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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세계의 희망은 모든 활동이 자발적인 협력으로 이뤄지는 작고 평화롭고 협력적인 마을에 있다.' 인도 독립의 아버지 마하트마 간디의 책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2012년, '콘크리트 디스토피아' 서울 곳곳에서는 '마을공동체 만들기'가 한창입니다. 함께 '집밥'을 먹고 책을 읽고 텃밭을 가꾸는 것부터, 아이를 같이 키우고 일자리를 나누고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것까지. 반세기 전 간디의 정신은 아직도 유효합니다. <오마이뉴스>는 다양한 마을만들기 사례를 통해 마을이 왜 희망인지 살펴봅니다. [편집자말]
 5일 오후 서울시 성북구 한성대에서 바라본 장수마을의 전경이다.
 지난 5일 오후 서울시 성북구 한성대에서 바라본 장수마을 전경.
ⓒ 조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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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일 오후 서울시 성북구 장수마을에는 한성대학교 벽화봉사단이 그린 벽화들이 마을 곳곳에 있다.
 장수마을에서는 한성대학교 벽화봉사단이 그린 벽화를 곳곳에서 볼 수 있다.
ⓒ 조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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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들에겐 골목이 있어야 했다. 모두가 배고팠던 시절, 따닥따닥 붙은 집과 그 사이에 난 좁은 골목에서 사람들은 모였다. 먹고살기 바쁜 생활에 아이를 잠깐 맡길 수도, 함께 밥을 나눌 수도 있었던 곳이 골목이었다. 골목은 서로에게 부족한 것을 채워주는 통로였다. 하지만 서울에는 골목이 대부분 사라졌고, 사람을 벽으로 나눈 아파트가 차곡차곡 쌓였다.

성북구 삼선동에 1960~1970년대 그 시절 모습이 그대로 보존된 골목이 있다. 바로 장수마을이다. 장수마을에는 막다른 골목도, 한 사람만 겨우 지날 수 있는 골목도 많다. 주민들은 골목에서 만나 안부를 나누고, 소통한다. 골목의 누구네 집은 주민들의 '뜨끈한 사랑방'이 된다.

지난 5일 오후, 비 오는 장수마을의 골목길을 누비는 이가 있었다. '골목 통신원' 배정학(44)씨.

장수마을의 여섯 통신원 중 한 사람이다. 장수마을은 마을 주민들의 소통 창구로 여섯 골목마다 통신원을 두고 있다. 통신원은 골목 회의를 위해 주민을 소집하고 마을 소식을 전하는 역할을 한다. 그는 할머니 쉼터 골목 13가구를 담당하고 있다.

"이번 주 금요일 회의에서 CCTV는 어디에 달 것인지, 쓰레기통은 어디에 둘 것인지 얘기할 거예요. 달고 나서 맘에 안 든다고 딴소리 하지 말고, 회의에 와서 한마디씩 하셔요."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욱 필요한 '골목'

 장수마을 주민이자 동네목수 총무인 배정학씨가 5일 오후 서울 성북구 장수마을 공사 현장을 설명하고 있다.
 장수마을 주민이자 '동네목수' 총무인 배정학씨가 5일 오후 서울 성북구 장수마을 공사 현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조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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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일 오후 서울 성북구 장수마을 '동네통신원' 이옥순씨(우측)의 집에서 문정자씨, 최금규씨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지난 5일 오후 서울 성북구 장수마을 '동네통신원' 이옥순씨(맨오른쪽)가 집에서 문정자씨, 최금규씨와 이야기를 하고 있다.
ⓒ 조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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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배씨는 매주 금요일 열리는 골목 회의를 안내하기 위해 이옥순(72)씨 집을 방문했다. 이씨네에는 골목에 사는 문정자(70)·최금규(86)씨도 '마실' 나와 있었다. 이씨도 골목 통신원이다. 배씨는 통신원들의 대표 역할도 맡고 있다.

지난 4월 서울시가 장수마을을 역사, 문화 특화마을 시범 대상으로 선정하면서 주민들의 회의가 잦아졌다. 주민들의 필요와 계획에 따라 마을이 새롭게 단장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씨는 "아들 같은 배씨가 놀러 오면, 밥이든 간식이든 주고 싶다"며 "처음엔 배씨가 너무 열심히 해서 억지로 모임에 나갔는데 이제는 내가 사람들을 모으게 된다"며 웃었다.

배씨는 지난해 11월, 장수마을에 들어왔다. 1년 남짓 살았지만 자기가 맡은 골목 13가구의 "숟가락이 몇 개인지 알고 있다"고 말한다. 그 사이 주민들의 신임이 두터워져 도시가스 설치 문제, 집수리 비용 상담은 물론 간단한 집수리도 직접 해준다. 마을 일꾼이 된 것이다.

그는 장수마을의 마을기업, '동네목수'(박학룡 대표)의 총무도 맡고 있다. 그가 이 마을에 들어오게 된 데는 동네목수가 빈집을 수리해 저렴한 월세로 방을 내놓은 것이 한몫했다.

