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미래세계의 희망은 모든 활동이 자발적인 협력으로 이뤄지는 작고 평화롭고 협력적인 마을에 있다.' 인도 독립의 아버지 마하트마 간디의 책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2012년, '콘크리트 디스토피아' 서울 곳곳에서는 '마을공동체 만들기'가 한창입니다. 함께 '집밥'을 먹고 책을 읽고 텃밭을 가꾸는 것부터, 아이를 같이 키우고 일자리를 나누고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것까지. 반세기 전 간디의 정신은 아직도 유효합니다. <오마이뉴스>는 다양한 마을만들기 사례를 통해 마을이 왜 희망인지 살펴봅니다. [편집자말]
반송에서 34년을 살아왔다는 김갑채(60)씨는 요즘 자신의 오래된 이발소를 찾는 손님이 갈수록 줄어 고민이다. 요즘 그와 지역 상인들은 '착한 저잣거리'를 만들기 위한 골목살리기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해운대구청과 대학생자원봉사자도 골목 상인들을 돕기위해 나섰다.
 반송에서 34년을 살아왔다는 김갑채(60)씨는 요즘 자신의 오래된 이발소를 찾는 손님이 갈수록 줄어 고민이다. 요즘 그와 지역 상인들은 '착한 저잣거리'를 만들기 위한 골목살리기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해운대구청과 대학생자원봉사자도 골목 상인들을 돕기위해 나섰다.
ⓒ 정민규

관련사진보기


"전쟁 끝나고 전부 판잣집인데 그거 다 우짜겠노? 정책이주라면서 변두리로 피난민들 이사 가라고 안 했나. 15평씩 땅 쪼가리 내가꼬 거기다 집 짓고 살아라고 해가 지금도 반송은 집이 다 이래 쪼매나다 아잉교, 우리집도 딱 15평이라예."

김갑채(60)씨는 자신의 조그만 이발소 바닥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지금이야 많이 달라졌지만 과거 반송의 집들은 앞집도 뒷집도 옆집도 사이좋게 15평씩이었다. 도심에 넘쳐나던 피난민들을 이주시키기 위해 정부는 정책이주의 일환으로 반송 일대를 피난민들에게 배분했다. 황량한 벌판에 깃발만 꽂아두고 들어가서 살라고 했던 도시의 변두리에서 피난민들은 집을 만들고 삶을 꾸려나갔다. 모든 게 부족했지만 김씨는 그때가 좋았다고 말했다.

"그때는 신발 공장이 많았거든예. 서동하고 금사동에 있는 신발 공장으로 일하러 나가는 사람들이 많아 가꼬 아침에 통근 버스가 수백대는 와가 사람들 실어 날랐지예. 그때는 참말로 동네가 북적북적 했심니더."

김씨의 부인이 이야기를 거들었다. 30년 넘게 부산 해운대구 반송동에서 살아온 김갑채씨 부부는 반송에서 살아온 시간만큼을 동네 이발사로 살았다. 요즘은 찾기 힘든 면도거품솔과 손때 묻은 수도꼭지와 바가지. 김씨의 이발관에는 세월이 그대로 녹아있다.

"그때는 좋았다아입니까. 하루에 학생 머리만 20명 넘게 깎았어요. 오늘요? 2명 깎았나? 근데 기자 양반도 머리 보니까 미용실에서 깎았네요? 하기사, 요새는 전부 미용실 가니깐..."

반송장산길 골목을 살리기위해 지역 대학생들은 벽화 그리기 자원봉사를 하고있다. 무보수로 참여하는 전문 작가들도 곧 벽화그리기에 동참할 계획이다. 대학생들의 아이디어로 주민들은 이 골목을 착한 가게들이 늘어선 착한 저잣거리로 조성할 계획이다.
 반송장산길 골목을 살리기위해 지역 대학생들은 벽화 그리기 자원봉사를 하고있다. 무보수로 참여하는 전문 작가들도 곧 벽화그리기에 동참할 계획이다. 대학생들의 아이디어로 주민들은 이 골목을 착한 가게들이 늘어선 착한 저잣거리로 조성할 계획이다.
ⓒ 반송1동주민센터

관련사진보기


뚝 끊긴 손님은 김씨 부부의 이발소만의 얘기가 아니다. 반송1동 주민센터 뒤편에서 시작하는 반송 장산길은 한때 50여 개 업소가 성황을 이루던 반송의 중심이었다. 지금은 20여 개만이 남았다. 보다 못한 김씨와 인근상인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한 명 남을 때까지 하는 거다"라고 맹세했던 상인들의 골목살리기 사업에 해운대구와 대학생들까지 거들고 나섰다.

