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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방촌 골목 모습. 벽화와 여인숙이 보인다.
 쪽방촌 골목 모습. 벽화와 여인숙이 보인다.
ⓒ 하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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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첫서리가 내린 지난 10월 31일, 서울 영등포 쪽방촌으로 향했다. 날이 쌀쌀했지만 쪽방촌 입구 쪽 지구대 앞에서는 노숙인이 드문드문 보였다. 음지를 피해 볕이 드는 곳에 자리 잡고 누운 노숙인들. 갑자기 찾아온 추위 탓인지 재채기 소리가 연신 들렸다. 바로 옆 '서울시 희망지원센터' 앞에서는 노숙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소주잔을 기울였다.

조심스레 그들의 틈에 끼어들었다. 노숙인들은 처음엔 경계했으나 금세 긴장을 풀었다. 이들 앞에는 소주 한 병과 종이컵만 놓여 있었다. 안주는 어딜 봐도 없었다.

현장에서 만난 김아무개(46)씨는 "(기초생활) 수급받는 날이면 편의점으로 달려가 소주 한 병부터 산다"고 말했다. 그는 "오랜 쪽방촌 생활로 몸이 많이 망가졌다"며 "몸이 아파 소주 없이는 잠을 못 잔다"고 덧붙였다.

"술 없이는 못 자...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지"

"젊은 시절엔 파지 줍기, 건설현장 인부 등 안 해본 일이 없어. 하지만 지금은 일을 할 수가 없어. 하루하루 죽을날만 기다리고 있지."

쪽방촌으로 들어가기 전, 캔커피를 사기 위해 근처 편의점에 들렀다. 편의점 내부를 둘러보다 특이한 장면을 목격했다. 편의점에서는 오직 한 종류의 소주 참이슬 클래식(알코올 함량 20.1%)만 팔았다. 19%대의 알코올 함량이 낮은 소주는 찾아볼 수 없었다.

편의점 직원은 "손님들이 주로 노숙인들인데 비교적 독한 참이슬 클래식만을 찾는다"며 "알코올 19%대의 순한 소주는 팔리질 않아 갖다놓지 않는다"고 말했다.

쪽방촌 근처 편의점에서는 참이슬 클래식(20.1%)만 판매한다.
 쪽방촌 근처 편의점에서는 참이슬 클래식(20.1%)만 판매한다.
ⓒ 하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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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 노숙인들을 지나 영등포 쪽방촌 골목으로 들어갔다. 쪽방 300여 개가 골목을 따라 미로처럼 이어졌다. 인적은 드물었다. 할머니 두 분이 거리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기자가 다가가자 할머니가 먼저 말을 걸었다.

"뭐하러 왔어. 사진 찍으러 왔어?"
"아님 여자 찾으러 왔어? 저녁에나 와야 혀."
"그런 거 아님 집이나 가. 어여 가."

이곳 쪽방촌은 벽화마을로 다소 유명해졌다. 데이트 하러 오는 연인들과 20, 30대 방문객이 늘었다. 이들은 벽화뿐만 아니라 골목 구석구석도 촬영한다. 이방인의 갑작스러운 방문은 쪽방촌 사람들에게 어색한 일이다. 

2004년부터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되되고 있지만, 영등포 타임스퀘어 앞 성매매집결지는 여전히 성업중이다. 일부 영업권에서 밀려난 이들은 주변 여인숙, 쪽방 등에서 성매매를 하고 있다. 주간에는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야간에는 호객행위를 하는 중년 여성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총각 놀다 가. 싸게 해줄 게!"
"아줌마가 안 들어와. 아가씨들 들어갈 거야."

영등포 쪽방촌의 밤과 낮 풍경은 크게 다르다. 어둑해진 오후 7시, 쪽방촌에 밝은 분위기를 준 벽화는 더는 보이지 않았다. 골목을 걷는데 다시 한 중년 여성이 다가와 옷을 잡으며 '거래'를 제안했다. "다음에 꼭 오겠다"고 약속한 뒤에야 옷을 잡던 손이 풀렸다.

"42만 원으로 둘이 생활... 꿈을 잃었다"

쪽방촌의 어느 한 건물 옥상에서 주변을 둘러보다 옥탑방에 거주하는 최아무개(58)씨를 만났다. 최씨는 "내 이야기 좀 들어달라"며 기자를 방으로 이끌었다. 예상과 달리 그의 방은 깔끔했다. 최씨는 꺼져있던 전기장판의 전원을 켰다. 바닥이 금방 따뜻해졌다.

최씨는 기자에게 컵라면과 맥주를 대접했다.
 최씨는 기자에게 컵라면과 맥주를 대접했다.
ⓒ 하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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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씨는 기초생활수급을 받아 생활한다. 그는 "소싯적에 방범대장 일을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1999년 심장질환을 앓은 뒤 기초생활수급자가 됐다고 한다. 최씨는 한 달 42만 원을 받아 월세로 17만 원 내고 나머지 25만 원으로 생활한다.

그의 방 벽지에는 물과 곰팡이 흔적이 많았다. 최씨는 "비가 많이 오면 물이 샌다"며 "무허가 건물이라 수리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최씨는 임시방편으로 지붕에 비닐을 씌워놨다. 방음·방풍 또한 제대로 되지 않아 창문에서는 1호선 전철과 기차소리가 차가운 바람과 함게 넘어왔다.

사실 최씨에게는 '룸메이트'가 있다. 서른살의 강아무개씨인데 건설현장에서 '노가다'를 한다. 최씨는 "노가다 일자리도 많이 없는데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될지 걱정"이라고 했다. 강씨는 주민등록이 말소돼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못 한다. 결국 최씨가 받는 기초생활수급비 42만 원으로 두 명이 생활하는 셈이다.

최씨는 "지금은 꿈을 잃어버렸어. 너무 많은 세월이 지나버렸어"라며 한숨을 쉬었다.

어김없이 쪽방촌에도 겨울이 찾아오고 있다. 겨울을 견디는 건 쪽방촌 사람들에게 큰 일이다. 따뜻한 봄을 맞으려면 힘든 고개를 넘어야 한다. 이번 겨울은 무척 추울 것이라는 뉴스도 나왔다. "꿈 잃은" 사람들의 겨울나기가 가늠이 안 된다. "혹한이 예상된다"는 뉴스가 야속하게 느껴진다.

덧붙이는 글 | 하준호 기자는 <오마이뉴스> 3기 대학생 기자단 '오마이프리덤'에서 활동합니다.



태그:#영등포, #쪽방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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