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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대선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힘들었다. 영화는 끝났고 불이 켜졌는데 일어설 기력이 없었다. 4층 극장에서 계단을 걸어 내려오는데 허공을 딛는 것 같이 걸음이 휘청거린다. 밖으로 나와 급하게 자리를 찾아 앉았다. 106분의 시간, 나는 무서운 곳을 보고 왔다. 김근태 선생이 22일 동안 악마의 시간을 보냈던 그곳, 남영동 대공분실.

27년 전으로의 시간여행은 잠시나마 마음 한 조각이 칠성판에 묶이기를 강요했다.

<오마이뉴스>가 진행한 영화 <남영동 1985> 시사회가 지난 7일 서울 영등포 CGV에서 진행됐다. 영화를 보고 싶은 욕심에 일찌감치 이름을 올려놨지만 정작 날짜가 다가오자 끝까지 볼 수 있을까 걱정이 들었다. 걱정은 기우가 아니었다. 고춧가루를 입으로 부어넣은 장면, 대변을 쏟아내도록 전기 고문을 가하는 장면에서는 도저히 똑바로 영화를 쳐다볼 수가 없었다. 눈을 감아도 소용이 없었다. 분신 배후로, 이적단체 구성원으로 대공분실, 안기부, 보안대로 잡혀 갔던 친구들과 수많은 선후배들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그들도 저렇게 얻어맞고 고문을 당했겠지.

영화속의 하루는 정말 길었다. 그 긴 고문이 장장 22일 동안 계속됐다.

똑바로 볼 수 없었던 영화 <남영동1985>

 영화 <남영동 1985>의 한 장면
ⓒ 아우라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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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갱이는 애초 존재하지 않았다. 총칼로 정권을 잡은 정권이 자기 정당성을 확보하는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빨갱이를 찾아내어 국민들에게 내보이는 것이었고, 당시 남영동 대공분실은 없는 빨갱이도 만들어야 하는 것이 존재 이유였다. 24시간 미행하고 도청해서 김종태(김근태의 영화 속 이름, 박원상 분)의 일거수일투족을 샅샅이 알고, 그래서 간첩이 아닌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대공 수사관들. 그들은 백지를 던져주면서 스스로가 주인공이 된 간첩소설을 쓰게 했고, 패고 고문하면서 누가 보아도 완벽한 작품(?)을 요구했으며, 몇날 며칠을 잠도 재우지 않고 소설의 암기를 강요했다. 오로지 독재 정권을 위해서, 각하를 위해서.

청진기로 진찰하고 타임워치를 이용하여 인간이 죽음에 이르기 직전까지 치밀하게 계산하는 고문. 그러면서도 이근안과 고문 수사관들은 라디오를 통해 프로야구를 들었고, 만나주지 않는 애인 이야기를 했고, 월급과 야근에 대한 푸념을 쏟아 놓았다. 극한의 고문을 가하면서 수시로 '클레멘타인(Oh, My Darling Clementine)'을 휘파람으로 불었던 이두한(이근안의 영화 속 이름, 이경영분). 고문의 흔적인 멍든 자국을 지우려고 안티프라민을 바르는 그의 모습에는 어떤 가책이나 주저함도 없었다. 그는 인간일 수 없었다. 독재정권에 의해 잘 단련되어진 '고문병기'일 뿐이었다.

지난해 12월 30일 김근태 선생은 투병생활 끝에 끝내 운명을 달리했다. 조문을 하던 날 환하게 웃는 선생의 영정을 보면서 그들을 용서하셨냐고, 22일 동안 죽음보다 더한 고문을 가한 그들을 용서하셨냐고 묻고 싶었다. 선생이 장관이 되고 감옥에 있는 고문기술자 이근안을 만나면서 일부 언론에서는 용서와 화해라는 섣부른 예단 기사를 실었다. 그 기사를 보면서 선생의 아픔이 시간의 흐름으로 치유될 상처인가 의문이 들기도 했었다. 이제는 영영 선생에게 어떤 대답도 들을 수 없지만 살아있는 김근태, 수많은 고문 피해자들이 세월의 흐름을 핑개삼아 용서와 화해를 강요받더라도 섣불리 손 내밀지 마시라고 권하고 싶다.

 고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64세로 별세한 가운데, 지난 2011년 12월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 영정사진이 놓여져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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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뚤어진 역사 속에서 몇 번이나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조건 없는 용서와 화해를 강요했다. 총칼로 정권을 잡았던 정부. 민심의 기반이 취약하면 취약할수록 그 정권에서는 고문과 살육이 넘쳐났다. 역설적이게도 그들이 국민에게 요구했던 것은 용서와 화해였다. 전두환은 그의 취임사에서 광주 살육은 일언반구도 하지 않은 채 "국민 모두가 다함께 손을 마주잡고 새로운 광명의 시대를 향하여 힘찬 전진을 하자"고 역설했고, 노태우도 "서로 용서하고 서로 한발짝씩 물러서는 호양(互讓)의 정신아래 우리가 오늘 묻어 버리는 미움의 앙금은 우리와 우리의 후손들이 거두어들일 민주와 복지의 풍요로운 열매를 낳는 값진 밑거름이 될 것"이라며 화해와 용서를 주문했다. 통합과 국가 번영이라는 미명하에 강요되어진 화해와 용서, 그건 피해자에게는 또 다른 고문에 지나지 않았다.

