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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6월 21일 배재고교 교정에서 열린 한국 구국십자군 창군식에 참석한 박근혜씨. 오른쪽에 안경을 쓴 이가 최태민씨다.
 1975년 6월 21일 배재고교 교정에서 열린 한국 구국십자군 창군식에 참석한 박근혜씨. 오른쪽에 안경을 쓴 이가 최태민씨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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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민 목사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힘들었을 때 흔들리지 않고 바로 설 수 있도록 도와준 고마운 분이다. 의혹은 많이 제기됐지만 실체가 없었다. 한 가지라도 사실이었다면 내가 국회의원이 될 수 있었겠나."(2007년 6월 17일 <중앙일보>와 한 박근혜 후보 인터뷰)

"중정부장이 아버지에게 보고해 다 불러서 직접 조사를 한 적이 있다. 어떻게 횡령했고 사기를 쳤나 보고를 하고 아버지가 묻자 답이 확실하고 그런 게 없었다. 실체가 없는 이야기로 끝이 났다. 만약 어떤 횡령이나 이권 개입이나 공천으로 부당한 짓을 했다면 아버지께 보고가 됐을 것이다. 엄격하신 분으로 이런 일에 대한 용서가 없었을 분이다. 그 의혹은 실체가 있는 얘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2007년 7월 19일 한나라당 대선후보 검증청문회에서 박근혜 후보의 발언)

박근혜 후보를 끈질기게 따라다니는 최태민 목사 관련 의혹은 정말 근거 없는 음해에 불과한 것일까? 박 후보는 시종일관 최 목사의 비리 의혹을 부인하고 있지만, 관계자들의 증언과 10·26 관련 재판 기록은 최 목사에게 비리 혐의가 상당 부분 있었음을 방증하고 있다.

청와대 출입기자의 증언 "최태민 관련 의혹 정리해 청와대에 전달"

최 목사가 1974년 육영수씨 사망 직후 박 후보에게 편지를 보낸 것을 계기로 두 사람은 인연을 맺었다. 박 후보는 다음 해 최 목사를 청와대로 불러 대화를 나눴는데 이 자리에서 최 목사가 박 후보에게 외부 활동을 적극 권한 것으로 전해진다.

최 목사는 1975년 '대한구국선교단'을 발족시키고 총재에 취임한다. 박 후보는 명예총재로 추대됐다. 박 후보가 어머니의 사망이라는 큰 슬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을 때 최 목사는 박 후보 곁에서 큰 힘이 됐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최 목사는 1994년 사망 전까지 사기·횡령·권력형 이권개입 등 끊임없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최 목사를 둘러싼 각종 의혹은 박 대통령 말기 청와대를 출입하던 기자들의 귀에도 들어갔다.

당시 <경향신문> 청와대 출입기자였던 김경래(84, 전 <경향신문> 편집국장)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사업협의회 상임이사의 증언은 최 목사 관련 비리의 실체를 확인하는 데서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김 상임이사는 "대선을 앞둔 민감한 시기에 불필요한 오해를 사게 될 것 같아 걱정"이라면서도 <오마이뉴스>에 자신과 관련된 부분을 확인해주었다.

"최태민 목사, 사실 목사라는 신분부터가 사실이 아니고 사이비였는데 그와 관련된 잡음이 계속 들려왔다. 문제가 심상치 않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최 목사 측근으로부터 제보를 받았다. 처음 제보는 주로 최 목사의 문란한 여성관계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확인해보니 대부분 사실이었다. 그래서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하고 고민하다가 박정희 대통령 앞으로 보내는 서신을 작성했다.

그때가 1977년 초로 기억을 하는데, 최 목사와 관련한 제보와 정보보고 등으로 취합된 내용을 정리해서 의전비서관을 통해 박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나는 5·16 직후 국가재건최고회의 시절부터 출입기자를 해서 박 대통령과는 인간적인 친밀감이 있었다. 내가 서신을 전달한 뒤에 중앙정보부에서 최 목사를 조사했고, 상당부분 사실로 확인된 것으로 알고 있다. 또 다른 경로로 경호실에도 같은 내용이 전달됐는데 차지철 실장은 이런 내용을 묵살했다."

김 상임이사의 증언 중 눈길을 끄는 대목은 차지철 경호실장이 최태민 목사 관련 의혹을 묵살했다는 부분이다.

"10·26은 박근혜 둘러싼 차지철과 김재규의 알력에서 비롯"

지난 2005년 10월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10·26 당시 현장에 있던 김계원(89)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인터뷰를 실었다. 김 전 실장은 1979년 10월 26일 밤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을 맞고 숨져가는 박 전 대통령을 병원으로 옮겼던 인물이다.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1982년 형집행정지로 풀려났다.

