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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전국노동자대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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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이 살아 있으면? 문재인이고 안철수고 크게 혼났지. 뭐 다른 후보들도 마찬가지야. 그래도 문재인 아닐까? 여동생(전순옥 민주통합당 의원)도 거기 가 있잖아."

사무금융노동조합의 붉은색 조끼를 입은 40대 남성 노동자에게 "전태일 열사가 살아있다면 이번 대선에서 누굴 뽑을 것 같나?"라는 질문을 던졌다. 후보를 특정해 묻지 않았지만, 그는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 심상정 진보정의당 후보, 김소연 후보(전 기륭전자 분회장), 김순자 후보(전 진보신당 비례대표 1번) 등 진보진영의 후보들을 고려하지 않는 듯 보였다. 자연스럽게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만을 놓고 저울질했다.

결국 문 후보 쪽으로 무게를 둔 그는, 그 이유를 묻는 질문에 "안철수는 사람이 좋지만 어쨌든 자본가고 회사 오너지 않았나. 노동에 대한 정서가 부족한 것 같다"며 "문 후보는 예전에 노동 쪽 변호를 한 적도 있고 노동정책도 안 후보 보다 낫다는 기사를 본 적 있다"고 말했다. 그 뒤로 연령대와 성별을 섞어 10명의 노동자들에게 같은 질문을 던진 결과 4명이 문재인 후보를, 3명이 안철수 후보를 '전태일의 선택'으로 예측했다. 나머지 3명 가운데 2명은 심상정 후보를, 1명은 이정희 후보를 지목했다.

11일 오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주최한 '전태일 열사 정신 계승, 2012 전국노동자대회'에는 3만 여 명의 조합원과 연대단체 회원들이 참석했다. 대선을 앞두고 노동계의 '대선투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최근 개최된 노동 관련 집회 중 가장 많은 인원이 모였다. 참가자들은 단식 31일을 맞은 김정우 쌍용자동차 지부장과 20여 일째 송전탑에서 고공농성을 벌이는 현대자동차 비정규직노동자 최병승씨와 천의봉씨, 또 지난 9일 전국 동시파업에 들어간 학교비정규직노조의 사안을 가지고 구호를 외쳤다.

전태일이 살아 있다면 60대가 됐을 나이다. '현재의 전태일들'이라고 할 수 있는 노동자들이 모인 이 자리에서 야권의 유력 후보인 문재인, 안철수 두 후보의 노동정책을 물었다.

노동공약 '오타' 낸 안철수... "노동 모른다"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가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선거캠프 내 진심카페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차기정부의 7대 비전과 25개 정책과제에 대한 실행계획을 담은 정책약속집 '안철수의 약속'을 발표하고 있다. 이날 안 후보는 박근혜, 문재인 두 후보에게 반값, 절반만의 비용으로 대선 치를 것을 국민 앞에 함께 약속할 것을 제안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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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행진이 시작되기 전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는 오전 11시 국회 헌정기념관과 공평동 캠프에서 각각 대선정책을 발표했다. 여태까지 분야별, 의제별로 일부 공개됐던 공약을 정리해 집권 후 국가정책의 청사진을 밝히는 자리라고 할 수 있다. 노동자 대회 참석자들도 두 후보의 정책 발표에 관심이 높았다. 행진 시작 전 스마트폰으로 기사를 검색하고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눈의 띄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두 후보의 노동 관련 정책은 이전에 발표된 내용과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관련기사 : '노동 텃밭'서 나온 같은 '일자리 열매')

먼저 안철수 후보는 정책 발표에 앞서 지난 9일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을 방문해 노동계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에 앞서 울산 현대자동차 고공농성 현장과 서울 대한문 쌍용자동차 농성 천막도 방문했다. 이러한 행보를 통해 안 후보의 노동정책에 대한 기대감은 높았다. 이날 발표된 안 후보의 공약집 '안철수의 약속' 440쪽 가운데 '노동' 관련 공약은 14페이지를 채웠다. 기존 홈페이지에 게시된 공약에서 '노사정위원회 위상 강화'와 현대자동차 사태로 대표되는 사내 불법 하도급 관련해 원론적인 입장을 추가한 정도다.

민주노총은 지난달 21일 안 후보의 노동관련 정책이 처음 발표된 직후 "노동 3권과 노동감수성이 보이지 않는다, '착한 이명박' 이상의 평가를 받기 어렵다"고 혹평했다. 특히 "'사회통합적 노사관계로 회사와 노동자가 함께 갈 수 있도록 한 줄로 언급한 것은 노동정책이 아예 없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든다"고 질타했다. 또 '노동자'라는 단어 대신 '근로자'라는 단어만을 고집하는 모습도 "능동적 주체로서의 '노동자'가 아닌 수혜의 대상이고 수동적인 '근로자'로 인식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러한 비판은 이날 발표된 안 후보의 공약집에서 일부 반영됐으나 다시 재평가를 받을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애써 추가한 문장에는 오타까지 있다. 공약집 133페이지에 '사내 하도급 문제는 불법을 준수하고 이행토록 조치하는 데 중점'이라는 문장이 그것이다. 현대차 고공농성장을 다녀온 만큼 그것과 관련된 정책을 제시했는데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문장이 추가됐다. '불법' 대신 '법률'이 들어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 정책의 큰 제목은 '개인과 기업이 함께 성공하는 경제'이고 작은 제목은 '사회통합적 노사관계 구현'이다.

