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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총대선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11일 오후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회의에서 김무성 총괄선대본부장의 얘기를 듣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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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나올 말이었다. '여성 대통령'.

박근혜가 유력한 대선후보로 인식되기 시작한 이래로 '여성 대통령'은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가 현실로 직면해야 할 문제였다. 그리고 예상대로 지금 박근혜는 '여성 대통령론'을 본격적으로 들고 나왔다.

이제는 한국에서도 여성 정치인들이 장관이나 당 대표를 맡는 일이 드물지 않지만(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주요 정당의 대표가 모두 여성이었다) 여전히 국회에서나 다른 모든 사회 영역에서 여성들의 진출 정도가 다른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빈약한 것이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그런 여성들에 대한 처우나 차별적 인식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었다고 보기도 힘들다. 따라서 헌정사상 첫 여성 대통령이 배출된다면 이는 여성의 사회 진출과 지위 향상에 가장 획기적인 사건 가운데 하나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다.

박근혜의 여성 대통령론, 철학은 어디에

이런 면에서 '여성 대통령론'은 현재 빅3 후보 중 박근혜만이 장착하고 있는 가장 유력한 중화기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찬찬히 뜯어보면, 박근혜는 이 막강한 중화기로 지난 10여 년 동안 사격훈련도 한 번 해 보지 않았을 뿐더러 기본적인 손질조차 하지 않은 게 아닐까, 혹은 전혀 만져보지도 않은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떨치기가 어렵다.

만약 박근혜가 여성 정치인으로서의 자각이 있었다면 그가 지난 14년 동안 국회의원으로서 살아온 삶의 궤적에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보도내용(관련기사: 박근혜의 '14년 국회'는 문화재 사랑?) 을 보면 현실은 정반대인 듯하다.

이 기사에 따르면 박근혜 의원이 지난 14년 간 대표발의한 법안은 총 15건에 불과하다. 1년에 겨우 1건 정도만 대표발의한 셈이다. 그 15건 가운데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사안은 문화재 보호와 관련된 법안들로서 총 5건이다. 나머지 법안들 중에서도 여성의 사회적 지위향상이나 차별을 없애는 제도개선과 관련된 내용은 한 건도 없다. 굳이 들자면 2000년부터  호주제 폐지 '소신'을 지킨 것 정도에 의미를 둘 수 있겠다. (관련기사 : 박근혜가 호주제 폐지 가장 앞장섰다? )

이래서야 어디 5선 의원으로서 '여성 대통령'이 되겠다고 큰소리 칠 면목이나 설지, 유권자의 한 사람으로서 보기 민망할 정도이다. 차라리 '문화재 대통령론'을 들고 나오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정치인들의 교언영색이야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진정성을 바라는 것이 우리 국민들의 지나친 욕심은 아닐 것이다. 물론 나는 박근혜 후보가 지금 거짓말을 하거나 사기를 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역사 인식 등 다른 여러 사안에서도 그랬듯이 그의 발언에서 진정성을 찾기가 쉽지 않은 까닭에, 이번에도 자신의 본심과는 무관하게 '여성 대통령론'이 득표를 위한 공수표로 전락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크다.

사실 14년 정치인생 동안에 대표 발의한 법안의 건수나 내용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문제일지도 모른다. 보다 중요한 것은 여성 대통령이 가져야 할 철학과 시대정신이다. 이미 우리는 강금실 전 법무장관이나 한명숙 전 총리를 통해 강단 있으면서도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새로운 시대에 적합한 지도자의 덕목 가운데 하나임을 목격했다. 민주·반민주나 보수·진보의 대립구도 속에서는 남성적이고 투사적인 혹은 승부사적인 리더십이 주목을 받았지만, 이런 구시대적인 리더십은 이른바 '2013년 체제'와는 그다지 어울려 보이지 않는다. 안철수가 돌풍을 일으킨 데에는 상대적으로 '여성스런' 그의 리더십도 한몫을 하고 있다.

