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헤이리 주민들이 하회마을로 탐방을 간 10월 23일은 음력으로 9월 9일, 중양절(重陽節)이었습니다. 일행은 문중의 초대로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선생의 종택인 충효당(忠孝堂)의 내당(內堂)인 몸채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서애 류성룡 선생님의 15대 직계손 류한욱선생과 '안동하회마을보존회' 류진한 이사장께서 두루마기를 갖추어 입은 모습으로 저희를 맞아주셨습니다.

 방문 환영인사와 충효당의 건축 내력을 들려주시는 류한욱선생
 방문 환영인사와 충효당의 건축 내력을 들려주시는 류한욱선생
ⓒ 이안수

관련사진보기


우리 일행이 대청에 모두 자리를 잡자 안방에 계시던 14대 류영하 종손을 모셔서 함께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올해로 87세인 어른입니다.

 대면인사를 나누는 14대 류영하 종손
 대면인사를 나누는 14대 류영하 종손
ⓒ 이안수

관련사진보기


충효당에 얽힌 긴 내력은 류한욱선생님께서 해주셨습니다. 충효당에 머무는 동안 줄곧 저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부엌에 닿아있는 먼 마루끝에서 제기(祭器)를 손질하고 있는 할머님이었습니다. 부엌위로 높이 올려진 고방(庫房)으로 연결된 계단을 오르내리시면서 굽은 허리를 도무지 펴지 않으셨습니다. 그 분은 이 댁의 종부(宗婦) 최소희할머님입니다.

 방문객을 맞는 뒤에서 묵묵히 뒷일을 감당하시는 최소희 종부
 방문객을 맞는 뒤에서 묵묵히 뒷일을 감당하시는 최소희 종부
ⓒ 이안수

관련사진보기


영남은 북쪽과는 달리 추석 차사(茶祀)를  음력 9월9일 중구제사(重九祭祀)로 지내는 게 보통이었습니다. 추수가 늦어서 햇곡식이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회마을에서는 여전히 그 전통이 지켜지고 있었고 우리가 방문한날이 바로 사당에서 차사를 모신 날이었습니다.

내당 대청마루에는 다섯 개의 정교자상이 놓이고, 방문한 인원에 부족하지 않도록  과일과 떡이 고아(古雅)하게 차려져있었습니다.

"이 음식은 오늘 차사를 모신 것을 내놓았습니다. 아마 이 음식 드시고 가시면 복 받으실 겁니다. 그중 한 가지는 잡수어보지 못한 것일 텐데 '감떡'입니다. 마른 감을 넣어서 만든 것이지요."

 차사에 내었던 감떡
 차사에 내었던 감떡
ⓒ 이안수

관련사진보기


류한욱선생은 이렇듯 깍듯한 예로서 손님을 맞지만 그것을 만져야하는 것은 며느리들의 노동입니다. 살아 계신 어른에게 효도하듯이 돌아가신 어른들에게 효도하는 것이 제사로 여기는, 조선시대 유교 정신과 법통이 여전히 고수되고 있는 충효당인 만큼 제례는 종부의 큰일 중의 큰일입니다.

충효당에서는 1년에 13번의 제사를 모십니다. '주자가례'에 따라 고조까지 4대의 제사와 류영하 어른의 계모, 서애 선생의 불천위 제사 그리고 명절의 차례와 차사까지…. 유가(儒家)의 예법에 따라 제례를 갖추고 또한 평생 이 집 문턱을 넘어오는 수많은 손님들을 맞아 이렇게 상을 내는 수고로움이 고스란히 종부의 허리를 휘게 했구나, 하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ㅁ'자형의 내당 가운데 마당을 가장 큰 넓이로 차지하고 있는 장독대와 그곳에 가득한 큰 항아리들, 부엌이 딸린 날개채를 2층으로 하여 찬방, 고방, 헛간 등 큰 수납공간으로 마련한 것만 보아도 이 댁의 살림규모가 얼마나 컸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살림의 규모를 짐작하게 하는 장독대
 살림의 규모를 짐작하게 하는 장독대
ⓒ 이안수

관련사진보기


최소희 할머님은 12대째 부자로 아름다운 기부를 통한 부자의 사회적 책임을 실천한 대표가문인 경주 최부자집의 둘째따님으로 스무살에 종가의 맏며느리로 시집을 왔습니다. 최소희 할머님은 1999년 엘리자베스 II세 영국 여황의 방문 시에 종부로서 김치와 장 담그는 모습을 재연하고 다례를 올리기도 했습니다.

류영하 어른이 부친이 돌아가시자 즉시 서울생활을 접고 종택으로 내려오셨듯, 종손이 종가를 지키는 것은 종손의 으뜸 의무입니다. 하지만 종가의 전통과 법도를 지키는 것이 종부의 큰 굴레인 만큼 종가마다 며느리보기와 장손자의 결혼이 또 하나의 걱정거리입니다.