이날 대회에 참석한 금속노조 소속 김진희(33, 여)씨는 "안철수 후보가 젊고 신선하다는 이미지는 있지만 딱히 '노동'에 대해서 무엇을 말 했는지 알 수가 없다"며 "현대차도 갔고 쌍용차도 갔다는데 그냥 원칙적인 이야기만 내놓은 게 아닌가, 말은 안 하는 건지 말 한 게 보도가 안 되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화물연대 조합원 김아무개(47, 남)씨도 "안철수의 생각을 읽어봤는데 좋은 이야기는 많지만 나에게,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는 잘 모르는 것 같았다"며 "지지하지는 않지만 그가 더 나은 계획을 내놓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문재인, 노동시장 유연화 반성해야"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가 11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일자리혁명·경제민주화·복지국가·새정치·평화와공존 등 '다섯 개의 문, 단 하나의 문'이라는 제목의 정책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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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문제가 대부분 '일자리'로 치환되는 것은 문재인 후보도 마찬가지다. 안 후보와 비중의 차이가 있다면, 문 후보는 '다섯 가지 문' 가운데 '일자리 혁명의 문'을 가장 앞에 놓았다는 것을 꼽을 수 있다.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창출, 청년일자리 집중 지원, 최저임금 인상, 중대 산업재해 사업장에 대한 징벌적 배상제도 등은 안 후보와 일치하지만 특수고용노동자 문제와 불법 사내 하도급 문제에서는 보다 진보한 공약을 내놓았다.

안 후보가 '오타'를 낸 사안에 문 후보는 "기업의 불법파견과 위장도급을 근절하기 위해 징벌적 배상제도를 도입하고 재발 시 형사처벌 가능하도록 법 개정"이라는 방안을 밝혔다. 또 안 후보가 '산재보험 가입'이라는 해결책을 제시한 특수고용노동자 문제에 '노동기본권 보장'이라는 더욱 포괄적이고 근본적인 방안을 제시했다. 특수고용노동자는 학습지 교사, 화물차 운전자, 택배노동자 처럼 노동자로 일하지만 개인사업자로 등록돼 4대보험과 노동3권이 보장 되지 않는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안 후보보다 나은 평가를 받는 문 후보에게 노동계는 "뼈아픈 반성"을 요구했다. 정호희 민주노총 대변인은 이날 <오마이뉴스> 기자와 만나 "전반적인 정책에서 비슷하지만 일부 사안에서 문 후보가 더 준비 돼 있다고 본다"며 "그러나 그 공약이 과연 제대로 지켜질 수 있을 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후보들이 비정규직과 정리해고 문제는 '노동시장 유연화'가 낳았다는 것을 모른다면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김대중 정권이 IMF를 극복하겠다는 이름 아래 시작한 것이 노동 유연화다, 그것은 노무현 정권에서 더욱 심화 됐고 이명박 정권은 '비즈니스 프렌들리'라며 노골적으로 그 의도를 드러낸다"며 "문 후보는 지난 정권에서 시작된 '노동 유연화'에 대한 철저한 반성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흐트러진 진보정치 아쉽다, 전태일 정신 살려내야"

 11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전태일 열사 정신 계승 전국노동자대회'에서 한 참가자가 '비정규직의 피눈물'을 상징하는 분장을 하고 있다.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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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현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
ⓒ 노동과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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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대회에서 정의헌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은 "지금 대선은 우리 사회의 향방을 놓고 자본독재 세력과 전체 민중들이 벌이는 한 판 큰 싸움"이라며 "노동자 민중의 생존권을 벼랑 끝으로 내몬 IMF 체제 15년의 경제, 노동정책의 전면적 기조 전환을 위해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흐트러진 진보정치가 지금처럼 아쉬울 때가 없었다"며 "진보정치 대통합을 위한 민주노총의 노력은 실패했지만 노동정치의 단결 없이 진보정치의 통합은 불가능하다, 노동정치의 중심을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세 번의 정권은 노동자가 세상을 바꾸지 않으면 사람답게 살 수 없다는 교훈을 남겨줬다"며 "이번 대선에서 정권교체는 분명히 돼야 하지만, 그것만으로 우리의 요구가 받아들여질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교훈을 잊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투표권이 박탈된 비정규노동자들의 참정권을 위해,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함께 진보적 정권교체를 위해 투쟁해 달라"며 "시다들에게 버스비를 털어 풀빵을 사주고 자기는 걸어 다녔던 전태일 열사의 정신을 되살리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태일 열사 정신계승 전국노동자 대회'는 지난 1970년 11월 13일 전태일 열사의 기일에 맞춰 민주노총이 매년 개최해 왔다. 이날 대회는 오후 2시 청계천 전태일 다리에 참가자들이 집결해 을지로와 남대문을 거쳐 서울역까지 행진 한 후 서울역 광장에서 오후 4시30분부터 본대회 행사를 진행했다. 비정규직 철폐, 정리해고 철폐, 노조파괴 중단, 노동자 참정권 보장(투표시간 연장), 진보적 정권교체 등 5가지를 대회 핵심요구로 상정했다. 민주노총은 이날 이후 5가지 핵심요구를 가지고 대선투쟁에 돌입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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