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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뉴스 [오마이포토] '개훔방' 이레, 개리 머리 쓰담쓰담

 바다목장에서 소가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지만, 찍은 이는 가까이 가기위해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고 했다.
ⓒ 서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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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신세계, 제주. 그런데 제주는 가끔 서울여자였던 나를 당황케 만든다. 제주처녀가 될 날은 역시 아직 요원하구나, 싶게 만들 때가 있다. 제주말은 그 대표적인 예다. 젊은 사람들이 하는 제주말은 무슨 말인지 알아는 듣겠는데, 동네 어르신들의 제주말은 가히 '멘붕'을 가져온다.

어느날 대평리 삼거리슈퍼 앞. 아침부터 동네 할머니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들 계셨다. 뭔가 언성이 높은 걸로 봐서 말싸움이 난 것 같다. 지나가는 척 하면서 귀를 쫑긋 세우고 뭣땜에들 그러시나 들어봤다. 거짓말 한 마디 안 보태고, 정말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다.

가끔 어느 정도 익숙한 삼거리 슈퍼 아줌마가 하는 말도 알아듣기 힘들 때가 있다. 그럴땐 그냥 '씩' 하고 웃어준다. 그런데 토박이든, 육지에 갔다 돌아온 제주사람이든, 이주민이든 어쨌든 도민들하고 놀다보니, 맞는지 어떤지도 잘 모르면서 입에 붙는 제주말들이 생긴다.

요즘 '곶자왈 사람들'이라는 환경단체모임에서 하는 숲과 나무에 관한 수업을 듣는데, 일요일 아침은 숲 탐방 시간이다. 실무자 분의 전화를 받았다.

"조남희씨, 오늘 못 오시나요?"
"아, 제가 지금 잠깐 육지 와 있어가지고예."
'…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한거지? 근데 이게 말은 되는 건가?'

또 운전을 하다가 갑자기 앞에서 튀어나오려는 오토바이를 보곤, 속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이러지 맙서.' 그러고 혼자 속으로 킥킥댄다. '이건 또 뭐야… 이것도 말은 되는 건가?' 나는 지금 옹알이를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최근 알게 된 한 도민과 '딜(Deal)'을 했다. 나는 중국어를 가르쳐주고, 그녀는 내게 제주말을 가르쳐주는 걸로. 기대가 된다. '이러지 마세요'는 제주말로 '영 허지 맙서'다.

30년 동안 동서남북도 모르고 살았는데...

 조천읍 신흥리 바닷가
ⓒ 조남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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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당황스러웠던 것은 위치, 방향에 대한 제주만의 설명방식이다. 제주시에서 있던 시민단체 후원주점에 가던 날이다. 시청 근처 어디 호프집으로 오라는데, 동네 자체가 낯설다 보니 아무리 설명을 들어도 어디가 어딘지 감을 못잡고 해매고 있었다. 게다가 나는 정말 심각한 삼십 년 넘게 묵은 길치, 방향치다.

"그러니까.. 배스킨 라빈스에서 어느 방향으로 내려가라는 거죠?"
"한라산 방향이요."
"… 한라산 방향이 어딘데요….. 저는 제주온 지 얼마 안 되서 잘 모르는데요 ㅠㅠ"
"……."

세상에, 한라산 방향이라니. 한라산이 보이기라도 하면 모를까, 이 밤에 한라산 방향이라니. 어찌할 바를 몰랐다. 제주시에서는 한라산 방향은 남쪽을, 서귀포에서 한라산 방향이라 함은 북쪽을 가리킨다, 라고는 하지만. 삼십 년을 동서남북을 모르고 살아온 나에게 '한라산 방향'은 너무 심하다. 나는 그냥 앞으로 제주시로 넘어올 때마다 기억하는 지형지물을 늘려가야겠구나, 라고 생각할 뿐이다.

도시가스 없는 제주, LPG가스가 떨어지면 채워야 하는 걸

제주말이나 한라산 방향이야 익히고 배우면 된다지만, 어떤 것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밖에서 사람을 만나고 밤 9시가 넘어 집에 왔는데, 그날따라 날씨가 추워서 방이 냉골이다. 보일러를 켰지만 계속 '점검'이 깜박일 뿐이다. 사실 며칠 전부터 보일러에 '점검'이 뜨다가 또 괜찮다가 그랬다. 보일러가 고장난 줄 알았다. 밤늦게 주인집 들여다보기가 뭣해서 그냥 버텨보려고 이불을 덮고 누웠지만, 이러다 아침에 입 돌아간 채로 발견될 것 같았다.

