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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귀촌 인구가 매년 최고치를 기록중입니다. 2012년 상반기 귀농귀촌인구는 8706가구 1만7745명에 이릅니다. 이들은 왜 도시를 떠나 시골로 향하는 것일까요? 귀농귀촌인 절반 이상은 4050세대이지만 2030 세대의 귀농귀촌도 늘고 있다고 합니다. '생태적 삶'을 살고자 귀농을 결심하는 이들도 많지만, 상당수는 자영업에 실패하거나 명퇴를 당했거나 도시생활에 지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시골에 가서 농사나 지어야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만만치 않습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귀농귀촌의 리얼스토리를 들려드리려 합니다. 개인의 선택 차원을 떠나 뚜렷한 사회현상이 되어버린 귀농귀촌에 대한 실질적인 사회적 뒷받침이 이뤄지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편집자말]
 농림수산식품부 '귀농귀촌의 꿈' 광고 일부
ⓒ 농림수산식품부

"여보, 우리 귀농할까?"
"귀농이요?"
"어때?"
"좋죠? 근데 공기만 먹고 살 수 있나요?"

막연하게만 느껴졌던 귀농귀촌의 꿈, 준비된 귀농으로 농촌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건 어떨까요. 귀농귀촌의 꿈 생각보다 어렵지 않습니다.

공중파를 통해 나오는 농림수산식품부의 40초짜리 광고 '귀농귀촌의 꿈' 일부다. 광고를 보고 있자면 영농교육도 해주고 자금지원도 해주니, 귀농해서 좋은 공기 마시면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정부의 도움으로 말이다.

하지만 ㈔전국귀농운동본부 박용범 사무처장은 농림수산식품부가 틀렸다며 "귀농은 한 사람의 삶을 통째로 옮겨 놓는 것이기 때문에 생각보다 어렵다"고 말했다. 정부의 자금지원도 담보 등 조건이 까다롭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전문가도 어렵다는 '귀농귀촌의 꿈'. 그냥 접어두어야 할까. 그는 꿈을 접는 대신, 마음가짐을 바꾸라고 말한다. 박 사무처장은 "귀농의 최종 목표는 욕망을 그대로 두고 소비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욕망 자체를 줄이는 데 있다"며 "소득보다는 삶의 행복을 찾기 위해 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처음에는 수익도 기대하기 어렵다. 그는 "1년 차 귀농자가 월 50만 원을 벌면 많이 버는 것"이라며 '자발적 가난'을 강조했다. 시골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으므로 고향집을 기대해서도 안 되고, 도시의 소비 패턴도 버려야 한다.

이쯤 되면, 귀농의 꿈? 그냥 접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귀농학교 첫 수업 후 환불받는 학생도 종종 있을만큼 귀농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는 게 그의 주 임무다. "기대치를 낮춰서 내려가야 귀농에 실패할 확률도 줄어든다"는게 그의 설명이다.

그래도 귀농이 매력적인 이유? 바로 자립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기 때문. 박 사무처장은 "귀농을 하면 자기 인생을 스스로 해결하고 판단하는 것, 즉 '자기 삶의 결정권'을 갖게 된다"며 "먹고 입는 걸 직접 생산할 때 행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2일, ㈔전국귀농운동본부 박용범 사무처장을 만났다. 인터뷰는 경기도 군포시에 위치한 전국귀농운동본부에서 진행됐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이다.

"도시가 살만하지 않아, 자영업자 붕괴도 한 몫"

 박용범 사무처장
ⓒ 김병기

- 꾸준히 귀농·귀촌현상이 늘고 있다.
"생태 가치를 중요시해 자급자족의 삶을 살겠다는 사람은 꾸준하다. 사회가 말하는 증가추세에 속하는 사람들은 경제상황과 맥을 같이 한다. 도시가 살 만하지 않은 게 가장 큰 이유고, 자영업자가 붕괴하고 있는 것도 한 몫 한다. 1997년 IMF가 발생했을 때도 귀농·귀촌자가 많이 늘었다."