따라서 박근혜가 유권자들에게 '여성 대통령론'을 말하려면 적어도 자신이 여성 대통령으로서 어떤 리더십을 추구하는지 (혹은 갖고 있는지) 그 철학을 먼저 내보이거나 증명해야 한다.

흔히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참여정부 5년을 평가를 할 때 그의 가장 큰 업적은 대통령 당선 자체였다는 말을 하곤 한다. 한국사회의 이른바 '비주류의 비주류'로서 대통령에 당선된 첫 사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그가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한국사회의 비주류 정치인으로서 시대의 모순을 해결하는 노력과 비전을 전혀 보여주지 않았다면, 단지 그가 비주류 출신의 대통령이었다는 이유만으로 결코 이런 평가를 내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박근혜 또한 여성 대통령으로서 시대가 요구하는 리더십과 철학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단지 생물학적인 여성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큰 의미를 갖기는 어려울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박근혜는 여성으로서의 차별적 상황을 극복하고 그 시대적 모순과 맞서 싸우며 대성한 정치인이라기보다 '박정희의 딸' 혹은 '영애 박근혜'로 인식된다. 따라서 여염집 딸들에게는 "박근혜처럼 하면 대통령도 될 수 있다"는 공식이 성립하지 않는다. 이는 노무현의 경우와 근본적으로 다른 지점이다.

여성 대통령에게 필요한 리더십의 조건

그렇다면 여성 대통령의 리더십은 무엇이어야 할까? (이것이 생물학적 성의 문제는 아니라고 한다면, 나는 이런 리더십, 즉 사회적으로 규정되는 성인 '젠더'로서의 여성적 리더십은 생물학적 남성 대통령에게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가장 중요한 덕목은 역시 모성애가 아닐까 싶다.

 선덕여왕과 미실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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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9년 우리 사회를 온통 '미실'의 열풍으로 몰고 들어갔던 드라마 <선덕여왕>은 이런 점에서 여성 대통령이 되고 싶은 박근혜에게 훌륭한 교과서가 될 것이다.(관련기사: 덕만과 노무현, MB와 미실...닮았을까?)

황제도 부럽지 않은 만년 절대 2인자로서의 삶에 만족하던 미실은, 덕만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스스로가 1인자가 되려고 하는 황제의 마음을 품고 정변을 일으킨다. 황제가 된다는 것은 만백성의 '어버이'가 되는 것이다. 미실의 지적 능력과 천부적인 정치 감각이면 황제의 마음이 곧 모성애임을 모를 리가 없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오래 전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위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내버렸던 자신의 아이(비담)가 비로소 제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황제의 새 마음으로 미실이 자신의 정변을 다시 바라보게 되자 이것은 일국의 황제로서, 만백성의 어버이로서 도저히 해서는 안 될 일임을 스스로 깨닫게 된다. 자기모순에 빠진 미실에게 남은 선택은 자결밖에 없었다.

미실과 비교하자면 박근혜에게는 지도자의 주인의식으로서의 모성애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가장 극적인 대목은 미실과 덕만 양측 모두 긴박한 대치상황에서도 절대로 최전방의 군대를 동원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는 조국 방어가 최우선의 과제인 황제로서, 또 만백성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야 할 어버이로서 도저히 취할 수 없는 조치였던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가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했던 박정희의 5.16 군사쿠데타에는 제6군단 포병대와 해병대, 그리고 제1공수특전단 등이 동원되었다. 이들은 모두 조국 방위의 최전선에 있던 부대들이다. 특히 육군본부를 접수한 포병대 5개 대대는 휴전선 방어임무를 방기하고 무단이탈한, 전무후무한 죄과를 저질렀다. 만약 박근혜가 미실이나 혹은 덕만과 같은 마음을 가졌다면 전방의 부대를 빼서 권력을 찬탈한 5.16을 두고 (설령 부친이 주도했던 일이라도)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박근혜는 작년 10.26 서울시장 재보선 때 무상급식을 망국적 복지 포퓰리즘이라며 반대하던 당시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를 도와 선거전에 뛰어들었다. 세종시 문제가 터졌을 때는 원칙을 고수한다던 박근혜가, 복지문제와 관련해서는 왜 자신의 원칙을 잠시 접고 나경원을 도왔을까? 그것도 어린 학생들이 마음 편하게 밥 먹게 하자는, 가장 모성애적 리더십이 필요했던 이슈를 놓고 벌인 선거에서 말이다.