"계세요? 보일러가 좀 이상해서요, 계속 점검이 뜨는데요."
"가스 떨어졌구나! 어떡하죠? 내일 아침까지는 기다려야 되는데…."
"네?! 너무 추워요 흑흑."
"우리 딸 전기장판이라도 빌려줄게요."
"감사합니다… ㅠㅠ"

가스통에 가스가 떨어진 것이다. 알고 보니 제주도는 아직 도시가스가 없다. 기름보일러 아니면 LPG가스다. 제주시 아파트는 단지내 전체 가스통이 있고, 우리집은 가스통을 배달시켜서 채워야 한다. 서귀포 살면서 겨울에 나 같이 미리미리 준비하지 못하는 사람은 추워서 입이 돌아갈 수도 있겠다. 전자파고 뭐고 전기장판의 온도를 '이빠이' 올려놓고 친구에게 문자 메시지로 하소연을 했다.

"우리집 가스가 떨어졌어…" 
"뭐? 어떻게 그럴수가 있어. 집주인한테 도시가스하자 그래!"
"도시가 아닌 걸 뭐…." 
"그럼 해양가스 하자 그래." 
"미쳤다고 나가라고 하지 않을까?"

친구는 '세입자의 설움'이라고 했지만 아니다. 이건 그냥, 제주에 대해 무식한 육지 여자가 당해도 싼 일일 뿐이다.

'꼴리는 대로' 영업하시는 횟집 사장님, 좋아요

 용눈이오름에서 바라본 다랑쉬오름과 아끈다랑쉬 오름의 모습
ⓒ 조남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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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지막으로 고무줄과 같은 영업시간이다. 이건 제주도 하고도 대평리에만 해당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대평리 하고도 대평포구의 명물식당. 그렇지만 여기서 장사하는 분들이 서울과 같은 생각과 방식으로 하는 게 아니란 건 느껴진다.

대평포구 박수기정 가는 길에 내가 잘 가는 횟집이 하나 있다. '명물식당'이다. 아무래도 서울에서 사람이 내려오면 밥이라도 한 끼 대접해야 하는데, 역시 제주 바닷가 하면 신선한 고등어회에 뿔소라 정도는 펼쳐놔줘야 '나 고등어회 처음 먹어봐'라는 서울 사람들에게 뭔가 좀 사준 티를 낼 수 있는 것이다. 하긴 요즘은 주머니가 가벼워져 그것도 고민이긴 하다.

어쨌든 그날 저녁도 지인과 명물식당으로 향했다.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성큼 들어서는데, 오늘 장사 안 한단다. 알고 보니 명물식당 사장님의 집안 잔치가 성대하게 열리고 있었다. 그럼 할 수 없지요, 하고 다음날 저녁 다시 찾았다. 그런데 오늘은 아예 문을 안 열었다. 전날의 집안 잔치로 인한 '과도한 음주'로 인해 '어제는 달렸으니 오늘은 쉬는 걸로'다. 당황스럽다.

며칠 전 명물식당을 다시 찾으니, 또 문을 안 열었다. 궁시렁대며 하는 수 없이 흑돼지나 먹어야겠다며 집 근처에 새로 생긴 고기집에 갔다. 그런데 얼큰히 취한 얼굴의 명물식당 사장님이 앉아 있다.

"아니, 사장님! 여기 계시면 어떡해요! 갔다가 문닫아서 여기 왔잖아요~."

고기집 개업 기념으로 낮부터 달리고 계시단다. 그리고 근고기집 사장님에게 나를 소개하신다.

"우리집 VIP 손님들이야~ 늦게 와서 많이 먹고 문닫고 가지 ㅋㅋㅋ 그나저나 우리 VIP 손님 뺏기면 안 되는데~."

얼굴이 빨개진다. 조용히 고기안주에 술잔을 따를 뿐이다. 제주 사람들이 다 그렇다고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뭔가 좀 서울과 다른 느낌이긴 하다. 영업시간이라는 게 손님과의 약속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명물식당 사장님의 배짱이 난 좋다.

그건 돈을 벌만큼 벌어서라기보다는 자신의 기준과 방식으로 소위 내가 '꼴리는 대로' 하겠다는 것이 보여서다. 육지에서 온 손님을 '돈'으로만 본다면, 간쓸개 다 내놓고 비위 맞춰야겠지만, 적절한 가격에 신선하고 맛있는 회를 푸짐하게 선보이고, 손님을 대하는 매너도 딱 적당하다. 그리고 쉬고 싶을 때는 쉰다.

익숙하지 않은 것들을 접할 때마다 '아, 내가 제주에 있구나' 싶다. 당황스러울 때도 있지만 제주를 배워 가는 게 너무나 재미있다. 나를 당황스럽게 할 또다른 것들이 기다려진다.

제주사는 서울처녀, 제주도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전해드릴게요 http://blog.naver.com/hit1077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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