대화를 나눈다. 또 가끔은 그녀가 가꾸는 것들에게 익살스러운 별명(그녀가 제일 아끼는 작약에게 붙인 별명은 '폭탄 타입')도 붙여준다. 겉으로는 무뚝뚝하게 '멍청한 것들'이라고 말하지만, 그 안에는 엄청난 염려와 애정이 담겨 있다는 것쯤은 충분히 눈치 챌 수 있다.

그녀가 가장 까다로운 식물에게 가장 애착을 느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한 토바의 말은 공격적인 다른 꽃들과 경쟁에서 떠밀리는 꽃들에 대한 그녀 나름의 애틋함일 것이다. 연약한 생명에게 더 큰 손길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는 그녀만의 세심함! 이렇듯 정원은 그녀에게 캔버스이자 자존심인 셈이다.

내 꿈을 살다 간 그녀...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영혼'

버몬트 주민들이 '진흙탕 계절'이라고 부르는 4월이 오면 타샤의 정원은 몇 주간 세상과 완전히 고립된다. 버몬트에서는 눈 쌓인 계절보다 진흙탕 계절이 훨씬 더 혹독하다. 그러나 이런 우려도 어디까지나 바깥사람들의 편견일 뿐이지 타샤에겐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세상과 단절되는 시기는 오히려 그녀에게 자연과 더 깊이 교감할 수 있는 시기였던 것. 그러니 세상과의 단절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어쩌면 그녀는 세상과 적당한 거리를, 심지어 단절을 은근히 고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토바는 타샤의 정원에서 꽃들이 유독 아름다울 수 있었던 비법을 '거름'이라고 단정했다. 무언가를 정말로 좋아한다면 그 대상이 어떤 것에 울고 웃는지 이내 알아내는 센서가 생기는 것일까. 심지어 대상 때문에 생기는 괴로움도 즐거움으로 변하나 보다. 어떤 꽃은 햇볕을, 다른 꽃은 거름을, 또 어떤 꽃은 재를 좋아한다. 타샤는 그녀의 나무와 꽃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일일이 가려낼 수 있을 만큼 그들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한다.

아무리 많은 돈을 준다고 해도 30만 평이나 되는 대정원을 혼자서 가꾸어야 하는 것은 보통 사람들에겐 상상도 못할 일이다. 자신이 원하는 종류의 식물을 찾겠다고 몇 시간 거리의 길도 마다 않는 그녀! 정성스레 가꾼 그녀의 정원 어딘가 꽃 사이에서 키득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새어나올 때면 그녀는 세상 그 누구보다 행복한 표정을 지었을 것이다.

봄부터 날씨가 허락하면 그녀는 항상 맨발이었다. 자연을 조금 더 가까이 느끼고 교감하려는 그녀만의 소통법이다. 그녀의 맨발이 꿀벌에 쏘여 주위 사람들이 아무리 호들갑을 떨어도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아마 그때도 그녀의 맨발은 웃고 있지 않았을까. 언제나 자연의 편에서 자연과 가장 닮은 모습으로 살았던 그녀는 과실과 열매를 거둘 때에도 그것을 전부 수확하지는 않았다. 우리나라 조상들이 남긴 따뜻한 풍습인 '까치밥'과 그 의도가 다르지 않았던 것.

조상 대대로 정원 가꾸기의 달인들이 많았다는 타샤 튜더의 피 속엔 어떻게 해야 평생을 행복하게 살다 갈 수 있는지 정확하게 알고 실천하는 유전자도 들어 있었나 보다. 그녀가 떠나고 없는 '타샤의 정원'에는 지금도 그때처럼 꽃들이 피어나고 있을까? 토바는 그녀가 세상에서 가장 '부지런한 영혼'이라고 했지만, 내게는 그녀가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영혼'이었다. 내 미래의 꿈을 가장 잘 살다간 그녀이기에.

덧붙이는 글 | <타샤의 정원> 타샤 튜더·토바 마틴 씀, 공경희 옮김, 윌북 펴냄, 2010년 4월, 227쪽, 1만2000원



타샤의 정원

타샤 튜더 지음, 공경희 옮김, 토바 마틴 글, 리처드 W. 브라운 사진, 윌북(2013)


태그:#타샤 튜더 , #타샤의 정원 , #아름다운 인생, #아름다운 정원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2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