인터뷰에서 김 전 실장은 "10·26은 박근혜를 둘러싼 차지철 청와대 경호실장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간의 심각한 알력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켰다. 김 전 실장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박 후보는 10·26의 '원인제공자'가 되는 셈이다. 김 전 실장은 인터뷰에서 당시 차지철 경호실장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앙숙관계가 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게 이제.... 차지철하고 김재규가 최태민(1994년 사망, 전 육영재단 고문) 때문에 많이 싸웠습니다. 최태민 아시죠? 다른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두 사람(차지철 실장과 김재규 부장)이 싸운 것을 나중에 보면 최태민 때문이다. 차지철이 최태민을 앞세우고 박근혜양을 너무 업고 다니니까. 그러면 김재규가 '그러지 마라. 그러면 안된다' 그러거든? 근혜양은 어머니는 없고 외로운 그런 때인데... 근혜양은 자기가 퍼스트레이디로 활동해야 하는데 주위 사람들이 왜 자꾸 나서서 그러느냐, 이런 소리가 나오니까 이 소리가 최태민을 통해 많이 들어가거든요. 최태민이 근혜양 앞에서 자꾸 알랑거리면서. 그러니까 근혜양을 어렵게 만든 놈이 다 최태민이야! 그래서 저놈을 때려 잡아라, 그래 가지고 박 대통령이 최태민을 데려다 야단친 일이 있죠."

그의 증언에 따르면 박근혜씨가 최태민 목사와 밀착하면서 이러 저러한 문제가 발생하자 김재규 부장이 박 대통령에게 이를 보고하고 박 대통령은 최 목사를 불러다 야단을 쳐서 박근혜씨 주변에서 얼씬거리지 못하도록 조처를 취했다는 것. 이후 최 목사의 청와대 출입이 금지됐다고 한다. 일단락된 듯했던 최 목사 문제가 다시 불거진 것은 박근혜씨가 여전히 그와 관계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김 전 실장은 "근혜양은 이에 중앙정보부에서 모함해 그런 거다, 최태민은 그런 사람이 아니다, 아주 선량한 사람인데 왜 정보부에서 모략을 해 자기 아버지 생각을 흐려 놓느냐고 하면서 오해가 생겼어요"라고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오히려 불똥은 김재규 부장에게로 튀었다.

"중정 작성 '최태민 보고서' 후보 검증 차원에서 공개돼야"

<동아일보> 기자 출신으로 10·26 사건 관련 계엄사령부 군사법정 관련 자료를 입수해 최초로 보도했던 김재홍 경기대학교 정치전문대학원 교수(63, 전 국회의원)는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중정의 최태민 목사 내사가 10·26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었지만 김재규 중정부장이 박 대통령으로부터 신임을 잃게 되는 계기가 되어 결과적으로는 10·26 사건이 일어나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1977년 봄 중앙정보부가 최태민 목사 주변을 내사해서 '큰 영애와 최태민에 대한 종합보고서'를 작성해서 박 대통령에게 보고했다"며 "군사법정에서 김재규가 진술한 기록을 보면 자신이 박 대통령에게 내사 결과를 보고하면서 적절한 조치를 건의하자 '중앙정보부가 이런 것까지 내사하나?'라며 아주 언짢은 반응을 보였다고 되어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 "김재규 부장이 내사 보고를 올린 후에 박 대통령이 당사자인 박근혜씨와 최 목사, 김 부장과 정보부 백광현 국장을 한 자리에 불러 놓고 이른바 '친국'을 벌였는데, 박근혜씨와 최 목사는 세간에 떠도는 풍문과 정보부의 내사가 근거 없는 음해라며 강력히 반발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밝혔다.

김재규 부장은 재판부에 제출한 항소이유보충서에서 "본인이 결행한 10·26 혁명의 동기 가운데 간접적이기는 하지만 중요한 것 한 가지는, 총재 최태민, 명예총재 박근혜양으로 되어 있는 구국여성봉사단 문제이며, 본인은 최 목사의 부정행위를 상세히 조사해 박 대통령에게 보고했지만 박 대통령은 근혜양을 그 단체에서 손을 떼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근혜양을 총재로 최태민 목사를 명예총재로 올려놓았다"고 밝히고 있다.

10·26 직후 만들어진 대통령 시해사건 합동수사본부의 수사기록에도 최 목사에 대한 김재규 부장의 증오가 드러난다. 1992년 8월 29일자 <동아일보>는 합동수사본부에서 중앙정보부 수사파트 K 부장이 아래와 같이 진술했다고 보도했다.

"김 부장은 '최 같은 자는 백해무익하므로 교통사고라도 나서 죽어 없어져야 한다'고 증오를 표시했다. 새마음봉사단의 부총재(총재 박근혜)인 사이비 목사 최가 사기, 횡령 등 비위사실로 퇴임한 후에도 계속 막후에서 실력자로 영향력을 행사하여 각 기업체 사장들을 운영위원으로 선임하고 성금을 뜯어내는 등 새마음운동 취지를 흐리게 해서 계속동향을 감시하라는 김 부장의 지시를 받았다. 79년 5월 내사결과 최의 이권개입 여자봉사단원과의 추문 등 비위사실을 탐지하여 김재규 부장에게 보고한 바 그렇게 말했다."

김재홍 교수는 "당시 중앙정보부가 그렇게 허술한 조직이 아니었다"라며 "절대권력자인 대통령의 딸과 관련된 문제를 어떻게 정보부장이 확인도 않고 대통령에게 보고할 수 있었겠는가"고 반문했다. 김 교수는 또 "당시 작성된 내사보고서는 당연히 지금도 국가정보원 기밀자료 존안실에 보관되어 있을 것"이라며 "박근혜 후보는 유력한 대선 주자이기 때문에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서라도 마땅히 법률에 의한 정보 청구를 통해 공개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태그:#박근혜, #최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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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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