이날 비 때문에 예정돼 있던 야외 작업은 취소됐고, 대신 공방에서 김금춘(76)씨가 서랍장을 제작했다. 백발의 김씨는 50년 넘게 목수 일을 해온 베테랑이다. 씨잉하고 돌아가는 절단기에 재단했던 나무 조각이 잘려나갔다. 움직임은 느리지만 자를 대고 기계를 돌리는 눈빛에서 장인의 눈길이 느껴졌다.

김씨는 "집에서 놀면 뭐해, 일하면 시간도 잘 간다"며 "마을에 빈집이 많지만 내가 하나씩 고쳐서 집 없는 사람들에게 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김씨는 "나이가 들어 힘이 없지만, 일을 하다 보면 젊어지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동네목수'는 집수리 전문기업이다. 수리가 필요한 집을 이웃이 고쳐주겠다는 것이다. 새로 집을 짓는 대신 고장난 곳을 고치고 도배하는 주택 개량 사업을 벌인다. 동네목수는 지난해 행정안전부의 마을기업 사업에 선정돼 5000만 원의 지원금을 받아 설립됐다.

동네목수는 현재 배씨를 비롯해 총 네 명의 마을 사람들을 정규직으로 고용하고 있다. 배씨 외에도 이중구(47), 김금춘씨가 집수리를 맡고 있다. 지난 5월 문을 연 '마을 카페'에서 지기로 일하는 김혜경(44)씨도 있다. 네 사람은 그야말로 '일터와 삶터가 일치하는' 마을 살이를 하고 있다. 직장과 거주지가 분리되는 도시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고용 형태다. 배씨는 마을 밖으로 나갈 일이 별로 없다고 말한다. 마을 안에서 일과 의식주를 모두 해결하는 온전한 마을 사람이다.

동네목수는 마을 주민에게도 일용직 일자리를 제공한다. 벽돌을 나르는 것 같은 간단한 일은 마을 주민에게 맡긴다. 지난 4월 주식회사로 전환해 주민이 참여하고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10일 일했으면 하루 일당은 동네목수에 투자해"라고 권유한다. 한 사람, 두 사람 참여하다 보면 다른 사람도 '나도 한 다리 걸쳐 볼까'하는 마음이 들게 하는 것이다.

재개발 혼란에서 피어난 장수마을과 동네목수

 장수마을 주민인 김금춘씨가 5일 오후 서울 성북구 장수마을 공방작업장에서 마을에 쓰일 수납장을 제작 하고 있다.
 장수마을 주민인 김금춘씨가 5일 오후 서울 성북구 장수마을 공방작업장에서 마을에서 쓸 수납장을 제작하고 있다.
ⓒ 조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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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20일, 서울 성북구 삼선동 장수마을의 동네목수에 열린 화분 만들기 목공 교실이 열렸다.
 서울 성북구 삼선동 소재 장수마을에서 열린 화분 만들기 목공 교실에 주민들이 참여하고 있다.
ⓒ 장수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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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목수의 시작은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부동산 시장이 과열되면서 서울 곳곳에 재개발 광풍이 불었다. 돈 있는 사람들의 투기 열풍에 세입자들은 거리로 쫓겨나야 했다. 이 과정에서 주거권 문제가 불거지자 생태적인 대안 개발을 꿈꾸던 이들이 나섰다.

2008년, 녹색사회연구소와 성북주거복지센터·주거권운동네트워크 등 시민단체들은 삼선동 1가 300번지 일대의 삼선4구역을 주목했다. 이들은 마을의 지형 조건과 주민들의 욕구, 주거형태 등을 조사하고 대안개발모델을 연구했다. 대안개발연구모임(이하 연구모임)을 꾸려 2009년부터 '장수마을 만들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애초 주거 재생을 목표로 동네목수를 설립했지만 사회, 경제적인 재생도 필요하다고 판단해 마을 만들기 사업을 벌이고 있다.

박학룡(44) 동네목수 대표는 당시 연구모임을 주도하며 장수마을에 발을 들였다. 박 대표는 "재개발로 쫓겨나지 않는
물리적 대안을 찾다보니 사회·경제적 대안도 동시에 추진할 수밖에 없었다"며 "주거 재생이 따로 떨어져 있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연구모임이 주도한 활동으로는 주민들이 마을 활동에 자발성을 갖는 데 한계가 있다. 박 대표는 "우리가 잘 되고 있는 데를 들어가 지원하려고 한 것은 아니다"며 "계속 방치되고 버려진 곳, 대책이 없는 데서 대안을 만들려고 하다보니 주민주도라는 게 어렵다, 풀어야 할 숙제"라고 말했다.

장수마을은 재개발예정지로 분류됐지만 서울성곽(사적 제10호)과 삼군부 총무당(서울 유형문화재 제37호)이 있고 북동향의 급경사 구릉지라는 여건 때문에 재개발 제약 요인이 많았다. 건설사는 문화재를 보존하고 고도제한을 감수하면서 개발을 추진할 이유가 없었다.