자원봉사로 참여하는 대학생들은 삭막한 담벼락과 맨홀 뚜껑을 아기자기한 그림으로 채워 넣고 있다. 곧 전문작가들까지 뛰어들어 이들과 함께 '작품'을 완성시켜 나갈 계획이다. 반송1동 주민센터는 환경개선사업 예산을 구청으로부터 지원받아 골목 살리기 사업에 투입한다. 새롭게 달라질 골목의 이름은 '착한 저잣거리'라고 붙였다. 골목살리기를 함께하던 대학생들이 지어준 이름이다. 저렴한 가격에 먹거리와 놀거리를 제공하는 착한가게들이 들어선 거리로 골목을 탈바꿈시키는 게 이들의 목표다.

행정업무를 지원하는 장제균 반송1동주민센터 사무장은 "과거 관청 주도의 보여주기식 마을살리기 사업으로는 변화를 줄 수 없다"고 말했다. 장 사무장은 "저잣거리 조성 사업은 지역 상인들이 먼저 의지를 갖고 일을 추진했고 관청과 자원봉사자들이 뒤에 들어가면서 시작된 사업"이라며 "짧은 시간에 성과를 내기보다 2~3년 동안은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거대한 느티나무로 자란 부산 마을공동체의 뿌리 '희망세상'

부산 반송동 희망세상은 느티나무도서관을 중심으로 많은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엄마가 읽어주는 동화 행사를 비롯해서 유치원 아이들의 '한 반 나들이', 엄마랑 아기랑 도서관 나들이, 방학을 이용한 1박2일 '도서관 캠프' 등을 진행해오고 있다.
 부산 반송동 희망세상은 느티나무도서관을 중심으로 많은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엄마가 읽어주는 동화 행사를 비롯해서 유치원 아이들의 '한 반 나들이', 엄마랑 아기랑 도서관 나들이, 방학을 이용한 1박2일 '도서관 캠프' 등을 진행해오고 있다.
ⓒ 희망세상

관련사진보기


저잣거리 조성이 이제 막 눈을 뜬 마을만들기 사업이라면 1997년 마을소식지 발간에서 비롯된 지역공동체 '희망세상'은 부산 마을만들기 사업의 뿌리라고 할 만하다. 3명이 단출하게 모여 시작한 소모임은 지금 후원회원만 700명이 참여하는 마을공동체로 성장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느티나무 도서관이 있다.

반송 2동의 상징과도 같은 느티나무 도서관은 느티나무를 형상화한 외벽이 우선 눈길을 끈다. 하지만 더 시선을 모으는 것은 건물이 세워지기까지의 과정이다. 느티나무도서관은 2007년 10월에 완공되기까지 숱한 부침을 겪었다. 마을에 도서관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현실로 옮기기 위해 덜컥 일은 벌였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돈이 부족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벽돌 한장 기금'. 동네 꼬마의 과자값부터 할머니의 쌈짓돈까지 한푼두푼 보탠 돈이 도서관이 되었다. 느티나무 도서관 건립 과정이 눈길을 끌면서 한 은행의 CF소재로 사용되기도 했다. 지금 느티나무 도서관은 마을의 정자나무처럼 주민들이 찾는 마을의 사랑방이 됐다. 어르신은 잠깐 숨을 돌렸다 가고 동네 개구쟁이들은 후다닥 화장실만 들렀다 친구들과 뛰어놀러 나간다. 