가해자가 요구한 화해와 용서, 그건 또다른 고문
 
군부독재가 끝난 지도 20년이 지났다.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었을 시간이지만 독재정권의 상처는 여전히 깊다. 영화 마지막은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권 하에서 온갖 고문에 간첩이 되었던 많은 사람들의 인터뷰가 이어지면서 끝을 맺는다. 그들의 아픔은 한결같이 여전히 진행형이었으며 누구하나 용서했노라고, 다 잊었노라고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편에서 또 누군가는 이미 다 끝난 일이라고, 이제는 역사의 평가에 맡길 일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영화 <남영동 1985>의 한 장면. 고문기술자 이두한이 전기고문을 하고 있다.
ⓒ 아우라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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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기술자 이근안. 그는 여전히 반성하지도 사과하지도 않았다.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애국은 남에게 미룰 수 있는 일이 아니다...지금 당장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똑같이 일할 것"이라며 "심문(고문)도 하나의 예술이다"라고 어처구니 없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그뿐이 아니다. 목사가 되고 나서도 안보 강연에 나서 "급식노조가 만들어져 전교조와 합세하면 나라가 끝장난다"며 무상급식 반대를 주장하기도 했다. 네이버 인물정보에 보면 그는 여전히 전 목사, 전 경찰공무원. 1981년 내무부장관 표창과 1979년 청룡봉사상을 수상한 인물로 소개되고 있다. 정부 표창을 수상한 애국경찰관 이근안. 이것이 후대들이 기억해야 할 고문기술자의 이력이라면 우리 모두는 용서와 화해를 가장한 역사적 범죄의 은폐자에 지나지 않는다. 

대통령 후보가 된 직후인 지난 8월 28일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전태일 재단을 방문했다. 불행했던 과거와 화해하고 국민대통합을 주창하기 위해 준비한 자리였다. 그러나 살아 있는 수많은 전태일의 고통을 외면한 쇼에 불과하다는 거센 비판에 직면해야 했다. 또한 박 후보 측은 과거 정치적 정적이었던 김대중 정부의 비서실장을 지낸 한광옥씨 등 일부 동교동계 인사들을 영입하면서 화해와 국민대통합의 외형 다듬기에 치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박근혜 후보나 새누리당에게서 정작 과거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나 반성은 찾아 보기 어렵다. 장준하 선생 사인 규명이나 인혁당 사건 등 유신 시대의 인권 유린 사건에 대한 박근혜 후보의 태도는 세월이 지났으니 덮고 가자는 애매모호한 태도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또 다른 한편에서는 상대 후보나 그 참모들을 빨갱이로 낙인찍기 위한 저열한 공격을 계속하고 있다. 안철수 후보의 복지 공약에 대해서 '마르크스가 공산주의 사회를 주창하면서 사용한 슬로건'이라며 공세에 열을 올렸던 김무성 총괄선대본부장의 행태나 NLL 문제에 대해 연일 계속되는 새누리당의 묻지마식 공세는 상대방을 어떻게든 빨갱이로 낙인찍고 보자는 구태정치에 불과하다. 국민들에게 화해와 용서, 통합을 이야기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빨갱이 낙인찍기와 색깔론은 펴는 것은 과거 군부독재시절 정권의 모습과 묘하게 닮아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대선 후보들께 이 영화를 추천한다

새누리당. 수차례 당명을 바뀌고 사람이 바뀌었을지언정 그 당이 유신때부터 내려오는 민주공화당, 민정당, 민자당, 신한국당, 한나라당으로 이어지는 보수정당의 적자라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새누리당의 고위 당직자나 박근혜 대선 캠프 인사들 가운데는 박정희, 전두환 정권에서 복무했던 사람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지나간 역사에서 숱하게 이루어진 인권유린과 학살들. 새누리당 역시 보수정당의 적자로서 그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화해와 용서. 가해자의 적통을 이어받은 새누리당이 할 말은 아니다. 화해와 용서는 온전히 피해자의 몫이다. 새누리당이, 박근혜 대선 후보가 진정 국민대통합을 원한다면 먼저 해야 할 일은 자명하다. 장준하 선생 죽음 등의 진상규명에 여당으로서 대선후보로서 힘을 보태야 한다. 또한 수많은 미제 사건에 대해서도 철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의지를 천명해야 한다. 세월이 지났으니까 덮고 가자는 주장은 암세포를 걷어 내지 않으면 죽을 환자에게 너무 고통스러우니 수술하지 말자는 이야기와 같다. 국민대통합을 위해서는 진상 규명과 진정성이 있는 반성이 먼저다.  

영화 <남영동 1985>, 박근혜를 포함한 모든 대선 후보들이 한번 봤으면 좋겠다. (12일 문재인-안철수 후보는 이 영화를 관람했다.) 일반 관객은 눈돌리고 신음하더라도 대선 후보들은 무릎을 꼬집고 어금니를 꽉 깨물고 끝까지 보길 권한다. 반복되지 말아야 할 아픈 역사,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후보들이 가장 먼저 알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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