종가의 맏며느리 자리는 이제 혼기의 처녀들이 등 돌리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어떤 종가에는 베트남 며느리가 들어왔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종가를 지키며 평생 등 굽혀 살 고생을 감내하라고 강제할 수도 없습니다.

저는 맨 마지막으로 내당을 나오면서 여전히 고방을 지키고 계신 최소희 할머님께 깊숙이 허리를 굽혀 작별인사를 드렸습니다.

"이 자리를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85세 할머님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비쳤습니다. 여전히 수줍음이 가시지 않은….

 14대 종부이신 최소희
 14대 종부이신 최소희
ⓒ 이안수

관련사진보기


서애 류성룡의 종택, 충효당

충효당(忠孝堂)은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 1542~1607)선생의 종택입니다. 현재 서애선생의 14대 종손인 류영하어른과 종부 최소희 어른이 종가의 고택을 지키고 있습니다. 류영하 어른은 서울에서 생물교사를 하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13대 종손이셨던 부친 류시영선생이 돌아가시자 서울 생활을 접고 고택으로 내려오셨습니다. 그때가 1971년이었습니다.

연로하신 류영하 어른을 대신해서 15대 직계손인 류한욱선생이 충효당에 대한 얘기를 들려주셨습니다. 부친이 그랬던 것 처럼 이분도 언젠가는이 종가로 들어오게 될 것입니다.

 충효당에 얽힌 긴 내력은 들려주신 류한욱선생
 충효당에 얽힌 긴 내력은 들려주신 류한욱선생
ⓒ 이안수

관련사진보기


***********************************************

 서애선생의 사후에 선생이 유덕을 받들고자하는 수많은 유림들의 도움으로 지어진 충효당 안채인 내당
 서애선생의 사후에 선생이 유덕을 받들고자하는 수많은 유림들의 도움으로 지어진 충효당 안채인 내당
ⓒ 이안수

관련사진보기


서애 선생님은 저의 15대 선조입니다.

이 집의 당호가 충효당이 된 것은 서애선생님의 유언으로 남긴 시에 따른 것입니다.  후손에게 남긴 그 유시(遺詩)에 '면이자손수 충효지외무사업(勉爾子孫須 忠孝之外無事業 권하노니 자손들아, 충․효 외에는 다른 사업이 없다'라고 했습니다.

이 집은 서애 선생님이 지은 것이 아닙니다. 서애선생님께서는 8년 동안 정승을 하고 내려오셨지만 먹을 것이 없고 집한 칸이 없었습니다. 내려오셔서 초가삼간에 계시다가가 옥연정사에 가셔서 임진왜란 회고록인 징비록(懲毖錄)를 집필하셨습니다. 1604년에 징비록의 저술을 마치고 같은 해 학가산 골짜기 서미동에 농환재(弄丸齋)라는 초가집을 지어 계시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재산이 없고 집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곳은 손자인 졸재(拙齋) 류원지(柳元之) 선생께서 지었습니다.  '임란(壬亂)에 이렇게 공이 많은 분의 신주(神主)를 모실 사당이 없어서 되겠느냐'고 영남 유림에서 도움을 받아 집을 완성했습니다.

처음에는 'ㅁ'자의 이 안채만 짓고 증손인 눌재(訥齋) 류의하(柳宜河)선생이 사랑채를 짓고 당호를 충효당이라고 썼습니다.

그 글씨가 조선 중기 유학자이자 서예가이신 미수(眉叟) 허목(許穆)선생입니다. 영덕 도곡동의 충효당, 삼척 척주동해비문(陟州東海碑文)도 이 분의 글씨이지만 그 후손들이 지금도 탁본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부탁을 합니다. 집에 병풍을 해 두겠다고, 미수선생 글씨 중에서 제일 명필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대문간채는 서애선생의 8대손 일우(逸愚) 류상조(柳相祖)선새이 여기에 계시면서 병조판서, 지금으로 말하면 국방부장관을 제수(除授)받으셨는데 국방부장관이니 병력이 와야되지않습니까? 당장 병력이 기거할 공간이 없어서 한 달 만에 지었습니다. 200여년전 한 달 만에 13칸을 짓는 게 기적이지요. 그렇게 이집이 완성되었습니다. 1964년 보물 제414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서애선생이 임종 무렵 자손들에게 남긴 시의 원문입니다.

林間一鳥啼不息
숲 속의 새 한 마리는 쉬지 않고 우는데
門外丁丁聞伐木
문 밖에는 나무 베는 소리가 정정하게 들리누나
一氣聚散亦偶然
한 기운이 모였다 흩어지는 것도 우연이기에
只恨平生多愧怍
평생 동안 부끄러운 일 많은 것이 한스러울 뿐
勉爾子孫須愼旃
권하노니 자손들아 꼭 삼가라
忠孝之外無事業
충효 이외의 다른 사업은 없는 것이니라.


충효당

( 1 / 18 )

ⓒ 이안수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