특히나 나경원이 수시로 "딸을 가진 어머니의 마음"을 강조하는 걸 듣고 있어야 했던 박근혜의 심기가 편치 않았을 터인데, 그런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열심이었던 그 속내가 사뭇 궁금해진다.

대선전이 한창인 지금도 이를테면 야권후보들이 박근혜를 겨냥해서 "자식 가진 부모의 마음"을 애써 강조하지 않는 현실을 감안하면, 당시 나경원의 "딸을 가진 어머니의 마음"은 그 본의야 어떻든 간에 박근혜에게는 대단히 매너 없는 발언으로 여겨질 수도 있었다.

100억 원도 융통 못하는 지도자, 신뢰하기 어렵다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가 지난 10월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 중식당에서 열린 여성혁명을 시작하는 사람들의 모임 '대한민국 여성혁명 시대를 선포합니다' 행사에서 참석자들과 함께 파이팅 구호를 외치고 있다. 박 후보는 이날 모두 발언에서 "여성 대통령이 탄생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변화이고 쇄신이라고 생각"한다며 "아무리 큰 변화를 강조해도 이것보다 큰 변화는 없다"고 말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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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하지 않고 자식이 없다고 하더라도, 유능한 정치인이라면 여염집 가정이 일상적으로 느끼는 고충을 충분히 헤아리고 짐작할 수 있다. 그 자체가 지도자의 결격사유인 양 매도하는 것은 참으로 저열한 인신공격에 지나지 않는다.

박근혜의 문제점은 그가 유신의 퍼스트레이디로 자라왔기 때문에, 설령 그가 결혼해서 아이를 수십 명 키웠더라도 지금의 보통 가정집에서 느끼는 수많은 고충들-육아에서 사교육, 입시, 대학등록금, 군대문제, 내집 마련, 가계부채, 노후대책에 이르기까지-을 가슴과 현실로 느끼지 못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박근혜가 '젠더'로서의 여성 대통령이 되고자 한다면 우선은 5.16과 유신의 잔재 및 그에 따른 특권적인 상황(정수장학회 같은)부터 철저하게 청산하고 기본적인 모성(젠더적인 의미에서)부터 회복해야만 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면 박근혜의 여성 대통령론은 진정성을 전혀 갖지 못한 선거공학적인 득표 꼼수라는 비판을 면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한 가지.

대한민국은 이미 GDP가 1천조 원이 넘는,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다. 정부가 제출한 내년 예산안만 해도 340조 원이 넘는다. 그런 나라에서 참정권을 넓히기 위해 겨우 100억 원도 융통하지 못하는 지도자라면, 그런 후보는 여성이든 남성이든, 지도자로서의 역량에 큰 하자가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지도자가, 이를테면 어떻게 천문학적인 복지예산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정말로 100억 원이 '아까워서' 투표시간 연장을 못한다면, 그런 생각을 가진 후보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돈이 아깝다는 이유로 대통령 직선제가 다시 체육관 선거로 바뀌지 말라는 보장도 없지 않은가. 나같이 천성이 소심한 사람은 사소해 보이는 이런 문제에도 상당한 불안감을 느끼게 마련이다.

정말로 100억 원이 '없어서' 투표시간 연장을 못한다면, 지금 당장 투표시간 연장을 위한 전 국민 100억 원 모금운동이라도 시작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런 모금운동이 시작된다면, 나는 기꺼이 내 호주머니를 털어 돈을 낼 용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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