- 1996년 ㈔전국귀농운동본부가 창립됐다. 창립 취지 및 하는 일을 소개해 달라.
"IMF가 터지기 1년 전, 자본의 거품이 극에 달했을 때 답은 '반자본'에 있다고 생각했다. 생명과 평화를 생각하는 젊은이들을 시골로 내려 보내야 한다고 말이다. 가톨릭농민회, 정토회 등 14개 단체가 모여서 만들었다. 주로 귀농을 희망하는 사람을 상대로 교육에 집중한다. 귀농학교는 일주일에 두 번씩, 두 달간 진행된다. 텃밭농사도 지어보고 농가로 현장실습도 간다. 1기수에 50, 60명 정도이며 강좌비는 20만 원이다. 궁극적인 교육의 목적은 정착에 있다."

- 귀농운동본부를 통해 귀촌한 사람은 몇 명 정도인가.
"지금까지 5천여 명이 교육을 받았는데 그 중 20~30%가 귀농, 귀촌했다."

- 주로 어떤 직종 종사자가 이곳을 찾나.
"IT쪽이 많다. 연령대는 40대로 치과의사, 학교 선생님, 기업인 등 다양한 직업인들이 온다. 사회의 정년이 빨라지고, 직장의 미래가 어둡다보니 찾아오는 연령대가 점점 낮아지는 추세다. 아토피를 앓는 아이를 둔 부모들도 많이 찾는다.

얼마 전 강남에서 예약제로 치과를 운영하던 치과의사도 이곳에서 교육을 받고 지금은 봉화로 내려갔다. 현직 검사도 농촌생활을 하고 싶다며 이곳에서 교육을 받고 귀농했다."

- 귀농자와 귀농운동본부와의 네트워크는?
"귀농지원센터가 전국에 6개 정도 되는데 귀농학교 출신 선배들이 맡아서 일을 하고 있다. 선배들을 통해서 알음알음 귀농하는 경우가 가장 많고 정착률도 그만큼 높다. 귀농학교를 수료한 사람에게는 귀농자인증 마크가 찍힌 스티커를 준다. 보통 귀농자들은 생협 생산자로 들어가기 힘든데 귀농자인증이 있으면 좀 수월하다."

"귀농할 땅 선택은 운명, 그러나 '5W'는 고려해야"

 텃밭을 설명하고 있는 박용범 사무처장
ⓒ 김병기

- '귀농' 성공과 실패의 지침서가 있다면?
"귀농학교에서 수업을 받은 5천여 명 중 1500명이 내려갔고 그 중 150여 명은 실패하고 올라왔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귀농에 성공하려면 일단 기대를 해서는 안 된다. 농촌의 현실은 옛날과 다르다. 외갓집 같은 고향을 생각하면 안 된다. 기대를 많이 하다보면 텃새도 그만큼 심하다고 느낀다.

도시의 소비패턴을 그대로 가져가서도 안 된다. 1년 차 농사자는 월 50만 원을 벌면 많이 버는 거다. 귀농은 소득보다 삶의 행복을 찾기 위해 가는 거다. 그래서 '자발적 가난'을 많이 이야기한다. 귀농학교 첫 시간에 '내가 귀농을 해야 할 10가지 이유'를 꼭 쓰게 하는데, 귀농은 한 사람의 삶을 통째로 옮겨놓는 것이기 때문이다. 귀농해야 할 이유 10가지를 쓸 수 있으면 빨리 내려가는 게 좋다."

- 귀농할 때 장소는 어떻게 선택해야 하나.
"지역의 선택은 운이다. 결혼할 때 인연을 만나는 것과 같다. 꼭 어느 지역에서 어떤 작목을 하겠다는 계획이 없다면 지역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단, 몇 가지 확인해야 할 것이 있는데 바로 '5W'다. 5W의 첫째는 'WATER'. 우선 물이 있느냐가 중요하다. 지하수조차 부족한 곳이나 상류에 오염원이 동네가 있다. 둘째는 'WON'이다. 이유가 있다. 싼 땅은 길이 안 나있거나 전기가 안 들어오기도 한다. 무조건 싼 땅을 찾으면 낭패보기 일쑤다. 다음은 'WITH'. 누구와 가느냐다. 함께 내려가서 살 사람과 함께 결정하는 게 낫다. 그래야 불만이 줄어든다. 네 번째 'WAY'. 길이 없는 땅이 많다. 지적도를 떼 봐야 한다. 도로가 없으면 집도 지을 수도 없다. 마지막 'WORK'. 그 지역에 맞는 작목을 선택해서 들어가는 게 좋다." 

