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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뉴스 외국 경제학자가 파헤친 '이명박근혜'의 실체

▲ 선본사 전경 눈길이 날카로운 독자들은 이 사진을 보면서 탑이 보이지 않는 특이한 광경에 주목할 것이다.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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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소원은 꼭 들어준다'고 알려진 팔공산 '갓[冠]바위 부처'는 선본사 소속이다. 당연히 선본사는 팔공산의 관봉(冠峰) 아래에 있다. 행정 주소는 경상북도 경산시 와촌면 대한리 587번지. 갓바위로 오르는 등산로 입구에서 바로 오른쪽에 있다.

그런데 갓바위에 올라갔다가 내려온 답사자들 중에는 선본사의 삼층석탑을 아니 보고 돌아가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115호인 이 석탑은 선본사가 신라 고찰이라는 사실을 증언하는 뜻깊은 유물인데도 외면받고 있다. 왜 그럴까?

이론의 여지 없이, 너무나 유명한 '관봉 석조여래좌상(갓바위)'의 위세에 짓눌린 탓이다. 경주의 효현리 석탑(법흥왕릉 인근), 선도산 석탑(서악고분군 뒤 진흥왕릉 인근) 등 국가 지정 '보물'들이 다보탑, 석가탑 등에 밀려 격에 어울리는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 탑이 없다 금당인 극락전이 가운데 있고, 그 오른쪽에 산신각이 있다. 극락전 앞에서 내려다보면 왼쪽에 종무소, 오른쪽에 선방 및 요사채, 그리고 정면으로 범종루인 선정루가 자리잡고 있다. 종루 위로 관봉 정상이 얹힌 듯 솟아 있다. 탑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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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선본사 삼층석탑의 '소외'를 제대로 설명했다고 할 수 없다. 좀 더 현실적인 까닭을 알려면 선본사 극락전 앞에 서 보아야 한다. 탑은 사찰의 본당 앞뜰 가운데에 혼자 서 있거나, 아니면 동서로 쌍탑을 이루고 있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이곳 선본사에는 일탑도 쌍탑도 보이지 않는다.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사찰 경내를 뱅뱅 돌아본다. 한눈에 전체를 다 살펴볼 수 있는 극락전 앞뜰이야 말할 것도 없고, 극락전, 산신각, 요사채 그리고 종무소의 앞뒤좌우까지 모두 뒤진다. 혹시 경주 나원리 국보탑처럼 법당 뒤에 탑이 있는 게 아닐까 싶어서다. 그러나 탑은 여전히 없다.

금당 앞에 탑이 없는 산본사

 선본사의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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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답답해진다. 선본사엔 탑을 보러 왔는데 이건 숫제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다' 꼴 아닌가. 분명히 극락전 앞 안내판에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115호인 삼층석탑은 무너져 있던 석탑의 부재를 모아 1979년에 복원해 놓았다. 이 외에 석조대좌와 석등 하대석과 간주석이 2기씩 남아 있다. 이들 문화재는 선본사의 연혁을 알려주는 중요한 문화재로서 모두 신라 후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라고 명기되어 있는데, 그렇다면 누가 탑을 훔쳐가기라도 했단 말인가.    

그 무거운 탑을 누가 어떻게 가져갈까? 그러나 실제로 있는 상황이다. 경상북도 상주시 사벌면 목가리 소재 삼층미륵탑(고려 초기 작품)은 2007년 11월 30일에서 12월 4일 사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탑을 해체해서 훔쳐가는 사례가 종종 있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선본사 탑이 지금 안 보이는 것 역시 절도범 탓일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그냥 절을 나올 수는 없다. 이럴 때는 종무소를 찾는 게 최선이다. 아니나 다를까, 종무소 직원이 손가락을 들어 하늘을 가리킨다.

"저어기 계곡 건너 높은 숲속에 보이지요? 종루 계단 바로 아래에서 계곡을 건넌 다음 올라가면 됩니다. 물길 공사 하느라고 예전에 있던 다리가 없어졌으니 조심하세요."

아! 보인다. 탑이 보인다. 극락전 앞에 올라와서 보니 더욱 뚜렷하게 보인다. 올라가자! 방금 850m 갓바위에 올랐다가 내려온 길이라 조금 피곤하기는 하지만, 그냥 물러설 수는 없다. 나는 편하게 볼 수 있는 것만 대충 보고 지나치는 단순 관광객이 아니라 '역사 유적과 문화유산 답사자'가 아닌가. 