토지도 64%가 국공유지다. 대부분 집들이 무허가 주택이고, 국공유지에 사는 사람들은 재개발로 보상을 받기는커녕 토지사용료인 변상금을 내야 한다. 지금도 생활이 힘든 노인들에게 수백만 원에 이르는 변상금 독촉장이 날아온다. 이들은 국가에 내는 월세라고 생각하며 변상금을 감당하고 있다.

장수마을에는 현재 166가구에 220여 세대가 살고 있다. 자가 비율보다 세입자들이 많다. 또 65세 이상의 노인이 전체 인구의 50%가 넘는다. 대부분 주민들이 30, 40년 이상 장수마을에서 살아왔다. '장수마을'은 이런 특성과 이 지역에 있던 '장수길'이라는 명칭이 합쳐져 붙은 이름이다. 피붙이보다 더 가까이 지냈기에 장수마을 주민들의 이웃 사랑은 남다르다.

화투로 모은 돈, 수제비 끓이다

  지난달 26일 장수마을의 박노순(76)씨 집에서 수제비 파티가 열렸다. 박씨집은 장수마을 주민들이 모이는 사랑방 중의 하나다. 갓 담근 배추김치와 총각김치가 곁들여져 수제비 맛은 일품이었다.
 지난 10월 26일 장수마을의 박노순(76)씨 집에서 수제비 파티가 열렸다. 박씨 집은 장수마을 주민들이 모이는 사랑방 중 하나다. 갓 담근 배추김치와 총각김치를 곁들인 수제비 맛은 일품이었다.
ⓒ 강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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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월 11일, 장수마을에서 영화 상영회가 열렸다.
 지난 9월 11일, 장수마을 주민들이 영화를 감상하고 있다.
ⓒ 장수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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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정오, 박노순(76)씨 집에서 수제비 파티가 열렸다. 박씨네는 주민들이 모이는 '사랑방' 중 하나다. 골목의 최고령 손귀례(86) 할머니를 비롯해 이현구(72)·박정렬(70)·이순란(67)·김윤자(66)·정순자(65)씨가 자주 모이는 멤버들이다. 식구들이 일하러 나간 뒤 종일 혼자 있는 이들은 점심시간에 밥상을 함께하는 날이 많다. 이날은 이 멤버들이 연구모임의 활동가들을 위해 수제비를 준비했다. 연구모임이 영화 상영회를 열고 마을 공방 교육을 하는 등 마을활동에 관심을 가져준 것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였다.

활동가들과 주민들이 담소를 나누는 사이 수제비가 끓기 시작했다. 갓 담근 배추김치와 총각김치가 곁들여졌다. 7평의 방에 마을 주민과 연구모임 사람들 15명이 둘러 앉아 뜨끈한 수제비 한 그릇을 나눴다. 모임 활동가는 다음에 카레를 대접하겠다고 약속했다.

"5점 났어? 그럼 100원 내야지."
"고스톱 치면 뭐해. 만날 개평 주고 남는 게 없어."

이날 준비한 수제비는 누구 주머니에서 나왔을까? 사다리 타서 '꽝' 걸린 사람이 냈을까? 7분의 1씩 추렴했을까? 답은 '사랑방 돈주머니'다.

박씨네 집에서는 화투판이 자주 벌어진다. 재미삼아, 시간 때우기 위해 벌인 화투판이 골목에는 공동 자금을 마련해준다. 이긴 사람은 5점당, 100원을 기부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날 돈주머니에는 만 원에 가까운 돈이 모여 있었다. 이 돈은 주로 사랑방에 쓰일 물건을 사는 데 활용된다.

마을의 지속가능성, 꾸미지 않는 자연스러움에 달렸다

장수마을은 사랑방을 거점으로 마을 활동이 이뤄지고 있다. 다른 골목 사람을 일부러 불러 모으는 게 아니라 거점에 근거한 활동에 주력한다. 다만 동네목수와 연구모임은 골목 사랑방에 기름 값을 지원하거나 도배를 해주는 등 제한적으로 지원한다.

박학룡 대표는 "노인이든, 애들이든 어떻게든 어울려 있으면 서로 보살피게 되고 소외되는 사람이 줄어들 것"이라며 "끼리끼리 골목에서 모이게 해도 그 중에 왕따가 생길 수밖에 없지만 자꾸 어울리면 서로 정이 생기는 것 아니겠나"고 말했다.

장수마을은 서울의 대표 마을공동체로 알려져 있다. 지난 2일에는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장수마을을 찾아 자신의 주거복지정책을 발표하기도 했다. 9월에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마을에서 정책워크숍을 열었다.

하지만 박 대표는 장수마을이 서울의 대표 공동체라고 불리는 것에 부담스러워 했다. 언론 보도를 통해 동네목수의 주택 개량 사업이 소개되자, 재개발을 노리고 투자했던 집주인들이 세입자에게 월세 인상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박 대표는 보여주기식의 일시적인 활동보다 자연스러운 활동을 지향한다.

"서울은 한 곳에서 오래 살기가 어렵죠. 때문에 이주는 자연스러워요. 장수마을은 저렴한 주거지가 절박한 사람에게 기회예요. 또 떠나고 싶다면 언제든지 나갈 수 있게 해야하죠. 폐쇄적인 공동체보다 있는 그대로의 동네가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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