-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잘 정착했다고 볼 수 있나.
"보통 3년차 이상 돼야 고비를 지나 시골에 정착했다고 말할 수 있다."

- 1~3년 버티는 데 가장 힘든 것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외롭다. 도시에서는 친구들이 옆에 있는데 시골에서는 그렇지 않다. 귀농을 하고도 서울에 자주 가거나 시골로 친구들을 부르는 사람이 있는데 별로 좋지 않다. 그 마을 공동체로 들어가야 한다. 아니면 주변 귀농자들과 교류하면서 외로움을 풀어야 한다."

- 아이들을 데리고 귀농할 경우, 치안과 교육 등을 걱정하는 부모가 많다.
"극단적으로 두 가지 중 한 개를 선택해야 한다. 어느 정도 교육에서 욕심을 내려놓던지, 아니면 직접 학교 운영위원회로 들어가서 학교의 운영방법을 대안학교처럼 바꾸던지."

'생태귀농'만이 정답... 자립자족의 삶 살아야

 귀농운동본부 텃밭.
ⓒ 김병기

- 귀농운동본부는 생태귀농을 강조한다. 생태귀농이라는 말이 좀 생소한데.
"땅을 개간하고 농사를 짓는데 사람의 영향력을 줄이자는 것이다. 비료, 농약 등 외부 자원을 들여와서 농사를 짓고 마을을 지속시키는 게 아니라, 자연과 조화를 이루면서 농사를 짓자는 것이다. 여기서 자립적인 마을 공동체도 나온다."

- 정부는 대농과 기업농을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반면, 귀농운동본부는 '소농'을 권장한다.
"대농일수록 기계를 써야하고 그러면 단작을 해야 한다. 대농은 비용이 많이 발생할뿐더러 땅도 심각하게 훼손한다. 현재 토양의 평균 유기물 함량이 2%밖에 되지 않는다. 땅의 지력이 훼손되고 있다. 대농은 생태적이지도 않고 지속가능하지도 않다. 결국 소농만이 지속가능한 농업이라는 생각이다. 보통 3천 평 정도면 소농이라고 이야기 한다."

- 귀농·귀촌자들을 위해 지자체가 해야 할 일은?
"귀농자들이 내려올 수 있는 여러 가지 조건을 마련해 줘야 한다. 의료, 문화 등 서비스 말이다. 개개인에게 지원하는 것보다 마을 살리기를 통해 공동체 전체에 지원하는 게 낫다. 마을 살리기를 하려면 인적자원과 조직이 필요한데, 그 대표적인 예가 홍성의 문당리의 마을이다."

- 귀농의 가치에 대해 한 마디 해 달라.
"자연과 더불어 살자는 것이다. 귀농은 곧 자립적, 전인적인 삶을 영위하는 거다. 먹고 입는 걸 직접 생산할 때 행복할 수 있다. 도시에서의 욕망을 그대로 두고 소비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욕망 자체를 줄이자는 것이다. 자기 인생을 스스로 해결하고 판단하는 것, 즉 자기 삶의 결정권을 갖는 게 진정한 귀농이다."

10년 전부터 귀농을 꿈꿨던 박 사무처장은 맡은 일 때문에 자신의 꿈을 미뤄둔 상태다. 무조건 2년 안에 자신을 받아주는 땅으로 내려갈 계획이란다. "시골에 내려가면 가족이 먹을 것을 심고, 남는 것은 이웃과 나누며 절대 매이지 않는 삶을 살겠다"는 박 사무처장의 말이 귀농의 모든 것을 설명해 주고 있었다.

최근 보도된 바에 의하면, 지난해 귀농가구는 6500여 가구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뿐만 아니라 2001년부터 2011년까지 농촌으로 이동한 인구가 12배나 급증했다고 한다. 비단 정부의 부추김 때문만은 아닐 터. 앞으로도 이런 추세는 계속될 전망이라고 한다.

누구나 한번쯤 꿈꾸는 귀농, 귀촌. 하지만 박 사무처장의 말처럼 내려놓아야 할 것도, 버려야 할 것도 생각보다 많다. 먼저 펜과 메모지를 준비하시라. 그리고 '내가 귀농해야 할 10가지 이유'를 적어보시라. 답은 보다 쉬운 데 있을지도 모른다.