매주 수요일 반송 느티나무도서관에서는 주민들의 우쿠렐레 교실이 열린다. 강사도 학생도 모두 지역 주민이다. 이외에도 주부대학, 좋은아버지모임, 요리교실, 이주여성 한국어 교실 등 수많은 강좌가 일주일 내내 이어진다. 희망세상은 주민들의 요구가 있으면 무엇이라도 가르친다는 계획을 갖고있다.
 매주 수요일 반송 느티나무도서관에서는 주민들의 우쿠렐레 교실이 열린다. 강사도 학생도 모두 지역 주민이다. 이외에도 주부대학, 좋은아버지모임, 요리교실, 이주여성 한국어 교실 등 수많은 강좌가 일주일 내내 이어진다. 희망세상은 주민들의 요구가 있으면 무엇이라도 가르친다는 계획을 갖고있다.
ⓒ 정민규

관련사진보기


10월의 마지막날 찾은 느티나무 도서관은 평일 낮임에도 북적거렸다. 1층은 주민들이 연주하는 우쿠렐레 소리로 가득했고 2층은 견학을 온 다른 마을공동체 사람들이 활동가들을 붙잡고 이것저것을 물어보고 있었다. 3층은 이주 여성들의 한글 배움터가 한창이었다. 6월 중순부터 우쿠렐레를 배우고 있다는 주민들 사이에 끼어 앉아 반송마을의 자랑을 해달라고 하자 마을 홍보도우미라도 된 듯 반송마을 예찬론을 펼쳤다.

"마을공동체는 사실 느끼기 전까지 시간이 걸립니다. 저도 처음에도 어떻게 하는 건지 몰랐어요. 지금은 일 주일에 2번 주민들에게 우쿠렐레를 가르치는데 참 유익해요. 준비하면서 보람도 많이 느끼고요." 백해정(49)

"음악을 하다 보니까 가정생활도 편안해지더라고요. 15년 전만 해도 우리 마을에는 개울이 흐르고 미나리밭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우리 마을이 변두리라서 뒤처진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돌아다녀보면 우리 마을 사람들이 더 세련된 거 같더라고요." 조정은(43)

"사실 일반 사람들은 풀뿌리가 뭔지 그런거 잘 모릅니다. 공동체도 감이 없어요. 그런데 공동체가 있기 전에는 떠나야겠다는 사람이 많았다면 요즘엔 안 떠나겠다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요.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경우도 많은데요." 김영미(42)

김씨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주부들은 "맞아, 맞아"를 연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주부들의 우쿠렐레 교실뿐 아니라 아빠들을 위한 '좋은 아버지모임', 마을 활동가를 길러내는 '마을일꾼학교', 6만의 마을 사람 중 1만 명이 참가하는 마을 최대의 행사 '어린이날 한마당' 등 반송마을 사람들은 쉴 틈이 없다.

마을의 진짜 '힘'은 건물이 아닌 사람

부산 반송동 마을공동체 희망세상은 주민들이 참여하는 찾아가는 도서관 행사를 통해서도 지역 어린이들을 만난다.
 부산 반송동 마을공동체 희망세상은 주민들이 참여하는 찾아가는 도서관 행사를 통해서도 지역 어린이들을 만난다.
ⓒ 희망세상

관련사진보기


이 모든 사업을 이끄는 김혜정 희망세상 회장은 "예전에는 어렵고 힘든 분들이 많이 살고 변두리라서 안 좋은 이미지가 많았는데 공동체 활동을 하면서 많이 바뀌었다"고 자랑했다.

그런 김 회장에게 그동안 10년 넘게 마을공동체를 함께하면서 가장 보람찼던 일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많은 마을 사람들이 힘을 합쳐 짓어놓은 느티나무 도서관이라 답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도서관은 눈에 보이는 성과이고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장소가 돼서 좋아요. 그런데 저희 역점 사업은 단체 활동가를 키우는 겁니다. 회원이 많아지니깐 회원과 소통하는 것에 한계가 생겨요. 소통을 할 활동가를 키우는 동시에 그 활동가들이 마을 일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되는 거거든요."

느티나무 도서관을 나서며 '마을의 핵심은 사람'이라는 김 회장의 말이 계속 맴돌았다. 마을공동체의 진짜 힘은 번지르르한 건물에서 나오는 게 아닌 듯했다. 벽돌 한장 한장 채워올린 마음이 이 마을의 힘이었고 빈 건물을 채워넣는 사람들의 온기가 마을공동체를 살아움직이게 하는 듯했다. 사람들이 모여 마을을 만들고, 그 마을이 다시 사람들을 키운다는 간단한 진리를 반송마을 사람들은 보여주고 있다.


태그:#마을공동체, #마을의 귀환, #반송마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