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꿈 사이의 간격이 좁혀지는 재미

 <복숭아나무> 스틸.

<복숭아나무> 스틸. ⓒ 구혜선 필름


처음으로 <복숭아나무> 예고편을 봤을 때 생각했다. 좋은 내용일 것 같은데 꼭 보고 싶지는 않다고. 소외된 사람이 행복해지는 이야기를 왠지 재미없게 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것은 편견에 불과했다. 우선 이 영화는 재미있다. 감동도 있고, 눈물로 마무리되는 해피엔딩도 있다. 무엇보다 눈이 즐거워지는 영화였다.

<복숭아나무>가 좋았던 첫 번째 이유는 시각적인 데에 있다. 남상미, 조승우, 류덕환 모두 훈훈한 외모였지만 특히 두 형제의 엄마 역으로 나온 배우(서현진)가 미치도록 예뻤다. 그렇다고 사람 얼굴만 보기 좋았던 영화는 아니었다.

두 번째로, 촬영이 아름다웠다. 물론 카메라 필터와 색 보정에 의한 장면 연출이겠지만, 멜로에 판타지 같은 느낌을 주는 적절함이 있었다. 장 피에르 주네의 영화가 잠시 떠오르기도 했다. 미쟝센이 좋고, 미술 파트의 장면 구성도 깔끔했다.

그렇다. 이 영화는 멜로 드라마를 기본으로 깔고 있다. 쉽게 말해 요즘 TV에서 보기 어려운 TV 단막극 같은 영화다. 기획과 각본, 연출을 맡은 구혜선은 드라마를 안다. (당연하지 않겠는가. 한국 드라마에서 잔뼈가 굵은 그녀다) 이야기의 기본 얼개는 새롭지 않지만, 샴쌍둥이라는 캐릭터와 따사로운 조명의 아트필스러운 사용, 다양한 시각적 장면 효과는 TV 단막극에서 좀처럼 접하기 어려운 드라마를 탄생시켰다.

이 영화가 내용과 형식 두 마리 토끼를 놓치지 않았다면 믿겠는가. 안 믿거나 못 믿어도 사실이다. 물론 유치하다는 느낌도 든다. 이 영화 자체가 <복숭아나무>라는 동화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요즘 동화가 아닌 옛날 동화 말이다. (영화 속에 '아주 옛날 옛날에 있었던 이야기'란 말이 두 번 나온다) 옛날 동화와 요즘 현실 사이에서 <복숭아나무>는 중심을 잘 잡았다.

물론 요즘 현실은 '평범하지 않음'을 감추고 있는 사람들의 내면을, 옛날 동화는 '평범하지 않음'이 드러난 사람과 드러나지 않은 사람이 함께 행복한, 사람들의 꿈을 뜻한다. <복숭아나무>에서는 두 형제가 일치됨으로써 현실과 꿈 사이의 간격이 좁혀진다.

남상미가 웃기고 조승우가 울린다

 <복숭아나무> 스틸.

<복숭아나무> 스틸. ⓒ 구혜선 필름


초반의 남상미는 어딘지 모르게 안 어울려 보인다. 누군가와의 재회를 기다리는 사람답게 말이다. 하지만 극이 전개되면서 남상미에게서 구혜선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때부터 남상미는 이 영화의 재미를 담당하는 요소가 된다.

남상미, 완전 '구혜선 빙의'였다. 아마도 시나리오를 읽어본 남상미는 여주인공에서 구혜선의 일면을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연기하며 그런 면모를 살리려 했고, 결국 구혜선 감독의 페르소나로서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남상미가 '아이쿠야'(여기서 '쿠'는 구혜선의 'KOO'를 연상시킨다) 할 때, 그리고 '으흐히' 하며 웃을 때 묘한 재미가 느껴진다. 대부분 류덕환과 함께 하는 장면에서다. 이는 어색한 커플의 멜로 라인을 설득력 있게 이어주는 효과를 냈다.

남상미가 재미를 준다면 조승우는 감동을 준다. 류덕환의 몸에 얼굴만 기대 사는 그는 '빨간머리 앤'을 좋아하고, 어머니의 웃는 얼굴을 좋아한다. 그가 어머니의 미소를 보았는지 안 보았는지는 이 영화에서 작은 미스테리 암시 도구로 쓰인다.

결말은 <복숭아나무>를 완벽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비공개하겠다) 이 정도면 구혜선은 자기만의 세계를 완벽히 구축했다고 봐도 된다. 유명 연예인이 잘 만든 독립 영화 같은 두 번째 장편을 내놓은 건 분명 의미 있는 일이다. 그녀의 스타 파워로 많은 스크린 수를 확보하고, 배우 인맥으로 좋은 캐스팅을 이뤘다고 해서 작품을 비하할 필요는 없다.

일각에서는 이 영화의 호러 같은 분위기를 논한다. 분명 몇몇 장면들의 흐름과 음향 등은 배우들의 연기와 더불어 무서움을 제공한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서스펜스적 재미를 위한 장치였다. 영화에는 적당한 긴장감이 있어야 관객이 몰입할 수 있는데, 감독이 다소 서투르게 그런 장치를 사용한 것은 아쉽기도 하다.

이 영화의 아쉬운 점이 또 있다면 음악의 과한 사용이다. 구혜선 감독의 뜻인지 모르지만, 너무 아름다움으로 빈틈을 없으려 했다. 주제가는 너무 여러번 쓰임으로써 다소 '인위적인 동화스러움'을 생각나게 한다.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든다. 구혜선은 주성치처럼 되어가는 걸까 하는…. 추종자들이 즐겨 찾는 영화만 내놓는 배우 겸 감독 말이다. 그러지 않기를 바라고, 그러지 않게 될 거라 믿는다. 주성치는 배우로서 더 빛이 난다. 하지만 구혜선은 감독으로서 더 빛이 나길 바란다. (나는 둘 다 팬으로서 좋아한다) 그리고 다음에 언젠가는 자신이 감독하면서 출연도 좀 더 했으면 좋겠다. 배우로서도 아직 젊지 않은가.

덧붙이는 글 영화 <복숭아나무> 상영시간 106분. 10월 31일 개봉. 15세 관람가.
복숭아나무 구혜선 남상미 조승우 류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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