 도심에서 월 400만 원 벌었으니, 귀농해도 200만 원은 벌겠지?
귀농자가 조심해야 할 5가지
 (사)귀농운동본부 명함
ⓒ 김병기

박용범 사무처장은 명함부터 달랐다. 전국귀농운동본부 6명 활동가들의 이름과 전화번호, 이메일 주소를 빼곡하게 적었다. 앞장을 보니 큼지막한 글씨로 '국민 모두가 농부'라고 써 있다. 취지를 물어봤다.

"농사를 짓는 사람만 농부가 아니다. 농부들이 흘린 땀의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책임감있게 먹는 것도 농사의 일부다. 도시에서 상추 하나를 키우는 사람도 농부다. 자연 생태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은 모두 농부다."

박 사무처장의 말처럼 귀농운동본부는 '생태 귀농'을 중시한다. 몇만 평 규모의 대농보다 3000여 평 정도의 소농이 가장 바람직한 모델이라고 추천하기도 한다. 귀농운동본부 사무실 근처에는 소농 학교가 있기도 하다. 농사 초보생 학습장이다.

다음은 박 사무처장이 말하는 귀농자가 고려해야 할 5가지다. 

1) 도심에서 월 400만 원을 벌었으니, 농촌에서 200만 원은 벌겠지?
천만에! 수익에 대한 기대는 버려라. 도시생활 청산하고 시골 내려가면 수입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지사. 하지만 더불어 지출도 줄어드니 수입이 반정도로 줄어도 생활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금물. 처음엔 수입이 없을 수도 있다. 배 굶으면서 절약할 생각을 하라.

2) 배산임수가 귀농하기 좋은 곳?
귀농희망자들은 배산임수를 희망하는 경향이 있다. 무주, 진안 등이 대표적인 곳이다. 그런데 산이 많은 곳은 땅이 비교적 험하다. 마을이 형성 안 된 곳도 많고 인적도 드문드문하다. 불편할 수 있다. 귀농지는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

3) 개량한복 입으면 왕따?
여러분이 생각하는 귀농자 복장은? 개량 한복 입고 수염 기르고, 큰 개 한마리 끌고 다니는 모습인가. 물론 괜찮다. 하지만 여기서 팁 한 가지. 처음 귀농해서는 개량한복보다 옷장에 넣어둔 오래된 점퍼를 꺼내 입으시라. 새마을운동 때나 썼음직한 모자 하나는 덤. 길 가다가 이웃 주민이 먼저 친구하자며 다가올 수도 있다.

4) '팔랑귀'를 버려라.
귀농하려다가 실패한 사람들은 대부분 '팔랑귀'다. 옆에서 잘 된다는 작목이 있으면 앞뒤보지 않고 투자를 한다거나, 겁 없이 덤빈다. 어떻게 보면 '욕심'이다. 겁없이 덤비지 마라. 그러다가 금방 쪽박 찬다.

5)농사만 고집하진 말자.
농촌으로가면 무조건 농사만 지어야 한다? 아니다. 자기가 가진 문화적 능력을 펼치는 사람도 있다. 대표적으로 '귀농가수'가 있다. '귀농인의 날' 등 우리 행사에도 초청된다. 또, 번역을 할 수도 있고, 학생들을 가르칠 수도 있다. 이런 능력을 지역공동체를 위해 사용하면 다양한 생태 공동체가 될 수 있다.

도시의 베이비붐 세대 66%가 농어촌 이주를 원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있다. 최근 들어서 귀농·귀촌 인구가 늘고 있다. 지금도 숨 막히는 도심을 떠나서 하루 빨리 떠나고 싶은 열망을 갖고 있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박 사무처장은 강조한다. 귀농은 도피처가 아니라고. 목가적인 삶이 아니라 자연을 벗삼아 지역공동체와 함께 새로운 삶을 살만한 자세가 된 사람들이 귀농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그의 외투 소매자락은 닳아서 너덜너덜했다. 흙먼지가 뽀얀 그의 트럭 안은 농촌에서 본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가 건넨 명함에서도 여럿이 함께하고 있다는 온기가 전해졌다.



태그:#귀농운동본부, #귀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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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환경과 사람에 관심이 많은 오마이뉴스 기자입니다. 10만인클럽에 가입해서 응원해주세요^^ http://omn.kr/acj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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