 선본사 극락전 앞에서 바라본 갓바위 방면의 풍경. 선본사는 탑이 본전 앞뜰 중앙에 있지 않고 계곡 건너 작은 산봉우리에 있는 점이 특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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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을 건넜지만 길이 없다. 조금 전까지는 탑이 없었는데 지금은 길이 없다. 잠시 주변을 살펴본다. 극락전에서 쳐다보았을 때 가늠해둔 탑의 위치와 지금 내가 서 있는 곳 사이를 잇는 직선을 상상해본다. 그리고는 머릿속의 직선을 따라 낙엽을 밟으며 산을 오른다.  

나무를 부여잡고, 가끔은 땅을 짚어가며 허리를 굽힌 채 오르막을 오른다. '기다시피'라고 하면 좀 과장이겠지만 나의 두 눈은 내내 50cm 정도 아래의 낙엽만 보고 있다.

겨우 10분가량 올랐는데 금세 땀이 난다. 운동은 1주 3회 이상, 1회 30분 이상, 땀이 날 때까지 움직여야 효과가 있다던데 지금은 너무 빨리 땀이 난다. 비탈진 오르막을 끙끙댄 탓이다. 어쨌든 산을 다니며 역사유적과 문화유산을 답사할 때 발생하는 일석이조의 수확, 즉 운동 효과가 나타나고 있으니 기분이 좋다.

조금 전까지는 탑이 없었는데 지금은 길이 없구나

 탑 뒤로 선본사가 아득히 내려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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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 '보물'인 경주 서악동 탑(왼쪽)과 효현리 탑(가운데), 그리고 '경북도 유형문화재'인 선본사 탑(오른쪽). 선본사 석탑도 거의 보물급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나란히 놓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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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때, 눈앞에 '불쑥' 탑이 나타났다. 끙끙대며 올라오는 동안에는 손톱만큼도 정체를 보여주지 않던 탑이 땅 속에서 막 솟구치는 듯 눈에 들어왔다.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지만 보물로 승격되어도 전혀 모자람이 없을 것 같다'는 첫인상을 안겨주는 깔끔한 탑이다. 경주에서 본 효현리 석탑과 서악동 석탑에 견줘봐도 그 아름다움과 무게감은 결코 모자람이 없다.

탑 앞에 서니 무엇보다도 그 위치가 놀랍다. 그리 멀지 않은 선본사가 아득하게 내려다 보인다. 앞을 가리는 나무 한 그루 없다. 이렇게 맑은 전경의 사찰을 보기란 그리 쉽지 않다. 어째서 신라인들이 이곳에 탑을 세웠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선본사를 왜 저곳에 건립했는지는 저절로 헤아려진다.

탑은 본래 불교에서 절보다 먼저 세워지는 기도의 대상이다. 즉, 이곳의 탑이 저곳의 선본사보다 앞서 세워졌다는 말이다. 그러나 뒷날 법당을 지으려고 했을 때는 터가 경사진데다 너무 좁았다. 신라인들은 탑 앞에 서서 직선으로 바라보이는 곳에 법당을 건축했을 것이다. 조금 전 극락전 앞에서 이 탑이 시야를 가리는 방해물 없이 정확하게 눈에 들어오던 것이 생각난다.

 탑에서 내려다 본 선본사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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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선본사에는 탑을 세울 이유가 없다. 탑은 이곳에, 법당은 저곳에 순차적으로 세웠으니 이윽고 완전한 사찰이 되었다. 구태여 새 탑을 건립해놓고 번잡을 떠는 행위는 속세의 논리다. 절에는 탑 하나가 뜰 가운데에 있거나, 아니면 동서로 쌍탑이 있으면 되는 법, 본당 앞에 무슨 탑을 남북으로, 그것도 수백 미터 떨어지게 병설한단 말인가.

탑 앞 그늘에 앉아 선본사 본당 위로 펼쳐져 있는 아름다운 가을을 본다. 혼자 앉아 있으니 너무나 마음이 고요하다. 이곳에서 지금의 선본사 자리를 내려다보며 '저기가 금당을 지을 만한 자리'라며 정겹게 대화를 나누었을 신라사람들도 꼭 지금의 나처럼 마음이 편안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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